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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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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국경을가다9] 기나긴 분단의 그린라인!

등록 2004-05-12 00:00 수정 2020-05-02 04:23

[세계의 국경을 가다 9회- 키프로스]


영국의 식민지배에 이어 터키의 침공으로 분단된 키프로스. 유엔의 통일안에 대한 국민투표 현장을 찾아간다. 통일의 길은 멀기만 하다.


유엔 통일안 국민투표 맞은 남북 키프로스의 풍경… 지난해부터 자유왕래 열렸지만 갈 길은 멀어

남북 니코시아(키프로스)= 글 · 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제시한 통일안에 대한 남북 키프로스의 국민투표가 지난 4월24일 아침 7시에 시작됐다. 필자는 투표 참관취재를 위해 이른 아침 리카비토스 초등학교에 설치된 투표장으로 향했다. 니코스 파파도풀로스(55)씨는 투표장에 부인과 함께 왔으나 견해는 서로 달랐다. 부인은 ‘OXI’(반대)표를, 자신은 ‘NAI’(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지금이 바로 통일을 위한 기회이며 변화의 시점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도박도 해야 한다”고 찬성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나중에 천천히 통일해도 늦지 않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남키프로스에는 통일안 반대 물결이 훨씬 거세다. 키프로스 대통령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아난의 통일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키프로스 정교회 대주교는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일안 반대 물결 거센 남키프로스

니코시아 시내에는 ‘OXI’라는 글자가 거리의 벽을 가득 메웠다. 어떤 이들은 ‘OXI’를 차에 대문짝만하게 달고 다녔다. 이런 분위기 탓에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찬성표를 던진 이들도 더러 있었다. “비록 아난의 통일안이 싫지만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으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 같아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사실 ‘아난 플랜’이라고 일컫는 유엔의 통일안은 책 한권이 넘는 분량으로 법률적인 용어로 채워져 있어 법률가가 아니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시민들은 그저 각 당에서 아전인수격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따라가는 식이었다. 찬성표를 던진 파마구스타에서 온 한 실향민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 고향집에 터키인들이 살고 있으면 돈을 주고 살 생각이다. 내가 태어나 살았던 조상의 집에서 살다 죽었으면 하는 소원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경이 열리면서 고향 파마구스타에 다녀온 그는 “교회가 모스크로 변했고 조상들의 묘지도 망가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민투표는 남과 북에 사는 키프로스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4월23일 그린라인이 양쪽에 개방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29년 동안 닫혔던 남과 북의 자유 방문길이 열리자 양쪽 키프로스 사람들은 격앙된 감정에 휩싸였다.

38선과 비슷하게 그어진 그린라인

이번에는 아난의 통일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을 주장했던 요르고스 바실리우 전임 대통령이 투표장에 나타났다. 아난의 통일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를 ‘매국노’라고 비난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그에 대한 경호는 철통같았다. 그는 투표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통일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이 찬성표를 던져줄 것을 당부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키프로스 대중들 사이에서는 ‘찬성=친터키, 반대=애국’이란 등식이 자리잡아왔다. 젊은이들 가운데는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아난의 통일안에서 터키군이 완전히 철수하지 않고 6천명이 여전히 남아 있도록 한 데 대한 두려움이 컸다. 터키에 대한 불신이 이들이 반대표를 던지게 한 것이다. 이들은 “우리와 함께 살았던 키프로스 터키인들과는 통일을 원하지만 키프로스를 침략했던 터키군과 그 가족은 완전히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코시아에서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리드라거리’다. 길이가 500m 정도 된다. 10년 전부터 ‘차 없는 거리’로 변해 쇼핑이나 가족 나들이 명소가 됐다. 원래 이 거리는 터키가 침공하기 전에는 북쪽의 니코시아까지 관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린라인’이라는 분단선이 가로막고 있다. 거리의 끝에는 샌드백을 쌓아놓고 완전무장을 한 두명의 군인이 보초를 서는 작은 군사초소가 있다. 사람들이 장벽 너머를 볼 수 있게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영국인 관광객 몇명이 전망대 너머로 북키프로스를 바라보고 있다. 전망대 너머는 유엔이 관할하는 완충지대이며, 멀리 보이는 곳이 터키쪽 니코시아다. 맞은편 지역의 건물 지붕에는 터키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과거 베를린을 동서로 갈라놓았던 장벽처럼 키프로스의 분단선은 수도인 니코시아의 중심을 관통하면서 남북으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키프로스 전체를 110마일에 걸쳐 가로지르며 남과 북을 나눈다. 니코시아를 가르는 그린라인은 시내에서는 인공장벽이나 건물의 벽들이 분단선 역할을 하지만 시외로 나가면 가시 철조망이 처져 있어 더욱 분단의 냉혹함을 실감나게 한다.

이제 리드라거리에 있는 그린라인의 전망대는 더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북쪽을 바라보고 한숨짓던 실향민들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실향민들은 북쪽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게 됐다. 이 일대의 상가나 카페들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니코시아의 옛 시가지를 따라 그어진 그린라인은 즉각 판별하기는 힘드나 담장 위에 가시철망을 설치해놓은 곳은 금방 그린라인임을 알 수 있다. 인근의 한 목공소 건물 벽에는 총탄 자국 수백개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1974년 터키군이 침공했을 때 이곳을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을 보여준다. 다시 골목을 꺾어져 들어갔다. 한 허름한 건물 2층에는 영국군들이 휴식을 취하는 중인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병사들은 이라크에서 임무교대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이라크 남쪽 지역을 담당하는 영국 병사들은 평화로운 키프로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이라크로 배치되는 모양이었다. 영국군은 ‘유엔군’의 이름으로 키프로스에 주둔하나, 이라크에 가서는 다시 영국군으로 군복만 갈아입는다.

지금은 점심 먹으러 국경 넘는다

사실 그린라인을 그어 키프로스를 분단시킨 책임은 영국에 있다. 1963년 영국군 장성인 영 장군이 그린펜으로 지도 위에 분단선을 그었다. 터키군이 키프로스를 침공한 뒤 그린라인은 실질적인 분단선이 되고 말았다. 한국의 38선과 매우 유사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린라인으로 설정된 건물들이나 담벽들은 하나같이 폐허나 다름없이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키프로스 그리스 병사들의 초소가 나타났다. 이들 중 한 병사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키프로스가 유럽연합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에 매우 고무돼 있었다. 하지만 북키프로스와 통일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큰 열정이 없었다. 한 병사는 “태어나서부터 통일 얘기를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결과는 없고 같은 얘기만 되풀이돼왔다. 이제는 통일을 믿지 않는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리드라거리에서 그린라인의 국경검문소가 있는 리드라팔라스까지 그린라인의 거리는 2km다. 시내의 그린라인을 거의 벗어나 유엔군이 통제하는 국경검문소 지대로 들어섰다. 북쪽의 키프로스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유엔이 관할하고 있는 완충지대(buffer zone)를 거쳐야 한다. 여기를 관할하는 유엔군 병사들은 모두 영국군이다. 1873년부터 1959년까지 이곳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영국군은 지금 유엔군 복장을 하고 계속 주둔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키프로스에는 영국군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영국이라는 존재는 한번도 키프로스를 떠난 적이 없다. 유엔 통제구역에 들어서기 전, 남쪽의 키프로스 정부가 관할하는 검문소가 나온다. 이곳에는 대여섯명의 남쪽 키프로스 경찰들이 지나가는 외국인들의 신분증을 검사하면서 인적사항을 형식적으로 묻는다. 반면 북키프로스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이나 남키프로스에서 북키프로스로 넘어가는 사람들은 그냥 형식적으로 신분증만 내보이면서 지나간다.

이전에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키프로스 그리스인들은 아예 이 부근에는 발길조차 돌릴 수 없었다. 이들에게는 금지된 구역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4월23일, 29년 만에 남과 북 전체 키프로스 국민들의 왕래가 자유로워졌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넘어오는 터키 사람을 만났다. 니코시아에서 회사원으로 일한다는 그는 지금 남니코시아의 한 상점으로 아기용품을 사러 가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한 그리스 여성이 북쪽에서 내려왔다. 혼자 북쪽의 니코시아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는 중이란다. 그는 “그린라인이 열리기 전에는 적대적인 선전만 들었기 때문에 두려웠지만 정기적으로 오가면서 북쪽의 터키 사람들과 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남키프로스 검문소를 지나면 바로 유엔군이 주둔하는 건물인 ‘리드라팔라스’가 나온다. 1974년 터키가 침공하기 전에는 키프로스에서 가장 화려한 호텔로 유명했다. 분단이 되면서 지금까지 유엔군이 접수해 군부대로 사용하고 있다. 철문이 굳게 닫혀 있고 가시 철조망을 쳐놓았기 때문에 살벌한 느낌을 준다. 곧 북키프로스 검문소에 도착했다. 외국인들에게는 조금 까다로운 절차가 있으나, 남키프로스에서 온 사람들은 신분증만 보여주고는 곧장 바리케이드를 통과했다. 남키프로스 검문소에서 북키프로스 검문소까지 150m 남짓 될까. 이 150m의 길을 넘어오는 데 자그마치 29년이나 걸렸다. 다섯보를 옮기는 데 1년이 걸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북키프로스의 수도인 북니코시아에 들어서자마자 당장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폐허화돼가는 건물들과 남루한 옷차림의 어린이들이었다. 남과 북의 경제적 차이를 단번에 실감할 수 있었다. 1974년 유엔은 키프로스를 침공한 터키를 직접 징계하지 않고 북키프로스를 징계했다. 북키프로스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금수조치를 취해왔다. 북키프로스는 30년 동안의 금수조치로 경제가 완전히 황폐해졌고, 터키에 군사·정치·경제 면에서 완전히 의존하는 속국이 돼버렸다.

터키 침공 이후 황폐화된 북키프로스

북키프로스의 터키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국가를 갖고 자신들의 신분을 되찾는 것이다. 1974년 터키가 키프로스를 침공하기 전에 살고 있던 터키인들은 자신들을 ‘키프로스 터키인’으로 부르면서 전쟁 뒤에 이주해온 터키인들과 구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터키 정부는 1974년 이후 터키인 이주정책을 실행해 터키 본토에서 7만명이 북키프로스로 옮겨갔다.

북키프로스의 수도 북니코시아의 아라바흐멧 투표소를 찾았다. 남쪽의 투표장보다는 조금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오후 3시께였는데 이미 그곳에서는 총 투표권자 176명 중 120명이 투표를 끝낸 상태였다. 한 터키인은 “30년 동안의 고립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통일 찬성표를 던졌다. 북키프로스의 정치판도는 지난 12월 선거를 기점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30년 동안 대통령직을 누려온 뎅크타시를 보좌하던 민족통일당이 선거에 지면서 터키공화당이 내각의 권력을 획득했다. 뎅크타시 대통령은 지금까지 남키프로스와의 통일을 반대해왔고 공공연하게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찍을 것을 호소해왔다. 이 때문에 북키프로스에서의 국민투표는 권력투쟁의 성격까지 보이고 있었다.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월등히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 이미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북키프로스의 터키인들은 뎅크타시 대통령의 거취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키프로스의 제2의 도시 키레니아로 발길을 돌렸다. 키레니아는 남키프로스의 니코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야니누씨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대 항구도시인 이곳은 예로부터 국제무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아왔고 터키가 침공하기 전에는 키프로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로 전 세계의 관광객이 들끓던 곳이다. 그러나 한동안 금수조치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졌다가 지난해 그린라인이 열리면서 방문객이 증가하고 있다. 키레니아의 한 대형 투표소로 갔다. 초등학교의 교실을 투표소로 만들었는데 20개의 교실에 투표소를 설치했다. 학교 운동장에는 투표를 끝낸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곧 끝날 투표시간을 기다리면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키프로스 터키인들로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이었다. 태양이 빛을 잃어가면서 오후 6시가 다 됐고, 곧이어 경찰버스가 도착해 완전무장을 한 경찰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군사작전을 펴듯 재빠르게 이들은 각 투표소에 한 사람씩 배치됐다. 투표함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파견된 경찰관이었다.

남과북, 찬반 엇갈려

드디어 키프로스 터키인들이 기다리던 시간이 돌아왔다. 약 스무명의 시민들은 투표소 입구와 유리창을 통해 숨조차 쉬지 않고 개표 상황을 지켜봤다. 개표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드디어 칠판에 결과가 기록됐다. EVET(찬성)-224, HAYIR(반대)-81이었다. 곧이어 모두 함성을 질렀고, 어떤 이는 오열하기까지 했다. 다른 개표장의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개표장의 개표가 대부분 끝날 무렵 운동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30년 동안의 고립을 깨고 세계의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긴 박수였다. 모두 승리의 감격을 맛보고 있었다. 그동안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살아왔던 사람들이 어두워지는 길거리를 메워가고 있었다. 많은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북키프로스 깃발과 유럽연합의 기를 동시에 흔들면서 질주했다. 이날 투표에는 남쪽이 90%, 북쪽이 88%로 높은 투표참가율을 보였다. 남키프로스에서는 반대가 75%, 찬성이 25%로 나왔다. 하지만 북키프로스에서는 정반대로 찬성이 65%, 반대는 35%였다. 키프로스 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고 험난해 보인다.



찬성표는 그리스만을 위한 것

[인터뷰 | 터키민족통일당 니코시아지부장 하산 타초이]
-대다수의 북키프로스인들이 아난의 통일안을 지지하는데 아난의 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아난의 통일안이 나온 뒤 우리는 언제나 이 제안을 반대해왔다. 1974년 이후 우리는 금수 조처로 고립된 채 ‘이등국민’으로 살아왔다. 키프로스 터키는 터키의 여권을 받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누가 우리의 인권을 생각한 적 있는가. 우리가 찬성표를 던진다 해도 남쪽은 유럽연합으로 간다. 우리가 찬성표를 던져주면 키프로스 그리스의 정치력만 강화해줄 뿐이다.
-국민투표에서 얻을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아무것도 없다. 우리쪽에서 그리스에 많은 것을 줘야 한다. 만약 그리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재산을 내놓으라 하면 아무 말 없이 나가줘야 한다. 투자는 남쪽에만 허용돼 있고 우리는 전혀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 없다.
-많은 키프로스 그리스 사람들이 반대표를 던지는 이유는 터키군의 주둔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터키군이 지금까지 이곳에 주둔하지 않았다면 키프로스에는 ‘평화’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터키의 군사력이 없다면 이 지역에는 평화가 없을 것이다. 남쪽이 현재 추진하는 일은 유엔군, 즉 강대국의 군사력을 동원해 북쪽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키프로스 문제에서 최선의 해결책이 무엇이라 보는가.
=터키의 보증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다. 남키프로스에 있는 북키프로스 사람들의 재산이 반환되기를 원하고 또 재산이 교환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유럽연합에 가입한다면 많은 문제가 풀리리라 생각한다.
-왜 지금의 여당이 아난 플랜에 대해 찬성운동을 벌인다고 생각하나.
=이 정당은 1972년 창당 이래 항상 뎅크타시 대통령에 반대해왔고 터키에 반대했고 터키군이 이곳에서 물러나기를 원했다. 터키 정부는 이곳에서 많은 일을 했지만 이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살 길은 연방제

[인터뷰 | 키프로스 터키 정부의 건설교통장관 오메르 칼리온추]
-아난 플랜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터키공화당(현 집권당)은 아난 플랜을 지지한다. 통일이 되면 인구의 4분의 3이 혜택을 볼 것이다. 남쪽에서는 이곳에 와서 재산을 되돌려받고 정착할 수도 있다.
-다른 당은 통일에 왜 반대한다고 생각하나.
=통일이 되면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통일안에서 어떤 방안을 지지하나.
=연방제를 지지하며 하나의 연방정부에 두개의 독립된 정부를 원한다. 이동의 자유와 재산권의 자유가 보장되는 그런 체제를 원한다. 지금의 아난 플랜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우리 당이 만든 통일안이 아난 플랜과 같다. 1975년 회담이 진행된 이래 우리 당은 이 통일안을 위해 항상 일해왔다.
-아난 플랜에 따라 통일이 된다면 북키프로스와 터키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터키와의 관계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터키군이 6천명 주둔할 것이고 터키와의 무역도 지금처럼 유지되며 교육도 함께 하는 관계가 계속될 것이다.
-이번 투표를 통해 남쪽과의 긴장관계는 수그러지리라 보나.
=긴장은 고조되고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통일을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이다. 지금 진행되는 일들은 반통일 세력들에게는 엄청난 자극이며 도전이다. 당연히 이들이 긴장의 수위를 높이리라 예상된다.
-남쪽 그리스에서는 왜 통일안을 반대하나.
=남쪽은 2003년 4월16일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남쪽이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전에 통일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 뎅크타시 대통령 때문에 그 시한을 놓쳤다. 지금 남키프로스쪽에서 우리를 놀리고 있는 셈이다. 이전에 국민투표를 했다면 남쪽에서도 압도적으로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다.




‘통일안 반대’가 몰고온 절망

[인터뷰 | 요르고스 바실리우 전 키프로스 대통령]
-통일안에 반대표를 던진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조건 통일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본다. 통일안에는 찬성하지만 안전 문제를 보증하는 주체가 불분명하다고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또 통일안은 좋지만 반대표를 던진다는 이상한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어 보였다.
-반대표운동을 했던 정부에서 재협상의 여지를 밝히고 있다.
=반대표가 많이 나왔으나 역사는 우리 편이라고 생각한다. 유엔 사무총장이 밝힌 것처럼 이런 일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운이 따른다면 통일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통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터키쪽에 제2의 국민투표를 제의할 생각은 없나.
=이미 다수가 찬성표를 던진 터키쪽에서 다시 국민투표를 하겠는가? 따라서 더 이상의 국민투표는 없을 것이다.
-30년 동안 처음으로 투표가 있었다는 자체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만큼 미래가 밝은 것 아니냐.
=유엔에서는 한번도 핵심적인 문제에 도달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 겨우 도달해서는 그 성과를 던져버리려 한다. 키프로스 그리스인들에게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아주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키프로스 터키인들에게는 상당히 긍정적이지만 그리스인들에게는 절망적이다.
-압도적인 통일안 반대표가 외국인 투자유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키프로스에 더 이상 세계적인 투자는 없을 것이다. 키프로스의 정치적 불안정을 이유로 투자를 중단할 것이 예상된다. 그리고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어질 것이 뻔하다. 누가 평화와 통일을 원치 않는 곳으로 가겠나.
-키프로스는 한반도와 비슷한 분단국가지만 통일안에 대한 국민투표까지 이뤄졌다.
=유엔은 키프로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또 여기에 유엔군이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통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언제나 실패했다. 북쪽의 뎅크타시 대통령이 통일을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투표도 이번에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다.
-한반도도 키프로스처럼 통일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성사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완전히 다른 체제끼리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치체제가 조금 다르다 해도 시장경제 체제라는 같은 경제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협상도 할 수 있었고 국민투표까지 이를 수 있었다. 한반도의 경우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한쪽이 변해야 한다. 어느 한쪽이 변하지 않는다면 통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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