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물 많이 마시기. 하루에 만 보 이상 걷기. 건강하게 먹기.
2025년에 세운 목표들이다. 지켰을 리가. 지금도 마감하겠다고 카페에 와서 아메리카노를 홀짝이고 있다. 어제는 종일 침대와 책상을 오갔다지. 한 해의 끝에서 우리는 결심했던 일을 얼마나 이뤘는지를 돌아보곤 한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온라인상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돈다.

선만 그었을 뿐인데, 목표 달성이다. ‘건강하게 먹기’에 줄 하나만 치면, ‘먹기’로 바뀐다. 나도 한 해 목표를 이뤘다. ‘잘 살기’에 선을 긋는다. 살기. 살긴 살았다. 그거면 되었다. 우리는 한 해를 살아냈다. 살아갈수록 사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삶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가기 때문일 테다.
얼마 전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오키나와전에 대해 들었다. 태평양전쟁 시기, 오키나와는 일본의 본토 방어를 위한 전략 기지였다.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자 일본군은 주민들을 방패 삼아 산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 결과, 민간인 10만여 명이 죽었다. 40만 명이 살던 섬이다.
이들 다수는 전투가 아닌, ‘집단 자결’로 인해 희생됐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입했다. 미군 포로로 잡히면 고문당한다, 강간당한다, 고통스럽게 죽는다. 주민들에게 수류탄이 배급됐다. 자결용이었다. 수류탄은 불발일 경우가 많아, 바다에 떨어지거나 낫을 사용해 목숨을 끊었다. 노모와 아기를 제 손으로 죽였다. 증언이 쏟아진다.
일본군이 ‘집단 자결’을 종용한 까닭은 하나. 주민들이 미군에게 군사시설 위치 등 기밀을 누설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렇다 해도, 섬사람들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는 소리를 어찌 순순히 믿었을까.
일본군이 실제 그리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중국 난징에서 가한 일이 있었다. 난징대학살 때 일본군에 희생된 민간인 수가 수십만 명. 얼마나 잔혹한 죽음이었는지는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가 그러했으니 미군도 그러할 것이다. 일본군은 진실로 믿었다. 전쟁의 폭력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선명히 보여주는 증언 앞에 말문이 막힌다.
증언은 멈추지 않는다. 고통이 멈추지 않으니까. 그건 가해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오키나와가 겪은 비극을 고발하고 성찰해온 작가 메도루마 슌. 그는 소설집 ‘혼백의 길’에서 난징대학살 가해자였던 군인들의 기억을 더듬는다. “지금 생각해도 완전히 미쳤던 것 같아. 하지만 갈증으로 인한 고통은 정말 차원이 달라. 목이 마르니 단 한 방울이라도 간절한데, 눈앞의 물을 빤히 보고도 그 물에 독이 들었다 생각하면 인간은 누구나 미치광이가 되고 말거든.”(이슬, 2025) 사죄도 망각도 없이, 고통을 이고 사는 이들을 그리며 작가는 말한다. 전쟁은 그러한 것이라고.
난징이 화염에 휩싸인 날, 일본 언론은 이를 ‘쾌거’라 불렀다. 중형 규모의 폭격기가 바다를 건너 폭격에 ‘성공’했다. 당시로는 첨단기술이었다. 마실 물이 없어 미쳐가던 일개 군인도, 배를 갈려 죽은 민간인도, 수년이 지나 오키나와를 덮친 강제 집단사의 비극도, 첨단의 환호 앞에 지웠다. ‘K-방산’(무기 수출)의 쾌거를 말하는 목소리들을 떠올리는 건 두려움 때문이다. 연초부터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소식이 들려왔다. 전쟁은 오래전부터 ‘소식’이 되어 다가온다. 그 소식들 앞에서 우리 일상이 ‘운이 좋아 살아남는’ 일로 바뀌지 않기를, 평범한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살아갈수록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삶을 생각한다. 그러니 전쟁의 한복판에서 사라지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희정 기록노동자·‘죽은 다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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