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가 집단이탈한 지 열흘째인 2024년 2월29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전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6년 3월25일 새벽 2시께, 대구 동구에 거주하는 임신 20주차 ㄱ(36)씨는 복통을 호소하며 119에 신고했지만, 바로 치료받을 수 없었다. 119 구급대원들이 대구·경북 지역에 있는 16개 의료기관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병원들이 ‘분만실 포화’나 ‘전문의 부재’ 등의 이유를 대며 ㄱ씨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ㄱ씨는 결국 첫 신고 이후 3시간 만에 충남 아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야 치료받고 퇴원했다.
앞서 2월28일 새벽 1시50분께 고위험 쌍둥이 임신부 ㄴ(26)씨는 가족을 보러 대구에 왔다가 조산 통증이 와 119에 신고했지만,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해 4시간 가까이 표류하다 새벽 5시35분께 거주 지역인 경기도 분당서울대병원에 도착해서야 제왕절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쌍둥이 태아 중 한 명은 저산소증으로 출생 직후 숨졌고, 다른 한 명은 뇌에 손상을 입었다.
한겨레21이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ㄴ씨 사건 경위서’를 보면, ㄴ씨를 태운 119 구급대원은 이송 가능한 병원을 구하기 위해 10개 병원에 14차례나 문의해야 했다. 한 병원에는 세 차례나 재문의했다. 하지만 병원들은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병상 부족’ ‘산과 전문의 부재' ‘신생아 치료 역량 부족’ 등의 이유를 대며 이송을 거부했다. 119 구급대원이 환자 이송 전 병원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종합상황판 메시지’에 관련 정보가 적혀 있지 않은 병원도 2곳이나 있었다. ㄴ씨 가족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관련 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지역에서 최근 임신부를 태운 119 구급차가 ‘응급실 뺑뺑이’를 잇따라 겪고 심지어 태아가 사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응급환자의 ‘표류’ 문제가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대구시의 경우 2023년 10대 응급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 숨진 사건을 계기로 ‘책임형 응급의료체계’를 도입해 119 구급대원이 병원에 환자 수용 여부를 묻는 대신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이송 병원을 정하면 해당 병원이 우선적으로 환자를 받도록 하는 병원 간 협진망 제도를 만들었음에도 ‘응급실 뺑뺑이’가 멈추지 않고 있다. 대구 지역 119 구급대원이 신고 현장에 도착해 병원까지 2시간 이상 걸린 사례는 2024년 7건에서 2025년 13건으로 되레 2배 가까이 늘었다. 민용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대구지부 구급국장은 “협진망이 생긴 뒤 과거보다 뺑뺑이가 줄어든 것은 체감한다”면서도 “임신부나 뇌출혈 환자처럼 수술까지 가능한 병원으로 가야 하는 경우엔 여전히 협진망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임신부는 산모와 아이의 생명을 이중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병원에서 더욱 이송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응급실 뺑뺑이는 사실 대구 같은 특정 지역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최근 1년(2024년 9월~2025년 8월) 동안 119 구급대원이 환자의 병원 이송을 위해 20차례 이상 병원에 문의한 건수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서 모두 500건 발생했다. 하루 평균 1.36건꼴이다. 서울은 1년(2024년 2월~2025년 2월) 동안 676건으로 더 많았다. 최근 6년 동안 소방청이 집계한 ‘4대 중증환자·임신부 평균 체류 및 이송 시간’을 보면, 119 구급대가 신고 현장에 도착해 환자를 태우고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평균 시간은 2019년 20분대에서 2025년 6월 30분대로 증가했다. 특히 중증외상 환자(14분), 임신부(13분), 뇌혈관 환자(10분) 순으로 이송 시간이 많이 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응급의료는 크게 ‘환자 이송→진료→최종 치료’ 3단계로 이뤄진다. 119 신고가 접수되면 구급대가 현장에 출동해 환자를 ‘한국형 병원 전 중증도 분류도구’인 프리케이타스(pre-KTAS)를 바탕으로 1~5단계로 나눠 평가한 뒤 수용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을 찾는다. 병원에 도착한 뒤엔 응급실에서 1차 진료와 검사·처치를 하고, 환자가 수술이나 중환자 치료가 필요할 경우 상급병원으로 전원하는 체계다. 응급의료기관은 중증환자를 맡는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와 경증·중등도 환자를 보는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나뉜다. 응급의료 단계에서 통일된 조정기관이 없고 병원 전과 후 단계가 각각 분절돼 있다보니 응급환자 이송·전원이 지연되는 한계가 꾸준히 지적돼왔다.
복지부는 이렇게 분절된 응급의료 체계를 보완하기 위해 2024년 지역 응급환자 전원을 책임지는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을 전국 4곳에 설치했고, 이후 상황실을 6곳까지 확대했다.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은 처음엔 응급실에서 병원 간 전원을 돕는 역할이 중심이었지만, 2025년부터는 프리케이타스 1단계(최중증환자)의 경우 이송까지 돕는 역할을 보탰다. 구급대원와 함께 실시간 병상·인력 정보를 파악해 중증환자 이송을 조정하겠다는 취지다.

2026년 2월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소방청과 함께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2026년 3월엔 한발 더 나아간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119 구급대원이 무제한으로 병원에 환자 수용 여부를 문의하던 방식을 바꿔, 일정 시간 안에 병원을 찾지 못하면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우선수용병원’을 지정해 매칭하는 구조다. 5월까지 광주광역시·전북·전남 등 3개 광역지자체에서 시행한 뒤 사업 성과를 분석해 2026년 하반기에 전국으로 확대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광주는 시범사업 전부터 ‘광주형 원스톱 응급의료플랫폼’(플랫폼)을 구축해 자체적으로 응급환자 이송 문제를 풀어왔다. 21개 응급의료기관의 실시간 병상, 의료진, 수술 가능 여부 등 700여 개 항목을 데이터베이스화해 119와 의료진이 함께 보는 시스템이다. 시범사업이 시작된 이후엔 자체 응급환자 이송지침을 세우고 플랫폼 내 중증응급환자 이송병원 결정위원회(FLT)도 만들었다. 시에서 만든 대화방에 6개 응급의료기관 의사와 119 구급대원, 119구급상황관리센터, 광역상황실 담당자가 들어와 환자 이송·전원을 함께 논의하는 구조다. 플랫폼을 설계한 조용수 전남대병원 교수(응급의학)는 “채팅방에서 병원 상황을 실시간 소통하면 제한된 조건 내에서 빠른 판단이 가능하다”며 “여러 명이 함께 판단하기 때문에 의료진 입장에선 책임 부담도 나눌 수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뜨겁지 않다. 문성오 전국공무원노조 광주소방지부장은 “119구급상황관리센터 위에 광역상황실을 얹은 옥상옥 구조”라며 “호남은 수도권만큼 뺑뺑이가 심한 지역이 아니고 전국 사정이 다 다른데 정부가 비교적 양호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돌려 ‘편한 데이터’를 얻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병원이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할 수 있는 현실을 손보지 않는 한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에서 일하는 119 구급대원 김성현씨는 “의료 자원이 밀집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도 응급실 뺑뺑이는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며 “최근 서울 한 대학병원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노인이 해당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1시간 넘게 달려 다른 대학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지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응급의료법엔 응급환자 상태를 병원에 ‘통보’하게 돼 있는데 현실은 ‘허락’을 구하는 구조로 왜곡돼 환자 이송이 지체된다”며 “구급대원은 지침대로 응급환자를 가장 가깝고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의 검사가 가능한 2차급 병원으로 옮기고, 병원 간 전원과 상급병원 매칭은 복지부와 광역상황실이 맡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범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예산·인력 투입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용수 교수는 “지금은 광주 응급의료기관 의사들이 시범사업 취지에 공감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만, 장기적으로 사업을 유지하려면 환자 이송 단계를 논의하는 과정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필요한 인력을 지원하는 등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선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119 구급대원이 병원에 전화로 일일이 환자 수용 능력을 확인하는 규정을 없애고, 병원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수용 불가능 상황 발생시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사전에 고지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응급실 내 응급의료행위에 대한 의료수가를 확대하고 중증응급환자의 최종 치료 기여도를 성과 평가에 반영하는 등 보상체계 강화, 인력 지원을 위한 응급의료기금 활용 등의 내용도 포함된다. 응급 처치·의료 행위를 하다 환자가 다치거나 숨진 경우 응급의료 종사자의 형을 ‘임의적으로 감면’해주는 제도를 ‘필요적 감면’으로 강화해, 응급의료진의 사법 리스크를 완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윤 의원은 “정부가 시범사업 등 ‘응급실 뺑뺑이’ 해소를 위해 여러 해법을 찾고 있지만 응급환자 이송·병원 체류 시간은 수치상으로 오히려 악화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라며 “의료진과 구급대원을 비롯한 응급의료 종사자가 안정적으로 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국민 누구나 걱정 없이 치료받는 응급의료 체계를 구축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계 반발은 법 통과를 위해 넘어야 할 숙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필수 의료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아 중환자실을 갖추고 임신부 응급 분만 수술이 동시에 가능한 병원은 손에 꼽는 것이 현실”이라며 “응급실 의사들의 사법 리스크와 이를 대비하기 위한 보험료 부담은 그대로 둔 채 환자를 더 받으라고만 하면 의사들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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