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12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들과 반올림이 기자회견을 열고 니토옵티칼 산재은폐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제공
“회사 관리자들은 언제나 ‘원 닛토’(One Nitto)를 강조했어요. 평택공장이든 구미공장이든 우리는 닛토그룹 직원이라 근로조건도 임금도 다 같은 거라고요. 작업복도 똑같이 생겨서 구미공장 직원이라고 말 안 하면 평택공장에서도 모를 정도였어요. 출장도 많이 다녔죠.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면 구미공장 직원이 일본 가서 배우기 번거로우니까 평택공장 가서 사용법을 배우고요. 그래놓고 이제 와서 ‘법인이 달라 (해고자) 고용이 어렵다’는 건 말이 안 되죠.”(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지회장)
‘경기 평택공장에서 마저 일하게 해달라’는 경북 구미공장 해고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한 일본 닛토덴코그룹이 과거에는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공장을 넘나들며 일하도록 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간 닛토덴코는 ‘두 공장이 별도 법인이라 고용승계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집했는데, 정작 필요할 땐 마음대로 노동자를 동원한 전례가 있었던 것이다.
디스플레이용 필름을 만드는 일본 닛토덴코그룹은 1999년과 2003년 각각 한국에 평택 니토옵티칼 공장과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을 세웠다. 내국인 고용 창출의 대가로 50년 공장 부지 무상임대와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았으나 2019년부터 2년에 걸쳐 구미공장 직원 수백 명을 구조조정했다. 급기야 2022년엔 화재를 계기로 구미공장을 닫고 생산 물량만 평택공장으로 이전하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했다. 남은 노동자들은 평택공장으로의 복직을 요구하며 3년째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평택공장은 178명을 신규 채용하면서도 구미공장 해고 노동자들은 받지 않았다.
2025년 11월12일 한겨레21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이지영씨의 2021년 근로계약서와 이희은씨의 2016년 근로계약서에는 특약사항으로 ‘근무지 변경’ 조항이 적혀 있다. “ 갑은 회사의 업무 형편에 따라 을(노동자)에게 근무지 변경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을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언제든 다른 근무지에서 일을 시킬 수 있도록 계약서에 명시한 것이다.

일본 닛토덴코그룹의 경북 구미 공장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사용한 작업복 모습. 경기도 평택의 또 다른 공장 ‘니토옵티칼’ 작업복과 디자인이 같다.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제공
두 공장의 취업규칙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구미공장 취업규칙 제10조(‘직종·보직·직장 및 근무지 변경’)는 “ 업무상의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근로자에게 직종, 보직, 직장 및 근무지 변경을 명할 수 있다. 근로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정했다. 평택공장 취업규칙 제25조(‘이동’)도 ‘회사는 업무상 필요에 의거 사원에게 관계사 전출을 명할 수 있으며, 퇴직에 준하여 처리한다”고 정했다.
“구미에 공장을 둔 옵티칼하이테크가 노동자 근로계약서에 ‘근무지 변경’을 명시했다면 그건 구미공장이 아닌 타 공장으로의 이동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여러 계열사를 둔 모기업이 필요에 따라 사람을 이리저리 보내는 ‘기업 간 이동’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닛토의 경우 자회사 공장끼리 이동한 사례도 많았다.” 탁선호 금속법률원 변호사의 말이다.
노조는 해당 규정에 따라 노동자가 공장을 오간 사례도 확인했다. 2016년 평택공장 직원 30여 명이 후공정 통합 목적으로 구미공장에 파견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노조가 부당해고 소송 중 확보한 내부 서류를 보면, 이들의 발령 유형은 ‘근무지 변경'으로 적혀 있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도 ‘근무지 변경’의 이름으로 2019~2020년 평택공장과 국외 공장에 간 구미공장 직원 11명의 명단을 확보했다. 그중 2명은 아예 평택공장으로 근무지 소속을 옮겨(‘전적채용’) 현재까지 근무 중이다.
이는 닛토덴코의 유연한 사업 대응을 위한 규정으로 풀이된다. 닛토덴코는 두 공장 간 중복되는 공정을 통합하거나 영업부를 합칠 때 직원을 파견하곤 했다. 2022년 8월에도 평택공장 직원들이 구미공장 직원들과 함께 위험성평가를 했고 그해 10월에도 평택공장 품질보증부 부장이 구미공장에 파견됐다. 반대로 구미공장 직원도 평택공장으로 생산 지원을 하러 갔다. 2022년 10월 화재로 구미공장이 불타자 직원들이 인수인계하러 평택공장으로 간 사례가 대표적이다.(“구미→평택 채용 선례 있다” 지적에 진땀 뺀 니토옵티칼 대표)

2016년 경기도 평택의 니토옵티칼 공장 소속 직원이 ‘근무지 변경’ 형태로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 대거 파견된 내용.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제공
한겨레21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와 니토옵티칼에 각각 노조 요구에 대한 회사 입장을 물었다. 구미공장 쪽 청산인 배재구씨는 “해당 조항은 옵티칼 공장에 적을 둔 채 고객사 등에 파견되는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라며 “노조 요구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평택공장 직원 파견과 전적채용이 된 것도 “노동자와 회사 둘 다의 필요가 맞아 채용한 것으로 노조 요구와는 상황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니토옵티칼 쪽은 답변을 주지 않았다.

2025년 11월12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들과 반올림이 기자회견을 열고 니토옵티칼 산재은폐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평택 니토옵티칼은 노동자 생명을 위협하는 열악한 환경으로도 지탄받고 있다. 김주영 의원실이 확보한 니토옵티칼의 병가·인사 노무 내용을 보면, 이 공장에서 2000년 이후 침샘암·직장암 등 암 진단자가 20명이나 나왔다. 이 가운데 4명은 백혈병이다. 필름 생산에 쓰이는 톨루엔과 포름알데히드 등이 유발 요인으로 추정된다.
이런 사실은 2025년 7월 노동자 ㄱ씨의 백혈병 산업재해 인정을 계기로 드러났다. 2002년부터 약 23년간 니토옵티칼에서 근무한 ㄱ씨는 필름 절단·용해 공정에서 일하다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돼 백혈병을 얻었다. 2025년 4월께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의 도움을 받아 신청 3개월 만에 산재를 승인받았다.
이를 계기로 고용노동부 평택지청도 2025년 6월부터 3개월간 공장 실태조사를 했는데 △국소배기장치 미흡 △폐기물 보관통 가스 발산 억제 미실시 △채취시료 및 폐액의 운반·저장시 마개 미실시 등 위반사항 10건이 드러났다. 반올림도 회사의 유해물질 관리 미흡 정황을 확인했다.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법령에 따라 주기적으로 작업환경을 측정해야 하는데, 반올림이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한 니토옵티칼의 측정 보고서엔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질조차 누락돼 있었다.
ㄱ씨와 반올림 등은 이런 사실이 “25년간 침묵의 공장으로 있다가 백혈병 피해자가 권리 찾기를 시작하면서 한 달 만에 알게 된 결과”라며 “상시적 조사·감독이 필요하다”고 11월12일 기자회견에서 요구했다. 그간 국가가 반도체 산업은 대대적으로 육성하면서도 반도체 소재 산업의 산재엔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 탓에 유해물질에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짚었다. 법령상 유기용제를 쓰는 장소에서 일할 때는 작업과 휴식을 적정하게 배분해야 하는데(산업안전보건법 제139조 등), 니토옵티칼 생산직은 하루 12시간 주야간 맞교대로 일하고 있다. 이날 금속노조와 반올림은 △반도체 소재 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노동시간 단축과 근로조건 개선으로 유해물질 노출량을 줄이도록 요구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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