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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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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가스 산재 석포제련소 재해율, 제련업계 평균 1.5배

원청보다 더 많은 하청 노동자는 집계조차 안 돼
등록 2023-12-30 07:53 수정 2023-12-30 12:05
2023년 12월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영풍석포제련소 노동자 사망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류우종 기자

2023년 12월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영풍석포제련소 노동자 사망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류우종 기자

최근 아르신가스 중독으로 사상자 4명이 발생한 영풍석포제련소의 산업재해 발생률이 동종업계보다 1.5배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2023년 12월22일 <한겨레21>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제출받은 영풍석포제련소의 최근 5년(2018~2022년) 산업재해 신청 및 승인 현황 자료를 보면, 5년간 제련소 노동자 40명이 출퇴근재해를 뺀 사고와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했고 이 가운데 29명의 산재가 승인됐다. 원청 노동자만 집계한 자료다. 출퇴근 재해를 빼고 산재 승인 건만 집계해도 연평균 5.8명꼴로, 총 직영 노동자(560명)의 1.0% 수준이다. 금속제련업 평균 재해율 0.71%(2022년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분석)를 훌쩍 넘는다.

화상 8건, 골절 6건, 염좌 5건 순

노동자가 산재 신청한 사고·질병을 종류별로 살펴보니 화상(8건)이 가장 많았다. 주로 발목과 발, 머리와 목 부위에서 발생했다. 3도 화상이 많았고 2도 화상도 일부 있었다. 1건을 제외하고 모두 산재가 승인됐다. 액체 상태의 아연을 아연괴로 만드는 ‘주조 공정’에 화상 위험이 있다고 제련소 쪽은 설명했다.

화상 다음으로 골절(6건)과 염좌(5건), 청력 소실(5건)이 많았다. 골절 부상은 다리와 몸, 손가락, 발 등에서 일어났다. 모두 산재로 인정됐다. 인대가 늘어나 관절을 다치는 것을 뜻하는 ‘염좌’는 주로 허리뼈(요추)에서 발생했다. 1건을 제외한 나머지 4건이 산재 승인됐다. <한겨레21>이 2023년 11월 만난 퇴직자 2명도 허리통증을 호소했다. 작업장 바닥이 미끄럽고 찌꺼기 여과포가 무거워, 세탁 장소로 여과포를 옮기다 넘어지는 일이 많았다고 이들은 말했다.(제1491호 <a>“시나브로 이가 다 빠져버렸어” 영풍석포제련소 퇴직자의 호소 참조)

청력소실은 돌발성 난청과 소음성 난청 등으로 분류되는 ‘감각신경성’ 청력소실이다. 5건 중 4건의 산재 신청이 기각됐다. 최근 법원이 근로복지공단 결정을 뒤집고 산재를 인정한 사례도 있다. 2023년 4월 석포제련소 전 하청 노동자 배아무개씨의 소음성 난청이 법원에서 산재로 인정됐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석포제련소에서 발생한 아르신가스 중독 사망사고와 유사한 산재도 있었다. 2022년 한 노동자가 비소 중독으로 용혈빈혈을 호소해 산재 1건이 승인됐다. 적혈구가 정상 수명보다 빨리 파괴되는 용혈빈혈은 아르신가스 중독의 대표 증상이다. 같은 해 석포제련소 하청 노동자 1명이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아르신가스 중독을 진단받은 사실이 최근 <한겨레21> 보도로 알려졌다.(제1493호 “석포제련소 아르신가스 중독, 2017년 2022년에도 있었다” 참조) 이 외에 각막 찰과상과 근육·힘줄 손상, 발가락 으깸 손상 등이 산재로 승인됐다. 반면 뇌출혈과 뇌경색, 척추협착, 청력소실 등은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다.

석포제련소 원청 노동자의 재해율(승인 기준)은 출 퇴근재해를 포함해 1 .1 %로 , 동종업계인 금속제련업의 평균 재해율 0 .71%보다 1.5배 이상 많다.

“위험노동 하청 노동자에게 더 몰려”

자료로 집계하지 않은 산재가 더 있다. 해당 자료는 원청 노동자만을 기준으로 했다. 석포제련소는 원청 노동자가 560명, 하청 노동자가 600명 수준으로 사내 하청 노동자가 더 많다. 근로복지공단은 사내 하청업체마다 법인명이 다 다르다는 이유로 사내 하청 노동자의 산재 현황을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 이를 파악하려면 국회의원실 등이 사내 하청업체 명단을 모두 알아내 공단에 제공해야 한다. 제련소 쪽은 해당 명단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산재 전문 노무법인인 ‘일과사람’의 권동희 노무사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도 있듯이, 사업장의 위험작업은 하청 노동자에게 더 몰리는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위험작업에 덜 노출되는 원청 노동자도 재해율이 이 정도면 하청 노동자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은 석포제련소 쪽에 재해율이 업계 평균보다 높은 이유가 뭔지, 사업장 내 위험요소는 관리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석포제련소 관계자는 “건설업이나 제조업도 재해율이 1% 수준이다. 우리 사업장도 그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작업장 위험 관리에 대해선 “법에 따라 위험성 평가와 안전 순회 점검을 실시해 위험요소를 적절히 관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위험에 대해 건의하면 이 역시 즉각 시정한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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