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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이기주의가 미워!”

등록 2004-06-24 00:00 수정 2020-05-03 04:23

행정수도 건설 기대감으로 총선 때 여당 팍팍 밀어준 충청도 민심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대전= 손규성 기자/ 한겨레 사회부 sks2191@hani.co.kr

“배 아퍼서 그렇지, 뭐.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거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아버지 유지를 받드는 일인데 적극 찬성을 못할망정 발목을 잡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동방예의지국에서….”

지난 6월20일 유력한 신행정수도 후보지로 떠오른 충남 연기군 남면의 농민 안원종(48)씨가 “고 박정희 대통령이 공주 장기로 행정수도를 옮기려고 했는데, 그 딸이 대표로 있는 한나라당이 발목을 잡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트리자, 친구인 박성순(공주시 장기면 대교리)씨가 한나라당의 행태를 로맨스와 불륜의 논리에 빗대 뒤틀린 심사를 털어놨다.

한나라당 정무부시장도 “대통령이 맞다”

최근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이 힘을 합쳐 ‘천도’와 ‘국민투표’ 운운하며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을 전면 부인하고 나오자 충청도민의 정서는 이들 두 친구의 대화처럼 심사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애초 노무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 충청권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왔을 적엔 실제 추진 여부에 반신반의했으나, 지난해 12월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4개 후보지까지 발표되자 이 지역 사람들에게 수도 이전 건설은 이미 ‘진행형’이 되고 말았다. 지난 4·15 총선 때 대전, 충남·북 지역 30개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에 29석을 몰아준 것도 행정수도 건설 기대감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분석이었다. 총선 당시 한나라당 대전·충남지부가 당사 벽면에 ‘신행정수도 건설 한나라당이 앞장서겠습니다’라는 대형 펼침막을 내건 것도 같은 이유였다.

이런 정서를 의식해서인지 한나라당 소속인 김광희 대전시 정무부시장은 지난 18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투표는 이미 종결된 문제’라는 발언 뒤 “대통령의 인식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그는 “이미 국민의 대표 기구인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통과시켰는데 이제 와서 새로 국민투표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일부 단체와 단체장들이 헌법 소원과 권한쟁의를 제기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월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변종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난 의식이 커지고 있다.

대전의 자영업자 윤석환(40)씨는 “지난해 2월 한나라당은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제안하자 ‘국회를 무시한 발상’이라며 거부했다”며 “이제 와 국민투표와 헌법 소원을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으로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대전 노은동에서 건설업을 하는 송호범(46)씨는 “수도권 단체장들이 헌법 소원과 국민투표를 제기하는 것은 기형적으로 집중된 서울의 기능을 그대로 지키려는 수도권의 또 다른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냐”며 “그들이 피폐해진 지방의 문제를 한번이라도 생각했는지 양식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보수언론들의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한 보도 행태에 대해서도 배경 문제를 거론하며 언론개혁의 강한 추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기군 농민회장 육해일(46)씨는 “보수언론들이 행정수도 편입 농민들에 대한 보상가가 공시지가에 불과해 사실상 빈털터리로 쫓겨나가게 된다는 식으로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다”며 “노무현 정권의 가장 대표적인 지방분권 및 국토 균형발전 계획을 무력화해 앞으로의 언론개혁에 손도 못 대게 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전 촉구 온라인 서명운동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시민단체들의 대응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지방분권운동 대전본부는 지난 16일부터 “신행정수도 건설은 ‘나라 살리기’의 절박하고 비상한 시대적 요구”라며 ‘차질 없는 신행정수도 이전 촉구 온라인 서명운동’에 들어갔으며, 25일에는 정책 워크숍을 마련해 논리적 대응책을 찾기로 했다. 또 각 정파와 진보·보수 단체를 망라했다가 지난해 특별법 국회 통과로 사실상 해체된 ‘행정수도 이전 범국민연대’(행범련) 재결성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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