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태원 참사를 잊지 마세요” 한국 웹툰 사랑한 외국인 생존자

노르웨이 출신 로네 옐메씨가 ‘참사 특별조사위’ 진술 조사에 응하는 이유
등록 2025-10-30 19:29 수정 2025-11-01 13:05
로네 옐메씨가 2022년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참사 피해를 입고 병원에 가서 자신의 부상 부위를 찍은 사진이다. 로네 옐메 제공

로네 옐메씨가 2022년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참사 피해를 입고 병원에 가서 자신의 부상 부위를 찍은 사진이다. 로네 옐메 제공


“전 숫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공유하는 이야기 뒤에 실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실명 인터뷰가 어렵다면 익명 인터뷰도 가능하다고 말했을 때 노르웨이 출신의 로네 옐메(23)씨가 한 말이다. 현재까지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에 등록된 기록을 바탕으로 파악한 이태원 참사 피해자는 최소 498명. 이 중 외국인 피해자는 최소 48명이다. 외국인 피해자 중 한 명인 옐메씨는 2025년 10월21~24일 서면 인터뷰 답변과 페이스북 다이렉트메시지(DM)를 통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다친 모습을 찍은 사진도 함께 보냈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맞아 옐메씨 삶에 새겨진 이야기를 1인칭으로 재구성했다. _편집자

 

한국에서 생활하며 공부하는 걸 오랫동안 꿈꿔왔어요. 11~12살 때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였는데요. 언니 소개로 애니메이션, 만화, 웹툰 세계에 눈을 떴어요. 그 뒤로 웹툰은 제 일상에 스며들었고,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가 됐죠. 영어로 번역된 한국 웹툰을 밤늦게까지 읽는 걸 좋아했어요.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엔 많은 내용이 잘 이해가 안 됐지만, 그래도 한국 웹툰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거기에 한국 드라마도 보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뒤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온라인에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학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거다!’ 싶었어요. 언젠가 한국어로 웹툰을 읽는 게 제 꿈이었거든요. 1년 학비를 충당할 수 있는 학자금대출(노르웨이의 학자금지원기금 ‘로네카센’)을 받고 2022년 5월 19살의 나이로 혼자 한국에 와서 그해 6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제겐 큰 모험이었지만, 한국에 온 걸 전혀 후회하지 않았어요.

제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친구들(총 6명)이랑 같이 2022년 10월29일 이태원에 갔어요. 그중엔 스티네(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와 인홍(김인홍)도 있었어요.(각주1) 저희 대부분은 신촌과 홍대(홍익대) 지역에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태원에 가서 각양각색의 코스튬(모조 의상)을 착용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곳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잠깐 머물다가 홍대에 가려고 했어요.

비명과 신음 속에 숨을 아꼈던 골목

그런데 이태원역이 사람들로 꽉 찼어요. 지하철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가는 데만 10~15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전에도 이태원을 두세 번 왔지만 이런 인산인해를 경험한 건 처음이었어요. 스티네한테 “재킷 안 가져오길 잘했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나요. 거리가 사람들로 붐비니까 주변이 후끈후끈했어요. 얇은 드레스와 셔츠 차림으로 갔는데도 몸에 땀이 흐를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세계음식문화거리를 두 명씩 나란히 걸었어요. 그런데 거리에 사람이 점점 더 몰리면서 한 사람씩 한 줄로 걸었어요. 인홍이 맨 앞에 있었고 그 뒤에 스티네, 그다음이 저,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3명) 순이었어요. 그때 제가 스티네의 옷을 살짝 잡고 있었는데, 인파 때문에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어요. 스티네가 인파에 빨려 들어갔어요.

로네 옐메씨가 2022년 10월29일 밤 10시14분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6에서 인파에 휩쓸리기 전 근처에 있는 해밀톤호텔 뒤에서 찍은 사진. 로네 옐메 제공

로네 옐메씨가 2022년 10월29일 밤 10시14분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6에서 인파에 휩쓸리기 전 근처에 있는 해밀톤호텔 뒤에서 찍은 사진. 로네 옐메 제공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우리 모두 이태원역으로 돌아가기로 했거든요. ‘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괜찮아. 못 찾으면 전화하면 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때 비명이 들렸어요. 사람들이 한국어와 영어로 “거기로 가지 마!”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땐 이미 너무 늦었어요. 군중이 골목(각주2)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제 발걸음을 통제할 수 없었어요.

처음엔 제 뒤에 있던 친구 3명과 함께 골목 끝에 있는 계단 위에 서 있었어요. 친구들이 저를 그 계단으로 끌어당겨줬죠. 하지만 불과 몇 분 뒤에 사람들이 몰려 저희를 계단 바깥쪽으로 밀어냈어요. ‘여기서 앞으로 넘어지면 인파에 깔려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어떻게든 계단 위에 서 있으려고 다리 근육에 최대한 힘을 주고 버텼지만 소용없었어요. 결국 계단 밖으로 밀려났어요. 발이 땅에서 떨어졌고, 등이 땅을 향한 채 몸이 대각선으로 떠 있는 상태로 사람들 사이에 끼었어요.

로네 옐메씨가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6 골목에서 인파에 휩쓸리기 전 서 있던 계단(빨간색 원으로 표시)의 모습. 네이버 지도 거리뷰 갈무리

로네 옐메씨가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6 골목에서 인파에 휩쓸리기 전 서 있던 계단(빨간색 원으로 표시)의 모습. 네이버 지도 거리뷰 갈무리


그 순간 정말 무서웠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손 감각을 잃었고 그다음 팔, 발가락, 다리 감각을 차례로 잃었어요. 조여오는 압박은 더 커졌어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단 1㎝도 없었어요. 사람들끼리 몸이 너무 단단히 붙어 있어서 꼭 테트리스 블록 같았어요. 주변은 비명과 신음으로 가득했어요. 사람들이 숨 쉴 수 없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소리쳤어요. 저는 숨을 아끼려고 조용히 있었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요.

사람들은 사진 찍고, 직원은 못 앉게 한 그날

그때 제 고개는 왼쪽으로 돌아가 있었어요. 2층 술집이 보였어요. 큰 유리창이 있는 술집 안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었어요. 당시 몸을 쥐어짜는 압박이 더 심해졌고, 숨통이 막혀 숨쉬기가 힘들었어요. 공황 상태에 빠졌어요.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한국에 온 지 몇 달밖에 안 됐는데….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까? 언니는, 내가 죽으면 살아남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을 했어요. 도와달라고 소리쳤어요. 하지만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입을 다물고 숨 쉬는 데 집중했어요. 어떻게든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내내 안간힘을 썼어요. 기절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뜻이 아니에요. 주변 사람들은 그때 의식을 잃고 있었어요.

오래 갇혀 있던 건 맞는데,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는지까지는 모르겠어요. 주변을 보니 우리를 돕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어요. 여성 구급대원 한 명과 눈이 마주쳤어요. 그가 “숨 쉴 수 있어요?”라고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어서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렸어요. 그가 저를 끌어당겼어요. 인파에서 빠져나왔을 때 다리에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땅바닥에 쓰러졌어요. 잠시 누워 있었는데, 놀랍게도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어요.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걷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어요.

골목을 빠져나와서 아마 20~30m 정도 걸었을 거예요. 보이는 술집 입구에 빈 의자가 있어 앉아서 쉬고 싶었어요. 그런데 직원들이 못 앉게 했어요. 그래서 술집 밖에 있는 간판 뒤에 숨어 벽에 몸을 기댔어요. 주변을 둘러봤어요. 사람들이 파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근처에서 벌어진 대참사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어요.

로네 옐메씨가 2022년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6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로 다쳐 병원에 입원한 모습. 로네 옐메 제공

로네 옐메씨가 2022년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6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로 다쳐 병원에 입원한 모습. 로네 옐메 제공


PTSD, 불안장애, 공황발작… 그럼에도 남은 건

이태원역까지 걸어갔어요. 포장도로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이 시행되고 있었어요. 지하철이 다니지 않아서 버스정류장에 갔지만 도착한 버스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어요. 택시를 탈 수도 없었어요. 어떻게 귀가할지 막막했고 무서웠어요. 그때 제가 과호흡을 하고 있자 외국인 여자애 몇 명이 와서 절 도와줬어요. 덕분에 당시 남자친구 부모와 통화했고, 그분들이 저를 데리러 오셨어요. 저를 차에 태운 다음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한 병원으로 같이 갔어요.

참사로 인해 팔 근섬유가 괴사했고, 요골신경이 손상됐어요. 횡문근융해증(외상, 수술, 무리한 운동, 과도한 체온 상승 등의 이유로 근육이 손상되고 이로 인해 생긴 독성물질이 순환계로 유입되는 질환)도 발생했어요. 나중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 불안장애 진단도 받았고요. 몇 개월 동안 공황발작에 시달렸어요. 2023년 8월부터 8개월간 트라우마 치료를 받았고,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 따라 지금도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어요. 친구들이 세상을 떠난 참사 발생일이 매년 다가올 때마다 힘들고, 참사 기억 때문에 지금도 잠을 못 자는 날들이 있어요.

그래도 전보다 걱정은 덜해요. 삶을 보는 새로운 시각도 얻었어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삶에서 내가 괴로워할 만한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달까요. 돈 문제가 예전처럼 절 괴롭히지 않아요. 이건 긍정적인 일이에요. 전 남자친구 어머니가 저를 여러 방면에서 도와주셨어요. 친딸처럼 돌봐주시면서 저와 함께 울고, 웃고, 제 머리를 빗겨주시고, 머리를 땋아주시고, 제가 함께 가달라고 요청한 약속 장소에 모두 동행해주셨어요. 제 수호천사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로네 옐메씨가 2023년 6월9일 한복을 입고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로네 옐메 제공

로네 옐메씨가 2023년 6월9일 한복을 입고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로네 옐메 제공


“예방할 수 있었어요, 희생될 필요 없었어요”

2025년 7, 8월에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스티네와 인홍이 사망한 사건의 주요 증인으로서 증언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전자우편이었어요. 참사 피해 생존자도 특조위에 사실조사 신청 자격이 있음을 알리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어요. 스티네 유가족에게 직접 증언을 듣기 위해 9월 중하순 노르웨이로 출장을 가는데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런데 그땐 제가 동생이랑 워킹홀리데이(관광취업)로 일본에 있을 때라 노르웨이에서 만날 수 없다고 답을 했는데, 저는 특조위 조사에 참여하길 원하고 있어요. 특조위에 다시 연락할 생각입니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참사에 관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수집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엇이 참사 원인이었는지 논의할 수 없다면 참사를 예방할 수 없어요. 진상규명은 희생자, 유가족, 피해자에게만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의 일이에요.

저는 곧 한국으로 돌아갈 겁니다. 한국 생활이 정말 좋았거든요. 제 수호천사가 살고, 대중교통은 제 고향(노르웨이 베르겐)보다 1천 배 더 편리하고, 음식값도 저렴해요. 특히 서울은 올빼미족에게 완벽한 도시예요.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어요. 당장은 여행만 할 생각이지만, 나중엔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도 있어요.

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제 친구들이 희생될 필요는 전혀 없었어요.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안타까워요. 아무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아야 해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면서도, 이 참사를 절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리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1. 두 사람은 이태원 참사 때 희생됐다.

2.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왼쪽 ‘티(T)’자형 골목(이태원동 119-6)을 말한다.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