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단독] 폭우 사망 쿠팡 카플렉서, 산재보상도 수사도 없어

똑같이 쿠팡 물건 배송하는데 퀵플렉서와 달리 법 적용 제외… 노동부 “쿠팡은 택배사업자 아냐”
등록 2024-08-14 17:17 수정 2024-08-14 18:26
2024년 7월9일 경북 경산시 진량읍 평사리 문천지에서 소방구조대가 폭우에 실종된 쿠팡 배달기사를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7월9일 경북 경산시 진량읍 평사리 문천지에서 소방구조대가 폭우에 실종된 쿠팡 배달기사를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경북 경산에서 택배 배달을 하다가 폭우로 인한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된 40대 여성 택배기사에 대해 한 달 넘도록 산업재해 보상도, 사업주에 대해 수사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희생자와 계약한 쿠팡이 법적 ‘택배 사업자’가 아니라는 이유다.

2024년 8월13일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이 노동부로부터 받은 답변자료를 보면, 노동부는 7월11일 쿠팡 물품을 배달하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40대 여성 쿠팡 배달기사 ㄱ씨에 대해 “산재·고용보험법상 노무제공자로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 대상자가 아니면 일하다 사망했어도 장의비와 유족급여를 못 받는다. ㄱ씨는 7월9일 새벽 5시10분께 야간배송 도중 물이 급격히 불어나 급류에 휩쓸렸다. 소방당국이 이틀에 걸친 수색 끝에 7월11일 ㄱ씨를 찾았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마켓컬리·쓱배송 기사는 특고 인정

 

노동부가 ㄱ씨를 법적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 까닭은 ‘쿠팡과의 직접계약’ 여부에 따른 것이다. 쿠팡은 자사 물품 배송 인력을 크게 둘로 나눈다. 정기 배송 인력은 쿠팡의 택배 전문 자회사(쿠팡CLS)와 계약한 ‘퀵플렉서’, 비정기 배송 인력은 쿠팡 본사와 계약하는 ‘카플렉서’다. ㄱ씨는 카플렉서였다. 노동부는 산재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이 퀵플렉서에만 적용되고, 카플렉서는 제외된다고 봤다. 퀵플렉서가 계약한 쿠팡CLS와 달리 카플렉서가 계약한 쿠팡 본사는 법적 택배사업자 자격이 없다는 이유다.

똑같이 쿠팡 물품을 배송하는 일인데 왜 택배기사가 계약한 상대방에 따라 법의 보호가 달라질까. 노동부가 만든 법 시행령에 답이 있다. 산재보상보험법 시행령 등은 노동자와 유사하게 일하는데도 근로기준법 보호를 못 받는 18개 직종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 이하 ‘특고’, 법문 표현은 ‘노무제공자’)로 봐 보호한다. 택배기사도 포함이다. 단, 조건이 있다. 택배기사가 ‘법적 택배사업자 자격을 가진 업체’ 소속이거나 ‘소화물을 집화·수송을 거쳐 배송하는 사업’에 종사해야 한다. 해당 문구에 비춰보면 쿠팡 본사는 택배사업자가 아닌 통신판매업자일 뿐이고, 따라서 쿠팡과 계약한 노동자도 ‘택배기사’로 볼 수 없다는 게 노동부 논리다.

반면 쿠팡과 유사 업무를 하는 마켓컬리나 신세계 ‘쓱배송’ 배송기사는 특고로 인정된다. 이들 업체가 직접 배달기사와 계약하지 않고 물류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한다는 이유다. 쿠팡 퀵플렉서도 택배사업자인 쿠팡CLS와 계약하기에 마켓컬리나 신세계 ‘쓱배송’과 같은 논리로 특고로 인정된다. 결국 업무의 실질과 관계없이 계약 형식이 법 문구와 얼마나 비슷한지만 따지겠단 뜻이다.

“지난 수년간 노동부가 특고 노동자의 명칭을 ‘노무제공자’로 바꾸고 인정 범위도 확대한 취지는 ‘일하는 사람 누구나 안전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계약 형식만으로 특고 자격에서 탈락시키는 것은 정책 취지에도 반하고 기업 꼼수도 허용하는 일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오래 연구한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말했다.

쿠팡도 현행법의 틈새를 잘 알았던 듯하다. 쿠팡이 사고 직후 정혜경 의원실 등에 제출한 설명자료를 보면 “카플렉스는 정해진 업무시간, 업무일이 없는 단순 위탁으로 전속적 계약 내지 근속 관계 등이 전혀 발생하지 않고 특고직에도 해당하지 않음”이라고 썼다.

노동당국 같은 논리로 수사도 하지 않아

권리의 부재는 보상의 부재로 이어진다. 원래 일하다 다친 노동자는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도 사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 사업장이 보호했어야 할 노동자(‘당연가입자’)임을 유가족이 입증하면 된다. 그러나 ㄱ씨처럼 특수고용직으로도 인정이 안 되는 노동자는 예외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산재 보상 대상이 아니다.

노동당국은 같은 논리로 ㄱ씨 죽음에 관한 수사도 안 했다. 통상 노동자가 사망하면 노동부는 그 죽음이 사업주의 법 위반과 관련 있는지 수사를 벌인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쓰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평상시 안전보건교육을 제공하고 각종 재해 예방 조처를 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이 역시 ‘카플렉서가 특고가 아니므로 사업주도 법적 의무가 없다’고 봤다. 즉 쿠팡 본사가 온라인 커머스 기업으로만 존재하는 이상, 카플렉서가 얼마나 많이 죽고 다치든 수사받지 않는다.

어떤 노동자를 특고로 볼지 시행령 문구에 일일이 열거·해석하는 방식으론 다양한 일자리 유형을 포괄하지 못한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상 특고 노동자로 인정되는 직종은 14종, 고용보험법은 17종, 산재보상보험법법은 18종이다. 법끼리도 보호 직종이 조금씩 다른 데다 보호한다는 직종도 소득 기준과 업무 방식이 세세하게 정해져 있어 이를 벗어나면 특고에서 ‘탈락’되는 구조다.

2021년 5월 화물에 맞아 숨진 화물기사 장창우씨 사고도 산업안전보건법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 당시 화물차주가 산재보상보험법 시행령은 적용받았으나,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적용 대상에서는 제외됐기 때문이다. 화물차주는 2021년 11월에야 산안법상 특고 노동자로도 인정됐다.

정혜경 의원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노무제공자로 주장하지 않으면 한 치도 움직이지 않는 고용노동부 관료들이 오늘의 사고를 만들었다”며 “노동부는 쿠팡의 카플렉스 노동자 편법고용과 고용·산재보험 미가입을 처벌하고 시행령의 미비점을 바로잡아 카플렉스 노동자도 노무제공자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이에 대해 “카플렉서의 노무 제공 형태와 산재·고용보험 적용방식 등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정혜경 의원실에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