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15일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들이 국회에서 이배원 니토옵티칼 대표(오른쪽 등진 이)를 해고 3년 만에 처음 만나 해고의 부당함에 대해 항변하고 있다. 사진 김주영 의원실 제공
“구미에서 평택으로 간 직원들 사례가 있잖아요. 대표님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잖아요. 왜 자꾸 안 된다고 합니까?”
“대화 좀 합시다!”
건물 앞이 소란스럽다. 서둘러 떠나려는 이배원 니토옵티칼 대표이사를 해고 노동자들이 붙잡았다 . 3년 만의 첫 만남이었다. 노동자들이 하루종일 경기도 평택 공장 앞을 지켜도, 600일을 불탄 경북 구미 공장 옥상에서 농성해도 만날 수 없던 사람이다. 그 사람이 2025년 10월15일 국회 기후정의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노동자들은 이 대표를 둘러싸고 ‘노조와 대화하자’, ‘해고자 고용을 이제라도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이 대표는 “권한이 없다”,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확답을 피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차량 기사만 애타게 찾았다. 보다 못한 한 노동자가 소리 질렀다. “그럼 (과거의) 니토옵티칼 직원 파견 결정은 귀신이 했습니까! 귀신이 했냐고!”
일본 그룹 니토덴코는 1999년 평택 공장(니토옵티칼)과 2003년 구미 공장(한국옵티칼하이테크)을 차례로 설립했다. 두 자회사를 16년 동안 운영하다 노조 설립 2년째인 2018년부터 구미 공장 인원을 꾸준히 감축했다. 급기야 2022년 10월 구미 공장에 불이 난 뒤론 아예 평택 공장으로 물량만 이전하고 남은 이들은 정리해고했다. 물량을 받아간 평택 공장은 178명을 신규채용하면서도 구미 공장 노동자 7명만큼은 끝까지 받지 않았다. 표면적 이유는 ‘법인이 달라 책임질 의무가 없다’는 것이지만, 본질은 노동조합 조합원을 기피하는 거라고 노조는 본다. 노조의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불탄 구미 공장 옥상에서 600일 간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벌였으나 끝내 이배원 대표와 교섭 한 번 하지 못했다.(▶관련 기사 : [현장] 600일 만에 땅 딛은 박정혜 “두 다리로 내려온 것, 연대 덕분”)

2025년 10월15일 국회 기후정의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최현환(왼쪽)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지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이배원(오른쪽) 니토옵티칼 대표이사에게 평택 공장과 구미 공장 간 인적 교류 사례를 설명하며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이날 노조와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평택 공장과 구미 공장이 과거에도 직원 교류를 한 사례를 국정감사에서 공 개했다. 2016년 평택 공장 직원 이 아무개씨 등 9명이 구미 공장으로 파견 갔다가 평택 공장으로 복귀했다. 또 평택 공장 김아무개씨와 진아무개씨 2명은 아예 구미 공장에 파견으로 소속이 변경됐다. ‘전적 채용’(기업 간 인사이동)인 셈이다. 일본 본사 개입 없이도 평택 공장이 자체적으로 구미 공장에 직원을 보냈다가 다시 받은 사례가 있었던 것이다.

금속노조 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공개한 평택 니토옵티칼과 구미 옵티칼하이테크의 직원 교류 현황. 노조 자료 갈무리.
노조는 또 2022년 8월 평택 공장 직원이 구미 공장의 위험성평가를 대신한 사례도 공개했다. 각 공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위험요인을 평가해야 하는데, 평택 공장 직원들이 구미 공장에 대해 “환경안전·생산기술·제조 안전심사”를 실시한 서류를 공개한 것이다. 최현환 지회장은 “법인이 다르다면서 어떻게 다른 법인 위험성평가를 대신해 주나. 옆집 불 날까봐 가스점검해 주시냐”고 비판했다. 또 2022년 10월 화재 직전에도 평택 공장의 품질보증부 부장이 구미 공장으로 파견을 간 사례가 있었다. 최 지회장은 이런 사례를 언급하며 “왜 지금은 안 된다고 하느냐. 600일 고공농성 동안 회사가 대화 한 번 안 하는 게 정상이냐”고 성토했다.

니토덴코의 경북 구미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KOH) 공장 설비 안전심사 ‘실시자’ 항목에 경기 평택 자회사 ‘니토옵티칼’(KOR)이 적혀있다. 노조 자료 갈무리.
이 대표는 모순된 입장으로 방어하다 진땀을 뺐다. 처음엔 스스로를 일본 그룹과 무관한 ‘니토옵티칼 경영자’로 내세웠다. “저는 니토옵티칼 경영에만 책임을 진다”, “(니토옵티칼은) 주식회사다. (구미 공장과) 엄연히 분리돼 있다” 등의 답변을 했다. 구미 공장과 법인이 달라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취지다.
그러자 의원들이 질문을 바꿔 ‘니토옵티칼 대표로서 입장은 어떠냐’고 물었다.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앞서 전적 채용된 2명은 한국에서 니토옵티칼이 결정한 것 아니냐. 그런데 7명은 왜 일본에 넘기냐.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이 대표이사는 30초가량 침묵하더니 “후공정은 사양산업이라 전공정 위주로 채용하려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그게 다 핑계라는 생각 안 드냐”고 지적했다.

2025년 10월15일 국회 기후정의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대표이사를 해고 노동자들이 ‘대화 좀 하자’며 붙잡으려 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국회 기후정의환경노동위원회는 뚜렷한 진전이 없을 경우 이 대표를 종합감사 때 부를 방침이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노동부 종합감사(30일) 전까지 경과를 보고하고 대화의 장을 열어달라. 그렇지 않으면 국정감사에 다시 부르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그때까지 전적 채용 답을 가져오겠냐”는 노조 질문에 “일본과 상의해야 한다”고만 답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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