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김영훈 한전케이피에스(KPS) 비정규직 하청지회장이 2025년 12월31일 마이크를 잡고 2차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 촉구를 외치고 있다. 영하 6도의 사정없이 부는 바람에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류석우 기자
2025년의 마지막 날,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 얼굴이 붉게 물든 사람이 섰다. 영하 6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장갑을 끼고 있는데도 손팻말을 잡은 왼손이 떨렸다. 김영훈 한전케이피에스(KPS) 비정규직 하청지회장은 이미 한 달 넘게 밖에서 먹고 잔 터였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지금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1호기 폐쇄 기념식을 한다고 합니다. ‘기념식’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날 오전, 30년 동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온 충남 태안의 석탄화력발전소 1호기가 멈췄다. 이재명 정부에서 처음 문을 닫는 석탄화력발전기다. 탄소중립 사회를 위한 에너지 전환의 서막이다. 그런데 김 지회장은 왜 “‘기념식’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을까.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얘기도 했습니다. 하청의 문제라고. 그런데 정부가 주관하는 ‘발전산업 고용안정 협의체’(협의체)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한숨이 나옵니다.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해야 안전 문제가 해결된다고 얘기해도 정부 관료들은 직접고용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전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피해를 볼 수 있는 지역이나 노동자, 농민 등을 보호하고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가 나누자는 개념이다. 석탄발전소가 연달아 폐쇄되는 시점인 2026년, 정의로운 전환은 이뤄질 수 있을까. 한겨레21이 태안화력 1호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지역 주민, 정부와 사 쪽이 참여하는 협의체 등을 두루 취재한 결과 정의로운 전환은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한 상태였다.
김 지회장이 마이크를 잡은 바로 그 시각, 태안의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에서 열린 태안화력 1호기 발전 종료 기념식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 장관은 “기후위기 대응과 함께 에너지 안보, 지역경제, 일자리 모두가 함께 지켜지는 균형 있는 에너지 전환이 이뤄지도록 정부 정책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025년 12월31일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본부에서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1호기 발전 종료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문제는 태안화력 2차 하청 노동자들이 이 정의로운 전환에서 배제됐다는 점이다.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전케이피에스는 발전 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다시 하청을 준다. 이 업무를 하던 2차 하청 노동자 김충현씨가 2025년 6월 홀로 작업하다 사망한 뒤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재명 정부는 대책위와 함께 국무총리실 산하에 협의체를 설치했다. 협의체는 2025년 12월까지가 존속 기한이었지만, 합의안은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법원에서는 한전케이피에스의 2차 하청은 불법파견이니 김영훈 지회장 등을 직접고용하라는 판결(2025년 8월)을 내렸다. 고용노동부도 그해 10월 태안화력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는데, 김충현씨의 업무를 포함해 전기·기계 등 정비 공정 모두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불법파견 노동자 41명을 직접고용하라고 시정지시를 했다. 법원도 정부도 직접고용하라는 사안을, 협의체는 1호기가 폐쇄될 때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 집행위원장은 “2차 하청 노동자들은 사람을 특정해서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발전소 유지·보수에 필요한 인원수를 계약하는 형태”라며 “1호기 폐쇄에 따라 4명이 줄어드는데 이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합의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협의체가 활동 기한을 한 달 연장하면서도 결론을 내지 못한 표면적인 이유는 한전케이피에스와 김충현 대책위의 입장 차이다. 한전케이피에스는 2차 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할 순 있지만, 대신 정부가 액화천연가스(LNG) 쪽 정비 사업 등을 한전케이피에스에 맡기는 식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점차 사라지면서 줄어드는 물량을 대체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충현 대책위는 한전케이피에스의 물량 확보에는 동의하지만 그게 직접고용의 전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견해차의 이면엔 다른 배경이 있었다. “핵심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있다”(협의체 간사인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는 것이다. 겉으로는 한전케이피에스 노사 간 견해차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부가 민간에 맡기려던 LNG 물량을 일부라도 한전케이피에스 같은 공기업에 맡기게 되는 상황을 석연치 않게 여긴다는 얘기다. 협의체에 참가한 한 위원은 “오랫동안 민영화를 거쳐 이미 민간에 업체가 많이 있는 상황에서, 민영화를 더 안 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발생할 사회적(민간 업체들) 반발에 대해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약간의 공영화를 통해 민간의 반발도 최소화하고 일자리는 보장하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하니까 (합의되지 않는 것)”라고 말했다.
2차 하청 노동자의 직접고용 문제는 어떻게 보면 정의로운 전환에선 출발점 이전에 논의돼야 했을 쟁점이다. 전주희 연구원은 “발전소 폐쇄와 맞물린 1차 하청 노동자나 다른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문제에 대해선 한 발짝도 못 나간 상태”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정부가 실제와 다른 인력 재배치 현황을 공개했다. 정부는 2025년 10월 서부발전 원청 소속 65명은 구미 LNG 발전소로, 1차 하청 64명 등은 태안화력 내 다른 발전 설비로 재배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겨레21이 확인한 결과, 기후부가 밝힌 1차 하청 64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허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부발전이 2025년 9월 만든 태안화력 1·2호기 폐지 관련 인력 재배치 계획을 보면, ‘재배치’되는 64명은 한전케이피에스에서 15명, 한전케이피에스 2차 하청(삼신·한국파워오앤엠) 4명, 금화피에스시 22명, 한전산업개발 12명, 한전산업개발 2차 하청인 신흥기공 1명, 오이에스(OES) 2명, 코웨포서비스 8명 등이다.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한전산업개발의 경우 원래 1호기에서만 일하던 직원이 다른 발전 설비에 새로운 업무로 재배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태안화력발전소 1호기부터 6호기까지 경상정비 업무를 담당하는 1차 하청업체인 금화피에스시의 경우 원래 일하던 직원들이 새로운 업무에 재배치된 사례가 없는데 22명의 숫자가 허수로 보고됐다. 한전케이피에스 2차 하청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미 2025년부터 사망한 김충현씨를 포함해 티오(TO·정원)가 3명 줄어든 상태로 일해왔는데, 서류에만 4명이라는 숫자가 기후부의 재배치 인원에 고스란히 포함됐다.
특히 금화피에스시의 경우 원래 인력이 180명 정도였는데, 현재 인원은 154명에 불과하다. 1호기 폐쇄 전까지 아무런 대책이 안 나온 상황에서 회사가 자체적으로 인력을 줄였고, 모자란 인력은 단기계약직을 사용해 버텼다. 금화피에스시에서 20년째 일하는 김일권씨는 이런 식으로 가면 2026년 예정된 태안화력 2호기 폐쇄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후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진 정년퇴직이나 이직으로 버텼다고 하지만, 3호기(폐쇄 이후)부터는 그 인원으로도 모자랄 수 있거든요. 20대는 이미 이직을 많이 했지만 지금 남은 사람 중에 태안에 자리를 잡은 30~40대가 많아요. 전체 인원의 60% 이상 되는데, 저희도 희망퇴직을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죠.”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면, 일부는 LNG 발전소로 전환된다. 그런데 이 LNG 발전은 애초에 정의로운 전환의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 LNG 발전은 석탄발전보다 탄소배출량은 적지만 재생에너지보다는 배출량이 많아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LNG 발전소가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된 곳에 들어서지 않아 고용이 연계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한겨레21이 2038년까지 폐쇄 예정인 37기(태안 1호기 포함)의 석탄화력발전소 가운데 대체 발전 지역이 확정된 22곳을 살펴봤더니, 폐쇄된 같은 지역에 LNG나 양수발전소가 들어서는 경우는 3곳에 불과했다. 서부발전 같은 원청 직원들이나 일부 하청 노동자는 지역이 달라도 재배치가 가능하지만, 지역이 다르면 재배치가 불가능한 직군도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상시로 일하진 않지만 1년에 두 번,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진행하는 ‘오버홀’(계획 정비)에 투입되는 인원이다. 이들은 정의로운 전환 논의에서 아예 배제돼 있다.

충남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인근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정균(63)씨. 그는 1년에 두 번 정비 기간에 화력발전소에 일용직으로 들어가 일한다. 이씨가 서 있는 태안 학암포 해수욕장 뒤로 화력발전기가 연신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류석우 기자
2026년 1월12일 태안발전소 인근의 한 민박집에서 이정균(63)씨를 만났다. 그는 매해 봄가을 두 달씩 오버홀 노동을 하고 2천만원 정도를 번다. 민박도 운영하는데, 관광객이 없어 자신처럼 오버홀에 투입되는 일용직 노동자를 대상으로만 영업한다. 그렇게 1년에 3천만원 정도를 벌어 태안에서 지낸다. 이씨처럼 1년에 두 번, 한두 달 정도만 짧게 오버홀 노동을 하는 이만 연 3천 명 정도, 1호기당 300여 명이다.
이씨는 형식상 태안화력발전소 1차 하청업체인 금화피에스시와 직접 계약하지만, 실제로는 2차 하청인 ㄱ업체 소속이다. ㄱ업체는 사실상 인력사무소 같은 역할을 하는데, 두 달 동안 일할 사람을 모아 관리하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2025년까지는 정상적으로 평년이랑 비슷하게 일했는데, 2026년부터 얼마나 줄지 모르겠어요. 일단 제가 속한 회사는 봄에는 일을 들어가요. 그런데 내년이나 내후년부터는 일이 전체적으로 더 줄면 우리 회사가 일감을 못 따낼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어요. 로비 덜 한 놈(2차 하청의 일감)이 줄겠죠.”
서울에서 도배일을 하던 이씨는 10년 전 태안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오버홀과 민박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함 없이 살아왔던 그는 이제 태안을 떠나는 것을 고민 중이다. “오늘 아침에 기름 넣으러 갔다가 이 근방에 철물점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 취업해보려 해요. 정 안 되면 도배하러 서울로 다시 가야죠.”
오버홀에 투입되는 연인원 3천 명은 태안화력발전소 전체 상시 인력과 비슷한 규모다. 이씨는 발전소 앞에 살지만, 인근 지역에서 그때만 일하러 오는 이도 많다. 먹고 자고 하는 것을 다 발전소 인근에서 하기 때문에 인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이제 막 1호기가 중단된 터라 아직 본격적인 영향은 오기 전일 줄만 알았다. 그러나 발전소 인근엔 이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1월12일 오후 1시가 넘은 시간. 발전소 인근의 ㄴ음식점을 찾았다. 발전소 인근에서만 자리를 옮기며 28년째 영업하고 있다는 김정숙(57)씨는 “발전소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태계가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가 발전소 직원들 대상으로는 많이 못 팔아요. 직원들이 안 나오거든. 오버홀이라고 봄가을에 2개월 일하는 사람들 들어올 때 바짝 파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들어와야만 여기 음식점이나 펜션이 붐벼요.”
김씨는 오버홀이 진행되는 2~3개월 매출이 평소와 두 배 정도 차이 난다고 했다. 그런데 당장 올해부터가 걱정이다. 발전소 정문 바로 앞에서 ㄷ식당을 운영하는 송선화(51)씨는 이미 가게를 내놨다고 했다. 그는 “이 근처엔 관광객도 일절 없고 가게 하는 사람들은 발전소만 보고 산다”며 “최근 발전소 내부에 식당이 생기고, 배달도 점점 줄어들면서 매출에 타격이 생겼다. 그런데 올해 오버홀 인력까지 줄면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새벽에 일하러 나오면 쾨쾨하고 이상한 냄새가 올라와요. 먼지도 늘 어마어마하죠. 창문 보세요. 까맣게 물들었잖아요. 그래도 발전소 덕에 먹고살았죠. 그런데 이젠 사람도 없어지니까. 폐쇄된 1호기는 오버홀도 안 들어갈 테니 그것도 줄어들겠죠. 가게도 이전부터 내놨는데 잘 안 나가더라고요. 지금 당장은 인터넷으로 게장 같은 걸 팔아보려 해요.”

충남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정문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송선화(51)씨가 2026년 1월12일 오후 텅 빈 식당 안에서 티브이 뉴스를 보고 있다. 류석우 기자
이전에 폐쇄한 지역은 어떻게 됐을까. 2023년 국회미래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말 석탄화력발전소 2기가 폐쇄된 충남 보령은 44억원의 연간 지방재정 수입 감소, 500여 명 일자리 상실, 소비지출 190억원 감소, 인구는 10만 명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태안 지역사회에서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 인구 6만 명 선이 무너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그리고 실제로 2024년 말 6만300명이던 태안군 인구는 2025년 말 기준 5만9474명으로 떨어졌다. 문필수 태안화력폐쇄대책위원장은 “(1호기는) 2025년 연말에 종료된다고 했지만 이미 1년 전부터 사람이 나가기 시작했다”며 “인구도 6만 명 선이 무너졌다. 당장 1호기 폐쇄로 직간접 영향을 받는 인구만 4천~5천 명 정도로 보고 있다. 이게 계속 이어지면 태안 인구 4만 명도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석탄발전소 폐쇄가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시작됐는데, 국회와 정부는 아직도 ‘준비 중’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정의로운 전환 지역 지정고시를 산업통상부와 노동부 등과 협의해 마련하고 있다. 예산은 확보됐고 곧 고시가 제정될 것”이라며 “발전사에서 매년 지자체에 내는 기금이나 지역 지원 사업들이 있어서 이런 것도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22대 국회엔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따른 지원 특별법안 15건이 계류 중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태안화력 1호기 같은 사례를 한국 사회는 27번을 더 겪어야 한다. 2026년만 해도 충남 태안, 경남 하동, 충남 보령 등 3곳의 발전소가 문을 닫는다. 당장 ‘정의로운’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한 까닭이다.
태안(충남)=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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