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에어컨을 설치하다 숨진 27살 노동자 양준혁씨의 죽음에 대해 삼성전자가 유족을 만나 뒤늦게 사과했다. 사고 발생 29일 만이다.
오치오 삼성전자 한국총괄 부사장은 2024년 9월11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설치된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오 부사장은 “이유를 불문하고 상처를 드려 죄송하다. (관계기관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사고 원인을 조사한 뒤 폭염 대책 등 재발방지책을 세우겠다”고 준혁씨 어머니에게 머리 숙였다. 준혁씨 어머니는 “재발 방지 대책을 잘 세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준혁씨는 앞서 8월13일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업소용 에어컨 설치 공사를 하다 온열질환 증세를 호소했다. 사고 당일 낮 최고기온이 34도에 달했고 실내 선풍기는 두 대 뿐이었다. 오후 4시40분께 준혁씨가 이상반응을 보이며 밖으로 뛰쳐나가 화단에 쓰러졌으나 하청업체는 119를 부르는 등 구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쓰러진 준혁씨 사진을 유가족에게 보내 “평소에 (준혁씨에게) 정신질환이 있었느냐. 데려가라”고 말했다. 회사 쪽이 뒤늦게 119에 신고한 건 준혁씨가 이상반응을 보인 지 1시간 가까이 지난 5시28분. 준혁씨는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건 전말을 알게 된 준혁씨 어머니가 8월19일 장례를 미루고 기자회견을 열어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건이 알려졌다.
에어컨 제조사가 마구잡이로 외주화한 노동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삼성전자가 제품 설치를 조건부로 고객들에게 에어컨을 팔면서도 정작 설치 노동자를 직고용하는 대신 하청 노동자를 쓰는 탓이다. 삼성전자는 상품을 팔 때마다 소위 ‘전문점’이라 불리는 하청업체에 설치 노동 하청을 준다. 그 일감을 따내려고 지역별로 난립한 수백개 영세 업체가 낮은 가격으로 경쟁하는 구조다. 준혁씨가 근무한 기업도 전 직원이 5명에 불과한 회사였다. 준혁씨 는 입사한 첫날 안전교육도 없이 12시간 일했다. “주머니에 넣어둔 담배가 다 젖을 정도”로 더웠으나 냉각모자를 지급해 달라는 요청은 거절당했다.(관련 기사: ‘땡볕 죽음’ 뒤엔 에어컨 설치 떠넘기기가 있다 )
계약서상 에어컨 설치의 책임 주체는 삼성전자다. 최근 김미경 전남도의원(정의당)이 확보한 준혁씨 사고 관련 삼성전자-광주지방조달청 간 계약 내용을 보면, 삼성전자는 8월20일까지 장성여중·남중에 ‘냉난방공조공사’를 비롯한 각종 에어컨 설치공사를 마치고 에어컨을 인도하기로 돼 있었다.(‘현장설치도’ 계약) 물품만 보내면 수요자가 알아서 설치하는 구조가 아니라, 에어컨 제조사가 설치 공사까지 책임지는 구조다. 손익찬 일과사람 변호사는 “해당 계약을 보면 삼성전자가 고객 현장에 에어컨 설치를 끝내야 계약이 마무리되는 구조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원청이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원청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의 노동자에 대해 재해를 예방할 책임이 있다.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지방노동청은 발주처와 원·하청의 법 적용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 중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물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성도 폭넓게 검토한다.
원청 삼성전자는 사고 발생 한 달이 다 되도록 침묵하다 시민사회 압박이 커지자 9월10일 피해자와 합의하며 공개 사과했다. 정의당과 금속노조, 김용균재단 등이 서울 삼성전자 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로 한 날이다. 국회도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를 중심으로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이 사안에 관심을 가졌다.
피해자 쪽 유족 대리인인 박영민 노무사는 “이번 합의가 있기까지 함께 아파하고 노력해 주신 수많은 국회의원들과 노동시민단체, 종교단체, 광주시민 여러분, 기자분들께 감사인사 드린다. 산업현장에서 모든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지 않는 세상, 안전한 대한민국 만드는 길에 유족들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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