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남해 상주면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몽덕이와 함께 놀고 있다.
개 몽덕이 마실 나갈 채비를 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동네 돌봄센터로 올 시간이다. 웰시코기 믹스견으로 뚱뚱하고 다리가 짧은 몽덕이는 이때만큼은 재빠르다. 오후 햇살 아래 어린 벼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매일 쑥쑥 자란다. 논 사이 구불구불 난 길을 앞서가던 몽덕이가 뒤돌아보며 재촉한다. 인간 어린이 돌봄센터는 몽덕의 최애 장소다. 안 가도 뭐랄 사람 하나 없는데, 개근할 생각인가보다. 실내는 동물 출입 금지라 현관 방충망 앞에 앉아 친구들을 기다린다.
“몽덕이다!” 여덟 살 진아가 뛰어나왔다. 센터 안에 있던 아이 다섯 명이 마당으로 잇따라 나와 몽덕을 둘러쌌다. 검정콩 같은 진아는 머리를 양 갈래로 야무지게 묶었다. 진아보다 두 살 많은 언니 지영이는 머리카락이 연갈색이다. 아이들은 ‘헨젤과 그레텔’ 놀이를 하겠단다. 즉석에서 만든 놀이다. 손톱보다 작은 빵조각이라기보다는, 빵가루를 몽덕 앞에 띄엄띄엄 놓았다. 몽덕이 멀뚱하게 앉아 있다. “빵조각을 따라와.” 개는 코로 바람을 쿵쿵 불어 뱉더니 기대에 찬 아이들을 한번 둘러보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빵가루를 혀로 말아 올렸다. “와, 먹는다.” 아이들이 팔짝팔짝 뛰었다. 지영이 몽덕이를 다이어트시키겠다면서 빵조각을 들고 달린다. 언니 따라 진아도 해보겠다더니 몽덕이가 막상 쫓아가니 “으아” 소리를 지르며 빵조각을 던져버렸다.
누가 몽덕이 리드줄을 잡을 것이냐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신경전이 벌어진다. 5학년 선영이가 리드줄을 선점했는데 같은 학년 석진이가 낚아챘다. 미간을 찌푸린 선영이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럼, 저 전봇대부터는 내 차례다.” 협상에 성공했다. 아이들은 몽덕이를 데리고, 아니 몽덕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왜 리드줄을 잡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그 줄을 잡아봤자 리드하는 건 몽덕이고 몽덕이는 나만 따라온다.
일곱 살 재하는 그 사실을 간파했다. 동네에서 동지 달집태우기 행사가 벌어지던 날, 공터에서 만난 재하가 몽덕이 리드줄을 달라더니 내게 말했다. “아줌마가 달려요.” 그래서 달렸다. 그 뒤 뚱뚱한 몽덕이가 “헥, 헥” 달렸다. 그 뒤 재하가 “와, 와” 하며 달렸고, 그 뒤 아이들이 줄줄이 달렸다. 숨을 헉헉 몰아쉬며 공터 한 바퀴를 돌았는데 재하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줌마, 달려요.” 두 바퀴, 세 바퀴…. “와, 와.” 대체 애들은 왜 달리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해변에 도착한 아이들은 몽덕이 훈련을 시도했다. 선영이가 간식을 들고 몽덕이를 얼렀다. “앉아.” 몽덕이 ‘끙’ 하며 마지못해 앉는다. “와!” 진아가 몽덕이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엎드려.” 앉아만 있어도 배가 땅에 닿을 듯한 몽덕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몽덕아, 엎드려.” 애원으로 바뀌었다. 안 엎드린다. 애가 탄 아이들이 시범을 보이듯 손을 앞으로 뻗으며 다들 쪼그려 앉는다. 결국 엎드린 건 아이들이다.
몽덕 훈련을 가장한 자기 훈련을 마친 아이들은 해변에서 새우를 잡겠다고 했다. “여기 새우가 있어?” 바위 사이에 바닷물이 고여 작은 웅덩이를 이뤘다. 물속에 새우들이 있단다. 가만히 기다리니 모래가 꿈틀거리며 날씬한 반투명 속눈썹 같은 작은 새우가 올라왔다. 아이들은 손그릇을 만들어 새우를 잡는다. 직접 모래를 쌓아 만든 손바닥 크기의 인공수조에 잡은 새우를 옮겼다. 왜 잡는지, 옮기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은 이 순간에 몰입했다. 물웅덩이 속에서 동그란 집을 인 소라게들이 돌아다닌다. 한쪽에 엄지손톱보다 작은 게 한 마리가 죽어 있다. 소라게 몇 마리가 게의 사체에 붙어 뜯어먹었다. 동그란 집 옆으로 가는 발이 나와 실 같은 살을 파내고 있다. 기운 햇살이 죽은 게와 배를 깔고 누운 일곱 살 중년의 몽덕이 위로 떨어졌다. 바닷바람이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경기도 아파트 단지에서 경남 남해 상주면으로 이사 오고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1인1견 가구인 내게 아이들이 인사한다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소리에 둘러보면 동네 아이가 땀에 젖은 앞머리를 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책방지기를 할 때는 상주초등학교 1학년 전교생 3명이 방문하기도 했다. 이 마을 공립형 대안학교인 상주초등학교와 상주중학교엔 그래도 매년 타지에서 오는 입학생이 있다. 하동 시골 마을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한 엄마는 그곳 사정은 다르다고 했다. “아이들이 없으니 친구를 사귈 수가 없어요.” 군 안에서 사람들은 읍으로 몰린다. 2025년 한 면의 초등학교 4학년 유일한 여학생이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읍으로 전학을 가버렸다. 입학철이 되면 면 단위 학교들은 입학생을 한 명이라도 유치하려고 경쟁을 벌인다.
여덟 살 하석이가 남해 상주면에 태어났을 때 면사무소 공무원은 허둥댔다. “출생신고서요? 그게 어딨더라. 사망신고서 찾는 사람들만 있어서.” 여러 서랍을 뒤지더니 먼지 묻은 서류철을 꺼냈다. 부산에서 남해로 와 하석이를 낳은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올 때마다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들어 아기의 투명한 발가락과 손가락을 홀린 듯 바라봤다.
하석이 엄마는 이곳을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돌도 안 된 아이가 아팠을 때다. 어느 밤, 아기가 열이 펄펄 끓었다. 비가 내렸다. 보통 차로 1시간30분은 걸리는 전남 순천까지 시속 200㎞를 밟으며 달렸다. “뵈는 게 없었어요.” 순천에 도착했는데 응급실이 문을 닫았다. 하석이 엄마는 울었다. 엉엉 울었다. 다행히 그날 아이는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동그란 얼굴에 붙임성 좋은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됐다.
어느 봄날, 몽덕이 산책길에 만난 하석이도 리드줄을 잡고 싶어 했다. 석양에 바다와 맞닿은 하늘이 분홍빛이었다. 리드줄을 잡은 하석이가 몽덕이에게 이끌려 동네 편의점 앞을 지났다. “하석아, 잠깐만!” 편의점 사장님이 굽던 삼겹살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들고 하석이 입에 넣어준다. “맛있지?” 하석이가 배시시 웃었다. 그날, 하석이는 작은 새가 붉은 혀를 쏙 내민 것 같은 꽃을 꺾어 내게 줬다. 핫립세이지였다. “쪽 빨아보세요.” “와, 달다!” 하석이가 씩 웃었다. 싱그럽고 달콤한 향이 희미하게 입안에 퍼졌다.
글·사진 김소민 자유기고가
*‘몽덕이와 남해살이’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수고하신 김소민 자유기고가와 글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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