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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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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 혹은 ‘학살자’이기 전 인간을 만나다

100명 넘는 베트남전 참전군인 만나고 10년 역작 <롱빈의 시간> 완성한 정의연 작가
“파병 당시의 언어가 지금도 그들 구속… 더 깊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 내면 만나야”
등록 2024-02-16 21:37 수정 2024-02-20 14:10
정의연 작가가 2024년 1월26일 충남 서천 자택에서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생애를 다룬 소설 <롱빈의 시간>을 집필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정의연 작가가 2024년 1월26일 충남 서천 자택에서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생애를 다룬 소설 <롱빈의 시간>을 집필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그때서야 나는 내가 대검으로 찔러 죽인 남자가 여자의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소. …나는 그때 알았소. 악마는 언제나 내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대검으로 쑤셔야 할 짐승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자신의 생애를 글로 남겨달라며 찾아온 의문의 남자. 고집스럽고 다부진 인상과 달리 밤만 되면 헛것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남자의 이상한 말과 행동이 60년 전 베트남전 파병 경험에서 왔음을 독자는 오래지 않아 알게 된다. 전쟁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몸서리치면서도 늙은 군인은 끝내 베트남 땅을 찾아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대면한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을 다룬 신작 <롱빈의 시간>이다.

작가 정의연씨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00명이 넘는 참전군인을 만났다고 한다. 참전자 본인도, 가족도 아닌 그가 베트남전에 매달린 이유가 뭘까. <한겨레21>이 2024년 1월26일 정 작가를 충남 서천 자택에서 만났다.

세월호 인양 때 커피를 타주던 고엽제전우회 회원들

—언제부터 집필한 소설인가.

“10년 썼다. 2014년 치매 관련 소설을 쓰며 베트남전 참전군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게 계기였다. 삶과 죽음에 유난히 민감한 인물로 했는데, 막상 쓰려니 베트남전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소설 완성도를 위해 하나둘 자료를 찾았다. 피상적으로만 알던 전쟁이었는데, 깊이 들어갈수록 너무 참혹해서 ‘내가 이걸 쓸 수 있을까’ 싶었다. 근데 쓸 수밖에 없었고 써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떻게 조사했나.

“최대한 자료를 많이 보고 참전자를 만날 수 있는 데까지 만났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참전 수기를 보고 연락하거나, 참전자 동호회를 직접 찾아가는 식이다. 예를 들어 2017년 세월호 목포항 인양 때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길거리에서 추모객들에게 커피를 타주는 모습을 봤다.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제가 소설 쓰는 사람인데 선생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곤혹스러워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자기 얘기를 꼭 어떻게든 남겨줬으면 좋겠다 하는 분도 많았다.” 

—주인공 구자성도 실재 인물을 바탕으로 했나.

“베트남전에 참전한 32만 명 중 내가 접한 분은 110명 정도다. 소설을 쓸 때는 (주인공이) 그중 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나고 인터뷰한 참전자들의 복합체가 구자성이다. 롱빈도 마찬가지다. ‘용의 땅’이란 의미로 만들었다. 그때 마을에 들어간 한국군 부대가 용 이름을 쓰는 부대(한국군 해병대 제2여단 청룡부대)라는 점을 고려했다. 베트남 중부에 광범위하게 분포된 한국군 학살 피해 지역 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전군인’ 하면 경제성장, 고엽제, 민간인 학살 등 상징적 단어가 떠오른다. 소설은 그런 전형성에 기대지 않고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려 한 듯하다.

“일단 이 문제에 접근할 때 기존 문법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방부나 참전군인단체의 홍보 내지 변명을 넘어서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들을 ‘경제발전 초석을 놓은 사람들’ 또는 ‘민간인 학살 가해자’라고 규정하기 전에, 그들이 누구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의 내면과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고 전쟁의 의미를 짚어보는 것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신문에 실렸던 베트남전 병사들의 사진. 참전군인의 불안과 고통을 보여준 언론의 보도사진은 거의 없었다. 1969 보도사진연감

한국 신문에 실렸던 베트남전 병사들의 사진. 참전군인의 불안과 고통을 보여준 언론의 보도사진은 거의 없었다. 1969 보도사진연감


참전단체 공격은 ‘들키지 않으려는’ 방어

소설 속 구자성은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로 아버지를 잃고 미군 병사에게 성착취도 당한다. 그런 인물이 베트남 땅에선 미군 동맹군이 되어 주민을 학살한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위치를 옮긴 뒤 그는 과거를 부정하려 더 잔혹해진다. “다시는 그것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마구 쐈소. 그냥 모두 가루로 만들어 흩어버리고 싶었소.”

—참전 경험만 다루지 않고 구자성의 전 생애를 다룬 이유가 있나.

“한 인간이 인생의 특정 시기만으로 구성되거나 조직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 취재한 바로도 참전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겪은 삶이 너무 신산했고 정말 녹록지 않더라. 그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접근하면 인물이 입체적으로 드러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참전 결정과도 관련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 억지로 떠밀려간 사람도 있지만 (가난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목숨 내놓고 간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2000년 6월27일 한겨레신문사 사옥 앞에서 ‘베트남전 참전용사에 의한 민간인 학살' 보도에 불만을 품은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사옥 안으로 난입해 끌어낸 사무용지 등을 불태우기도 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2000년 6월27일 한겨레신문사 사옥 앞에서 ‘베트남전 참전용사에 의한 민간인 학살' 보도에 불만을 품은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사옥 안으로 난입해 끌어낸 사무용지 등을 불태우기도 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구자성을 민간인 학살 가해자로 설정했다. 논란을 피하려면 비둘기부대 등 지원병으로 설정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소설은 한국군이 한 행위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행위를 한 사람이 어떻게 살고 그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참전한 사람의 가해 행위를 다룰 수밖에 없다. 당시는 가해라고 인식 못했을 가능성도 크고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도 이야기하는데, 지금 문법에선 다르게 봐야 하는 지점이 있다.”

—구자성은 참회하는 군인이었다. 하지만 거리에서 집회하는 베트남전 참전군인단체는 학살을 부정하지 않나. 그 괴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들을 구성하는 언어가 지배체제에 포섭된 때의 언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파병 당시의 언어가 그들을 지금도 구속하는 거다. 대중이 각성한 지금의 언어로 자신이 한 행위를 들여다보면 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두려운 거다. 또 자신이 냉전체제에 활용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억울한데 누구 하나 위로해주는 사람 없고 학살자로 비난만 받는다고 생각하니 공격적으로 나오게 된다. 아스팔트에 나온 참전자단체의 공격성은 일종의 방어 전략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한 일의 진실과 내면을 들키지 않으려 선제공격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작가가, 나아가 우리 사회가 더 깊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 내면을 만나야 한다. 그들이 내면을 다 드러낼 수 있을 때까지 듣다보면 문제 해결도 치유 방향도 잡아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국군 학살로 숨진 민간인들을 위로하는 베트남 꽝남성 하미마을 ‘따이한 제사’에서 한 시민이 위령비 앞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신다은 기자

한국군 학살로 숨진 민간인들을 위로하는 베트남 꽝남성 하미마을 ‘따이한 제사’에서 한 시민이 위령비 앞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신다은 기자


중년 남자가 얘기 들어달라며 ‘카이카이’

—피해자들도 만나봤나.

한베평화재단에서 기획한 베트남 평화기행을 두 번 다녀왔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차량이 막 떠나려는데 한 중년 남자가 차창을 막 두들기며 자기 얘길 좀 들어달라고 했다. (학살 때) 다 죽고 생후 며칠 안 된 그 사람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베트남 사회뿐만 아니라 누구도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는데 한국 사람들이 왔다니까 달려나온 것이다. 자신들이 지금 얼마나 억울하고 아픈지, 그 상처와 날마다 맞서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두려운지 알아달라는 거다. 구수정 박사(한베평화재단 이사)가 베트남에서 처음 그들을 맞닥뜨렸을 때도 딱 그 장면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 구 박사는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소설에서 그 대목을 쓸 때 울컥했다.”

—구자성 일행이 민간인 학살 피해 마을을 방문하는 장면 말인가.

“구자성 일행이 롱빈에 도착하니까 마을 사람들이 ‘카이카이’(‘얘기를 들어달라’는 베트남어 표현) 하면서 자기 얘기 들어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을 구수정 박사와 고경태 당시 <한겨레21> 기자 등에 대한 오마주로 생각하고 썼다. 그들이 이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하지 않았다면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공론화하긴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쌓아놓은 게 있었기 때문에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었고, 학살 피해자도 한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얀 전쟁> <무기의 그늘> 등 군인 시선에서 베트남전을 다룬 기존 작품과 달리, <롱빈의 시간>은 젊은 작가의 시선을 따라간다. 이유가 있나.

“젊은 친구들을 만나 물어보면 베트남전에 별 관심이 없더라.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삶 이야기가 아니지 않나. 사는 것도 고달픈데 과거 이야기에 관심 가질 일이 없을 거다. 그들이 이 문제에 접근할 길이 뭘까 고민하다 구술계약이란 장치를 택했다. 젊은 무명작가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전군인과 구술계약을 맺고 여행하며 베트남전의 의미나 그 사람이 거기서 했던 일들, 그것이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는 방식이다. 구자성이 직접 화자가 돼서 설명하는 방식도 고려했는데, 과거 인물이 흘러간 옛이야기를 하는 선에서 벗어날 수 없더라.”

신냉전 시대, 전쟁이 무엇인지 직면해야

정 작가가 베트남전을 다룬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참전군인 고엽제 후유증을 다룬 <그 여자>(2020)와 ‘안케패스 전투’의 양면성을 폭로하는 <그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2022)를 먼저 썼다.

—베트남전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나.

“내 화두는 ‘전쟁에 참여하고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였다. 지금 벌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나날이 걱정스럽고 한반도도 새로운 냉전 시대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그럴 때 전쟁이 인간에게 무엇인가는 꼭 짚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시대에도 함의가 있겠다.

“사람들은 ‘전쟁이 벌어지면 다 그렇게 돼’라고 쉽게 말한다. 예를 들어 전시 성폭행 같은 경우 문제를 제기해도 지휘관들이 ‘전쟁 끝나고 얘기하자, 지금은 생사의 문제다’라고 얘기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쟁에 대해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전쟁은 한 사회를 파괴하고 바꿔놓을 뿐만 아니라, 그 사회에 내재된 모든 인간을 바꿔놓는 일이다. 요즘 고위직에 계신 분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쳐부수겠다’고 하는데 너무 끔찍한 얘기다.”

—<그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에선 안케패스 전투의 어두운 면을 다뤘다.

“베트남전 안케패스 전투가 예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우리 군이 엄청난 피해를 본 전투인데 마치 영웅담처럼 그려졌다. 실제 그 전투에 참전한 군인은 그 지점에 엄청 분노했다. 국가가 전과(전쟁 성과)를 과장하려고 희생자 수를 줄이는 것도 참을 수 없어 했다. 그의 분노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소설 주인공 박동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렁게, 훈장이구 나발이구 즌쟁 허자구 뎀벼드는 늠덜 믿으믄 안 돼유. 왜 있잖유? 걸핏허믄 쳐들어가서 본때를 봬주야 헌다, 왜 더 강허게 뭇 허냐, 응징혀야 헌다, 작살을 내야 헌다 허는 늠덜은 지덜이 싸우러 안 가니께 그런 말 허는 거라구유. 막말루 죽을 늠덜 따루 있으니께, 딴 늠덜이 대신 가서 죽거나 저는 빠져두 되니께 그런 싸가지 읎는 말 허는 거라니께유. 나쁜 늠으 새끼덜!”

작가 정의연씨가 2024년 1월26일 충남 서천 자택에서 신작 <롱빈의 시간>을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작가 정의연씨가 2024년 1월26일 충남 서천 자택에서 신작 <롱빈의 시간>을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소설 주인공이 참전군인에게 전쟁 이야기를 들려달라 하는데 첫 만남을 제외하곤 계속 바람맞는다. 이 장면의 의미는.

“우리 사회를 빗댔다. 이미 참전자와 피해자가 끊임없이 입으로 몸으로 다 얘기했는데 작가를 비롯한 우리 사회는 그들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고 의미 부여를 못하고 있어 그 지점을 표현했다. 우리 사회가 박동수(소설 속 참전군인)처럼 고통에 파묻혀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내가 소설로 쓴 대목은 베트남전쟁의 바늘 끝을 들여다본 것뿐이다. 지금 전쟁 위험이 더 커져가는 한국과 세계 상황이 너무 걱정되는데, 이 소설이 전쟁과 인간에 대해 더 들여다보고 탐구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서천(충남)=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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