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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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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효가 권해요

등록 2002-10-02 15:00 수정 2020-05-02 19:22

수많은 사회운동에 얼굴마담으로 나서는 색깔있는 연예인, 그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

‘안 낑기는’ 데가 없는 사람.

주요 사회운동에서는 빠짐없이 그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양심수석방운동, 안티조선운동, 북녘동포돕기운동, 사학비리척결운동, 개혁정당추진운동…. 이번에는 가부장제와의 한판 싸움을 시작했다. 9월29일 그는 한국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호주제폐지·평등가족 만들기’에 앞장설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주최쪽이 놀란 ‘탁월한 식견’

본업이 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운동권’ 뺨치는 활동들이다. 특별히 오지랖 넓고 나서기 좋아해서 이러는 것일까? 그러나 그동안 그가 ‘권해온’ 운동들은 얼굴마담으로 박수받는 게 좋아 쉽게 선택할 만큼 녹록한 주제들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만큼 자기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부담을 지는 내용들이다. 게다가 그는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으면 주최쪽이 놀랄 정도로 탁월한 식견을 보였다.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경에도 지난 3·8 여성대회에 행사 진행을 맡으며 여성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보여준 게 인연이 됐다. 대체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정체가 무엇일까. 배우 권해효(37)의 속내가 궁금했다.

9월28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약속시간에 10분 늦게 혼자 나타난 그는, 그 전에 두 차례 전화를 해왔다. 택시를 타고 어디쯤 오고 있는데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 비친 그는 정 많고 용감하고 유머러스한 ‘대한민국 보통 사나이’ 이미지다. 영화 (1996)에서는 맘 여리고 대책 없는 ‘카폭’족이었고, 미니시리즈 에서는 참견 좋아하고 씩씩한 건축사였고, 요즘 방영 중인 일일극 (한국방송)에서는 능력 있으나 소심한 만화 감독이다. 광고에서는 일에 찌들리거나 머리 비듬 많은 허허실실 직장인 이미지를 특유의 표정연기로 그려낸다. 하지만 실제의 그는 조용하고 까다로운 편이다. 배우답지 않게 카메라 앞에서 머쓱해하고 거리에서 사진 찍는 동안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민망해했다. 쇼핑도 혼자 다니는 걸 즐기고 술도 집에서 혼자 마시는 쪽이라고 한다. 인터뷰는 그가 즐겨 찾는다는 혜화동 로터리의 한 허름한 칼국수 집에서 ‘통음’하며 이뤄졌다.

그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한국전쟁 때 보병으로 입대해 40대에 대령승진을 한, 비교적 성공한 직업군인이었다. 아버지는 2남2녀의 막내인 그에게 유달리 애착이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국적으로 초전박살 구호가 뿌려지며 박정희 작사·작곡의 이라는 노래가 보급됐어요. 연대 사열 때 ‘백두산에 푸른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라는 그 노래를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를 배웠죠. 전라도 출신에, 갑종 출신이라 어려움이 많았을 테지만 아버지는 항상 군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는 정치군인들이 득세하며 진정한 군인정신을 농락했다는 거죠.”

‘때리지 않는 것’과 ‘헌책 사다 읽기’

고교 때 “친구 잘못 사귀어” 문예반을 들락거리기 전까지 그의 꿈은 변함없이 ‘군인’이었다. 진로를 바꿔 아버지의 기대를 배신했지만 대학 1년(한양대 연극영화과 85학번) 마치고 보병으로 입대해 최우수 훈련병상을 받아 아버지를 감격시키는 것으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유산은 “때리지 않는 것”과 “헌책 사다 읽기”였다. “애들을 때리는 것과 시험 잘 보라고 들볶는 것. 이 두 가지를 안 하면 정말 좋은 사회 될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폭력성과 천박성인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인권의 문제가 해결 안 되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식의 문제들이 해결 안 되는 거죠.”

그는 종종 배우 문성근씨와 배우 겸 제작자 명계남씨와 ‘따로 또 같이’ 일을 벌인다. 지난해 9월 영화인들의 안티조선 선언장에서는 유일하게 ‘배우’로서 참여해 “선언서를 낭독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일종의 비례대표였죠. 성근이 형이 하면 너무 진지해 보이고 계남이 형이 하면 너무 반항적으로 보이니까 편안하고 만만한 제게 맡겨진 것 같아요.” 97년 양심수를 위한 하루감옥 체험 뒤로 그런 그에게 운동권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는다.

참여의 명분과 대의를 묻는 질문에,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전 소시민이에요. 상식과 양심을 가진 평범한 30대 소시민으로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겁니다.” 아들(5살)을 유치원에 보내면서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딸(100일)을 낳고 보니 성평등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를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운동들은 주제를 달리해도 서로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어요.” 딸을 위해서 정치개혁을 해야 하고 아들을 위해서 언론개혁도 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회 참여가 연기인생에 도움이 된다거나 386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을 기대했으나 보기 좋게 어긋났다.

“사회·인권 문제에 예민한 것이 배우라는 직업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로라고 봐요. 냉정하게 말해 스태프들 처우 문제나 불합리한 시스템의 문제를 고민하다가는 대본도 못 외울 겁니다.” 게다가 80년대 대학을 다녔지만 최루탄 근처에는 거의 가보지 않았다. 위계와 권위를 내세우며 책임 못 질 말을 늘어놓는 선배들이 미웠기 때문에 첫정을 못 들여서 그렇다.

스크린쿼터 사수싸움에 안 나서는 이유

그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나서지 않은 현장이 있다.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싸움이었다. 왠지 의사들이 국민건강을 위해 싸운다며 파업하는 모습과 비슷해서 그렇다고 한다. “국민들이 스크린쿼터를 중시해준 것은 영화인들의 밥그릇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로 대표되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에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영화인이라면 자신이 특혜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마워하고 더 노력해야죠. 하지만 한국 영화의 제작자들이나 배우들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나요? 난센스 같은 일이 참 많이 벌어지잖아요.”

흔히 딴따라는 무식하다는 말을 한다. 국민들은 대중 연예인들에게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사실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권해효씨가 처한 지점은 독특하다. 안방에는 , 화장실에는 , 마루에는 온갖 운동단체 소식지가 놓여 있는 그의 집에서 아들과 딸은 시사지와 계간지를 물고 빨며 자란다.

“그동안 대중문화인들이 했던 정치적 활동은 스스로 국회의원에 나서거나, 혹은 동원되거나 둘 중 하나였죠. 딴따라가 무식한 게 아니라, 그동안 정치적 의사표현 방식이 대체로 저급했기 때문입니다. 잘하면 질투받고 못하는 부분만 부각되니까 역사적인 상처가 있는 거죠. 언론의 책임도 커요. 저는 정말 이주일씨 사망 뒤 우리 언론이 벌인 호들갑을 이해 못하겠어요. 왜 그분의 삶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는 거죠? 그분에게 코미디의 황제라는 칭송이 붙는다면 배삼룡씨는 코미디의 옥황상제가 아닐까요?”

그가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덕목은 신체적 조건, 지적 능력, 감성적 능력이다. 그는 이 가운데 감성적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항상 스스로를 잘 준비된 악기처럼 팽팽하게 조율해놓는 쪽이다. 일주일에 6일간 서울에서 촬영이 있고 하루는 부산에 다녀오는 빼곡한 일정이지만 가족과의 시간, ‘데모하는’ 시간은 별도로 관리한다.

다만 벌인 일을 제대로 못할까 하는 우려가 점점 커진다. 자신을 믿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거나 상처 주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런 고민이 앞서 “책을 사다 본다, 좀더 공부하고 생각한다”며 하루하루를 ‘뭉개다’ 놓친 게 장애인 이동권확보운동과 병원노조 파업 현장이다. 하지 않았을 때 후회하다보니 “잘 못하더라도 하는 데까지 하자”, “밑천이 얼굴이니 얼굴이라도 내밀자”는 투지와 결론을 반복해서 내리게 된다. 그가 운동권의 러브콜에 눈썹 휘날리며 달려오는 이유다.

그가 진짜로 하고 싶은 사회운동은 야생동물보호운동이지만, 당분간 그의 정치적 행보는 그칠 일이 없을 것 같다. 지금도 조직만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주지 않는 명동성당 앞에서 “똑바로 하라”고 일인시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툭하면 여성운동을 트집잡는 남성 지식인들에게 “어후 뭐야. 고마해∼ 짱나”라는 멘트를 날려주는 것이다.

연극인 박광정씨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어나는 그에게 “바쁠텐데 시간 내줘서 고맙다”고 인사치레를 하자 “바쁘지 않아요. 다들 먹고사느라 저만큼은 일하지 않나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y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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