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중국 쇼크’는 엄살이다

등록 2004-05-04 00:00 수정 2020-05-02 04:23

금리 인상만 남은 중국 정부의 과열 억제 정책… ‘연착륙’은 우리 경제에 도움 될 것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지난 4월28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유럽 순방을 앞두고 와 한 인터뷰 내용은 그리 충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원 총리는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발언의 전체맥락은 중국 정부가 이미 올해 초부터 공언해오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한국과 대만 주식시장에 곧 폭탄이 되어 떨어졌다.

그동안의 억제 조처 성과 없어

한국 증권거래소 시장의 종합주가지수는 28일 901에서 29일 875로, 30일에도 862로 급락했다. 이틀간의 하락률은 4.32%에 이른다. 코스닥지수는 478에서 453으로 5.27%나 떨어졌다. 물론 해외증시도 악영향을 받았다. 미국 증권거래소 시장의 다우지수가 1.96%, 나스닥지수는 3.63% 떨어지며 2000이 한때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주가 하락률은 세계주요시장에서 대만 가권지수(6.95%) 다음으로 큰 것이었다.

우리나라와 대만이 받은 영향이 큰 것은 그만큼 중국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중국에 357억달러어치의 상품을 수출했다. 이는 전년보다 119.5억달러(50.3%) 늘어난 것으로, 이로 인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떠올랐다.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은 한국경제를 위협하기보다는 내수침체로 허덕이는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돼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있었다. 중국이 연 9%에 이르는 고성장을 과연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경제가 고성장을 해서 나쁠 것이 무엇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률을 잠재성장률이라고 한다. 그런데, 경제가 잠재성장률보다 더 높게 성장할 수도 있다. 폭발적인 호황으로 생산요소가 정상 수준 이상으로 사용되면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돌게 된다. 하지만 과열된 투자는 훗날 수익성이 담보되지 못하면서 부실한 투자로 귀결돼 경제에 짐으로 작용한다. 지나치게 과열된 경제를 안정화하지 못하고, 결국 경제의 순환이 무너지는 경우를 흔히 ‘경착륙’이라고 한다. 경착륙 때에는 성장률이 급락한다. 경기과열을 순조롭게 다스려 경제가 안정화되는 것을 ‘연착륙’이라고 한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경기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들을 부분적으로 내놓았다. 과열을 식혀 연착륙을 꾀한 것이다.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높여 대출을 억제하고, 과열 부문에 대한 투자를 조절하기도 했다. 통화량 증가도 통제하고 있다.

원 총리는 지난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정부업무공작보고를 통해 지난해 9.1%에 이른 경제성장률을 올해는 7%대로 목표치를 낮추고 경기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의 과열 억제조처는 지금까지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해왔다.

경제 과열 정도에 의견 엇갈려

중국 국무원 국가통계국은 지난 4월15일 1분기 경제성장률이 9.7%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의 9.1%의 성장률보다도 높은 것이다. 1분기 성장률은 중국경제가 과열돼 있다는 신호를 좀더 분명하게 보여줬다. 중국이 1분기에 고성장을 한 것은 국내투자의 확대가 큰 구실을 했다. 기업의 설비투자와 부동산 등 고정자산 투자규모는 1분기에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43%나 늘어났다. 특히 중앙의 통제가 잘 미치지 못하는 지방정부에서 건설 등 특정 부분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심화되면서 1~2월의 투자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이나 급증했다. 국가통계국은 고정자산에 대한 과잉투자 및 지방정부 차원의 과잉 투자 행태를 정책실패라고 시인했다.

그러나 중국의 현재 경기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과열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원 총리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인 4월30일 칼럼에서 “중국의 경제 과열은 전세계적인 금융체제에 분명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인데도, 투자자들은 이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분기에) 전년 대비 43% 늘어난 고정자산 투자, 20%대에 육박하는 통화공급 증가율, 9%대의 성장률” 등을 중국의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고, “정상적인 경제라면 금리인상으로 다룰 수 있지만 중국은 수억명의 일자리 창출, 빈곤퇴치 등과 같은 정치적 고려 때문에 투자자들과 다른 나라들을 걱정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이 옳다면 중국은 지금 좀더 강력한 긴축 처방을 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경제에 일부 과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세계지역연구센터 조현준 중국팀장은 “중국경제에 과열된 부문이 있지만, 그것은 일부”라며 “중국이 지나친 긴축으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그리고 호화주택 부문을 과열부문으로 들었다. 그러나 “중국의 잠재성장률은 10%로서,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를 급격히 위축시키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중국쇼크’라는 반응 자체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단기반응 때문에 ‘중국쇼크’가 과장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주식시장은 외국인들의 매도로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최근 외국인들은 미국의 경기회복에 따른 조기 금리인상이 그동안 주식시장에 공급했던 유동성을 옥죄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에 따라 한국증시에서 주식을 팔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원 총리의 발언은 외국인 매도세에 적절한 핑계거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과열 억제 못할 때 진짜 쇼크 올 것

관심의 초점은 원 총리의 발언 이후 중국정부가 실제 어떤 처방을 하느냐다. 국무원 은행감독위원회(CBRC)는 최근 상업은행들에 통지문을 보내, 맹목적 투자에 대한 신규대출 중단을 지시하고 기존 대출액의 회수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은감위는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을 억제하고 신규 대출 규모를 줄이기 위해 은행들은 대출 자격을 5등급으로 분류해 불량 대출을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라”며 “철강, 전해 알루미늄, 시멘트, 부동산, 자동차산업 등 과열 또는 맹목투자가 성행하고 있는 업종에 대해 대출을 엄격히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또 대손충담금 적립과 자본충족비율의 준수, 대출이 많은 기업집단에 대한 리스크 관리 강화 등도 지시했다. 은행감독위원회의 이번 조처는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을 억제함으로써 경기 과열을 진정시키고, 은행의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중국 정부는 4월25일 상업은행들의 지급준비율을 7%에서 7.5%로 올린 바 있다. 사실상 금리 인상을 제외하고는 이제 경기과열 억제를 위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조처를 다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번에 금리를 올리지 않더라도, 일부 부문의 과열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결국 금리인상이라는 칼까지 빼들 것이다. 아직 처방이 남았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이런 조처로 중국경제가 연착륙에 성공한다면 세계경제, 특히 우리 경제에는 장기적으로 매우 득이 된다. 물론 중국의 긴축은 그동안 중국의 고성장에 따라 우리 경제가 누려온 특수를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쇼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엄살이다.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는 7%다. 결코 낮지 않은 수치다. 오히려 진짜 큰 쇼크는 중국이 과열을 억제하지 못할 때 닥칠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