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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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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젠갱’은 조직 아닌 네트워크, 천즈 잡아도 범죄 근절 어려워”

동남아 전문가 김종호 교수 “특정 국가 낙인찍기 안 돼… 미·중 포함 표준화한 국제공조를”
등록 2025-10-23 21:26 수정 2025-10-24 16:08
캄보디아에 구금돼 있던 한국인 64명이 2025년 10월18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등 국제 범죄조직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캄보디아에 구금돼 있던 한국인 64명이 2025년 10월18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등 국제 범죄조직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캄보디아 한국인 집단 감금·납치의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그룹’을 향한 국제적 수사가 시작됐다. 미국 법무부는 프린스그룹 회장 천즈(38)를 2025년 10월14일 온라인 금융사기·자금세탁 등 혐의로 기소했다. 또 그가 보유한 비트코인 12만7271개(약 150억달러, 약 21조원)를 압류하고, 몰수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영국 역시 프린스그룹 소유의 리조트와 천즈의 자산을 동결했다. 이 때문에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에서 입지가 급격히 좁아지고 있다. 캄보디아데일리 등의 보도를 보면, 천즈는 최근 돌연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걸로 끝일까. 동남아시아 지역 화교 등을 연구해온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는 이게 끝이 아니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국계 조직이 동남아시아에서 국가와 지역을 옮겨가며 끊임없이 범죄를 이어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이 “느슨한 점조직”인 까닭이다. 김 교수는 이들의 범죄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표준화한 국제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10월21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의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삼합회와 달리 점조직화된 범죄

 

김 교수는 동남아 국가에서 벌어지는 온라인 스캠(사기)·납치 등의 배후로 ‘푸젠갱 네트워크’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푸젠갱 네트워크는 중국 푸젠성 출신으로 알려진 인물들이 이끄는 범죄 네트워크다. 이들은 푸젠성 지역에서 사기 수법으로 범죄조직을 설립한 뒤 중국 전역과 동남아로 세를 확장했다.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가 2025년 10월21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중국계 ‘푸젠갱’ 네트워크 범죄조직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가 2025년 10월21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중국계 ‘푸젠갱’ 네트워크 범죄조직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프린스그룹 회장 천즈도 푸젠성 출신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푸젠’이 ‘브랜드’가 된 것 같다”며 “이제는 설사 푸젠 출신이 아니더라도 카르텔에 끼기 위해 ‘푸젠에서 왔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푸젠갱 네트워크는 이제 단순히 출신에 대한 지역적 의미를 넘어 진화된 중국계 범죄조직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들은 인신매매·납치·감금·불법도박 등을 벌이는데 그 도구로 온라인 스캠을 활용한다. 온라인 스캠은 인터넷이나 디지털 환경에서 상대방을 속여 금전 또는 가치 있는 정보를 편취하거나 자산에 부정하게 접근하는 사기 범죄를 일컫는다. 이런 이유로 조직은 ‘모듈’형으로 여러 나라에 뻗어 나갔다. 김 교수는 “처음에 중국에 맞는 모델이었다가, (사기에 쓰이는 언어를) 바꾸면 한국·일본·베트남으로 끼워 맞출 수 있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푸젠갱 네트워크는 ‘삼합회’와는 구분된다. 그는 “삼합회 등의 경우 정확한 두목이 있고 행동대장이 있다. 온라인 스캠을 하는 조직은 특별한 중심이 없고 네트워크화돼 있다”고 했다.

최근 프린스그룹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네트워크식 범죄조직의 뿌리를 뽑는 일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삼합회 등은 두목을 잡으면 그 조직이 와해되는 경우가 많아요. 네트워크 조직은 누굴 잡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프린스그룹도 천즈 회장을 위계적으로 똘똘 둘러싼 것 같지만, 천즈가 큰 점이라 보이는 것일 뿐이죠. 무수히 많은 작은 점이 네트워크화돼 있어요. 천즈는 사라져도 네트워크는 분산돼 흩어져서 남아요.”

 

천문학적 자금력, 싱가포르까지 영향력

 

온라인 스캠 범죄가 발생하는 범죄 단지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보고서 갈무리

온라인 스캠 범죄가 발생하는 범죄 단지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보고서 갈무리


최근 두각을 드러낸 중국계 범죄조직들의 특징은 또 있다. 압도적 자금력이다. 프린스그룹의 자산은 수십조원대로 추산된다. 한국에도 912억원을 한국 시중은행에 예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별로 예치된 자산을 합치면 수십조~수백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전 범죄조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규모다.

김 교수는 이런 막대한 부가 축적된 결정적 이유를 ‘암호화폐’ 덕분이라고 본다. 그는 “범죄조직이 불법으로 돈을 버는 건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마약 밀매, 인신매매로 모인 자금을 양지화하는 게 제일 문제다”라며 “암호화폐의 가장 좋은 점은 100억원을 벌면 100억원 그대로 암호화폐에 넣을 수 있고 수수료도 적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이 동결 조처한 천즈의 코인 자산만 21조원 수준인 것도 이런 맥락이다.

김 교수는 “암호화폐로 일차적으로 양지화된 자산은 글로벌 금융 허브 지역들을 중심으로 2차, 3차에 걸쳐 세탁된다”고 했다. 대표적 사례가 2023년 밝혀진 싱가포르 대규모 자금세탁 사건이다. 푸젠갱 네트워크 등 중국계 범죄조직이 30억싱가포르달러(약 3조3천억원)를 싱가포르에서 세탁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계 범죄조직 출신 주범 10명이 이로 인해 기소됐다. 이 가운데 9명이 캄보디아 여권을 소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일부는 수감됐다가 형기가 만료된 뒤 캄보디아로 추방됐다.

범죄조직은 이렇게 축적한 범죄수익으로 정부 고위층을 움직이고, 이들의 비호 아래 범죄를 확장하는 공생관계로 이어진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필리핀의 촉망받던 정치인 앨리스 궈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자신이 시장이던 타를라크주 밤반시에 역외게임사업자(POGO) 제도를 통해 온라인 도박장을 유치했다. 그는 이후 이 사업을 진행한 중국계 범죄조직의 자금세탁을 도운 혐의 등으로 2024년 기소됐다. 앞서 싱가포르 자금세탁 사건에서도, 싱가포르 장관급 인사가 사건의 주범과 같이 찍은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어느 지역도 수조원대의 자산을 가진 범죄조직은 단순 범죄조직이 아니에요. 부패에 안전한 것으로 보이는 선진국도 관료나 정치인이 (유착의) 유혹에서 버틸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 유인이 쉬운 동남아가 거점으로

 

그렇다면 중국계 범죄조직이 동남아시아에 자리 잡은 이유는 뭘까. 김 교수는 우선 중국계 범죄조직이 중국인이 많이 진출한 동남아 자유경제구역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범죄를 시작했던 영향이 있다고 본다. 그는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때 중국계 노동자들이 가서 도시를 지었다. 주로 자유경제구역에 범죄조직들이 들어간다”며 “2010년대 이전만 해도 동남아 국가에 있는 중국인들이 (온라인 스캠 등의) 범죄 대상이었다”고 했다.

사기 수법도 영향을 줬다. 이들이 벌이는 온라인 스캠을 두고 김 교수는 “같은 문화권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언어 노동에 가깝다”고 했다. 전화나 채팅도 직접 사람이 대화하면서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언어를 쓰는 범죄조직 가담자가 있어야 피해자를 유인할 수 있다.

지리적 여건의 영향도 크다. “캄보디아나 동남아 국가로 오라고 할 때 비행기표와 호텔을 제공하며 유혹한다. 동남아가 범죄자 입장에서 비용 부담이 없다. 사람들을 쉽게 데려올 수 있어야 하기에 동남아만큼 최적의 땅은 없다.” 김 교수는 “이런 사기 수법을 쓰는 한, 당장 범죄가 동남아를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범죄조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공조가 필수라고 본다. 먼저 필요한 건 국가별 대응 프로토콜(소통을 위한 약속)을 정비하는 일이다. “국가마다 범죄 단속 제도, 법, 관행이 다 다르다. 네트워크형 사기 범죄에 대응할 때는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납치돼 구출하고 싶은데, 그 나라 프로토콜이 달라 절차가 한 달 걸린다고 하면 곤란하다. 최소한 인신매매된 사람들이라도 구출할 수 있는 표준화된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국제공조에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는 일도 중요하다. 김 교수는 “온라인 사기 범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암호화폐가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다.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국도 중요하다. 그나마 동남아 현지 정부와 연계해서 대대적 범죄조직 단속을 한 경험은 중국 정도밖에 없다”며 “이 작업을 2010년대부터 해왔으니까 노하우가 많다. (범죄조직도) 자국 출신들이기에 그들과 언어적 소통을 하고 (범죄) 수법을 잘 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국제 정세상 미국과 중국이 공조하기는 쉽지 않다. 김 교수는 이 때문에 한국이 가교 구실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공조하는 채널을 만들어놓고, 이를 통해 필요할 때 중국이나 미국이 개입하도록 해야 한다.”

 

동아시아 청년들이 표적 된 이유는?

김 교수는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청년들이 온라인 스캠 범죄의 주요 표적이 되는 이유도 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이 또한 국제공조의 일환이 될 수 있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 가운데 소득이 높은 국가의 청년이 표적이에요. 이 나라들 청년이 맞이한 사회적 모순이 비슷해요.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습니다. 동아시아 청년들이 왜 물에 빠졌을까를 생각해봐야 해요.”

그는 사건 대응이 캄보디아와 중국 등 특정 지역과 국가에 대한 ‘낙인찍기’ 방식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봤다. “특정 국가나 지역의 문화적 배경을 악마화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돼요. 이 범죄의 특징은 국경을 초월하고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니까요. 최소한 실무적으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가지고 대응해야 합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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