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지금은 남북경협시대 2회]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 “개성공단 빨리 가고파”…투자손실 보전 등이 관건
▣ 글/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 협찬/ 한국토지공사
“개성공단이여, 어서 문을 열어다오.”
중소 기업인들의 아우성이다. 벌써 몇년 째다. 이들은 이제 오갈데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기협)는 지난해 12월 ‘개성공단 조기조성방안 보고서’를 내고, “인력, 판매, 기술난에 직면한 중소기업은 전체의 65%가 중국 등 저임금 활용이 가능한 나라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현재 국내 중소기업들은 특히 인력난 심화로 북한의 저임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개성공단에 희망을 가진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기협이 회원사를 상대로 한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41.7%가 개성공단 입주가 가능할 경우 6개월 안에 입주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중기협은 줄기차게 정부와 토공이 떠맡은 100만평 밖에서라도 자체적으로 공단을 만들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중소기업들의 이런 절박한 요구는 중국이나 동남아 진출 실패율이 높은 것과도 무관치 않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수출은 크게 늘고 있으나,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게 중기협의 지적이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중국 진출기업 가운데 약 60% 정도만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대한상공회의소가 수도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물었을 때 중국 진출업체 10곳 가운데 2곳이 투자실패 등으로 철수했으며, 나머지 1~2곳이 곧 중국을 떠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지 중국파트너와의 불화, 각종 우대조처의 감소, 규제 및 과세의 변화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최근 중국 진출 중소기업들을 만나고 돌아온 정양근 중기협 남북경협위원장은 “최근 중국 정부가 투자 과열을 식히고자 긴축정책을 펴겠다고 하는 바람에 기업들이 더 위축돼 있다”면서 “이들은 중국에서 번 돈을 한국에 투자할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맬까”
하지만 정부나 토공은 중소기업들의 이런 사정을 헤아리면서도 선뜻 삽질에 나설 수가 없었다. 첫 시범단지가 갖는 무게 때문이었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이를 “정부로서는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매서 쓸 수는 없는 것”이라고 에둘러 반박했다. “전체 공단 부지 800만평 가운데 100만평도 시범성이 있지만, 시범단지 1만평은 더더구나 시범성이 큰데 그것을 그냥 초라하게 시작할 수는 없는 거고,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중소기업들도 정부나 토공의 입장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북쪽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조금 끌기는 했지만 사업 성공의 최대 관건이었던 토지임차료가 정부나 토공 요구안에 가깝게 확정되자 박수를 보내는 중소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 특히 인건비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는 중소기업들에게는 큰 혜택이 될 수 있는 것이 개성공단이다. 인건비가 57.5달러, 고용조건도 자유롭게 고용하고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고, 인건비도 1년에 5% 넘게 오르지 않기로 돼 있다. 납세조건도 유리하기 때문에 개성공단이 중국이나 동남아에 비해 경쟁력이 보장된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의 설명이다.
정말 이 정도 조건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나무랄 데가 없는 투자환경이라고 중소기업인들은 동의한다. 한국토지공사는 이르면 이번 주 안에 개성공단 1만평 시범단지에 대한 첫 분양공고를 낸다. 정부나 토공 안에서는 국내 산업단지 분양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초기에는 10개 기업 정도가 선발대로 개성에 들어간다. 이들은 그야말로 개성공단 전체 사업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것은 참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10여개 미만의 기업체 입주라 할지라도, 정말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성공해야 한다… 만평에 들어가는 기업들이 정말 잘돼야 한다.” 거듭 잘돼야 한다는 정 장관의 주장 속에는 정부가 첫 입주기업에 거는 기대와 우려가 얼마나 큰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개성공단 1만평에 들어가는 기업은 거의 고시 수준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분양의 주체인 토공으로서는 엄격하게 옥석을 가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셈이다. “어떤 분들은 중국에서 퇴출당하는 기업들이 들어오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엄격하게 해서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도 그렇고, 국제적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좋은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을 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토공은 입주기업 선정기준과 방법으로, △시범단지는 남북관계악화 등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 투자 여력이 있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유치해 성공가능성을 제고하고 △기반시설이 미비한 상태이므로 용수·전력 등 기반시설 수요과다 업종은 입주를 제한하며 △입주업체 모집은 신문공고를 통해 신청을 접수하고 대상자를 투명·공정하게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최초 입주기업, 고시 수준의 관문
하지만 중소기업들도 정부나 토공에 할 말이 많다. 중소기업들은 일단 정부나 토공의 이런 입장을 이해한다는 자세다. 하지만 이들은 개성공단이 갖는 이점에 솔깃해하면서도 과연 개성공단에 입주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한 중소기업인은 “정부·토공이 중소기업을 위해 나름대로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면서도 “과연 1만평이든, 100만평이든 그 안에 들어가서 생산이 차질 없이 이뤄질까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신중하게 입주기업 선정에 관여하되, 일단 선정했으면 그 기업들을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금융지원을 해달라는 요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양근 중기협 남북경협위원장은 “공단을 만들고, 도로를 만들고 다 좋다. 이제 문제는 투자의 불확실성”이라며 “정부가 개성공단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남북협력기금에서 50% 정도는 융자가 아니라 보조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지원도 거론된다. 대출 금리를 크게 낮춰줄 경우 개성공단 진출에 크게 보탬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인들은 대체로 개성공단 사업성공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부의 금융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들을 내놓고 있다.
어떤 기업인은 대만기업의 중국 대륙 진출 때의 정부 지원을 모범적인 예로 들기도 했다. 중국이 1980년대 초반 처음 경제특구의 문을 열었을 때 대만 기업들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주저주저했으나 대만 당국이 직접 나서 투자를 촉구하고, 실패에 따른 책임을 나눠 갖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자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대륙으로 건너갔다는 지적이다.
컨소시엄 구성 움직임도 활발
기업인들은 한마디로 개성공단에 관한 한 정부가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남북경협은 어쩔 수 없이 통일정책과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통일부가 정책이나 관리의 차원에서만 개성공단을 바라보지 말고, 철저한 비즈니스적 시각도 가져야 개성공단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인의 시각에서 이들이 진정으로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신명나게 사업을 벌여 돈도 벌고, 통일정책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지를 진정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소기업인들은 대북 투자에 따른 손실을 정부도 과감하게 보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정부도 이런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진호 토공 사장은 “개성공단 내 진출업체의 책임 없는 사유 즉, 전쟁·천재지변 등의 비상사태나 북쪽 당사자의 파산, 지급지연, 계약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소정의 확인 절차를 거쳐 손실을 보전하는 방안을 관계 당국에서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사이의 컨소시엄 진출도 위험을 줄이는 방안으로 고려되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 단체신청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전등기구공업협동조합의 임충규 전무는 “위험을 줄이면서 모든 공정을 효율적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업들끼리 컨소시엄을 만들어 진출해 협동화단지식으로 만들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회원 기업들은 개성공단 진출이 아직은 조금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런 점을 잘 알고, 잘 조정하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임 전무는 특히 정부가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의 인프라 시설만이라도 제대로 갖추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분양공고만 나오면 약 50개 회원사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주를 신청할 계획이다. 정양근 중기협 남북경협위원장도 컨소시엄 진출에 긍정적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북한에 들어가 그나마 투자를 해서 햇볕정책이 지금 빛을 보고 있는 거다. 그야말로 중소기업들은 밀알 역할을 한 거 아니냐. 앞으로 개성공단에 들어갈 기업들도 그런 역할을 하고,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컨소시엄 진출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원스톱 서비스 등 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부도가 나도 북한에 뭔가 남겨야”
상당수 중소기업인들은 한국 경제의 호불황과 상관없이 개성공단이 생존의 돌파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이들은 역시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싼데다, 노동력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는다. 청년 실업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으나, 중소기업들은 생산주문이 밀려 있어도 사람을 제때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금융지원까지 보태준다면 그야말로 개성공단은 적어도 중소기업인들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비칠 만하다. 물론 개성공단은 중소기업 유치만을 겨냥해 조성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개성공단이 중국의 상하이 등 이름난 경제특구 못지않은 세계적인 첨단 산업공단으로 발전되기를 바라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국내 중소기업, 대기업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투자하기를 목매어 기다리고 있는 터다. 하지만 역시 초기에는 중소기업인들이 개성공단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 전력, 용수 등 대기업이 들어가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투자여건이 채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또 “중국에 들어가 실패하는 것보다 북한에 들어가, 설령 부도가 나도 북한에 뭔가 남겨주는 게 낫지 않느냐”는 임 전무의 말처럼 중소기업인들의 남다른 동포애도 개성공단 활성화의 불쏘시개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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