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이라크 전쟁 추가파병 딜레마… 정녕 우리는 미국의 부담을 나눌 수밖에 없나
| 부시의 ‘부탁’에 노무현 대통령이 고민에 빠졌다. 미국이 이라크 ‘재건’을 내세워 전투병 파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문제를 국제문제로 삼으려는 전략이다. 이번에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파병을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라크 파병을 피할 방법은 없는가. |
2004년 9월 이라크 바그다드. 오후 1시 바그다드 거리에서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근처 이슬람 사원에서 경전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슬람교를 믿는 이라크 사람들은 매일 하루 5번씩 정해진 시간이면 어김없이 절을 한다. 기도 시간이 끝난 오후 1시30분께 어느새 모인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알라 아크바’(알라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바그다드 가운데를 흐르는 티그리스강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실탄이 장전된 K-2 소총을 들고 바그다드 가라다 거리를 경계하던 조국애(23) 병장은 거의 매일같이 대규모 시위와 거리행진을 본다. 100여개의 이라크 정당들이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조 병장은 이라크의 불안한 치안과 혼란한 정치상황 등이 마치 해방 직후의 우리 사회를 보는 느낌이었다.
2003년 5월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위풍당당하게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한 지 벌써 1년3개월이 지났지만 이라크는 아직도 전쟁 중이다. 사회기반시설과 외국군에 대한 저항세력의 무장공격, 외국공관 폭탄 테러, 알 카에다 조직원의 침투, 이라크 부자들을 납치해 몸값을 뜯어내는 강도들이 끊이지 않는다.
2004년 봄 파병된 조 병장은 소대원들과 함께 장갑차를 타고 치안유지를 맡은 책임지역을 정찰한다. 바그다드 팔레스타인 호텔 근처 도로에서 미군들이 이라크인들을 한줄로 세우고 검문하고 있다. 아스팔트 위에 무릎 꿇고, 손이 뒤로 묶인 이라크 사람도 보인다. 조 병장과 동료들이 20분 뒤 순찰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아스팔트 위에 꿇어 앉아 있던 이라크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라크 사람들이 트럭 위에 묶여 있었다. 미군들이 이라크 사람의 허리를 주황색 굵은 끈으로 트럭 난간에 묶고 있었다. 도로 위에 무릎 꿇고 푹 머리를 숙인 사람들, 트럭 위에 짐짝처럼 실리는 사람들. 조 병장은 입대 전 ‘80년 광주’를 찍은 비디오와 책에서 본 비슷한 모습을 떠올렸다. 이라크 사람들은 한국군을 평화유지군이 아니라 ‘외국점령군’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한국군은 미군처럼 이라크 저항세력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지는 않지만, 안전하지도 않다. 자살폭탄테러를 막기 위해 주둔지나 경계지역 주변을 탱크나 장갑차, 바리케이드로 겹겹이 차단막을 쳐서 걱정했던 대규모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종종 희생자가 발생하곤 했다.
이라크 사람들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서 따와서, 치안 부재 상태에 들끓는 강도를 ‘알리바바’라고 부른다. 2004년 6월 바그다드 시내에서 고압전선 구리 케이블을 잘라 달아나던 알리바바를 추적하던 한 한국 병사가 무장강도의 총을 맞는 등 시간이 갈수록 숨지거나 다치는 병사들이 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국 장교 2명이 미군들이 자주 들리는 바그다드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 저항세력의 수류탄 공격을 받아 크게 다치기도 했다. 제대를 넉달 앞둔 조 병장은 베트남에 파병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대 목표다.
이라크 ‘재건’, 그 수많은 난제들
이상은 최근 미국의 요청에 따라 한국군 전투부대가 이라크에 파병됐을 때의 상황을 가상해본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전투병 파병을 요청한 사실은 9·11 이후 2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에서 위세를 떨치던 미국의 일방주의가 이라크에서 휘청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내 힘 믿고 내 마음대로’식 일방주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여의치 않자 지난 3월 영국 등 뜻이 맞는 동맹국을 끌어들여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애초부터 전투에서 미국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개전 목표는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 미국은 반테러와 독재타도, 민주주의 정권 수립, 민중의 자유 확립이란 구실을 들어 이라크의 주권에 개입했다. 미국의 전쟁 목적은 단순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친미 정권 수립을 통한 안정적 중동지역 패권 관리였다.

미국은 이를 이라크의 ‘재건’이라고 부른다. 이 목표가 달성되기 전까지 미국은 전투에서 이겼을 뿐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미군이 바그다드에 들어간 지 5달이 넘었지만 이라크 사람들은 치안불안, 수십배 오른 물가, 50%에 이르는 살인적 실업률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1일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한 뒤부터 9월14일 현재까지 숨진 미군은 모두 75명이다. 여기에 지난 3월20일부터 시작돼 5월1일 공식적으로 끝난 이라크전이 진행되는 동안 숨진 미군 138명을 합치면 미군 사망자는 모두 213명이다. 1991년 걸프전 때는 147명의 미군이 숨졌다. 부시 대통령의 종전 선언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최근 CNN-USA 투데이-갤럽 여론 조사에서 미국인의 60%가 미 행정부가 이라크 상황을 다루는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9월14일치 는 ‘지속될 수 없는 이라크 정책’이란 사설에서, 미국은 유럽 내 우방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들은 미국이 일방주의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 한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 이라크 재건 비용을 뺀 미군 주둔 비용만도 애초 예상의 2배를 넘는 등 미국 경제의 부담도 커졌다. 부시 대통령은 9월7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라크 재건비용으로 870억달러의 예산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예산안이 의회의 동의를 얻으면 미국의 이라크 전쟁 뒤 비용은 모두 1500억달러에 이른다. 이같은 예산은 애초 의회가 예상했던 금액의 거의 2배에 이르다. 애초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재건비용과 전후 처리에 대한 치밀한 전략이 없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물론 미국 보수파의 반론도 있다. 대표적 보수파로 꼽히는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는 지난 12일
하지만 최근 미 의회와 연구기관들이 낸 보고서는 ‘이라크 재건을 더 광범위한 국제문제로 전환하고 미국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미국의 골칫거리에서 국제 문제로 전환
지난달 나온 미 의회 예산처 보고서는 이라크와 그 주변에 배치된 미군 18만명을 대폭 축소하는 대안을 내놨다. 미 의회의 기본 대안은 이라크에 현재 수준의 미군을 2004년 3월까지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2004년 9월부터 2005년 3월까지는 3만8천명에서 6만4천명선으로 대폭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미국의 전투부대 추가 파병 요청 배경을 “미군 등 사망자 속출, 전후 비용 폭등은 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부시 대통령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부시 행정부는 유엔 결의안을 통과시켜 유엔의 고깔을 쓰고 이라크 점령을 마무리하되 미국이 치르고 있는 인적·물적 부담을 줄인다는 복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어떠한 형태이든 유엔을 통해 다국적군을 구성하고 한국 등 동맹과 우방국들의 군대를 여기에 포함시키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유엔이 미국을 ‘보완’하는 게 아니라 ‘대체’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유엔결의안과 다국적군 구성은 미국의 침략전쟁 및 강압적인 점령에 국제적인 정당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이라크 사태를 종결시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추진 중인 유엔결의안은 미군 통제하의 다국적 평화유지군 승인 및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raqi Governing Council)로 하여금 정부수립 계획 및 시간표를 제출토록 하는 게 뼈대다. 그러나 유엔이 정치적 통제력이나 발언권이 없는 상황에서 다국적군 투입을 요청하는 것은 유엔 역사상 유례가 없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조차 9월10일 ‘유엔결의안에 따라 다국적군이 편성된다 하더라도 대규모 병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인디아, 파기스탄, 터키 등 10여개국에 파병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파병 요청에 대해 인디아 국방부 관계자는 9월12일 카슈미르 지역에서 빈발하는 이슬람 무장 세력의 공격에 대처하기 바빠 이라크에 파병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터키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의 파병 요청에 응해 전투병력을 보낼 국가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파병 압력도 흐지부지되거나, 반대로 한-미 동맹의 틀에 묶인 한국에 파병 압력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지난 봄에 이어 다시 이라크 파병 논란이 일고 있다.
명분 약하고 위험 많은 전투병 파병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처음부터 잘못된 전쟁이었다. 후세인의 강압통치라는 '악'이 미국의 식민통치라는 '더 큰 악'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란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 전쟁의 명분을 사후적으로나마 갖추기 위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흔적을 찾아내고자 애썼다. 하지만 미국이 결국 발견한 것은 침공을 정당화시키고자 한 신보수주의자(Neo-con)들의 정보 조작이었다. 미국의 언론인 피터 아네트는 베트남과 이라크전의 공통점으로 △명분을 찾을 수 없었던 전쟁에 애써 명분을 부여하려 한 점 △진실을 감추고 국민을 속인점 등을 들었다.
정부나 보수세력들도 적극적으로 전투병을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익을 위해서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파병 불가피론은 이라크에 전투병을 보낼 경우 북핵 문제의 평화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나 주한 미군 재배치 등 안보현안 해결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본다. 만약 추가 파병을 거부할 경우 북핵문제 악화와 주한미군 철수내지 감축 가속화로 인해 국가신인도가 흔들리고 최악의 경우 외국인 투자가 한꺼번에 빠져나가 IMF같은 경제위기를 다시 올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논리는 지난 봄 이라크 파병결정때도 등장했다. 
원칙적으로 한국도 국력에 걸맞는 국제기여를 하는 게 옳다. 아니면 국제사회에서 ‘암체 국가’란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99년 10월 상록수부대가 베트남전 이후 전투부대로는 두번째로 동티모르에 파병됐다.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통티모르에 파병된 상록수부대는 동티모르 독립을 돕는 명분있는 파병이었다. 그러나 전투병의 이라크 파병은 이라크 사람들의 삶과 인권향상에 보탬이 될지 불분명하다. 이라크 파병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이라크 주둔 미군이다.
이라크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 파병은 결과적으로 미국 앞잡이 노릇에 그쳐 한국이 국제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 전투병이 참전한 한국군의 사상자 대량 발생 가능성도 높다. 그 경우 미국과 부시 대통령이 빠진 ‘이라크 수렁’에 한국도 함께 휩쓸려 들어가기 쉽다.
광해군의 지혜 배워 문제점 줄여라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전투병 파병 요청을 거부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을 최소화한 채, 버티면서 거부하는 방략을 도모하는 게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박순성 교수(동국대·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는 “노무현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르게 한-미 동맹의 무조건적 계승이 아니라 개선·발전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은, 대외관계에서도 자율성을 늘리겠다는 뜻”이라며 “정부는 이런 기본방향에서 필요한 전략들을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파병을 거부할 때, 미국의 예상되는 외교·경제적 압박에 따른 국민들의 충격과 혼란도 적지 않을 수 있다”며 “어렵더라도 이를 극복하면서 국내외를 설득해나갈 지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이 ‘광해군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 15대 왕인 광해군은 후금과 전쟁 중인 전통 우방 명나라의 요청에 따라 강홍립 장군과 1만명의 군사를 파병했다. 하지만 명나라의 패색이 짙자 광해군은 강홍립 장군에세 투항하게 하는 절묘한 외교술을 구사했다. 광해군이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챙긴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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