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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위험성평가 3년 연속 우수? 노동자 참여 점수 ‘낙제’

2021~2023 위험성평가 우수 사업장 인정심사 결과서 보니
등록 2024-07-03 08:14 수정 2024-07-03 08:38
소방청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이 2024년 6월25일 공개한 경기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 공장의 화재 진행 상황이 담긴 내부 CCTV 화면. 10시30분03초께 배터리가 1차 폭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방청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이 2024년 6월25일 공개한 경기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 공장의 화재 진행 상황이 담긴 내부 CCTV 화면. 10시30분03초께 배터리가 1차 폭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화재 참사로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의 리튬 1차전지(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안전공단)의 위험성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 사업장으로 선정됐지만, 세부 평가 항목 가운데 노동자의 평가 참여 및 이해 수준에서 유독 저조한 점수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험성 평가가 노동자 참여 없이 형식적 수준에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2024년 7월2일 <한겨레21>이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안전공단의 아리셀에 대한 2021~2023년 3개년 위험성평가 결과보고서 내역을 보면, 위험성평가를 구성하는 4개 세부 평가 항목 가운데 ‘구성원의 참여 및 이해 수준’ 점수가 3년 평균 68점으로 가장 낮았다. 다른 평가 항목인 ‘사업주 관심도’는 3년 평균 82.6점, ‘위험성평가 실행수준’은 83.3점, ‘재해 발생 현황’은 100점이었다.

위험성 평가는 사업주가 사업장의 잠재적 유해·위험 요인을 미리 발굴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제도다. 위험성 평가를 체계적으로 실시한 사업장에 대해선 안전공단이 현장 심사를 거쳐 우수 사업장으로 인정도 한다. 아리셀은 2021년 처음으로 위험성평가 우수 사업장으로 인정된 뒤 2023년까지 자격을 유지해 산재보험료를 20% 감면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하면서 위험성 평가가 형식적으로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안전공단의 아리셀에 대한 2021~2023년 3개년 위험성 평가 결과보고서 세부 내역은 이런 의혹을 더욱 짙게 하는 근거가 된다. 보고서를 보면, 아리셀은 ‘사업주 관심도’와 ‘위험성 평가 실행수준’ 항목에서는 대체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사업주 관심도’ 항목에서는 3년 간 81점→92점→68점을 받았고, ‘위험성 평가 실행수준’ 항목에서는 3년 간 81점→92점→77점을 받았다. ‘사업주 관심도’와 관련해선 사업주가 관련 교육을 꾸준히 이수했고, 안전보건 관련 예산도 집행했다고 되어 있다. ‘위험성 평가 실행수준’에서는 위험성 평가가 필요한 공정의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는 작업을 했다고 적혀 있다. ‘재해 발생 현황’은 3년 동안 재해가 발생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100점을 받았다. 안전공단은 2021년 보고서에서 “위험기계  기구별 유해위험요인을 체크리스트 식으로 작성했다. 또 사업장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인 톨루엔 등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성 평가표도 작성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위험성 평가 참여권을 보장하는 ‘구성원의 참여 및 이해 수준’ 항목에선 3년 간 66점→72점→66점으로 꾸준히 저조한 점수를 기록했다. 게다가 구체적 문제점도 지적 받았다. 2021년에는 “ 위험성 평가 결과에 대한 교육으로 근로자들 이해는 높으나 직접적 유해위험발굴 참여도는 다소 떨어짐. 위험성 평가 회의에 근로자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람”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2022년에도 “위험성평가 활성화를 위한 근로자 참여제도(유해위험요인, 아차사고사례 제안)가 미흡함. 인센티브제도 권장”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2023년에도 “근로자 참여제도를 통해 동기부여 권장”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아리셀이 사업주와 안전관리부서 위주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정작 산재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참여는 배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아리셀은 이번 화재 참사 이후 노동자의 절반 가량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때그때 하청으로 노동자를 수급하기 때문에 위험성 평가 같은 작업에 정기적으로 노동자를 참여시키기 어려운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 둔 셈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법적으로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위험성 평가를 함께 한다지만, 실제로는 노동자 참여가 배제되고 사업주가 요식 행위처럼 하는 수준”이라며 “노동조합 참여가 보장돼야 하고, 위험성 평가 이후 현장이 실제로 개선됐는지 보는 정부의 감독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리셀의 위험성 평가가 형식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또 있다. 아리셀이 안전공단에서 받은 위험성 평가 총점은 3년 간 81점→88점→75점이다. 우수 사업장 인증 첫해인 2021년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인 2022년에는 경각심을 갖다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논의가 시작된 2023년 들어선 위험성평가에 대한 관심이 꺾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국민의힘은 2023년 9월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노동계 반발 등으로 인해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제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그러나 2024년 6월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을 다시 발의한 상태다. 박홍배 의원은 “노동자보다 사업자, 안전보다 경제논리를 우선한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적 행보는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이제 위험의 일용화, 위험의 이주화를 부추기고 있다”며 “사업주에 대한 면죄부보다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우선하는 법이 우리 사회의 반복되는 후진국형 산재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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