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개인적으로는 언론운동에 발 들인 이래 가장 목 놓아 외친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 ‘이동관 반대, 사퇴, 탄핵’ 요구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에게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구호들을 붙여 소리 높였던 이유는, 그가 정권을 위해 언론 조직과 보도를 통제했던 이른바 ‘언론 장악 기술자’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기반한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명박 정권의 대변인과 홍보수석으로 재직할 때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언론인을 사찰하고 언론사를 와해하려 했고 보도 전반에도 개입한 전력이 있다.
그런 그가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려 설치했다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수장이 된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언론계에서는 들불처럼 반대 여론이 퍼졌다. 임명 두 달 전인 2023년 6월, 한국기자협회 설문조사에서도 현직 기자의 80%가 그의 임명에 반대했다. 문화방송(MBC)의 ‘바이든-날리면’ 보도 이후 언론과 대립각을 세워온 윤석열 정권의 ‘언론 장악 프로젝트’가 이동관 방통위원장 체제하에서 본격화하리라는 인식이 언론계에 팽배했다.
슬프게도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동관은 재임 95일 동안 다방면으로 언론 통제와 장악에 힘썼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 보고했으나 이동관의 자진 사퇴로 폐기된 탄핵소추안에 따르면, 그는 방통위가 5인 합의제 기구임에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2인 체제로 안건을 의결하는 파행 운영을 했다.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보도’를 빌미로 방송사들(KBS·MBC·JTBC)에 인용보도에 관한 내부 자료를 요구함으로써 헌법과 방송법을 위반했다. 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업무 권한을 넘어서는 ‘가짜뉴스 심의’를 하도록 개입해 방통위법을 위반했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권태선)의 부당 해임이 법원에 의해 효력이 정지됐는데도 또다시 거의 동일한 사유로 다른 이사(김기중)를 추가 해임해 행정기본법, 방문진법 등을 위반했다. 마지막으로 사장 선임 과정에서 파행을 빚은 한국방송(KBS) 이사회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하고 오히려 파행에 동조함으로써 방송법을 다시 위반했다. 이 외에 와이티엔(YTN)의 공공부문 지분 매각 절차와 최다액출자자 변경승인 심사를 졸속 추진했고, 여당이 ‘댓글 국적표시법’을 추진하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업무 영역을 침해하고 협업을 추진함으로써 권한을 남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동관 탄핵이 기정사실화한 12월1일, 그는 급작스레 사퇴 의사를 밝혔고, 윤석열 대통령이 곧바로 면직안을 재가하면서 이동관의 ‘95일 천하’는 조금 싱겁게 막을 내렸다. 윤석열 정권 입장에서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하며 정권 지지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야당과 정권 비판 세력에 ‘이동관 탄핵’까지 내주는 것에 부담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최대 6개월(180일)까지 소요되므로 상임위원이 한 명만 남는 방통위의 직무가 사실상 정지된다는 점도 부담이었을 테다. 이동관 사퇴로 윤석열 정권 처지에서는 방통위원장 공백을 최소화하고 빠르게 후임자를 임명하게 됐다. ‘꼼수 사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 맥락에서다.
이동관 체제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의 사퇴가 반가우면서도 꺼림칙하다. 그는 사퇴 며칠 전인 11월27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자신이 그만두더라도 “제2, 3의 이동관”이 나올 것이라는 섬뜩한(?) 이야기를 했다. 안타깝게도 근미래에 벌어질 일은 그의 예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에 종속적인 언론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언론과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다. 한국 언론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이동관의 ‘부활’이 가능했던 것은 이명박 정권 들어 확립된 제도적 틀이 지금껏 유지됐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공영방송은 ‘대통령과 여당-방통위-공영방송 이사회-사장’으로 이어지는 인사 지배체제에 좌우됐다. 정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이 체제를 활용해 공영방송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는 다르지 않았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권도 집권 이후에는 애써 이 체제에 머무르려 했다. 11월 민주당이 뒤늦게 ‘방송3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으나,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위에 그쳤다. 윤 대통령은 또 12월6일 검사 출신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을 후임 방통위원장 후보로 지명했다. 이동관이 언론 통제에 활용했던 제도적 틀과 정권의 언론 장악 의지가 여전하기에, 그가 “제2의 이동관”이 되리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언론과 정치에 대한 시민의 인식은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제는 상수가 돼버린 한국 사회의 문화·정치·경제적 위기 속에서 시민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불만을 품고 있다. 이 불만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비극과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경험과 맞물렸고, 상대 세력의 ‘절멸’과 특정 인물의 ‘집권’이 유일한 정치적 해결책으로 등장하게 됐다. ‘범진보’로 여겨지는 시민들이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에게 기대고 정치 변혁을 그에게 외주화하는 이른바 ‘팬덤정치’의 만연과, 그 반대편에 선 시민들의 ‘안티-팬덤정치’는 이 맥락 속에 있다.
정치 못지않게 불신의 대상이 된 언론도 이런 정치문화의 변형 속에 이중적 어려움에 처했다. 안티/팬덤정치적 수요에 부응하는 당파적 언론 행태가 더 주목·지지를 얻는 와중에, 언론 신뢰를 회복하려는 전통적 시도(비당파적이고 객관적인, 모든 권력에 비판적인 저널리즘)는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 집권세력이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을 당파적으로 포섭하고 굴복시키려는 것은 시민사회의 승인과 부추김 속에 반복될 수밖에 없다.
원인이 두 가지니 해결 방법도 두 가지다. 우선 제도적으로 언론을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 대통령 거부권으로 좌초된 방송3법 개정안을 다시 통과시키고, 공적 소유 구조를 가진 YTN이나 연합뉴스 등의 공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 언론진흥기금과 방송발전기금, 정부광고비 등 공적 재원도 언론에 대한 간섭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권력에 대한 비판·감시 제도로서 언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다시 창출해내야 한다. 언론은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체 불가능한 비판적 저널리즘의 가치와 저널리즘 윤리를 중심으로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시민들은 언론의 자구 노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언론이 당파적 행위자가 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선 민주주의에 해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하며, 정도를 걸으려는 언론에는 운신 폭을 넓히도록 허락해줘야 한다. 제2, 3의 이동관이 보기 싫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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