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안전 의지’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는 화재였다

무허가 휴게실과 쌓인 절삭유, ‘페이퍼용’ 점검
‘아리셀 참사’ 이후에도 방치돼 온 노동자 안전
등록 2026-03-26 22:45 수정 2026-03-27 08:34
2026년 3월21일 오전 대전 대덕구에 있는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안전공업 공장이 검게 그을리고 주저앉는 등 폐허로 변해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2026년 3월21일 오전 대전 대덕구에 있는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안전공업 공장이 검게 그을리고 주저앉는 등 폐허로 변해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2026년 3월20일 오후 1시17분께. 점심을 먹은 노동자들이 한숨을 돌릴 그 시간, 대전 대덕구 문평동에 있는 자동차부품 제조공장 ‘안전공업’에서 불이 나 1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쳤다.

3월26일 현재까지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동관 1층에서 불꽃을 발견했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자세한 화인을 조사하고 있다. 불씨가 3층까지 빠르게 번진 탓에 노동자들은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며 자력으로 대피했다. 불은 10시간30분이 지나서야 꺼졌다. 사망자 가운데 9명은 초기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동관 2.5층(복층) 휴게실에서 발견됐다. 1명은 휴게실 입구, 1명은 휴게실과 가까운 1층 남자화장실에서 숨을 거뒀다. 남은 3명은 2층 계단 앞 물탱크실에서 발견됐다.

안전공업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주요 협력업체다. 2024년 말 기준 364명이 일하고 그해 1351억원의 매출을 낸 ‘강소기업’이다. 이번 화재는 2024년 6월24일 경기도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에서 화재로 23명이 숨진 지 1년9개월 만에 일어난 대형 참사다. ‘아리셀 참사’ 이후 정부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비슷한 유형의 화재가 또다시 일어나 구조적 문제를 다시 짚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무허가 공간에 갇힌 사람들

 

가장 많은 노동자가 숨진 곳은 공장 본관과 연결된 동관 휴게실이었다. 안전공업 노동조합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동관 휴게실은 노동자들이 낮잠을 자거나 옷을 갈아입는 용도로 쓰였다. 한쪽엔 벤치프레스 1대와 아령이 놓여 있었지만 운동이 주목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휴게실이 공장 2층과 3층 사이 2.5층(복층)으로 지어진 ‘무허가 구조물’이었다는 점이다. 3월21일 박경하 대덕구청 건축과장은 브리핑에서 “업체(안전공업)가 허가받지 않고 2층에 복층을 만들어 써왔다”며 “건물 건축·증축 때 허가받지 않은 사항으로 대덕구에서도 이번 사고 전엔 관련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전공업 건축물대장을 보면, 1층짜리 동관은 3층까지 증축해, 2014년 12월19일 건물 증축 인허가 기관인 대덕구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대덕구에 제출된 설계 도면엔 5.5m 높이의 2층 건물을 쪼갠 복층 구조가 반영돼 있지 않았다. 임의로 건물 내부 구조를 변경한 셈이다. 건축법 제11조엔 건축물을 건축하거나 대수선하려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도록 명시돼 있다. 불법 증축은 또 있었다. 안전공업은 불이 난 동관 옆 본관 건물도 2층과 3층 사이 2.5층 공간을 임의로 증축한 사실이 2024년 민원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대덕구청은 위반 사실을 확인해 개선명령을 내렸고, 안전공업은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았다.

임의로 지어진 공간에서 안전이 확보될 리 없었다. 동관의 외관을 보면 옥상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건물 정면에는 창문이 없다. 측면에 창문이 나 있지만, 2층과 3층 창문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다. 휴게실에서 숨진 9명은 모두 창문 근처에서 발견됐다. 3월21일 대전소방본부는 브리핑에서 “옆쪽에만 창문이 있어 환기가 어려운 구조였고, 불이 난 뒤 매연도 밖으로 잘 빠지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화재 초기 진압에 핵심 역할을 하는 스프링클러도 동관 3층 옥내 주차장에만 설치됐다. 게다가 도면에 휴게실이 등재돼 있지 않다보니 소방당국이 화재 진압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생산 편의를 위해 방화구획 벽체를 임의로 철거하고 대피 경로에 가벽을 세워 피해를 키운 ‘아리셀 참사’와 닮은 점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휴게실이 주차장 바로 밑에 위치한 만큼 건축법과 소방법, 주차장법 등 증축을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이 까다로웠을 것”이라며 “스프링클러나 대피로 설치 등 비용 부담 때문에 허가받지 않고 지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대덕구청이 증축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해명에 대해서는 “무허가 증축이라 하더라도 복층 설치를 위한 설계도나 내부 검토 자료, 사전 협의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 부분은 경찰 수사로 확인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흘려보낸 위험 경고

 

공장 곳곳에 쌓인 기름때는 화재를 빠르게 확산시킨 원인으로 꼽힌다. 안전공업은 자동차와 선박용 엔진의 핵심 부품인 엔진밸브를 만드는 업체다. 엔진밸브는 고온과 압력을 견디는 정밀 금속 부품으로 가공 과정에서 불꽃과 마찰열을 줄이기 위해 절삭유(공구와 가공물을 냉각하고 윤활하기 위해 쓰는 액체) 같은 기름을 쓴다. 절삭유는 금속을 자르는 과정에서 미세입자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지는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벽이나 천장, 집진기(먼지를 모으는 장치)에 분진과 기름찌꺼기(슬러지)로 쌓이기 쉽다.

이에 노동자들은 그동안 환기·집진 시설의 개선을 요구해왔다고 입을 모았다. 황병근 안전공업 노조위원장은 “노조는 그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를 비롯한 실무회의에서 회사 쪽에 환경·집진 시설의 화재 위험성 개선을 요구해왔다”며 “특히 유증기와 기름찌꺼기 등의 축적을 우려해 집진 시설을 주기적으로 점검·청소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위 회의는 회사와 노조가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체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명시돼 있다. 3월22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본인을 전 안전공업 노동자라고 밝힌 ㄱ씨도 “절삭유가 증기 형태로 사업장 전체에 퍼져 있었다. 퇴근하고 나면 안경 렌즈에 기름막이 낄 정도였고 작업 중 (절삭유를) 흡입하는 환경이었다”며 “환기·집진 설비 개선이 필요하다고 (회사에) 계속 이야기했지만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실제 조치까지 이어지지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고 적었다. 김홍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노조와 사용자 쪽이 하는 공식 산업안전보건위 회의에서 나온 문제 제기조차 반영이 안 된 것만 봐도 경영주가 얼마나 안전에 무관심했는지 알 수 있다”며 “회사가 이윤보다 노동자 안전을 우선시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참사”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8년 동안 안전공업의 절삭유 관리는 미흡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교수(직업환경전문의)가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3월26일 제출한 2018년~2025년 반기별로 축적된 ‘안전공업 작업환경측정결과 분석 의견서’(의견서)를 종합하면, 안전공업은 △(화학물질) 소분용기 경고표지 부착 △유해물질 표시 △물질안전보건자료 교육·게시 △작업장 바닥의 전도(넘어짐) 방지 △안전보건표지판 설치 등의 항목에서 법적 기준 미흡 또는 위반 가능성이 확인됐다. 게다가 안전공업의 공기 중 화학물질 농도는 노출 기준 이하로 측정돼 안전관리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절삭유가 빠르게 바닥과 설비 표면에 침적되는 특성상 실제로는 2차 위험이 누적됐다는 것이 의견서의 설명이다. 김현주 교수는 “절삭유 관리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사안이 아니라 관리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개선 가능한 영역”이라며 “아주 기본적인 안전보건 조치에 대해 매년 반복해서 개선을 권고했다는 건, 권고 이후에도 문제가 시정되지 않고 반복됐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절삭유가 작업장에 축적된 상황은 화재 당시 대피를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절삭유는 화재 발생 시 열분해돼 일산화탄소 같은 질식성 가스를 생성할 수 있다. 화재 당시 휴게실 노동자들은 대피하지 못하고 창문 근처에서 숨졌는데, 의견서는 ‘대피로가 없었던 상황에서 질식성 가스가 단기간 대피능력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짚었다.

안전공업에서는 이전에도 경미한 화재가 이어졌다. 3월24일 대전소방본부가 공개한 ‘안전공업 화재 발생 현황’을 보면, 2009년부터 2023년까지 14년 동안 소방당국이 출동한 화재는 모두 7건이었다. 담배꽁초가 원인이 된 1건을 뺀 나머지 6건은 작업장 덕트(환기·배기·공조를 위해 공기와 오염물질이 지나가는 통로)와 집진기에 쌓인 분진이나 기름찌꺼기에 불티가 붙어 일어난 화재였다.

부실한 물질 관리도 문제였다. 우선 공장 뒤쪽에 보관된 나트륨 200㎏은 초기 진화에 큰 걸림돌이 됐다. 나트륨은 물에 닿으면 폭발하는 특성을 지닌 1등급 위험물질이다. 특히 위험물안전관리법상 보관이 허용되는 물량인 10㎏을 사전 허가 없이 초과해 보관한 사실이 뒤늦게 적발되기도 했다.

2026년 3월23일 오전 안전공업의 화재 합동 감식에 나선 관계자들이 화재로 그을린 건물 안팎에서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2026년 3월23일 오전 안전공업의 화재 합동 감식에 나선 관계자들이 화재로 그을린 건물 안팎에서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실효성 없는 점검 제도

 

참사를 예방할 점검 조치도 미흡했다. 안전공업은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에 따라 자체 소방 점검을 해야 한다. 소방청 말을 종합하면, 안전공업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기에 화재예방법 시행령상 ‘특정 소방안전관리대상물 2급’으로 분류돼 1년에 종합점검과 작동점검을 각 1회씩 받게 돼 있다. 점검 내역은 보고서 형태로 관할 소방서에 제출된다.

문제는 약 70쪽 분량의 ‘점검 체크리스트’가 소화기와 스프링클러 설비 등 소방시설 작동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사업장이 민간 점검업체를 선정해 점검비를 주는 구조이다보니 업체에서 깐깐하게 점검하기 어려운 한계도 있다. 소방시설법에는 ‘표준자체점검비’를 정해 소방청장 승인을 받은 뒤 공표하도록 돼 있지만 강제사항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점검 업체들이 단가 경쟁에 내몰리고 결국은 점검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점검 업체 입장에선 공장에 잘 보여야 점검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점검 리스트에 없는 불법 증축 등은 알아도 체크하기 어렵고, 업체도 싸고 빨리해주는 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점검 리스트에 불법 증축 시설이 있는지 항목을 추가해 지자체뿐 아니라 소방에서도 이중삼중으로 위험 요인을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동부 감독도 부실했다. 이용우 의원이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안전공업을 대상으로 한 산업안전보건 감독·점검은 2018년 이후 단 2회(2019년·2023년)만 이뤄졌다. 산안법은 감독 주기를 명시하지 않고, 사고나 위험도에 따라 정기·기획·특별감독을 선별적으로 실시한다. 안전공업은 고열로 금속을 가공하고 화재·폭발 위험물질인 금속 나트륨을 보관했음에도 아리셀 참사 이후 노동부가 진행한 고위험 사업장 감독 대상이 아니었다.

산안법에 명시된 ‘위험성 평가’만 제대로 했어도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안법은 2026년부터 사업주가 시행하는 위험성 평가에 작업장 노동자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위험성 평가를 지키지 않을 경우 최대 1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절차를 마련하도록 돼 있는데, 위험성 평가를 한 경우엔 이 점검을 수행한 것으로 인정된다. 최명기 교수는 “위험 요인을 넣으면 개선 비용이 들기 때문에 현재 위험성 평가는 화재나 붕괴 같은 핵심 위험은 빠진 ‘페이퍼 채우기용’”이라며 “여러 기관이 점검을 나갔는데도 위험을 못 잡았다는 건, 현재 점검 제도가 실효성이 없다는 뜻이다. 소방서·노동부·산업부 등 부처마다 쪼개진 사업장 안전 관련 법을 일원화하고, 관련 부처들이 함께 위험성 평가를 점검해야 위험을 예측할 수 있다”고 짚었다.

 

예고된 인재는 왜 되풀이되나

 

노동부는 3월23일 안전공업 손주환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2025년 9월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1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고는)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예고된 인재였다. 그 이면에는 기업의 생산량 증대에 따른 이윤 극대화를 앞세워 노동자의 안전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우리 산업 구조의 현실이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아리셀 참사 재판부가 판결문에 남긴 말이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