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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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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마두로만 잡혀갔을 뿐… 베네수엘라 정부, 100명 새로 가뒀다”

베네수엘라 인권운동가 라파엘 우스카테기 인터뷰 “트럼프, 석유 아닌 베네수엘라 위한다면 민주주의 목소리 내야”
등록 2026-01-22 19:33 수정 2026-01-26 11:17
베네수엘라의 인권운동가 라파엘 우스카테기가 베네수엘라 인권 기반 비영리단체 ‘프로베아’ 옷을 입은 모습. 본인 제공

베네수엘라의 인권운동가 라파엘 우스카테기가 베네수엘라 인권 기반 비영리단체 ‘프로베아’ 옷을 입은 모습. 본인 제공


“베네수엘라에 민주주의가 찾아왔냐고요? 임시대통령 델시 로드리게스는 또 다른 시민 100명을 감옥에 가뒀어요. ‘마두로가 잡혀간 기쁨을 표현했다’는 이유로요. (대통령 납치 이후) 베네수엘라에 달라진 게 있다면 마두로가 없다는 점, 그리고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정부가 들어섰다는 점입니다. 딱 그 두 가지만 바뀌었을 뿐 권위주의 정부는 그대로예요.”

베네수엘라의 인권운동가 라파엘 우스카테기가 말했다. 그는 자국의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탄압을 피해 2024년 멕시코로 망명했다. 그렇기에 2026년 1월3일 미국 군대가 마두로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냈을 때 잠깐 희망도 품었다. 비록 외세의 개입일지언정 독재정치가 끝나리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또다시 독재세력에 통치 기회를 줬다. 자국의 미래가 다시 불투명해졌다고 우스카테기는 우려한다. 한겨레21이 1월16일 그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사회학자이자 인권운동가다. 베네수엘라의 인권 기반 비영리단체 프로베아(PROVEA)에서 17년간 일하며 인권과 평화에 관한 활동을 했다. 평화연구소 ‘라보라토리오 데 파스’(Laboratorio de Paz) 소장도 맡고 있다.”

 

—멕시코로 망명한 계기가 있나.

“나는 2017년부터 수배 대상이었다. 마두로 정권의 잘못을 알렸다가 베네수엘라 곳곳에 내 사진이 붙었다. 그래도 체포되지는 않았는데, 2024년 (마두로의) 재선을 앞두고부턴 탄압 수위가 높아졌다. 로시오 산미겔이라는 유명한 인권운동가를 경찰이 체포·수감하고 여권도 빼앗았다. 나도 체포 명단에 있다는 말을 듣고 급히 망명길에 올랐다.”

 

—미국이 군대를 동원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잡아갔다. 그 사태를 어떻게 봤나.

“사태의 시작은 2024년 7월 부정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 선거에서 니콜라스 마두로와 에드문도 곤살레스가 후보로 붙었는데, 당시 투표 기록을 보면 누가 봐도 곤살레스가 이긴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두로가 역시나 자신이 이겼다고 발표한 거다. 곳곳에서 시위가 시작됐다. 시민들이 우고 차베스 동상 9개를 부수는 모습이 에스엔에스(SNS)에 많이 올라왔다. 그러자 마두로 정권이 시위대를 탄압하며 약 1500명을 체포했다. 야당의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그 사실을 세계에 알렸다. 당시 야당의 전략이 2025년 한 해 동안 트럼프 정부에 베네수엘라의 부패나 마약 거래 정보를 계속 넘기는 거였다.”

2025년 4월14일 감옥에 갇힌 정치범의 가족과 활동가들이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모여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하며 풍선을 날리고 있다. AP통신

2025년 4월14일 감옥에 갇힌 정치범의 가족과 활동가들이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모여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하며 풍선을 날리고 있다. AP통신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차도는 독재정권의 비리를 세계에 알린 공로로 202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미국이 마두로 축출의 명분으로 삼은 ‘마약 거래’ 주장도 마차도가 폭로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막상 마두로를 축출한 뒤로는 마차도를 “자국 지지 기반이 없는 사람”이라며 깎아내렸다. 그러고는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대통령을 치켜세우며 “그를 통해 베네수엘라를 통치하겠다”고 말했다. 독재정권의 연장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이 자국 이익 위해 차비스모 당 지원할까 두려워

—마두로의 측근도 손 놓고 있진 않았을 텐데.

“‘차비스모’(차베스주의 지지자)도 마두로의 인권탄압 문제가 불거진 뒤로는 서로 경계했다. 그들도 체포 사태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물밑 협상을 하지 않았겠냐는 의심을 베네수엘라 국민은 한다. 미국 군대가 베네수엘라 영공에 진입할 때도 눈에 띄는 군사적 저항이 없었다. ‘베네수엘라 군대가 크리스마스 휴가 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마두로에 대한 여론이 워낙 안 좋으니 차비스모가 그를 내주고 생존을 도모했다는 말인가.

“ 차비스모는 반제국주의 노선을 걷는다. 그런데 마두로가 없어진 뒤론 미국과 엄청나게 많은 협상을 하고 있다. 이상하지 않나?”

 

—미국도 결국 석유 때문에 베네수엘라에 개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국 자원을 노리는 게 우려되진 않나.

“그동안 국민이 마두로로 인해 너무 고통받았기 때문에 이유가 뭐든 그를 체포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지금까지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등 여러 나라가 마두로를 견제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도 논란이 많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미국이 앞으로도 자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 차비스모 당을 계속 지원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함정 수사로 정치범 만들어 10년 구형”

—석유 국유화 정책은 얼핏 자립의 길처럼 들리는데 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을까.

“우고 차베스의 석유 국유화는 민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됐고 부패만 심해졌다. 국유화의 명분이 뭐였든 모든 돈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먹었지 국민에게 도움이 된 것은 전혀 없었다.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약 800만 명이 빈곤 때문에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최저임금이 1달러다. 식수·전기·가스 같은 기본 서비스조차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다. 새 정부는 이걸 해결할 책임이 있다.”

 

—마두로 정권의 인권침해 중 특히 기억나는 일이 있을까.

“2024년 20대 여성 두 명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이 원한 것도 아니고 고객 요청으로 차비스모를 비판하는 티셔츠를 제작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두 사람이 고객에게 티셔츠를 전달하려던 순간 경찰이 들이닥쳤다. 알고 보니 그 고객은 경찰이었다. 일종의 함정수사다. 당시 마두로가 ‘(정치범) 2천 명을 체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수를 채워야 하니까, 또 체포하면 포상금이 나오니까 경찰이 계속 잡아들인 거다. 두 여성은 10년형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로드리게스도 최근 집회 참가자 100여 명을 잡아갔다고 했다. 체포 사유는 뭔가.

“1월3일 사태 이후 베네수엘라에 법령이 하나 만들어졌다. ‘외국의 자국 공격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소될 수 있다’는 법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잡혀갔다. 일상생활에 침투한 첩보원들도 이웃이 뭘 하는지 계속 염탐하고 채팅방이나 SNS 사진을 훔쳐보고 있다. 매우 이상하다. 그 법령은 분쟁 중인 국가에만 적용되는데 차비스모는 자국을 침공한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지 않나.”

 

한겨레21이 2026년 1월16일 화상회의로 베네수엘라의 인권운동가 라파엘 우스카테기를 만나 현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신환 통역사, 신다은 기자, 라파엘 우스카테기 활동가. 화상회의 갈무리

한겨레21이 2026년 1월16일 화상회의로 베네수엘라의 인권운동가 라파엘 우스카테기를 만나 현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신환 통역사, 신다은 기자, 라파엘 우스카테기 활동가. 화상회의 갈무리


베네수엘라 곳곳에서 마두로 축출을 기뻐하는 집회가 열리자 로드리게스 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해 이를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반제국주의 노선을 지킨다’는 게 명분이다. 그러나 로드리게스 정권 자체가 미국과의 공조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이런 조치는 정당성이 없다고 우스카테기는 지적한다.

민주주의 전환에 청사진 없는 미국

—델시 로드리게스에 대한 국민 여론도 달라졌을 것 같다.

“옛날에도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마두로 정권의 전략을 짠 호르헤 로드리게스의 동생이고 독재정권의 부통령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정말 나빠졌다. 최근엔 ‘콜렉티보스’라 불리는 무장단체가 거리를 순찰하기 시작했다. 마두로가 잡힌 걸 축하하는 사람들을 체포하면서 돈을 뜯어낸 거다. 적게는 400달러, 많게는 2500달러까지 뜯어낸다고 한다. 이처럼 세계가 모르는 일들이 베네수엘라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 검열이 심하다보니 베네수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보를 얻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런 사회 분위기를 통해 로드리게스 정권이 이루고 싶은 건 뭘까.

“미국을 통해 베네수엘라 경제를 개선하고 2030년에 있을 선거에서도 차비스모가 정권을 잡는 거다. 지금 정부가 지향하는 모델은 중국 모델, 즉 정치적 자유 없는 경제적 자유다. 경제는 활성화하면서 정치는 계속 차비스모만 독차지하는 거다.”

 

—트럼프 정부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전환(Transition)’을 약속했다. 어떤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할까.

“트럼프 정부는 베네수엘라 석유를 향한 관심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그런데 정작 민주주의에 대한 메시지는 내지 않는다. 로드리게스도 ‘마두로를 다시 데리고 올 거다, 석방할 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자기 정권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베네수엘라 헌법이 대통령의 ‘일시적 부재’와 ‘절대적 부재’를 구분하는데, 지금 상황을 일시적 부재로 보고 선거를 미루는 거다. ‘언제든 마두로가 돌아올 수 있어서 선거를 못한다’는 얘기다. 부통령의 국정 운영 권한을 굉장히 비민주적인 방향으로 악용한다. 이럴 때 미국의 역할은 헌법과 선거를 존중하도록 압박하는 일이라고 본다. 미국이 정말로 ‘베네수엘라를 위한다’면.”

베네수엘라의 인권운동가 라파엘 우스카테기가 현상수배된 사진. 본인 제공

베네수엘라의 인권운동가 라파엘 우스카테기가 현상수배된 사진. 본인 제공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등은 ‘베네수엘라를 위한 3단계’로 (정국) 안정화-복구-민주주의 전환을 제시했다 .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해 쓰고, 야당 활동을 보장하며, 시민사회를 재건하겠다는 청사진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밝히지 않았다. 우스카테기는 “그게 되려면 베네수엘라 국민의 목소리부터 국정에 반영돼야 한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부터 풀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통 받는 국민 목소리 귀기울여 주길”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귀국할 수 있을까.

“회의가 생긴다. 차비스모 내부에서 조만간 분열이 일어날 듯한데, 그러면 베네수엘라에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망명을 끝내고 귀국하는 일도 조만간 없을 거다. 집회했다고 100명을 잡아가는 등 지금처럼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면.

“외부에서 베네수엘라를 볼 때 정치 지도자의 행보를 주로 관찰하는데,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베네수엘라 국민이 겪는 상황과 국민의 요구다. 거기에 더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다. 차베스에서 마두로로 이어지는 20년 넘는 권위주의 통치 동안 정권은 너무나도 부패했고 사람들은 동물처럼 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미국이 조금이라도 베네수엘라를 도우리라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다. 이런 관점을 잘 봐주길 부탁드린다. 베네수엘라에 관심 가져줘서 대단히 감사하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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