신규 인력 충원 없는 주5일제 시행으로 동시다발 총파업 등 노사간 충돌 불러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오는 7월1일부터 1천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본격 시행되는 주5일 근무제를 앞두고 노동계의 여름투쟁이 불붙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병원 파업에 이어 자동차 등 금속노조, 한국전력 등 발전노조, 그리고 지하철노조가 줄줄이 파업을 선언해놓고 있다. 병원 파업에서도 그랬듯, 올해 민주노총의 동시다발 총파업의 도화선은 ‘주5일 근무제’다. 예년처럼 임금인상 요구나 구조조정 반대 파업이 아니다. 지난해 9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5일제 법안이 이미 확정됐는데, 왜 지금 주5일제가 또다시 노사 갈등의 핵심 쟁점으로 등장한 것일까?
“노동 조건만 더 악화된다”
노사가 마주 보며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하고 있는 지점은 대체로 △주5일제 시행에 따른 신규 인력 충원 △휴일휴가 일수 조정 같은 주5일제의 시행 방식 △업종별 최저임금 등 세 가지다. 노동계의 요구는 간단하다. 우선, 토·일요일을 쉬는 ‘온전한 주5일제’를 하려면 그만큼 신규 인력이 충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근로기준법의 주5일제 조항은 ‘최저 노동기준’을 정한 것에 불과하므로 근로기준법과 상관없이 노사간 단체협상을 통해 주5일제 시행 방식을 얼마든지 따로 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용자쪽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신규 인력 충원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토요일은 ‘알아서’ 쉬되 대신 현재 인력이 연장근로를 해서라도 맡은 일은 예전처럼 똑같이 하라는 것이다. 또 근로기준법이 있으므로 ‘법대로’하면 된다고 맞서고 있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하는 수준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칠 정도로 턱없이 낮기 때문에 아예 업종별로 단체협상을 통해 ‘최저임금 현실화’를 쟁취하겠다는 게 노동계의 방침이다. 따라서 이번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현장의 힘’을 동원해 제도를 바꾸겠다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주5일제를 둘러싼 정면 대결은 이미 예고돼왔다. 정부는 지난 5월 ‘공기업 주 40시간제 시행 방향’을 통해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연월차 휴가를 폐지·축소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이런 지침을 지키지 못하는 공기업은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준다는 강경 방침을 내려보냈다. 그러나 이에 맞서 민주노총은 개정 근로기준법과 무관하게 △휴일휴가 일수 현행 유지 △유급 생리휴가 고수 △초과근로 수당 할증률 50% 유지를 담은 주5일제 교섭 지침을 산하 사업장에 하달했다.
갈등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문제는 ‘인력 충원’ 여부다. 민주노총은 “주5일 근무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관건”이라며 “주로 교대근무를 하고 있는 병원·지하철·발전노조의 경우 ‘인력 충원을 통한 주5일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삶의 질 향상은커녕 노동 조건만 더 악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건의료노조 김성주 선전국장은 “다른 산업도 모두 온전한 주5일제를 하는데 병원이라고 주6일 근무를 할 수 있느냐”며 “인력 충원 없이는 주5일제가 불가능한데도 병원쪽은 인력은 그대로 둔 채 연장근로 수당을 주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만 되풀이한다”고 말했다. 주5일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최소한 10%의 인력이 더 충원돼야 한 주에 이틀을 쉬는 온전한 주5일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성주 국장은 “고용 없는 성장 시기에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올해 최대 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주5일제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아서 회사쪽도 코너에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창출이 기대되지만, 정부가 신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아무런 지원 대책 없이 주5일제를 시행했기 때문에 사용자쪽도 현행 인력 동결만 고집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부산·인천·대구·광주지하철 노조 등으로 구성된 궤도연대노조도 인력 확충이 최대 쟁점이다. 궤도연대는 서울지하철의 경우 주5일제에 따라 인력 정원(1만202명)이 3043명 더 늘어야 하는 등 전국 각 지하철 정원을 30%가량 더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지하철공사쪽은 적자 경영을 이유로 인력 동결을 고수하고 있고, 서울지하철공사는 오히려 인력을 193명 더 축소하겠다는 안을 들고 나왔다. 흑자경영 달성을 위해서는 인력을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그동안의 대대적인 인력 감축으로 2인 승무제에서 1인 승무제로 바뀐 뒤 스트레스 급증에 따른 지하철 공황장애를 호소하고 있는 상태다.
궤도연대 나상필 국장은 “지하철은 생산라인 자동화로 효율성을 높일 수도 없고, 전동차를 더 빨리 운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주5일제가 시행된 뒤에도 지하철을 그대로 운행하려면 인력 충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하철공사쪽은 현재 인력이 1시간 남짓 전동차를 더 타는 식으로 근무 형태를 빡빡하게 돌려 해소하려 한다”고 말했다. 주 40시간 노동에 따라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에 대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예산이 전혀 편성되지 않은 탓에 주5일제가 오히려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더 증가시킬 공산이 커졌다는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에 관심 없는 정부
발전회사에서도 똑같은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발전노조쪽은 “인력 충원은 할 수 없다면서도 무슨 신통한 비법이 있는지 회사쪽은 토요일에 쉬라고 말한다”며 “자신이 맡은 발전설비 정비 업무를 누가 대신해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쉴 수 있냐”고 말했다. 주5일제가 시행되더라도 토·일요일 역시 전력을 계속 생산해야 하는데, 노동자들이 해야 할 업무량은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어떻게 실질적인 주5일 근무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발전노조는 “토·일요일을 모두 쉬는 온전한 주5일제를 하려면 현재 인력의 약 30%인 1700여명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산업자원부가 사실상 발전회사들의 예산을 통제하고 있는데 인력 확충에 대한 승인을 해주지 않아서 교섭이 난항에 부닥쳐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올해 최대 국정 과제로 표방하면서도 정작 주5일제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래서 노동계의 여름투쟁을 자초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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