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은밀하고 교묘한 차별과 혐오를 드러낸 베스트셀러 <선량한 차별주의자>(2019)를 쓴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가 4년 만에 단독 저서 <가족각본>(창비 펴냄)을 들고 돌아왔다. 공기처럼 자연스럽지만 서서히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한국의 가족제도 속 차별과 불평등을 추적한 책이다. ‘가족각본’은 가족 구성원이 태어나면서부터 딸·아들·손주·부인·남편·부모·며느리·사위 등 특정 역할을 기대받고 수행하는 현실을 가리킨다. 가족 안에 성소수자 또는 퀴어라고 불리는 인물이 등장하면 기존 가족각본이 꼬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우리가 구시대적 가족각본을 당연하게 여기는지 질문한다. 가족각본이 완벽하다면 왜 한국 사회는 이 지경인가. 형편없는 가족각본을 왜 수정하지 않는가. 김 교수를 2023년 8월8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책을 냈다. 소감이 궁금하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많은 독자가 읽어줬는데 이 책에까지 큰 관심을 가져주니 한편으로 감사하고 놀라면서 걱정도 됐다.”
―질문이 많은 책이다. 왜 결혼과 가족을 당연히 하나로 여기는지, 왜 결혼 밖에서 태어난 사람을 차별하는지, 왜 우리 인생은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지, 왜 양육자가 부와 모가 아닌 가족은 불행해야 하는지, 왜 며느리는 여자여야 하는지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가족제도를 당연한 것, 원래 그런 것,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한다면 더 생각할 게 없다. 그냥 따라야 하는 것이 된다. 반대로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질문해야 한다. 그래서 쪼개서 질문했고 그것이 가족각본을 발견하는 작업이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일단은 차별의 관점에서 시작했다. 아주 많은 차별이 가족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런데 가족 간의 차별이나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작에서 중요하게 다룬 차별금지법은 많은 시민이 찬성하지만 아직 제정이 안 되고 있다.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는 16년이나 됐는데 여전히 쓰인다. 최근 쏟아지는 계층세습 이야기도 가족제도로 만들어지는 불평등인데, 그럼에도 가족이란 제도를 들여다보자는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고 기존 가족제도를 고수하려는 구호가 여전하니 뭔가 막힌 느낌이 들었다. 뿌리 깊은 불안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책에서 저자는 결혼으로 맺어진 이성애자 양육자와 그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 밖에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혼외출생자·혼혈아동·성소수자 이슈가 만드는 균열을 따라 한국의 가족제도를 추적한다. 한국 사회에서 며느리가 어떤 지위인지 알아보고, 결혼하면 출산하고 결혼하지 않으면 출산해선 안 된다는 공식을 해체한다. 트랜스젠더 성별 변경을 조건으로 불임을 강제하는 공권력을 사유하고 동성커플이 키우는 아이가 불행할 것이라고 염려하는 마음도 짚는다. 가족질서와 가족각본을 공식화하는 학교 교육이나 법제도도 들여다본다. 여성학, 가족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법학의 범주를 넘어 실제 사람살이의 현실과 가족제도의 괴리를 집요하게 묻는 책이다.
―장애인이나 동성커플의 출산만 봐도 이기적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아동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은 대부분 진심일 것이다. 다만 차별받을 것을 염려하면서 출산을 막으려 한다면 차별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고 전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일단 태어나면 부모의 책임이고 아동의 운명이라고 개인 탓으로 돌리는 구조다.”
―한국의 가족은 대개 선량한데 타인의 삶에 간섭할 때는 무척 잔인하다. ‘가장 강력한 차별은 온정적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고 책에도 썼는데.
“차별이 염려되면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 아동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선 동성커플에게서 자라는 아동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동성결혼을 존중하고 이성커플과 동등하게 인정하는 판례들이 나온다.”
―한국 가족은 서로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강한 것 아닐까.
“가족 안에서 사람들이 부담도 죄책감도 너무 많은데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기 때문인 것 같다. 제도적 결함으로 인식하고 논의하지 못한다. 어떤 분들은 가족을 제도가 아니라 도덕적 규범이라 보면서 비혼출산, 동성결혼을 인정하면 심각하게 사회가 붕괴하고 재앙이 닥칠 것처럼 생각한다. 가족이 ‘관계’가 아니라 ‘역할’을 수행하는 일인 듯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 가족제도는 특히 전통을 강조하는 듯하다.
“한국의 유교적 가부장제는 종교와 도덕관념으로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했다. 혼인과 출산으로 여성은 출구 없는 노동을 요구받았다. 며느리는 기업가적 주도성이 필요한 반면 종속 상태이기에 모순적 위치를 가진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가(家) 제도가 이식돼 호주제로 법제화됐고,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됐다. 이제는 ‘도련님’ ‘아가씨’라고 부르는 호칭도 비대칭적이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 와중에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는 구호도 남아 있다. 억압적 가족제도의 표상인 며느리가 동성애 반대 구호로 등장한 것이다.”
―유교가 가족이념이라기엔 무리가 있다. 지금은 2023년인데.
“누군가는 ‘미풍양속’이란 말이 헌법에 있다는 생각까지 하더라. 일제강점기에 가족제도는 전통을 따라야 한다는 담론이 만들어졌다. 해방 이후에도 전통과 미풍양속 중심 담론이 지속되면서 가족제도가 동결됐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그 ‘옛것’의 실체가 분명치는 않다. 법령에선 많이 사라졌지만 조례에는 아직도 미풍양속이란 말이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다.”
―가족제도의 큰 차별 중 하나가 혼외출생자 문제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이 부분을 인상적으로 보는 리뷰가 많더라.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혼외출생자 문제에서 가장 불이익 받는 사람은 결국 아동이다. 이번 책을 쓰면서 아동에 대해 좀더 생각하게 됐다. 외국에서도 남성 중심 가부장제가 해체될 때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아동의 지위를 크게 고려했다. 우리가 아동을 중심으로 한다는 건 사실은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는 뜻과 같다.”
―중요한 지적인데, 여성 종속에 초점을 맞춘 기존 가족 연구에선 자세히 다루지 않은 부분이다.
“가부장제가 단지 여성 억압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제도 안에 가둬놓는 체제라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부장제는 여성 억압만큼이나 아동을 도구적으로 본다. 아동을 도구로 여긴다는 건 결국 사람을 도구로 여긴다는 것이다. 여성의 출산을 통제하는 것은 결국 아동 출생을 통제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을 통제하는 것인데, 제도가 사람을 잡아먹는 느낌이다.”
―책에서도 가부장제, 가족주의, 국가주의 같은 단어를 잘 쓰지 않은 것 같다.
“특정 단어로 설명하기보다는 우리 역사 안에서 살고 겪어온 것을 펼쳐놓고 그 안에서 가족에 대한 최대한의 고정관념과 틀을 버리고 같이 생각해봤으면 했다.”
―가족은 마지막 보루라는 인식이 일반적인데.
“국가가 오롯이 생존의 책임을 가족에게 몰아서 그 관념이 너무도 당연한 듯 만들었다. 국가가 가족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상의 의무가 있다. 사회보장제도를 만든다는 건 개별 가족의 취약성을 보완하고 빈부 격차에 따른 위험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단위를 키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고 개인의 책임으로 계속 돌아가니까 가족밖에 기댈 곳이 없다고 본다. 국가가 그렇게 제도적으로 만들어온 부분도 크다.”
―그래도 변화 가능성을 낙관할 수 있을까.
“제도는 변할 수 있다. 실제 서구도 많이 변했다. 예컨대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아동이었다. 어떤 아동이라도 가족환경 때문에 낙인이나 차별을 받지 않고 살게 하려면 어떤 가족형태이든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외국 판례들에 나오는 중요한 논의 중 하나다. 2022년 한국 대법원도 트랜스젠더 양육자의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법률적·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긴 거다. 헌법상 국가가 보장해야 할 가족생활이 ‘특정한 가족형태’가 아니라 ‘실질적 가족관계’여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가족 용광로’ 같다. 가족의 계층 차이가 너무 크다. ‘부모 찬스’ 논란을 빚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논란은 특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이 사건 외에도 ‘부모 찬스’ 사건이 많았고 공정성 담론이 뜨거웠다. ‘부모 찬스’가 계층을 세습화하는 문제가 분명히 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으로 또 어떤 부분은 많은 가족이 이미 하는 일이다. 만약 모든 가족이 자기 권력을 최대한 이용해서 할 수 있는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자원을 총동원하면서 자녀를 위해 행동한다면 공정성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타고난 불평등이 이미 극도로 심한 구조 속에서 공정성 담론은 너무 한계가 크다.”
―‘부모 찬스’ 비판이 높지만, 증여세 감면 정책 같은 건 반발이 크지 않다.
“부모가 자식한테 부를 세습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게 얼마나 큰 불평등을 만드는지 자각하면 좋겠다.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모두가 비슷하게 부모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선지 가족제도로 인한 불평등을 정치적으로 논의하지 않는 게 굉장히 안타까웠다. 기존 가족제도를 그대로 두면서 공정성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엔 한계가 있고 그것이 좌절로 다가왔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해줄 만큼 해줘야 한다는 마음은 깎아내릴 수 없다. 정쟁이 아니라, 불평등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제도적으로 국회 등에서 좀더 깊이 있는 논의가 오가길 바란다.”
―한편에서는 성인 입양이나 동성커플 출산 등 새로운 가족 만들기를 시도한다.
“중요한 변화고 대단히 용기 있는 결정이다. 개인적 수준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직접 나서서 이슈화하는 분들이 있다. 현장에서의 운동 덕에 지금 생활동반자법, 혼인평등법, 비혼출산지원법 등 가족구성권 3법도 올라가 있다.”
―변화를 체감하나.
“변화는 꽤 있는 것 같다. 비혼부들이 나서서 출생등록에 관한 법을 바꾸고, 비혼 출산과 비혼 동거도 다 나름의 어떤 제도에 대한 저항이고 문제제기다. 그걸 읽지 못하는 사회가 문제다.”
―계층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변화가 먼저 올 것 같은데.
“인권운동의 어려움이 그런 것이다. 딱 하나의 문제만 해결되면 되는 사람들이 먼저 변화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성소수자 인권이 향상돼도 성소수자이면서 저소득이거나, 교육을 덜 받았거나, 장애가 있거나, 이주민이거나 이런 복합적 차별을 받는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해결돼야 할 일들이 남는다. 한국에서 차별이 너무 많이 누적돼 이제는 무엇이 선결 과제인지 따지는 게 불가능하다. 쌓인 문제를 묵혀두면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통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건 정말 아득한 간극이다. 무엇도 해결하지 않겠다는 구호로 들린다. 이제 그만 미뤄야 할 때다.”
―지금 인구정책과 담론의 가장 큰 문제는 뭘까.
“인력이란 말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 인력·노동력 관점으로 인구위기를 이야기하고 국가가 무너진다고 말한다. 태어나는 사람을 도구로 여기는 것이다. 정책분석적으로 의미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 태어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오히려 태어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는 있겠다. 어떤 학생이 ‘세상이 망한다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아요’라고 하는 걸 들었는데, 되게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아이가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 양육자는 자기 삶을 버리지 않고 아이를 돌보면서 행복할 수 있느냐, 가족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존엄하면서도 행복하게 서로 돌보는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는데 국가는 계속 사람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며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거다.”
―학교는 어떻게 변해야 하나.
“가부장제를 이렇게 오래 유지하는 데 학교의 역할이 정말 컸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여성 교육이 시작된 것도 형식적으로는 평등을 위한 것이었지만 내용적으로 현모양처를 양성해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남녀 차이를 가르치고 성별에 따른 역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지금의 학교는 성차가 고정적이고 불변한다는 성별본질주의 관점을 갖고 가족이념 교육을 해왔다. 가족각본을 타파하려면 학교는 학교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되는 것 같다. 교육은 익숙한 것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도록 가르치는 것이고 문제의 대안을 발견하는 것이다. 지금의 가족제도가 어떤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효과를 만드는지 분석하고 대안을 찾도록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로서 책의 주장을 ‘엣지’ 있게 말해준다면.
“엣지 있는 것을 잘 못한다. (웃음) 너무 나이브한 말인 것 같지만 그냥 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수 없는지에 관한 책을 쓴 것이다. 책에 서명할 때 ‘평등한 가족, 존엄한 삶’이라고 쓴다.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든 어떤 모습이든 가족이 어떻든 개별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엄하게 대하는 가족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면 좋겠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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