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침해를 이유로 삼성 PDP 수입금지 한 일본… 한국이 급속히 세계시장 장악하자 위기감 느껴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컬러 브라운관(CRT),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생산 전문업체인 삼성SDI는 지난 4월20일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발표의 핵심은 매출액과 순이익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2조2157억원에 이른 1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4분기에 비해 3.7% 늘었고, 순이익은 2308억원으로 6% 늘었다고 회사쪽은 밝혔다. 특히 PDP 부문은 2780억원의 매출을 올려 35%나 성장했다고 회사쪽은 덧붙였다.
수입금지 피해는 크지 않아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 삼성SDI의 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세관당국은 이날 “PDP 기본기술을 침해했다”며 후지쓰가 삼성SDI를 상대로 낸 수입금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후지쓰는 지난 4월6일 삼성SDI의 PDP를 수입 판매하는 일본삼성을 상대로 수입 및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도쿄 지방법원에 내고, 세관에도 수입금지 조처를 요청한 바 있다. 후지쓰는 삼성SDI가 PDP의 밝기를 향상하고 수명을 길게 만드는 발광 구조에 관한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일본 세관당국이 후지쓰의 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삼성SDI의 PDP는 21일부터 통관이 전면 중단됐다.
일본 세관당국의 통관 보류는 사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삼성SDI 관계자는 “기술특허 침해 여부는 육안으로 봐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혐오감을 주거나 가짜 상품을 통관 보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심사가 이제 막 시작된 특허분쟁 상품을 통관 보류한 것은 국제무역 관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SDI는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희범 산자부 장관도 4월22일 오후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 통관 보류 조처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사실 일본 세관이 수입 금지를 최종 확정하더라도 삼성쪽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텔레비전 제조업체들은 주로 영국이나 멕시코, 스페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PDP 텔레비전을 생산하고 있어, 삼성SDI가 일본에 직수출하는 PDP는 월 3천대가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 세계 수출물량의 3~4%에 그친다. 그런데도 일본쪽이 삼성SDI에 무리한 조처를 취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업계에서는 한국 업체들이 세계 PDP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는 데 대한 일본 업체들의 질투가 정부를 움직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PDP란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lasma Display Panel)의 약자로, 화면 크기의 유리기판 2장을 0.1mm의 얇은 간격으로 겹쳐놓고 그 안에 가스를 넣은 뒤 전압을 가해 네온광을 발광시켜 이를 표시광으로 이용하는 전자표시장치다. 흔히 벽걸이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PDP 텔레비전은 40인치 이상의 대형 화면임에도 두께가 10cm를 넘지 않고, 밝고 또렷한 자연색을 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차세대 텔레비전으로 확실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난해 10월29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전시회(FPD 인터내셔널 2003)에서 마쓰시다플라스마디스플레이의 모리타(森田) 사장은 “2002년 일본 텔레비전 시장에서 대수로는 3%, 금액으로는 23%를 차지하는 PDP 텔레비전이 2006년이 되면 대수로는 13%, 금액으로는 41%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PDP는 소비전력이나 수명, 가격 면에서 브라운관 텔레비전(CRT)에 아직 열세지만 발광효율과 생활효율을 높임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으며, “앞으로 1~2년이면 CRT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그러나 PDP 시장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는 것은 일본 업체들이 아니라 한국 업체들이다.
한국 겨냥해 일본 업체 재편
투자회사 메릴린치에 따르면, 지난 2001년만 해도 후지쓰·히타치플라스마(FHP)가 46%의 점유율을 보인 것을 비롯해 마쓰시타·NEC·파이어니어 등 일본 업체들은 세계 PDP 시장의 97%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삼성SDI와 LG전자가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각 17%, 15%의 시장점유율을 올렸다. 특히 올해는 삼성SDI가 24%, LG전자가 23%로 두 한국 업체가 시장점유율 1, 2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메릴린치는 전망했다. 반도체, LCD에 이어 한국 업체들이 또다시 새로운 유망 시장을 점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PDP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의 승승장구가 계속되자 일본 업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업체들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업체들의 재편을 뒤에서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주간지 는 지난 3월13일치 기사에서 “지난해 7월 후지쓰 제너럴, 히타치제작소, NEC, 마쓰시타, 파이어니어 등 PDP 메이커가 공동 출자한 차세대 PDP개발센터가 설립됐는데, 사실 이 회사는 정부에서 사업비의 반을 조성한 국가 프로젝트”라며 “이 센터의 목적은 국내의 연구개발력을 하나로 합해 한국세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는 또 이 센터의 설립은 “한국과의 전쟁에서 진 반도체나 LCD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4개사인 PDP 메이커를 2개사로 집약해 자금력과 개발력을 키운다는 목표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2월3일 파이어니어는 NEC의 PDP 산업을 인수함으로써 경제산업성의 의도는 일부 관철됐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이 전열을 가다듬어 대응하기에는 한국 업체들의 발걸음이 너무 빨랐다.
삼성쪽은 재판 승소 자신
후지쓰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삼성의 PDP 제조기술에 대해 “특허 침해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삼성SDI는 오히려 공세로 맞섰다. 지난 2월24일 미국 연방법원에 후지쓰의 핵심 특허 9건이 무효이며, SDI 제품이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음을 확인해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낸 것이다. 삼성쪽은 후지쓰가 원천기술이라고 주장하는 내용들은 30여년간 미국 기업들이 꾸준히 연구한 결과를 통해 이미 알려진 결과로서 무효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삼성SDI의 기술은 후지쓰의 기술 및 특허와는 달라 특허 침해가 될 수 없다고 확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후지쓰는 삼성쪽의 소송에 대응하지 않다가 지난 4월6일 미국 법원에 특허 침해라며 맞소송을 내 대응에 나섰다. 후지쓰는 또 도쿄 지방법원에도 1건의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그러나 삼성SDI는 소송에서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회사 관계자는 “자신이 있었다면 왜 도쿄지법에는 1건에 대해서만 소송을 냈겠느냐”고 말했다.
삼성쪽이 후지쓰의 특허를 침해했는지에 대해 미국과 일본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모조품의 수입을 막기 위해 개정한 법을 근거로 삼성SDI의 PDP 통관을 막는 무리한 조처를 한 것에서 보듯, 마음이 급한 것이 일본쪽임은 분명하다. 5~6년 뒤늦게 시작한 한국 업체들이 불과 몇년 만에 일본 업체들을 따라잡는 상황에서 사실 마음이 편할 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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