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재선 실패에 '번지점프'하는 미국 여론조사 전문가들… '안보' 지지율 흔들리고 부동표도 빨간불
워싱턴= 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지난 5월9일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가인 존 조그비는 웹사이트 독자들에게 이런 뉴스레터를 보냈다.
“나는 과거에 선거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위험천만한) 번지점프를 하곤 했다. 때때로 나는 헬멧도 쓰지 않았다. 약간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2004년 대선을 향해 번지점프를 하겠다. 결국 케리가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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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결과를 단언하는 말을 삼가는 건 언론이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에겐 일종의 불문율이다. 선거란 게 워낙 변수가 많고, 예측이 틀렸을 때 입을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 조그비의 공개적인 예언 이후에도 이를 반박하는 주장은 아직 별로 없다. 오히려 <cnn>에서 여론조사 해설을 하는 빌 스나이더 같은 전문가들이 조심스럽게 그의 예측에 동조하고 있다.

지지율 추세, 재선 가능성 거의 없어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보자.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확실시되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 전망은 아주 어두워졌다. 5월24일 발표된 <cbs> 조사에서 그의 국정지지율은 41%까지 떨어졌다. 40% 밑으로 떨어지면 사실상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까지 있다. 같은 날 발표된 갤럽 조사에서 부시의 국정지지율은 47%였다. 5월 들어선 계속 50%를 밑돌고 있다.
적어도 지지율 하락 추세로만 보면 부시의 재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국 대선은 ‘숨막히는 접전’이다. 그 이유는 존 케리 민주당 후보에게 있다. 이라크를 비롯한 외적 상황은 부시에게 유리할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케리가 매력이 없는 탓에 ‘부시 대 케리’의 가상대결에선 박빙의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조그비는 “만약 케리가 진다면 그건 그가 승리를 차버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여론조사 전문가 빌 스나이더는 이것조차도 부시에게 유리할 게 없다고 말한다. 역대 대선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11월 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현직 대통령이 도전자를 큰 격차로 앞서지 않으면 재선되기가 힘들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역대 통계를 보면, 선거의 해 5월에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의 국정지지율은 모두 50%를 넘었다. 실패한 대통령들의 지지율은 30~40%대에 머물렀다. 부시는 후자에 속한다.
도전자와의 지지율을 비교해보면 부시 대통령의 약세는 더욱 뚜렷해진다.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등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은 5월에 상대당 후보를 10~19% 포인트 차로 크게 앞서고 있었다. 심지어 재선에 실패한 지미 카터와 조지 부시(아버지)도 이맘때엔 상대당 후보를 상당한 격차로 앞섰다.
부시는 벌써 케리에게 박빙이지만 뒤지고 있다. 이번 대선에선 누가 이기든 표차는 그리 크지 않을 게 분명하다. 미국 사회가 ‘50 대 50’으로 완전히 갈라지면서 부동층은 매우 적은 숫자로 줄어들었다. 5월21~23일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선 케리 49%, 부시 47%에 부동층 비율은 불과 4%였다. 이 4%가 결국 미국 대선의 승패를 가른다. 존 조그비는 부동층의 투표 성향이 도전자에게 유리하다고 말한다. “역대 대선에서 부동층은 도전자에 쏠리는 경향이 있었다. 대안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분석했다.
물론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여론조사일 뿐이다. 지금 시점의 민심을 반영할 뿐 6개월 이후의 전망까지 담보할 수는 없다. 부시 진영의 낙관적 전망은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현재로선 주요 이슈들에서 부시의 형편이 나아질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 사태를 부시 재선의 잣대로 보는 유권자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최근 <abc> 조사를 보면, 한때 70%를 웃돌던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 지지율은 40%로 뚝 떨어졌다. 반면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58%로 크게 늘었다.
‘스윙 스테이트’에서의 역전
국가안보 문제도 마찬가지다. 부시의 가장 큰 강점이 여기에 있었다. 그는 ‘전시 대통령’을 내세우며 “테러와의 전쟁엔 부시가 적격”이라고 홍보해왔다. 정책 분야별 조사에서 부시는 경제, 환경, 세금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오래 전부터 케리에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오직 하나, ‘테러와의 전쟁’에선 케리를 더블스코어 차(4월15일 조그비 조사 부시 64%, 케리 30%)로 앞섰다. 이게 부시 지지율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이 분야에서도 부시는 케리에 바짝 쫓기고 있다.
경제도 부시에게 유리하지 않다. 올해 들어 미국 경제는 분명하게 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부시에겐 유리한 신호다. 지난 3월 미국의 일자리 수가 4년 만에 처음으로 30만개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가 나왔을 때 공화당은 환호했다. “부시 집권 4년 동안 23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케리의 비판은 공화당에 가장 아픈 대목이었다. 3월의 추세라면 11월 대선 때까지 20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 같았다. 실제 4월 이후에도 일자리 수는 계속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엔 반영되지 않는다. 여전히 경제 문제에선 유권자들은 부시보다 케리를 더 선호하고 있다.

부시에게 더욱 암울한 소식은 따로 있다. 대선 당락을 가를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에서 케리와의 지지율이 역전된 것이다. 미국 대선은 한 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그 주에 걸린 선거인단을 독식하고, 이 선거인단 합계로 당선자를 가리는 ‘선거인단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사실상 싸움은 몇몇 접전지역에 집중된다. 뉴욕 매사추세츠 같은 민주당 지지가 확고한 주는 ‘블루 스테이트’로, 텍사스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공화당 지지가 확고한 주는 ‘레드 스테이트’로 불린다. 미시간, 오하이오, 플로리다 등 나머지 17개 ‘스윙 스테이트’에서 누가 이기느냐가 대선 승패를 가른다.
부시 재선이 확고하다는 전망은 그의 국정지지율이 높다는 점뿐 아니라, 이들 ‘스윙 스테이트’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한다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5월23일 갤럽 조사를 보면, ‘스윙 스테이트’에서 부시와 케리의 지지율이 역전됐다. 더구나 ‘레드 스테이트’에서 케리와의 격차는 줄어든 반면, ‘블루 스테이트’에선 케리와의 격차가 훨씬 벌어졌다.
“케리보다는 낫다”고 강조하라?
아직 부시에겐 두 가지 희망이 남아 있다. 하나는 이번 대선을 현직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가 아니라 ‘케리에 대한 신임투표’로 가져가는 것이다. 공화당의 핵심전략가인 매튜 다우드는 “우리는 지금 (부시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두 후보 중 누가 나은가를 비교하는 게 더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부시가 맘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케리보다는 낫다”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준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을 대거 투표장에 끌어내는 것이다. 어차피 부동층이 거의 없는 상황에선, 누가 더 지지층을 많이 동원하느냐가 당락의 열쇠다. 그러나 빌 스나이더는 이런 전략에 회의적 시선을 보낸다. “중간선거에선 이런 전략이 때때로 먹혀들지만 대선에선 아니다. 대선에선 ‘스윙 보우터’(swing voter, 공화 또는 민주당원이지만 당적에 얽매이지 않고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온다. 이들이 부시에게 투표할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별로 없다”고 그는 말했다.
</abc></cbs></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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