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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0 목소리’ 그는 누구인가

국방부 압력-해병대 간접거부-박 대령 이첩 강행 둘러싼 나흘간의 진실
등록 2024-09-27 22:12 수정 2024-09-28 16:37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오른쪽부터),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비서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2024년 6월21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를 듣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오른쪽부터),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비서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2024년 6월21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를 듣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현 시간부로 보직해임이다. 앞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2023년 8월2일 낮 12시45분쯤, 고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수사기록을 경찰에 이첩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때다. 2시간 뒤 박정훈의 사무실로 인사처장이 찾아왔다. “국방부로부터 지시가 있었고 보직해임이 맞다”고 말했다. 뒤따라 들어온 김계환은 이렇게 말했다. “너로 인해 많은 사람이 살게 되었다.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 박정훈은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보직해임으로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후 박정훈은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년 동안 재판을 받고 있다.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사령관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수사받는 도중 방송에 나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다. 한겨레21은 2024년 9월26일 고 채수근 해병의 전역 예정일을 맞아 지난 1년 동안 이뤄진 박정훈 대령 공판과 군검찰의 수사기록 등을 입수해 해병대 수사단이 이종섭 장관에게 수사결과를 보고한 2023년 7월30일부터 수사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8월2일까지를 재구성해봤다.

7월30일: 수사결과 첫 보고… 국방장관의 결재

 

2023년 7월30일 오후 4시30분, 서울 국방부 장관 집무실에 이종섭 장관과 전하규 대변인, 허태근 정책실장, 박진희 군사보좌관, 해병대 김계환 사령관, 박정훈 수사단장, 이윤세 정훈공보실장이 모였다. ‘해병대 1사단 고 상병 채수근 사망원인 수사 및 사건처리 관련 보고'를 위한 자리였다. 보고서 첫 장엔 ‘사단장 등 관계자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관할 경찰에 이관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고는 순조로웠다. 이종섭은 결재란에 서명했다.

여기까지는 참여자 대부분이 사실관계를 인정한다. 그러나 나중에 공방이 벌어진 부분이 있다. 이 자리에서 이종섭이 ‘사단장도 처벌받아야 하느냐'고 물었는지 여부다. 박정훈은 장관이 이렇게 이야기했고, 김계환이 “수사결과 사단장의 과실이 확인되었고 수사권이 있는 경찰에 넘겨 수사하여야 한다”고 답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이윤세를 제외한 다른 참여자 전원은 재판 과정에서 이런 기억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후 김계환이 이종섭과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김계환은 임성근 사단장 관련 인사 조처에 관한 얘기를 했다. 이때 박정훈과 이윤세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박진희가 다가왔다. 그는 박정훈에게 와 장관 보고서 1부를 달라고 요구했다. 박정훈은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했다. 때마침 나온 사령관과 함께 박정훈은 해병대 사령부로 복귀했다. 다만 보고서 요구는 끝난 게 아니었다.

김계환은 복귀 도중에 박진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오늘 보고드린 내용은 안보실에도 보고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직후 두 차례 대통령 안보실에 파견된 해병 대령 김형래와 통화했다. 이후 박정훈에게 김형래와의 통화 사실을 전했다. “안보실장이 궁금해하신다며 수사결과를 보내달라고 한다. 수사 보고서를 보낼 수 없으면 언론브리핑 자료라도 보내달라고 한다.”

박정훈은 수사단에 언론브리핑 자료를 안보실에 보내도록 했다. 안보실이 집요하게 보고서를 원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모든 게 뒤바뀐 건 다음날 점심 무렵이었다.

 

7월31일: ‘02-800-7070’ 전화 뒤 브리핑 취소 명령

 

7월31일, 박정훈과 이윤세는 국방부로,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과 1광역수사대장은 국회로 향했다. 국방부에서 채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 결과 발표 브리핑이 예정돼 있었다. 김계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건 점심때쯤이었다. “계획된 언론브리핑과 국회 설명 모두 취소됐다. 사령부로 즉시 복귀하라.”

박정훈이 김계환의 전화를 받기 불과 8분 전, 모든 것의 시작이 된 전화가 이종섭에게 걸려왔다. ‘02-800-7070'이라고 찍힌 전화를 받고 약 3분 동안 통화한 이종섭은 곧바로 박진희의 휴대전화로 김계환에게 전화를 걸어 브리핑을 취소하라고 말했다.

박진희와 이종섭의 진술과 법정 증언을 종합하면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전날 보고를 받은 이종섭은 초급간부에 대한 수사결과가 마음에 걸렸고, 이를 고민했다. 박진희도 7월31일 이른 아침부터 군사보좌관실 법무관과 이야기를 나눴고, 이를 토대로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이종섭에게 이첩 보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종섭은 이후 이첩 보류를 지시해야겠다고 하던 차에, 우연히 ‘7070'으로 전화가 왔고 그 전화와 관계없이 지시하려던 바를 김계환에게 했다고 주장한다.

박진희는 ‘7070'으로 걸려온 전화가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이종섭은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박정훈 쪽은 대통령이 ‘02-800-7070'을 이용해 이종섭에게 전화했는지, 했다면 어떤 말을 했는지 사실조회를 신청했지만 대통령실은 2024년 9월24일 “사실조회를 의뢰한 사항들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으로 응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다시 2023년으로 돌아와 7월31일 오후, 언론브리핑이 취소된 박정훈은 영문도 모른 채 사령부로 돌아왔다. 국회에 있던 정종범이 국방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가 끝난 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처음 전화를 받게 된다.

 

“경찰에 이첩하는 사건 서류 보내주세요.”

“사건 서류 전체를 말하는 것인가요.”

“표지에 있는 사건인계서만 국방 메일로 보내주세요. 혐의자와 혐의내용, 업무상 과실치사혐의라는 죄명도 빼주세요.”

“이미 수사결과를 유가족들에게 설명했고 사단장 등 8명이 과실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수사 주체인 경찰에게 그대로 인계하는 것이 맞습니다.”

—박정훈 진술서 토대로 재구성

 

유재은은 당시 ‘법적인 부분은 수사단장에게 직접 설명하라'는 이종섭의 지시를 듣고 박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박정훈과 유재은 사이의 통화 내역은 녹음되지 않았다. 유재은은 재판에서 “이첩 방법에는 꼭 한 가지가 아니고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박정훈과 유재은의 통화를 전해 들은 중앙수사대장 박세진 중령과 수사지도관 최아무개 준위 등은 사단장과 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는 취지로 이해했다고 증언했다.

이 통화 직후인 오후 4시 사령부에서 회의가 열렸다. 국방부 회의에 참여한 정종범이 장관의 지시를 전달했다. 이첩을 보류하고 수사결과 죄명과 혐의자 및 혐의내용 등을 빼라는 내용이었다. 박정훈은 다시 한번 혐의내용이나 혐의자를 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계환은 유재은과 박정훈이 조율할 시간을 주고 회의를 마쳤다. 그런데 회의를 마치고 내려온 박정훈을 김계환이 다시 집무실로 불렀다. 오후 5시쯤이었다.

 

2024년 9월26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내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묘역에서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묘비 위에 전역 모자를 올려놓고 채 상병을 추모하고 있다. 이날 고 채 상병 동기들은 전역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24년 9월26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내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묘역에서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묘비 위에 전역 모자를 올려놓고 채 상병을 추모하고 있다. 이날 고 채 상병 동기들은 전역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7월31일 오후: ‘VIP 격노설’ 발생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 것입니까?”

“오늘 오전 대통령실에서 브이아이피(VIP) 주재 회의가 있었다. 회의 간 국방비서관이 해병 1사단 수사결과에 대해 보고하자 VIP가 격노하면서 바로 국방부 장관 연결하라고 했고,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고 했다. 국방 관련해 대통령이 이번보다 격노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정말 VIP가 맞습니까?”

김계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박정훈 진술서 토대로 재구성

 

박정훈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이번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관련자들의 진술이 첨예하게 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정훈과 독대를 하기 직전인 오후 5시, 김계환은 국방비서관 임기훈과 통화한다. 이 통화에서 격노설이 언급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당사자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임기훈은 국회에서 7월31일 김계환과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김계환은 격노설 전달에 관해 재판에서 “그런 사실 없다”고 증언했다.

당시 김계환과 박정훈 사이의 녹취파일은 없지만 이후 박정훈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있다. 박정훈은 이 이야기를 듣고 나와 곧바로 박세진과 최 준위에게 전했다. 박세진은 검찰 진술 당시 이렇게 말했다.

“내려온 시간이 오후 4~5시 정도였던 거 같은데 수사단장(박정훈)이 사령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달해줬다. 단장은 ‘대통령이 회의를 하다가 안보실로부터 연락을 받고 장관에게 연락해봐라고 해서, 대통령이 장관에게 이런 일로 사단장이 처벌을 받으면 사단장 누구 하냐'라는 말을 했다더라고 이야기를 했고….”

최 준위의 진술도 비슷했다.

박정훈과 박세진 등은 곧바로 ‘고 상병 채수근 익사사건의 관계자 변경시 예상되는 문제점 문건'을 만들었다. 문건에는 ‘수사과정에서 상급 제대 의견에 의한 관계자 변경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해당' ‘언론 등 노출될 경우 비에이치(BH) 및 국방부는 정치적·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함'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박정훈은 이 문건을 들고 다시 김계환을 찾아가 보고했다. 이 대응 문건을 만든 것 자체가 ‘대통령의 격노’를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정훈의 주장이다.

 

8월1일: 유재은은 박정훈에게 혐의자 적시를 압박했나

 

8월1일, 박정훈은 유재은에게 사건인계서와 사건기록목록을 보냈다. 이후 사령관의 연락을 받고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유재은에게 전화가 왔다. 오전 9시43분쯤이었다. 사령관이 있는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박정훈은 당시 대화를 이렇게 기억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혐의자와 혐의내용을 빼라고 하지 않았느냐. 업무상과실치사 죄명도 빼야 한다. 혐의자 적시를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라.”(유재은)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직접 물에 들어가라고 한 대대장 이하를 말하는 것이냐.”(박정훈)

“그렇다.”(유재은)

유재은은 재판에서 이와 관련해 “군사법원법상의 이첩방법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드렸다”고 진술했다. 직접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라고 말한 부분이나 이후 박정훈이 ‘대대장 이하를 말하는 것이냐’고 물은 것에 ‘그렇다'고 답한 부분에 대해선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정훈은 유재은과의 통화 내용을 박세진, 최 준위와 공유했다. 8월1일 오후 통화부터는 아예 스피커폰으로 했다. 이 역시 녹음되지 않았지만 함께 들었던 해병대원들의 진술은 남았다.

“8월31일 오후 수사단장(박정훈)이 법무관리관(유재은)과 통화했는데 법무관리관이 ‘직접적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만 한정해서 혐의자를 특정하는 것이 좋을 거 것 같다. 이첩서류에 혐의자, 혐의내용을 빼고 이첩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는 등의 말을 하여 혐의자 특정 범위와 이첩서류 관련해 다소 언성을 높이며 언쟁을 하였고….” —박세진의 군검찰 진술

2024년 9월25일 8차 공판에 나온 박세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혐의자를 다 빼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박정훈 단장은 ‘사건인계서는 보고 이야기하는 거냐, 어떤 식으로 작성되는지 알고는 이야기하는 거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통화 이후에 (인계서를) 보내달라고 해서 보냈습니다.” 최 준위도 군검찰 진술조서에서 비슷한 취지로 진술했다.

김계환도 부지런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특히 박진희와 8월1일 아침부터 텔레그램을 이용해 연락했는데, 계속 고민한 흔적이 남았다. 오전 10시17분, 박진희가 김계환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사령관님! 경찰과 유족 측에 언제쯤 수사결과를 이첩한다고 했는지요? 조만간 이첩은 어려워 보여서요.”(박진희)

“계획된 것은 내일 오전 10시입니다. 법무관리관실과 이야기하여 국방부 지침 받을게요. 조만간 이첩이 어렵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이 됩니다.”(김계환)

김계환은 전날 박정훈이 보고한 ‘고 상병 채수근 익사사건의 관계자 변경시 예상되는 문제점 문건' 내용을 박진희에게도 전한다. “참고적으로 1. 상급 제대 의견에 대한 관련자 변경시 ‘직권남용권리방해'에 해당되고 2. 유족의 여론도 악화될 가능성(의혹 제기 가능성 등) 3. 야당은 당연히 쟁점화하여 불신 조장 4. 경찰 수사에서 혐의자 추가, 제외 될 수도 있는데….”

이는 전날 박정훈이 보고한 ‘고 상병 채수근 익사사건의 관계자 변경시 예상되는 문제점' 문건을 그대로 설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진희는 이렇게 답했다.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주십시오.” 노골적으로 일부 인원은 빼달라는 이야기였다. 김계환은 “지금 단계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나중에 피의자 신분이 안 되었을 때 그다음에 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경찰 조사 이후입니다. 오후에 심층 토의하고 문자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오후 2시, 사령부 회의에서 박정훈은 국방부 조사본부로의 이관을 건의했다. 김계환은 박진희에게 조사본부 이관을 건의했는데, 3시53분 이런 답이 돌아왔다. “사령관님 ㅈㄱ(장관)님께서는 수사라는 용어를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수사권이 없기에 수사가 아닌 조사라고 하셨고, 조사본부로 이첩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8월1일 혼란의 회의를 거친 뒤 김계환과 박정훈, 이윤세 등은 함께 저녁에 술을 마신다. 이 자리에서도 이첩 관련 이야기는 계속 오갔다.

 

8월2일: 수사결과 이첩, 그리고 회수

 

8월2일 아침 일찍 박정훈은 1광수대장 등에게 이첩을 위한 출발을 지시했다. 안동에 있는 경북경찰청으로 부하들을 먼저 보낸 뒤인 오전 10시 사령관 집무실에서 김계환에게 이첩이 진행 중이라고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김계환은 명시적으로 중지하라는 말이 없었고, 책임지겠다는 자신의 말에 “알겠다”고만 했다고 박정훈은 기억했다. 김계환도 박정훈의 보고를 듣고 “나가라”고만 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김계환은 10시51분 박정훈에게 전화해 “이첩을 멈추라”고 했다. 박정훈은 일단 경북청으로 이동한 1광수대장 등에게 연락을 시도해봤지만, 이들은 이첩을 진행 중이었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같은 날 11시13분, 김계환이 이종섭에게 이첩 사실을 보고한 이후 다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당시 통화기록을 보면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조태용 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고, 다시 조태용이 이종섭과 통화한다. 이후 12시7분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과 세 차례 통화했다. 이즈음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등장한다. 임기훈과 통화한 이시원은 유재은과 통화하고 유재은은 경북청과도 통화한다. 이런 수십 차례의 통화와 움직임 끝에 국방부 검찰단은 오후 7시20분쯤 경북청에서 사건 기록을 회수했다. 이첩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이렇게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첫 시도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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