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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철판만 남기고 이렇게까지 취약화를 했을까” 전문가도 탄식한 철골 상태

울산화력발전 붕괴 현장, 발파 성공률 높이려 과도하게 철골 절단…동서발전, ‘공작물’로 분류해 현장 감리·지자체 심의도 회피
등록 2025-11-20 17:17 수정 2025-11-21 16:48
2025년 11월10일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타워 5호기(가운데)의 붕괴된 모습. 양쪽에 있는 4호기와 6호기는 현재 발파된 상태다. 연합뉴스

2025년 11월10일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타워 5호기(가운데)의 붕괴된 모습. 양쪽에 있는 4호기와 6호기는 현재 발파된 상태다. 연합뉴스


폐건물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이미 가동을 멈춘 지 오래됐는데도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엔 사람들이 바삐 드나들었다. 낡은 발전소 건물을 해체하기 위해서다. 2025년 11월6일 오후 2시께, 약 20층 아파트 높이(64m)인 보일러타워 안에서 노동자들이 발파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다. 4호기와 6호기 발파 준비는 마쳤고 5호기 발파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건물이 힘없이 무너진 건 순식간이었다. 아직 화약 발파도 하지 않았는데 ‘쿵’ 소리와 함께 보일러타워가 쓰러졌다. 안에 있던 노동자 9명이 그대로 매몰됐다. 사고 직후 2명을 구조했지만 다른 7명은 11월7일부터 11월14일까지 일주일 동안 차례로 숨져갔다. 2019년 서울 서초구 잠원동 외벽 붕괴 사고(1명 사망·3명 부상), 2021년 광주 학동 붕괴 사고(9명 사망·8명 중상)에 이어 또다시 해체 공사 도중 붕괴로 사람이 숨진 것이다.

이번 사고에서도 원·하청은 철거 효율을 높이는 공법엔 서슴없었지만 그에 뒤따르는 위험 관리는 방치했다. 건축물 안전성 검토는 형식적으로 이뤄졌고 현장을 책임지는 감리는 없다시피했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려 만든 제도조차 사고 현장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철거 효율 높이느라 위험 관리 방치

 

건물 해체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중장비로 건물을 분쇄하는 기계식과 건물을 화약으로 폭파하는 발파식이다. 울산화력발전소는 발파식으로 해체될 예정이었다. 기계식보다 시일이 적게 소요되고 비용이 저렴하다. 그러나 실패 하면 화약량이 추가로 들 고 주변 건물이 훼손되거나 화재가 날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시공사는 발파 성공률을 높이는 절차로 ‘사전 취약화’를 한다. 건물을 쉽게 폭파할 수 있게 미리 구조물 곳곳을 절단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전 취약화로 인한 붕괴 위험이다. 발파 성공률을 높인다고 과도하게 절단하면 건물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꺾이면서 무너질 수 있다. 학계도 이런 위험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사전파쇄 위치는 건물의 구조적인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확하게 설정되어야 하나 구조물마다 특성을 달리하므로 일상적 범위를 설정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또한 사전파쇄작업은 인력이나 장비에 의해 구조물 내부에서 이루어지므로 작업 중 안전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강성승, ‘발파공학 및 발파전산해석 실습’)

9일 오전 울산 남구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현장에 붕괴된 기력 5호 보일러 타워 양옆으로 4·6호기가 서 있다. 한겨레 최현수 기자

9일 오전 울산 남구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현장에 붕괴된 기력 5호 보일러 타워 양옆으로 4·6호기가 서 있다. 한겨레 최현수 기자


이번 사고도 발파 전 사전 취약화를 하다가 발생했다. 시공사 에이치제이(HJ)중공업은 한국동서발전의 발주를 받아 5호기 보일러타워의 1m, 12m, 25m 지점 구조물을 절단하던 중이었다. 발파해체기업 코리아카코도 그 과정에 참여했다. 보일러타워 건물은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폭삭 주저앉았다. 김영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장은 인근 4·6호기 보일러타워의 철골 상태를 자료로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취약화를 엄청나게 많이 해놨더라고요. 철골 기둥의 모서리를 다 제거하고 볼트도 다 풀어놓고요. 차라리 모서리를 남겼으면 그나마 좌굴(구조물이 하중을 받아 일그러짐)에 버틸 수 있는데 모서리를 다 자르면 아주 얇은 철판만 남기 때문에 바로 좌굴이 일어나버려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취약화를 했을까, 도면을 어떻게 그렸으며 현장에 그대로 적용된 게 맞을까 의문스러웠죠.”

 

해체계획서 대부분 민원 대책에 할애

 

구조물을 과도하게 절단한 건 발파 성공률을 높일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코리아카코는 2025년 3월 충남 서천화력발전소 보일러타워 첫 발파에 실패해 두 번째 만에 성공했다. 당시 발주처는 한국중부발전, 시공사와 발파업체는 HJ중공업과 코리아카코였다. 전남 여수 화력발전소도 코리아카코가 발파를 맡았는데, 마찬가지로 취약화 단계에서 현장 노동자들 불안이 컸다고 한다.

“보기보다 철골을 엄청 많이 날려요. ‘이렇게 많이 잘라도 되겠나’ 싶은데 물어보면 ‘괜찮으니 하라’는 식이어서 어쩔 수 없이 했죠. 주로 일본에서 온 관리자(일본의 발파해체기업 ‘카코’ 관계자로 추정)가 현장에서 계속 지시했는데, 그 사람의 지시를 HJ중공업 쪽에서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어요.” 여수 화력발전소에서 일한 민주노총 전국플랜트지부 조합원 ㄱ씨의 말이다.

HJ중공업의 해체계획서에 첨부된 그림만 보면 철골의 절단면이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김영민 회장과 ㄱ씨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철골 기둥 곳곳이 잘려나가 보기만 해도 위태로웠다는 것이다.

HJ중공업의 해체계획서에 첨부된 사전 취약화 그림. 해체계획서 갈무리.

HJ중공업의 해체계획서에 첨부된 사전 취약화 그림. 해체계획서 갈무리.


보일러타워는 발파해체 난도도 일반 아파트보다 훨씬 높다. 외부 충격에 쉽게 깨지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달리 철골 구조물은 열에 휘는 성질이 있어서다. 보일러타워는 구조도 특이하다. 무거운 보일러 설비를 네 개의 철골 다리가 떠받치는 형태라 철골에 가해지는 하중이 크다. 연식도 44년에 달하고 바다가 바로 앞이라 해풍에 의한 부식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제대로 고려됐을까. HJ중공업이 작성한 해체계획서를 보면, 300여 쪽 대부분을 폭파 대책과 소음·먼지 민원 대책에 할애했다. 건물을 폭파할 때 경계를 서고 차량을 통제하며 방호물을 설치하는 등의 대책이다. 사전 취약화에 관한 위험은 ‘절단기 작업시 무게중심을 잃어 전도 및 낙하’만 적혀 있다. 이마저도 건물 전도가 아닌 중장비 전도 사고를 가리키는 것이다.

HJ중공업에 자문한 건축구조기술사도 실태 파악에 미흡했던 정황이 있다. HJ중공업은 2025년 5월 건축구조기술사 윤아무개씨에게 사전취약화 자문을 맡겨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검토보고서를 받았다. 윤씨가 운영하는 사무소의 직원은 2025년 5월20일 코리아카코 직원과 함께 현장을 찾아 3시간가량 머물렀다고 한다. 한국동서발전은 “그 외의 출입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3개 보일러동을 다 돌아보며 도면과 현장의 차이를 확인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2025년 11월9일 소방관들이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현장으로 구조작업을 하러 들어가고 있다. 최현수 한겨레 기자 emd@hani.co.kr

2025년 11월9일 소방관들이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현장으로 구조작업을 하러 들어가고 있다. 최현수 한겨레 기자 emd@hani.co.kr


윤씨가 작성한 구조검토보고서는 어땠을까. 윤종오 진보당 의원실은 울산화력 검토보고서는 확보하지 못했지만, 윤씨가 작성한 충남 서천화력발전소 보일러동 구조검토보고서는 확보했다. 검토 내용은 이렇다. “철골기둥 평면상의 전체 면적 중 계획된 평면상의 결손 면적만 동일하다면 길이(높이) 방향에서 몇 개를 취약화하더라도 구조 안전성에는 문제없을 것으로 판단됨.” 기둥을 얼마나 자르든 총단면만 계획된 수준 이내면 안전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영민 회장은 의문을 제기했다. “건물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로 보여요. 책상 다리를 하나 자르고서 ‘나머지 평단면이 같으니 안정적’이라고 하는 셈이랄까요? 특히 보일러타워는 일반 건축물보다 하중 쏠림도 심합니다. 무거운 보일러 장비를 철골 구조 위에 매다는 방식인데다 물을 보내는 배관 설비 등도 특정 구역에 쏠려 있으니까요. 지난 44년간 증개축하면서 도면과 달라진 점도 확인해야 하고요. 제대로 진단하려면 최소 2주에서 한 달은 봐야 합니다.”

 

여수에선 ‘공작물’도 해체 허가 받았는데

 

사전 검토가 부족했어도 현장에서 감리가 제구실했다면 사정은 달랐을 수 있다. 감리는 해체계획서가 문제없이 작성됐는지, 현장에 재해 위험은 없는지 등을 감시한다. 2021년 광주 학동 붕괴 사고 이후 해체 공사 감리의 권한이 크게 강화됐다. 건축물 해체 공사를 할 때는 공사 현장에 상주하는 감리원을 적어도 1명 이상 고용해야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에 해체계획서 적정성 심의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를 모든 해체 공사에 적용하지 않고 ‘건축법상 건축물’로 한정했다는 점이다. 건축법상 건축물은 “토지에 정착”돼 있고 “지붕과 기둥 또는 벽이 있는” 건물을 일컫는다. 이런 구조에서 비켜난 건물은 건축물이 아닌 ‘공작물’로 분류된다. 법령상 이름이 무엇이든 폭파 대상이면 안전 관리 의무를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데 일부만 적용한 것이다.

2025년 11월9일 울산 남구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현장에서 구조 관계자들이 매몰자 주검을 수습하며 묵념하고 있다. 최현수 한겨레 기자 emd@hani.co.kr

2025년 11월9일 울산 남구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현장에서 구조 관계자들이 매몰자 주검을 수습하며 묵념하고 있다. 최현수 한겨레 기자 emd@hani.co.kr


그 결과 사고가 난 울산화력의 보일러동은 공작물로 분류돼 지자체 심의도 상주 감리도 없었다. 동서발전이 해체 허가를 받을 때 건축물만 쏙 골라서 해체 허가를 받고 공작물은 아예 뺀 까닭이다. 반면 여수 호남화력발전소의 경우 동서발전이 건축물과 공작물을 모두 합쳐 해체 허가를 받았다. 그 결과 공작물도 해체 심의에 포함됐고 현장을 두루 살피는 상주 감리도 있었다. 동서발전은 두 현장의 허가 대상을 달리한 까닭에 대해 “호남화력의 경우 (공작물도 건축물과 똑같이 신고하라는) 여수시청의 강력한 권유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공작물이든 건축물이든 해체시에 붕괴 위험이 있다고 발주자가 인식하면 종류와 무관하게 허가를 받아야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건설에 관한 개별법이 너무 많고 매우 구체적이니까 기업이 그걸 보고 ‘아 그러면 (문구에 없는) 이건 안 해도 되나’라고 면책받을 궁리부터 하는 거죠. 이번에 사고가 난 보일러동도 그렇게 큰 시설물인데 ‘공작물이니까 해체 심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죠. 상식적으로 당연히 해체 허가를 받았어야죠.” 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말했다.

 

사고 막으려면 ‘위험 관리’ 포괄적으로 해야

 

결국 문제는 ‘위험 관리’보다 ‘규제’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국회가 산업시설물을 건축물에 포함하는 방안을 대책으로 검토한다지만, 규제 대상을 매번 거르고 선별하는 방식으론 사각지대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다.

“언제까지고 사고 터진 뒤에야 누더기 기우는 식으로 해결할 순 없죠. 안전에 관한 포괄적이고 일원화된 법체계가 필요해요. 지금은 건설업만 해도 관련 법령이 너무 많고 법 적용 대상도 다 다르잖아요. 건축물관리법도 그간 허가 범위가 많이 확대됐는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설물이 통으로 빠져버린 게, 국토교통부의 주된 관리 대상이 건축물이라서 그런 거거든요. 실제 해체 현장에서는 다양한 시설물이 있는데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국토부는 건축물관리법 이렇게 각자의 관리 대상 위주로 접근한 거예요. 영국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을 모태 법령으로 두고 업종별 안전관리는 제조업, 건설업 등으로 세분화하고 있거든요. 한국도 포괄적 위험 관리를 하려면 법부터 일원화해야죠.” 정 교수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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