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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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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뒤 핼러윈에 ‘뒷북 조끼’가 떴다

마포구청 2850명 용산구청 3천 명 대응인력 동원… 인파사고 위험에만 대비
첨단기기 없어서가 아니라 조직체계 협업과 위험 인식이 문제였는데
등록 2023-11-03 23:31 수정 2023-11-07 10:48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T자 골목. 2023년 10월28일서울 용산구청 직원들과 경찰관들이 인파 관리를 하고 있다. 류석우 기자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T자 골목. 2023년 10월28일서울 용산구청 직원들과 경찰관들이 인파 관리를 하고 있다. 류석우 기자

까만 바리케이드와 조끼 부대, 골목 곳곳을 비추는 시시티브이(CCTV). 2023년 핼러윈데이에 존재감을 드러낸 국가의 모습이다. 좁은 골목마다 경찰과 구청 직원이 근무를 섰고 구급차 비상 통로가 확보됐다. 사람들이 몰리는 지점이 생기면 인공지능(AI) 카메라가 연신 경고음을 울려댔다.

많은 것이 1 년 전과 정반대였다. 수많은 112 신고에도 아무 조치가 없고 구급차 진입 통로도 없어 시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던 2022년 10월29일과는 달랐다.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지난해에도 이랬으면 어땠을까” 한탄하는 한편, “이대로 계속 갈 수 있겠냐”는 의구심을 보였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축제의 안전관리를 주도했다는 의의가 있지만 이 모습이 오래가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다. 참사 1년, 서울 이태원과 홍익대 주변을 중심으로 정부의 핼러윈 대응 성과와 한계를 <한겨레21>이 짚어봤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호루라기 소리

“통행로 막지 마시고 이동 부탁드립니다.” 골목길 가게마다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사이로 한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용산구청’이라 적힌 노란색 조끼를 입고 확성기와 경광봉을 들고 있다. 한 무리의 방문객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멈추자 남자는 확성기를 다시 들었다. “머물러 있지 마시고 이동해주십시오.”

1년 전 참사가 발생한 T자형 골목 중앙에만 ‘노란 조끼 부대’가 10명가량 배치돼 있었다. 거리엔 코스튬(캐릭터 의상)을 입은 시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골목을 찾은 행인도 1년 전과 비교하면 현저히 줄었다. <한겨레21>이 참사 1년이 되는 2023년 10월28일 밤 10시께 다시 찾은 이태원의 모습이다.

참사 당일엔 없었던 정부 행정은 1년이 지나 요란스러운 ‘뒷북’을 쳤다. 우선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 내려 출구로 나올 때까지 스무 명 넘는 안전요원을 만났다. 개찰구, 계단, 에스컬레이터 앞에도 ‘안전’이란 글자가 쓰인 초록색 조끼를 입은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서 있었다. 이태원역 출구 앞엔 경찰과 구청 직원이 각각 2명씩 서 있었다.

T자 골목과 이어진 세계음식거리도 입구와 출구를 따로 구분했다. 참사 당시엔 골목 양방향이 모두 입·출구 구실을 해서 골목 가운데 있는 사람이 갇히기 쉬운 구조였다. 이번엔 경찰과 구청 직원들이 골목마다 지키고 서서 일방통행을 유도했다. 우측통행을 하지 않는 시민이 보이면 곧바로 “우측통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사람들이 서로 섞이지 않게 검정 바리케이드도 거리마다 깔아놓았다. 이태원 파출소 건너편 골목 입구에는 구급차 3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해밀톤호텔 앞 사거리도 교통경찰이 연신 호루라기를 불며 차량을 통제했다. 이태원역 앞 대로변 1차로도 막아 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했다. 1년 전 단 한 차로도 막지 않고 골목 위로 행인들을 밀어 올렸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이태원역 앞 버스정류장도 임시 폐쇄했다.

2023년 10월28일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모습. 출구 골목을 가리키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류석우 기자

2023년 10월28일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모습. 출구 골목을 가리키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류석우 기자

“사람도 없는데 왜? ‘쇼’ 같기도”

대규모 행정력이 배치된 것은 핼러윈 인파가 상대적으로 몰린 서울 마포구도 마찬가지였다. 핼러윈인 주말, 8만 명이 방문했다는 홍익대 주변도 케이티앤지(KT&G) 상상마당 앞에 조끼를 입은 경찰과 구청 직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핼러윈 인파가 홍익대 앞으로 몰릴 거라는 언론 보도에 마포구는 미리 안전계획을 세웠다. 유동인구가 많은 6개 지점을 ‘중점관리구역’으로 정하고, 지하철 홍대입구역 출구와 입구를 구분해 인파가 섞이지 않게 조치했다. 마포구청이 경찰과 소방 등의 도움을 받아 10월27일부터 11월1일까지 엿새간 투입한 핼러윈 대응 인원은 2850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 용산구가 투입한 인원도 3천 명 수준이다.

인파 밀집도를 감지하는 인공지능 CCTV도 도입했다. 서울 강남구와 경기 수원시 등이 새로 도입한 CCTV로 실시간 핼러윈 인파를 파악했다. 단위면적당 인파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상황실로 즉각 알림을 보내는 방식이다.

국가의 화려한 등장에 시민들은 복잡한 심경이다. “경찰이나 공무원이 워낙 많고 일방통행도 하라 하니 질서유지가 되는 것 같은데 한편으론 ‘쇼’하는 거 같기도 하다. 이 정도 인원은 평소 이태원에 비하면 많은 편도 아니다. 이렇게 사람 없을 때 많이 나올 게 아니라 지난해에 이 인원 반만 있어도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10월28일 이태원을 찾은 신아무개(27)씨가 말했다 .

“경찰은 시민들이 안전하게 축제를 즐기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시끄러운 일이 생기는 것만을 막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지난해에 그 많은 사람을 방치해놓고는 이제 와서 사람들이 즐거울 기회 자체를 박탈하고 있다.” “경찰이 부실했던 대책에 사과하기는커녕 (인원을) 대거 동원해 자유로운 축제를 막고 있다. 경찰이 많이 있다고 인파 관리가 되는 게 아니다.” 같은 날 이태원 골목에 서 있던 아나키스트 단체 ‘말랑키즘’ 활동가가 외쳤다.

2023년 10월28일 서울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 사거리. 경찰관들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 류석우 기자

2023년 10월28일 서울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 사거리. 경찰관들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 류석우 기자

2~3년이 지나서도 이렇게 할까

대대적 축제 관리로 2023년 핼러윈은 큰 사고 없이 지나갔다. 문제는 이런 행정력이 앞으로도 배치될 것인가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결과적으로 (축제 관리가) 잘됐다. 기관들도 인력 배치와 사전 대비를 했고, 시민들도 스스로 조심해 질서유지에 신경 쓴 결과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일회성 이벤트로 그쳐서는 안 된다. 지난해와 올해를 가른 차이점을 분석해 올해 한 활동을 제도화하는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을 지낸 박상은 플랫폼C 활동가도 “마포구가 지하철역 출입구를 따로 분리한 점이나 인파 밀집 위험 구역을 파악하려 시도한 것은 진일보했다”면서도 “지금은 딱 참사 1년이 지난 시점이라 모두가 이태원과 홍익대 앞을 주목했지만 2~3년이 지나서도 지자체가 계속 이렇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2015년쯤부터 유행했다는 핼러윈 축제는 2023년에야 지자체의 첫 관리·감독을 받았다. ‘뒤늦게라도’ 해서 다행이지만, ‘뒤늦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태원 참사와 (충북 청주) 오송 참사의 공통점은 기초지자체가 위험을 인지한 뒤 광역지자체에 전파하고 다른 기관과 협업하는 일련의 과정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체질 개선 없이 인력을 대거 투입하는 방식만으론 근본적인 참사 예방에 한계가 있다.” 오윤경 행정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의 말이다.

이태원 참사의 특징은 일선 기관에 위험경보가 계속 접수됐음에도 그 심각성이 조직 전체로 확산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참사 당일 저녁 6시34분부터 11건의 압사 관련 신고가 접수됐으나 경찰 인력은 증원되지 않았다. 현장에 나가 직접 인파를 본 용산구청 당직자들은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을 떼러 가야 했다. 행정력을 즉각 배치할 수 있는 핵심 간부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때 인지하지 못했고 기관끼리도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오송 참사와 꼭 겹치는 지점이다.

지자체가 앞다퉈 도입한다는 인공지능 CCTV도 만능열쇠일 수 없다. “지난 참사 때도 세계음식거리를 비추는 CCTV가 구청 상황실에 다 있었고 공무원들이 그걸 뻔히 보고 있었다. 위험 정보를 못 받아서 문제가 된 게 아니라, 위험 정보가 들어왔음에도 그걸 위험으로 인식하고 조직에 확산하는 체계가 부재한 게 문제였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일원인 최희천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의 지적이다.

2023년 10월28일 서울 이태원 거리에 경찰들이 서 있다. 류석우 기자

2023년 10월28일 서울 이태원 거리에 경찰들이 서 있다. 류석우 기자

축제와 공존하는 안전관리는 없는가

최희천 소장은 ‘제2의 이태원 참사 방지’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재난 위험을 폭넓게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파가 밀집되지 않아도 테러나 소요 사태 등 다른 재난 위험 요소가 있을 수 있다”며 “인파 사고 대비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다양한 재난 위험을 빨리 인지하고 확산하는 체계를 갖추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1년 전 경찰은 마약과 강력범죄에, 용산구청은 불법촬영과 각종 소음 민원에 집중했다. ‘목표’ 바깥으로 밀려난 인파 밀집 위험은 쉽게 간과했다.

시민을 통제하는 안전관리를 넘어 축제와 공존하는 안전관리를 모색하자는 의견도 있다. 정정훈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을 배치하는 건 집회 관리 방식인데, 축제는 그런 식으로 하면 (축제 목적인) ‘잘 놀기’가 어렵다”며 “기관들이 어떻게 하면 공간을 안전하게 사용하면서도 참가자들을 잘 놀게 할 수 있을지 시민사회와 함께 고민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을 민주화한다는 건 그 축제를 기획·관리하는 상인과 지자체, 경찰뿐만 아니라 그 장소에 가는 사람들, 특히 이태원을 안전하게 만들려는 시민사회단체와 소통하는 일이다. 그런 소통 과정이 있다면 지금처럼 대거 행정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축제 취지를 살리고 안전한 길도 만드는 여러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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