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사민당 참패 뒤 생존의 기로에… 정치권과의 타협을 통해 얻은 기득권이 개혁의 걸림돌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국노총이 조직적 기반을 이루는 녹색사민당이 4·15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0.5%로 참패한 이후 한국노총에 후폭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한국노총은 총선 실패의 책임을 지고 이남순 위원장 등 지도부가 총사퇴하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렸다. 비대위는 “한국노총의 정체성 혼돈, 조직혁신의 지체를 아프게 자인하고 근본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창했고, 단위노조 위원장들도 “모두가 한줌밖에 되지 않는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본적 개혁’과 ‘기득권 포기’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한국노총의 동요와 위기는 단순히 정치방침 실패에서 비롯되고 있는 게 아니다. 지도부 공백 상태를 해소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한다고 해서 한국노총의 위기 사태가 쉽사리 해소되긴 어렵다는 얘기다.
일자리 협약? 노동계는 무엇을 얻었나
한국노총 국장급 간부들은 지도부 총사퇴 직후에 내놓은 호소문에서 “한국노총이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약 50년간 누려왔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한국노총이 가진 기득권이란 무엇일까? 그동안 노-정 관계에서 민주노총이 정면대결을 추구했다면, 한국노총은 ‘정책 공조’라는 이름 아래 정치권과의 타협을 통해 내밀한 유착관계를 맺어왔다. 그때그때 실리를 따내는 ‘노동정치’를 구사해온 것이다. 한국노총과 정치권 사이의 파트너십은 박종근(전 신한국당)·박인상(현 민주당)·김락기(현 한나라당) 의원 등 한국노총 부·위원장들의 잇따른 국회 진출로 이어졌다. 또 현재 여의도 한국노총 부지에 건립되고 있는 ‘중앙근로자복지센터’는 원래 노동부가 사업 추진을 유보했는데, 2001년 이남순 전 위원장이 대우차노조에 대한 강경진압 항의농성 도중에 청와대와 가진 단독 면담에서 담판을 통해 예산을 따낸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노총의 기득권은 지난 2월 노사정위원회에서 한국노총이 “2년간 임금안정에 협력한다”는 일자리 창출 합의안에 서명할 때도 노동계 내부에서 불거졌다. 당시 민주노총은 “노동계가 실제로 얻은 게 무엇이냐?”며 정부가 독주하는 일자리 창출 협약 추진에 한국노총의 ‘조직적 이해’가 맞아떨어져 협약안이 전격 도출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전략 사업장인 주요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가 대부분 민주노총에 들어가 있는데다, 일부 가맹노조마저 민주노총으로 말을 갈아타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조직 위기감이 증폭돼왔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일자리 합의가 나온 배경에 위상 추락에 대한 조직 내부의 위기감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불참하는 상태에서 한국노총이 대정부 교섭의 배타적 독점권을 행사해왔는데 “일정한 거리 속의 ‘협조’”라는 대정부 노선의 반대급부, 즉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협약에 도장을 찍어줬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투쟁보다 대화를 강조하는 이수호 위원장 체제로 바뀌면서 한국노총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이 정부와 적극적인 교섭에 나설 공산이 커지면서 더 이상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게다가 민주노총과의 세력경쟁 승부처는 수십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공무원노조를 어느 쪽이 끌어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적 필요’,즉 한국노총만이 정부와 독점적 교섭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공무원노조에 확인시켜주기 위해 일자리 창출에 합의했다는 얘기다.
민주노총도 대화에 나서면 어떡하나…
한편 이번 총선에서 1인2표제로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 확실시되자, 한국노총은 이남순 위원장이 “득표율 2% 미만이면 스스로 사퇴하겠다”는 카드까지 던지며 녹색사민당에 올인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일자리 창출 합의는 한국노총이 국민경제에 기여한다는 점을 과시해 녹색사민당의 지지율을 높이자는 계산도 깔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치권과의 독점적인 교섭 파트너로서 누렸던 기득권, 민주노총 합법화 이전에 유일한 노총으로 있을 때 노-정 관계에서 누렸던 기득권, 민주노총이 장외투쟁할 때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서 얻었던 기득권 등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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