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지금은 남북경협시대 2회]
마구잡이 조성→환경오염 피해급증→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어떻게 극복할까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개성공단은 국내 산업단지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많은 도시계획 분야 전문가들은 그간 국내 공단이 겪어온 시행착오를 개성공단이 되풀이한다면 또 다른 비극이 될 것이라는 다소 거친 견해들을 내놓는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사실 공단만을 개발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며 “물리적으로 땅을 밀고 도로를 내고 그 밑에 상하수도를 만들고 전선을 깔고 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떻게 잘 관리하고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공단은 과밀 상태고 지방 공단은 놀고 있는 현실을 빗댄 말이기도 하다. 요컨대 경제특구라는 화려한 꼬리표를 달고 있더라도 투자유치를 얼마나 잘하느냐. 그것도 얼마나 양질의 기업들을 유치하느냐. 그리고 이들이 기업이익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나 물류 등을 얼마나 잘 지원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주장이다.

북한은 경제특구다운 특구를 다뤄본 경험이 전무하다. 게다가 정치·경제적으로 여전히 불안정해 투자의 위험성이 다른 지역에 견줘 높다. 이는 정부나 개발업자의 더욱 철저한 사전 준비와 치밀한 전략 수립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김진호 한국토지공사 사장은 국내 산업단지와 개성공단 개발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근본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나 인프라 시설이 부족해 남쪽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고, 법·제도적 측면에서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하는 데 다소 미비 사항이 있어 북한 당국자와 많은 협의가 필요하다. 또 북한은 토지와 건물의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에서 관리함에 따라 개성공단 내 토지는 개발업자가 취득이 아닌 토지 임차 형식으로 가져와 일반 투자자에게 분양하는 점도 주요 차이점이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개발 필요”
개성공단은 또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60km 지점에 자리잡고 있고, 가까이에 인천공항, 인천항, 서울외곽순환도로 등의 교통망이 입체적으로 잘 갖춰져 있어 물류비 절감이 기대된다. 개성공단 착공 연도의 최저 임금수준이 월 57.5달러로 한국돈 월 8만원선이라는 점, 여기에다 언어소통이 가능하고 토지공급 가격이 국내 수도권 내 공장용지의 약 3분의 1 수준인 15만원대인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특구라도 입지나 법·제도적 조건이 유리하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법·제도 및 인프라의 완비뿐 아니라 지속적인 개발재원 조달과 경제특구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계의 수많은 지역이 경제특구로 지정됐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이는 한국의 경제특구도 예외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건설된 많은 국내 산업단지들은 개발 철학과 전략 부재, 운영의 일관성 결여, 정치논리 개입, 환경관리 실패 등으로 상당수가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분석팀장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개성공단의 정치·경제적 역할 등을 고려해 통일경제적인 중장기적 관점에서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나 기업은 경제 외적 불안 요인을 최소화하고 개성공단 지원과 운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과거 공단운영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는 겸손한 자세도 개성공단 성공의 관건으로 지적된다.
70년대의 오류 되풀이하지 말아야
기존 공단 분양 시스템이나 입주업체 선정 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투명하고 공정한 민주적 절차를 보장하고, 개발업자가 수익성을 우선시해 상황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기업을 선정해 입주시켜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선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는 필요할 경우 입주기업 선정 기준을 공론에 부쳐 누구나 수긍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을 뽑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국내 공단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합리적인 입주기업 선정 기준을 정해놓고도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사정이 여의치 않자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을 마구 입주시켜 공단 전체를 망가뜨리는 사례가 흔했다. 즉, 계획 단계에서 원치 않았던 업종이나 국내외 어디에도 오갈 데 없는 업종의 기업이 공단의 주인 노릇을 하는 바람에 양질의 기업이 등을 돌렸던 것이다.

이처럼 공단 개발업자가 수익성만 좇아 공단 난개발에 앞장서고, 정부가 적당히 눈감아줄 경우 그 폐해는 자못 심각하다. 인천발전연구원의 조경두 박사는 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지난 30여년 동안 이른바 ‘압축형 공업화’에 의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뤘고, 이에 따라 세계 10위권의 교역국으로 발돋움했다”고 평가하면서 “이런 방식의 경제성장은 부작용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시켰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대체로 환경오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큰 산업의 성장을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했다는 지적이다. 조 박사에 따르면 압축형 공업화는 국가 경제의 급격한 성장에는 매우 효과적이었으나 산업체들이 자리잡은 주변 지역의 환경을 크게 악화시켰다. 이는 남쪽뿐 아니라 북한 당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현 경제 상황이 한국의 1970~80년대 초반과 비슷한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경제재건을 가장 우선시해 마구잡이 개발을 허용할 경우 그 후유증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은 그간 대규모 공업단지의 조성→오염물질의 대량 배출→환경오염 피해 급증→공단 주변지역 거주 환경의 악화→지자체의 환경개선과 피해보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 지불의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공업용지의 조성과 그 주변의 토지이용이 계획성 있게 이뤄지지 않고, 타당성과 환경영향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개성공단도 충분히 직면할 수 있는 문제점들이다. 온산공단 및 여천공단 주변 주민들의 집단이주, 인천 수출산업단지, 남동산업단지, 반월산업단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각종 피해민원 등은 공단 난개발에 따른 부작용의 심각함을 잘 보여준다. 조 박사는 “이런 불합리의 출발점은 충분한 대책 없이 이뤄진 공단조성과 개발이익을 앞세운 무계획적인 공단 주변 택지조성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정부-개발업자-입주 기업 박자 맞추자
개성공단 역시 쾌적한 주변 환경을 유지하는 게 난제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공단은 불가피하게 많은 양의 폐기물을 배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단은 입지·산업 특성상 서로간의 폐기물질을 재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장점도 있다. 전문가들은 어느 한 기업이 배출한 폐기물을 대기나 물, 토양으로 내보내지 않고 다른 기업의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공단의 공해물질 배출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여건을 조성하면서도 공단 내 산업생태적 원리를 적용하면 환경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주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른바 ‘생태공업단지’가 개성공단 개발의 궁극적 목표점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관건은 입주 기업간의 긴밀한 협력이다. 기업끼리 협력해 경제적 상호이익을 거두면서 환경개선도 도모하는 산업 공생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개발업자(토공·현대아산)-입주 기업 사이의 세 박자가 고루 맞춰져야 개성공단의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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