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잔치’(잼버리·Jamboree)라는 어원이 무색했다. 참가자들의 축제가 돼야 했을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는 그늘 한 점 없는 야영장 무더위와 열악한 시설, 벌레떼로 ‘혐한 제조 대회’라는 비아냥을 샀다. 행사장 곳곳에 힘없이 쓰러진 스카우트 대원들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자 ‘국제 망신’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엿새 만인 8월6일 미국·영국·싱가포르 대원들이 이탈하며 대회는 사실상 파행됐다. 잼버리 조직위원회가 대회를 준비한 기간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6년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 긴 시간 무엇을 한 걸까. 잼버리를 파국으로 만든 핵심 쟁점을 살펴봤다.
“기쁘고 감격스럽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행사 준비와 기반시설 마련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대회를 꼼꼼하게 준비하겠다.”
2017년 8월17일 전북 새만금이 2023년 세계 잼버리 대회 개최지로 최종 선정되자 송하진 당시 전북도지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북도는 2012년부터 세계 잼버리 대회 유치에 공을 들인 끝에 폴란드 그단스크를 누르고 대회 유치를 확정 지었다. 언론은 “도전과 열정으로 이룬 역전 드라마”라며 전북도의 공을 치하했다.
당시 전북도가 강점으로 내세운 건 드넓은 새만금 평야였다. 잼버리 대회는 4년에 한 번 스카우트 대원들이 한데 모여 야영하는 축제다. 전북도는 “250만 평 대규모 부지를 넓은 야영장 부지로 제공할 수 있다. 주택가와도 멀어 민원 발생이나 환경 파괴 논란이 적다”고 강조했다. 간척지라 그늘이 없고 습도가 높을 거라는 우려에도 전북도는 “나무를 곳곳에 심고 넝쿨식물로 그늘 터널을 만들어 충분한 그늘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전북도가 제시한 장밋빛 청사진은 실제와 전혀 달랐다. 부지 곳곳이 물빠짐이 잘 되지 않아 침수됐고 벌레가 들끓었다. 전북도가 약속한 나무는 간데없고 넝쿨 그늘은 그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추가 개발을 않겠다던 부지는 실은 갯벌을 메워 만든 땅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핵심은 땅이다. 전북도가 잼버리 대회 부지로 제안한 ‘새만금 관광·레저 1지구’는 대회 유치 당시 행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단지 바닷물 아래 있던 땅이 겉으로 드러난 ‘노출지’였다. 행사장과 야영장으로 쓰려면 땅을 새로 매립하고 다져야 했다.
부지 매립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공사다. 이는 대회 준비 기간을 깎아먹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매립 계획 수립과 사업비 협의 등 여러 행정 절차가 수반되며 2018∼2022년 부지 매립에만 약 4년이 걸렸다. 2020년 1월 시작된 매립 공사는 2022년 4월에야 완료됐다. 대회를 1년4개월 남겨둔 시점이다. 그 뒤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 공사와 화장실 설치 공사 등이 줄줄이 밀려 있었다. 촉박한 일정 탓에 잼버리 조직위는 대회 일주일 전까지도 공사하고 있었다.
새만금에는 이미 매립된 농업용지와 관광·레저 용지가 있다. 이런 땅을 활용하는 선택지도 있었는데 왜 부러 새 땅을 매립했을까. 1991년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민간 사업자 참여 기피로 매립 완료율이 12.1%(2018년 기준)에 불과할 만큼 더디다. 전북도 입장에선 이왕 대회를 매립하지 않은 땅에서 개최하면 국가 재원으로 조금이라도 새만금을 더 매립할 수 있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공동대표는 “관광·레저 1지구는 그 전에도 매립하겠다는 민간 사업자가 아무도 없었던 땅이다. 잼버리 부지가 되면 어떻게든 국가가 매립을 도와줄 테니 전북도가 꼼수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도가 2018년 발간한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유치활동 결과보고서’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전북도가 잼버리를 새만금에 유치한 또 다른 이유는 새만금 개발의 조속한 추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전라북도는 국제공항 건설 및 SOC 구축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박차를 가할 명분이 필요했다.” 잼버리는 주춤했던 새만금 개발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잼버리를 이유로 새만금을 잇는 동서도로와 남북도로가 연결됐고 새만금 공항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다.
급조된 땅은 여러모로 대회에 부적합했다. 잼버리 지원단(조직위의 전신)은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관리기금을 매립 예산으로 빌려 쓰기 위해 대회 부지를 레저 용지가 아닌 농업용지로 만들었다. 국가 재원을 빌려 매립 예산을 마련하려는 편법이었다. 그런데 농지 기준에 맞춰 평평하게 만든 대지에선 빗물이 빠지지 않았다. 배수가 원활하게 되려면 흙을 모아 언덕을 쌓아야 하는데 농지 규격에 맞추다보니 논을 만든 셈이다. 또한 갓 매립된 땅은 염도가 너무 높아 나무를 심을 수 없었다. 결국 차선책으로 넝쿨 터널을 만들었으나 그마저도 넝쿨이 다 자라지 않아 차양막을 군데군데 덧댔다.
간척지는 본디 그늘이 없고 습도가 높아 여름철 야영 대회를 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2015년 일본 야마구치현 간척지에서 열린 잼버리 대회도 수많은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다만 그 부지는 간척된 지 수십 년이 지나 별도의 매립 공사가 필요치 않았고 이미 여러 행사를 치른 경험도 있었다. 땅부터 새로 만들어야 하는 새만금 잼버리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샤워시설을 천막으로 가려서 옆에서 다 보인다는 거예요. 화장실도 어떤 데는 남녀 공용으로 돼 있고요.”(잼버리 참석자 학부모, MBC <김종배의 시선 집중>)
잼버리 대회에서 지적된 또 다른 문제는 열악한 시설이다. 그늘 쉼터와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더러는 청소도 안 돼 지저분했다. 천막 샤워장은 보안에 취약했고 설상가상 남성 참가자가 여성 샤워실에 침입하는 범죄까지 발생했다. 무더위에 온열질환자가 폭증하는데 주최 쪽이 첫날 마련한 병상은 50여 개에 그쳤다. 온열치료제가 모자라고 의료 인력도 부족해 인근 병원에서 긴급 지원까지 나왔다.
조직위가 밝힌 잼버리 대회 총 사업비는 1171억원(긴급추가지원 미포함)으로, 2017년 유치 당시 전망한 예산 500억여원의 두 배였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의료시설 마련(28억원)과 그늘막 조성(5억4천만원), 폭염 물품 구입비(2억원) 등 안전 보건 예산은 극히 적었다. 공연 이벤트(45억원)와 활동 프로그램 운영비(63억원), 일반인 방문 구역(델타구역) 홍보관 조성(21억원)보다 훨씬 적게 편성됐다. 이 외에 식당 운영에 121억원이 투입됐다는데 곰팡이 핀 달걀이 급식으로 나오기도 했다. 예산이 제대로 쓰였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안이한 안전 인식은 주최 쪽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이항복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은 8월4일 와이티엔(YTN) <뉴스킹>에 출연해 “온열질환자가 쓰러졌다니까 대단한 것으로 아시는데 약간 더위에서 잠깐 정신을 잃고 그러다가 그늘에서 바로 3∼5시간 후에 즐겁게 활동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라며 “시원한 곳을 만들어준다면 그게 바로 병상으로도 대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잘못 조처하면 열사병 등 급성질환으로 번질 수 있는 온열질환의 위험을 경시하는 발언이다. 최창행 조직위 사무총장은 온열질환자가 급증한 이유로 ‘케이(K)팝 행사’를 지목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중앙정부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대회 전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정부 차원의 수많은 현장 점검과 지원·보고회가 열렸고 전북 부안에 상주하는 여성가족부 파견 공무원들도 있었다. 행정안전부는 40명 규모의 안전점검단을 꾸려 2023년 3월과 7월 두 차례 현장 점검도 했다. 2022년 9월엔 여가부 장관이, 2023년 1월엔 행안부 장관이 각각 현장을 둘러봤고 한덕수 국무총리도 2023년 5월 현장을 찾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준비하라”고 말했다.
정부 대응이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실패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정부의 인식과 실제 상황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정황은 확인할 수 있다. 강태창 전북도의회 의원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잼버리 준비가 미흡하다’고 지적하면 (주무부처인) 여가부 공무원들은 늘 ‘왜 부정적으로만 말씀하시냐, 우리가 다 준비 중이다’라고 답변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달라진 게 없어 또 물어보고 비슷한 답변을 받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대회 준비를 파견직 공무원들에게만 맡겨놓고 현장 파악이 부족했던 듯했다”고 덧붙였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도 비슷한 답변을 계속했다. 대회 1년 전인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잼버리 부지 침수 문제를 지적하자 김 장관은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도 다 세워놓았다. 보고드리겠다”고 자신 있게 답변했다. 2023년 5월 다시 침수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강제 배수시설을 조성했다. 배수로 정비는 거의 다 됐다”(7월 말 브리핑)고 말했다. 김 장관은 대회 개최 일주일이 지난 8월7일에야 “처음에 준비 부족이 있었던 건 맞다”고 인정했다.
시작부터 논란이 무성했던 새만금 잼버리 대회는 마지막까지 엉망이었다. 대원들이 대거 이탈하고 태풍 북상 소식도 들려오자 조직위와 세계스카우트연맹은 8월7일 잼버리 조기 철수를 결정했다. 대원 4만여 명을 인근 지역으로 분산 수용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조직위는 서울 한양대 남학생 기숙사에 여성 대원들을 보내는가 하면 충남 홍성 혜전대와 경기도 고양 엔에이치(NH)인재원엔 아예 입국도 하지 않은 예멘 대원 170여 명과 시리아 대원 80여 명을 각각 수용하라고 통보했다. 조직위는 그날 밤에야 취소 전화를 했다. 조직위가 무너진 행정을 어떻게 수직적 위계로 해결하려 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잼버리를 계기로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협업 방식과 권한 배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지방 정부 간 협업이 잘되려면 양자가 힘의 균형을 이루고 논의를 수평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현실이다. 지자체는 재정이 너무 열악하니 행사를 유치해서라도 개발하려 하고 권한을 가진 중앙정부는 지역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재정 차이와 수직적 위계 구조, 경직된 의사소통 등을 전반적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향수 건국대 교수(행정학)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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