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왜 세금을 거두죠?”
한은이가 묻는다. 엄마가 대답한다. “나라가 살림을 하는 데 필요한 돈을 국민이 내는 거란다.”
이어 선생님이 말한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원칙적으로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정부는 ‘우리나라 국민은 모두 한 사람에 30만원씩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식으로 똑같은 금액을 세금으로 부과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사람들이 버는 소득이나 가진 재산에 대하여 그 일부를 세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득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은 적은 사람보다 세금을 많이 내게 됩니다.
한국은행이 초등학생 교육용으로 제작한 유튜브 애니메이션 영상 속 인물들 대사다. 어린이들에게 ‘조세정의’를 설명하고 있다. 개인이 얻은 소득이나 보유한 재산에 따라 합당하게 세금을 부과해 조세 부담이 국민 사이에 공평하게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미래세대인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는 이 과세 원칙에 따라, 그동안 비과세 대상이었던 금융투자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도입됐다.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에 투자해 얻은 이익, 즉 수익과 손실을 합친 뒤 남은 순이익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부과만 하지 않는다. 세금을 깎아주기 위한 공제 혜택이 있다. 국내 상장주식과 공모펀드(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 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아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 양도, 상환, 환매 등으로 번 소득에서 5천만원을 공제한다. 국외 주식과 사모펀드(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비공개로 자금을 모음) 거래에서 발생한 소득에서는 250만원을 공제한다. 또 투자 손실이 이익보다 커서 생긴 금융투자 결손금(번 돈보다 쓴 돈이 많아 생긴 적자)은 향후 5년간 소득에서 공제한다.
이를 기반으로 공제액을 초과하는 금융투자소득에 20% 세율을 적용하고, 공제 후 남은 금융투자소득이 3억원을 넘으면 25% 세율(이상 지방소득세 세율 제외)을 적용하도록 설계됐다.
2020년 6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안을 시작으로, 2020년 12월 당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인 국민의힘과 함께 금투세를 신설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했다. 2023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2022년 12월 여야가 주식시장 침체를 이유로 금투세 도입을 2년 유예(2025년 1월)했다. 여야가 뒷걸음질할 만큼 금투세 도입 반대 목소리가 컸다. 지금도 저항이 크다. 주된 반대 논리는 다음과 같다. 금투세를 부과하면 주식시장 큰손(고액 투자자)이 떠나 주가가 하락하고 소액 투자를 하는 개인 투자자, 일명 개미투자자가 큰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식시장 공포를 조장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금투세는 (장내거래에 한해 말하자면) 5천만원이 넘는 투자소득에 모두 부과된다. 그런데 최근 3년(2019~2021년) 기준 연간 금융투자소득이 5천만원 이상인 투자자는 전체의 0.9%(6만7281명)다. 금투세 폐지 수혜 대상이 개미투자자가 아니라 극소수의 고소득층이라는 뜻이다.
큰손이 떠날 것이라는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상장주식 양도로 발생한 소득에 부과하는 양도소득세는 ‘대주주’를 대상으로 한다. 주식 종목당 50억원 이상을 보유한 사람이다. 반면 금투세는 금융투자로 이익을 본 사람에게 모두 부과하기 때문에 소액주주뿐만 아니라 대주주도 과세 대상이다. 이러면 대주주 기준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현재도 큰손들은 양도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어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새로운 세금이 시행되는 것은 아니며, 기본 공제금액이 5천만원인 금융투자소득세가 시행된다면 (큰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세 부담은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 김현동 배재대 교수(경영학)가 2024년 10월2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금투세 ‘논란·공포·괴담’ 속 진실과 거짓 팩트체크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금투세 도입으로 얻을 수 있는 세수 효과는 크다. 2024년 1월 공개된 국회예산정책처 추계 자료는 금투세가 2025년부터 시행되면 2027년까지 3년간 세수가 4조328억원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 기획재정부가 2022년 11월 추산한 금투세 과세 대상자(상장주식 기준)는 연간 15만 명으로, 기재부는 금투세를 걷으면 연간 1조5천억원의 세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식 외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기타 금융상품 투자자를 합하면 실제 과세 인원과 세수는 더욱 많아진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은 금투세 폐지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부터 ‘금투세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월17일 “금투세 폐지를 정부 정책으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정부는 2024년 7월25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세법개정안)을 통해 금투세 폐지 방침을 재차 밝혔다.
당시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친명 인사인 박찬대 원내대표를 보좌하는 노종면 원내대변인을 통해 “이번 세제개편안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을 해치고 있다”며 금투세 폐지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조세정의를 구현하고 성실 납세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한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여 세금 탈루와 탈세를 막는다.’ 민주당 강령이다.
그런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위 강령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의 금투세 폐지에 동의했다.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금투세를) 강행하는 것이 맞겠습니다만, 지금 현재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또 여기에 투자하고 주식시장에 기대고 있는 1500만 (명의) 주식 투자자들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2024년 11월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공개 발언이다.
국회의원 300명 중 민주당 의원이 과반인 170명이다. 정부와 여당이 금투세를 폐지하는 소득세법 개정을 하고 싶어도 국민의힘 의석수(108명)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민주당이 정부·여당을 돕겠다고 나섰다.
금투세 도입을 촉구한 시민사회단체 진영과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혁신당의 황운하 원내대표는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로 세수 경보가 울리고, 증권거래세도 폐지되는 마당에 금투세까지 폐지하면 이재명 대표의 대표 철학인 기본소득 정책은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며, 13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민생회복지원금은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가”라며 “금투세 폐지는 깊은 고민 없이 눈앞의 표만 바라본 결정”이라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등은 공동성명을 내어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내내 ‘부자 감세’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조세정책을 집권여당과 같은 선택을 했다”며 “국회 합의를 무시하고 정책의 신뢰를 훼손한 민주당이 주식시장이 좋아진다고 해서 금투세 재도입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규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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