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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 법정 선 ‘혼인 평등’… “진전 없으리란 법 없어”

‘혼인신고 불수리 취소 소송’ 심문기일 열려… 민법상 금지 조항 없는데, ‘혼인 인정’ 못 받는 동성 부부
등록 2026-04-30 21:48 수정 2026-05-04 16:56
6년차 동성 부부인 황희연씨(왼쪽 둘째)와 박여진씨(셋째)가 2026년 4월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 들머리에서 혼인평등소송 심문기일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부천(경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6년차 동성 부부인 황희연씨(왼쪽 둘째)와 박여진씨(셋째)가 2026년 4월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 들머리에서 혼인평등소송 심문기일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부천(경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혼인평등’이 11년 만에 법정에 섰다. 긴장한 마음으로 판사 앞에 선 두 여성, 황희연·박여진씨 부부에게 날아온 첫 질문은 ‘법적 부부로 인정받지 못해서 불편한 게 없느냐’였다. 의외로 친절한 첫 질문에 떨리는 마음이 금세 녹아내렸다. 황씨는 “의미 있고 정말 큰 일이어서 나도 모르게 되게 긴장을 많이 했다”며 “그런데 판사가 당사자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하는 점이 느껴져 편해졌다”고 말했다.

 

김조광수·김승환씨 부부 이후 처음

 

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은 2026년 4월27일 오후 황씨와 박씨 부부가 낸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 불복 사건의 심문기일을 열었다. 2024년 10월 동성 부부 11쌍이 수도권 6개 법원에 같은 소송을 제기하며 ‘혼인평등소송’ 운동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열리는 정식 심문기일이다. 그동안 서울 동부·서부·남부·북부지법은 9개 사건에 대해 단 한 차례 심문 없이 서면만으로 기각·각하 결정을 내렸다. 동성 부부의 혼인관계가 법정에서 심리된 것은 2015년 김조광수·김승환씨 부부 소송 이후 11년 만이다.

부부는 이날 심문기일을 마치고 한겨레21,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심문 분위기를 전했다. 부부와 대리인단이 혼인신고 수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판사가 귀 기울여 듣는 편안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황씨와 박씨 부부는 판사가 부부에게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는 동성 부부의 삶과 ‘사실혼’의 차이를 물었다고 했다. 박씨는 이에 “남녀가 5년을 같이 살면 누구나 사실혼이라고 보지만, 여성 둘이 살면 ‘친구'라고 한다. 무엇보다 사실혼 부부는 큰일이 생기면 혼인신고를 하면 되지만, 우리는 그 선택권 자체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특히 판사는 부부와 변호인단의 설명을 쭉 들어보고, “이제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도 가능하고, 2024년 대법원에서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판결이 나왔다”고 언급하며 “동성결혼에서도 진전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제도적, 사회 전반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 불복 사건과 헌법소원 등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심사숙고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황씨와 박씨는 “이미 일어났던 사건들을 다 알고 계셔서 놀랐다”며 “쉽지 않은 사건이지만 약간의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대리인단 장서연 변호사도 “오늘 판사님은 굉장히 진솔하게 당사자 진술을 청취했다”고 전했다.

 

6년차 동성 부부인 박여진씨(앞줄 오른쪽 넷째)와 황희연씨(셋째)가 2026년 4월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 들머리에서 혼인평등소송 심문기일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부천(경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6년차 동성 부부인 박여진씨(앞줄 오른쪽 넷째)와 황희연씨(셋째)가 2026년 4월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 들머리에서 혼인평등소송 심문기일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부천(경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이날 심리에서 대리인단은 “현행 민법 어디에도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명문 규정이 없다”는 점을 핵심 논거로 제시했다. 민법 제813조는 혼인적령, 동의 필요 혼인, 근친혼 금지, 중혼 금지 조항에 위반되지 않으면 혼인신고를 ‘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법적으로 같은 성별의 혼인은 이 금지 조항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씨와 박씨 부부의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은 경기 김포시청 쪽은 의견서에서 “현행법상 동성혼은 불가능”하다며 헌법 제36조 ‘양성의 평등' 조항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변호인단은 “양성평등 조항은 남녀차별적 혼인관(남존여비), 호주제, 축첩, 조혼, 매매혼의 폐습을 철폐하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지 동성혼을 금지하려는 맥락이 전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일본 삿포로 고등재판소가 2024년 일본 헌법 제24조 1항의 ‘양성' 표현에 대해 “대등한 당사자 간의 자유로운 의사에 근거한 혼인을 정하자는 취지”로 해석한 사례도 인용했다.

특히 변호인단은 동성 부부의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 2024년 7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핵심 사례로 제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동성 부부가) 동거·부양·협조·정조 의무를 바탕으로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성 부부와) 차이가 없다”며 “사회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이 이룬 동반자 관계가 오직 동성 간의 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인 건강보험제도의 보호에서조차 공식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사회와 국가의 공인된 보호를 받을 존재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법적 보호 못 받는 현실은 여전

 

박씨와 황씨 부부는 결혼한 지 6년차다. 이들은 2019년 3월 처음 만나 같은 해 5월부터 함께 살았고, 2020년 9월19일 양가 가족과 50여 명의 하객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22년 황씨가 타이 지사로 발령받았을 때 회사는 박씨를 배우자로 인정해 항공권과 거주지를 제공하고 근로자 보험에 가족으로 가입시켰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을 부부로 인정하지 않아 박씨는 비자를 받지 못했다. 박씨는 그 시기 황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했고, 한국에 돌아와 황씨가 쉴 때는 황씨를 부양했다. 두 사람은 2024년 9월19일 결혼기념일에 김포시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고, 일주일 뒤 우편으로 불수리 통보를 받았다.

부부가 소송에 나서게 된 건, 법적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서로를 책임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제게 결혼은 행복을 약속하는 제도가 아니라 ‘당신의 삶을 끝까지 함께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혼인신고가 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며 “함께 모은 자산도 한 사람이 의식을 잃으면 하루아침에 타인의 것으로 취급될 수 있고, 사고가 나도 가장 가까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먼저 연락이 갈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살아간다”고 말했다.

한편, 2024년 11쌍 동성 부부의 ‘혼인평등소송’ 이후 영남권에서도 혼인평등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2026년 4월8일 3쌍의 동성 부부가 각각 부산·대구·울산 가정법원에 혼인신고 불수리 취소를 신청했다. 현재 전세계 40개국(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73.6%)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돼 있고, 아시아에서는 대만(2017)·네팔(2024)·타이(2025)가 이를 인정한다. 일본은 도쿄(1차)·나고야·오사카·삿포로·후쿠오카 등 5개 고등재판소가 ‘동성혼 불인정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판단을 했고, 6개 사건이 2026년 3월 최고재판소 대법정(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이르면 2026년 중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황씨는 “이미 서로의 가족이고, 서로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사실은 우리의 삶과 선택, 그리고 시간으로 충분히 증명됐다”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이 단순한 바람이 더 이상 걱정과 두려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박씨도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권리, 서로의 가족으로서 법의 보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바란다”고 말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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