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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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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베이거나 불에 데거나… 런베뮤에서 일할 때 각오할 일들

‘런던베이글뮤지엄’ 최근 3년 산업재해 63건 살펴보니… ‘베임 19건’ 등 안전사고 무방비
등록 2025-11-13 17:04 수정 2025-11-15 00:23
녹색당 관계자들이 2025년 11월3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앞에서 노동자 사망 관련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녹색당 관계자들이 2025년 11월3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앞에서 노동자 사망 관련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4월21일 오전 8시20분께 주방 업무 중에, 칼이 있으면 안 될 개수대에서 설거지하다가 철판에 가려 보이지 않던 칼에 깊게 베임.’

당시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에서 일한 28살 여성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요양급여(노동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다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지급) 신청서에 적은 재해 발생 경위다. 다음은 2024년 런베뮤에서 발생한 다른 업무상 재해다. 33살 여성 노동자가 인원 부족으로 무리한 일을 하다가 피해를 입었다.

반죽 작업시 3명의 인원이 함께 일하는 것이 원칙이나, 조퇴한 인원이 발생했는데도 인원 충원 없이 2명이 모든 작업을 수행함. 그 후 늑골에 무리가 오고 통증이 생겨 근무하기 힘들어짐.’

“런베뮤 직원, 팔에 화상 하나쯤 예사”

20대 청년 남성 노동자 정효원씨가 과로로 사망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유명 베이커리 카페 런베뮤를 상대로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노동부는 장시간 노동,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등 임금체불, 휴가·휴일 미보장 같은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산업재해(산재) 예방을 위한 법령 기준을 이행했는지와 관련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도 함께 살피기로 했다.

이는 런베뮤 10개 지점(매장 7곳, 공장 3곳)을 통틀어 최근 3년(2022년 2월~2025년 9월) 동안 발생한 산재가 63건에 이르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이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아 확인한 런베뮤의 산재 63건 현황 자료를 보면, 2022년 1건이던 산재가 2023년 12건, 2024년 29건으로 급증했다. 2025년에는 9월까지 21건의 산재가 발생했다. 63건 중 53건(84.1%)의 산재 피해자가 여성이고, 20대가 49명(77.8%)으로 가장 많았다. 청년 여성 노동자가 주된 피해자다.

유형별로 보면 ‘베임’(19건)이 가장 빈번했다. 다음으로 ‘넘어짐’(8건), ‘화상’(8건), ‘미끄러짐’(7건), ‘손끼임’(6건) 등의 순으로 많았다.(이때 둘 이상의 유형이 중첩된 재해는 순서상 처음 발생한 재해를 분류명으로 삼았다. 이를테면 바닥에 넘어져서 무릎이 찢어진 재해는 ‘넘어짐’으로 봤다.) 재해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설거지하다가 유리컵이 깨져서 급하게 정리하다가 고무장갑 안으로 유리 파편이 꽂혀서 왼쪽 엄지손가락이 베임.’(2023년 당시 25살 여성 노동자)

‘손님에게 나가는 뜨거운 수프를 옮기던 중, 지나가는 저를 미처 못 보고 아래에서 일어선 직원과 부딪히는 사고로 손목에 화상을 입음.’(2024년 당시 29살 여성 노동자)

한겨레21이 인터뷰한 전직 런베뮤 직원들은 주방에서 일하는 제빵사들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고 전했다. ㄱ씨는 2025년 11월6일 “(빵이 진열되는) 매대가 (빈 곳 없이) 계속 채워져야 했기 때문에 방문객이 많은 매장에서는 (주방에서) 계속 (빵을) 만들어내야 했다”며 “내가 아는 주방 직원들은 전부 팔에 화상 자국이 최소한 한 개씩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ㄴ씨는 “(제빵사들이) 하루에 한 번씩 손이 베이고, 화상을 입고, (‘렉카’라 불리는) 이동식 선반을 끌다가 넘어지는 일이 꼭 있었다”고 밝혔다.

런베뮤를 운영하는 엘비엠(LBM)은 “베임 사고 방지를 위해 위생용 니트릴장갑, 목장갑, 내절단장갑 등 장갑을 최소 2개 이상 착용하도록 교육하고 있으며, 매일 아침조회를 통해 착용 지침을 반복적으로 안내하고 있다”며 “또한 (본사 주도로) 산업안전보건법령 준수 및 정기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지점 관리감독자 주도의 수시 위험성 평가 및 개선 대책 수립을 병행 중”이라고 말했다.

엘비엠 다른 사업장도 ‘안전 무개념’ 똑같아

근골격계 질환은 제빵 노동자가 겪는 대표적인 직업병이다. 그런데 런베뮤 산재 63건 중 업무상 질병은 1건(근골격계 질환)밖에 없었다. 다음은 그 1건의 재해 내용이다. ‘기존에는 반죽 모양을 잡는 성형팀 소속 직원이었는데 오븐팀으로 가게 됨. 업무 특성상 반복 작업이 많았음. 철판을 드는 작업이나 붓으로 하나하나 빵에 시럽을 바르는 작업을 근무시간 중 6시간 이상을 하다보니 서서히 지속한 손목 통증으로 근무할 수 없게 됨.’(2025년 당시 18살 여성 노동자)

다른 제과제빵점에서 10년 넘게 제빵기사로 일하는 ㄷ씨는 “그동안 런베뮤에서는 눈에 당장 보이는 사고나 부상에 대해서만 산재 신청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산재 신청이 1건밖에 없다는 건, (산재 피해자) 대부분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지 않고 그냥 퇴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는 견해를 밝혔다. 제빵공장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는 ㄹ씨는 “일터가 제빵공장이든 제과제빵점이든 상관없이 근골격계 질환은 제빵사라면 누구나 가진 질병”이라면서도 “노동자 입장에서 증거자료 수집 능력 부족 등의 이유로 질환의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것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본 런베뮤의 위험 요인은 런베뮤를 운영하는 엘비엠의 다른 사업장(카페 레이어드, 카페 하이웨스트, 아티스트 베이커리)에도 존재한다. 엘비엠의 한 계열사 지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ㅁ씨는 주방에서 일하면서 미끄러질 뻔한 일이 많았다고 11월6일 한겨레21에 말했다. “주방 바닥을 물청소하고 물기를 최대한 제거한다고 해도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지는 사고가 잦았어요. 늘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 내에 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급히 움직이다가 발을 헛디디는 경우가 많았죠. 미끄러짐 방지용 작업화를 신는 사람도 있었고 안 신는 사람도 있었어요. (매장에서 지급하지 않아) 사비로 사야 했거든요.”

ㅁ씨는 이어 “산재 신청으로 이어지지 않는 베임·찔림, 화상, 타박상이 엄청 잦다. 전문인이 아닌데도 직원들이 매장 옥상에 올라가 천장을 보수하거나 기계와 가구를 분해해 조립하는 일도 많았다”며 “어떤 직원이 철제 사물함 경첩을 설치할 곳을 전동드라이버로 뚫다가 날이 부러져 다칠 뻔한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런베뮤에서는 2023년 당시 25살인 여성 노동자가 파 절단기를 청소하려고 기계를 분해하다가 칼날에 베이는 사고가 있었다.

노동부 “법 위반 확인, 엘비엠 전체 근로감독”

노동부는 10월29일 시작한 런베뮤 본사(엘비엠)와 인천점 근로감독 과정에서 직원 대상 설문조사와 면담 등을 통해 일부 법 위반 정황이 확인됐다며, 11월4일 런베뮤 10개 지점을 포함한 엘비엠 계열사 전체로 근로감독 대상을 확대했다.

엘비엠은 “2025년 1월 중 산업안전보건법령 요지 및 안전보건경영 방침을 전사에 배포해 모든 사업장에 동일한 안전기준과 관리 절차를 적용하고 있다”며 “2025년 6월 중에는 전문 안전보건 위탁기관과 계약을 체결해 관리체계를 한층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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