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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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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식 교육개혁’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킬러 문항 제거

‘낯선 지문 독해를 판단하는 게 수능 국어’, 교육 취지를 이해 못하는 단순 발상의 지시가 일으킨 풍파
등록 2023-06-30 22:48 수정 2023-07-03 22:35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제는 ‘고등학교 3년 빡세게 공부해’가 아니다. ‘초등·중학교 때부터 좋은 고등학교 가기 위해 경쟁해’ 하는 구조를 만드는 거다.”(대치동 국어강사 ㄱ씨)

2023년 6월26일, 교육부는 ‘킬러 문항 제거’ 등을 포함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같은 날 학원가도 분주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일하는 국어강사 ㄱ씨는 이날 학부모 설명회를 진행했다. 그는 킬러 문항 제거가 정부의 다른 교육정책들과 만나면서 낳을 영향에 대비하고 있었다.

“교육정책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수능시험의 영향력은 킬러 문항 제거 지시 등 약화하는 추세다. 곧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학교마다 수업 역량이 달라진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럼 뭐가 중요해질까. 이제는 어떤 고등학교에 가느냐가 중요해지는 거다. 입시 사교육 연령대가 더 내려갈 것으로 예측한다.”

‘킬러 문항 제거’라는 너무나 단순한 접근

윤석열 대통령은 6월16일 “공정한 변별력은 모든 시험의 본질이므로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어려운 과제다. 일명 ‘킬러 문항’이라 하는 고난도 문항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변별력’은 어떻게 갖춰야 할까?

“이렇게 되면 지문이나 문제가 어려워서 어려운 게 아니라 학생들의 실수를 유도하는 문제를 통해 변별력을 만들 수 있다. 어쨌든 등급은 나눠야 하니까. 차라리 비문학 영역(독서)에서 어려운 지문이 나온다고 하면 계속 여러 가지를 읽고 공부하면서 어려운 글에 대비하는데, 실수를 유도하는 문제는 오히려 ‘복불복’에 가까우니 교육 취지에 안 맞는 게 아닐까.”(대치동 학원강사 ㄱ씨)

중난도 문제가 늘어나리란 전망도 있다. 이전에는 쉬운 문제를 빨리 풀어놓고 어려운 문제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적당히 어려운 문제를 골고루 시간 내 푸는 데 집중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란 틀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한 문제당 1분40여초 안에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킬러 문항 제거를 통한 개혁인지에 물음표가 남을 수밖에 없다.

국무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국무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고난도 문항이 사라지면 수능의 영향력 자체는 약화한다는 것, 또 대입제도가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는 분위기가 있다. 지역의 한 국제학교에서 근무하는 ㄴ 교사는 “근무지가 국제학교라 수능이랑 상관없지만, 아이들 교육을 위해 너무 낡은 시험인 수능이 이렇게 변별력을 낮추면서 단계적으로 사라지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ㄴ 교사는 수능의 영향력 아래 있지 않은 덕에 비교적 자유롭게 아이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며 수업한다.

‘수능 영향력 약화’와 학업성취도 평가가 만날 때

그러나 ‘수능 영향력 약화’와 다른 제도들이 만나 만들어낼 상황도 생각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초3·중1 학생들이 맞춤형 학업성취도 평가를 보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참여 여부는 시도교육감이 정하지만, 교육부가 참여 여부를 시도교육청 평가 등에 반영하기 때문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만 9살 어린아이들이 일괄 시험을 치르고 평가받으면, 부모들은 그 이전 나이부터 평가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특수목적고인 외국어고·국제고는 존치하기로 했다. 우수한 교사들이 이런 고등학교들로 쏠리면, 학부모들은 특정 고등학교를 좇아 중학교 때부터 입시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특히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시행된다. 고교학점제는 학교가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고,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을 골라 수강하는 제도다. 취지는 좋지만 학교별 역량 차이가 뚜렷해질 수 있다. ‘입시 사교육 연령대가 더 내려갈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6월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는데, 구체적인 답변은 내놓지 못했다.


“역량이 충분한 학교하고 좀 부족한 학교가 분명히 갈릴 거고, 학생들은 그런 역량이 충분한 학교로 몰리게 될 거고. 왜냐면 그 내용은 다 생기부에 기록돼가지고 나중에 대입의 자료가 될 테니까요. 그래서 소위 명문고, 비명문고, 고교 서열화는 더더욱 심해지고 따라서 사교육 시장 더 과열되고 이렇게 되는 거 아닌가요?”

“지금 말씀하셨듯이 다양성을 추구하다가 학교별 차이가 너무 수직적으로 서열화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작용이 항상 있기 때문에 굉장히 교육정책은 점진적으로 하면서 준비를 철저히 해서 시행을 해야 되는 것이고.”(이주호 장관)

정부와 미디어가 강조해온 문해력 교육의 맥락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국어 문제라든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는 처음부터 교육 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윤석열 대통령 6월16일 발언)

논란을 촉발한 이 발언을 본 학생들은 더 불안해졌다. 대통령실 발표의 부실함과 대통령이 비문학(독서) 과목을 공부하는 취지 자체를 모른다는 의구심에서였다. 최근 학생들 사이 인기를 끄는 구독자 93만 명의 교육·입시 전문 유튜버 미미미누(김민우) 유튜브 채널을 보면,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비판한 영상 조회수가 100만 회(6월29일 기준)를 돌파했다. 댓글은 8천여 개 달렸는데, ‘좋아요’를 다수 받은 한 누리꾼의 댓글을 보면 이렇다.

“공교육 교육과정에서 배운 개념을 가지고 낯선 지문을 독해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게 수능 국어 아닌가라는 말에 박수(를 보낸다). 같은 생각이다. 교육과정 안에서 배운 것만으로 국어가 나오면 그냥 암기식으로 문제를 푸는 거죠. 대다수의 국민과 너무나 다른 생각을 하는 대통령이라 헛웃음이 나오네.”

국어 교육과정을 보면, 독서 과목을 공부하는 목적에 대해 ‘다양한 글과 자료를 이해하고 생산하는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기술한다. 성취 기준 가운데 ‘과학·기술 분야의 원리나 지식을 다룬 글을 읽고 쓸 것’ 등을 제시하며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권한다. 수년간 정부와 미디어가 강조해온 ‘문해력 교육’이 같은 맥락이었다. 실생활과 동떨어진 시·소설을 줄 치면서 읽는 국어교육, 교재에 나온 비문학 지문을 달달 외우는 암기식 국어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접하게 될 다양한 글을 읽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하자는 차원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갑자기 ‘과목 융합’과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비문학’을 문제 삼았다. 학생들은 당장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비문학’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17일 오전 수험생들이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마련된 시험장에 들어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17일 오전 수험생들이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마련된 시험장에 들어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평가원장은 사임했는데 6월 모의평가 결과는…

교육부는 6월26일 킬러 문항의 예시를 제시했다. 국어과목에서 비문학의 경우를 보면 교육부의 선정 기준은 이렇다.


‘낯선 현대 철학 분야의 전문 용어를 다수 사용하여 지문 이해가 매우 어렵고, 문제의 선택지로 제시된 문장 역시 추상적이어서 지문과 답지의 개념 연결이 쉽지 않음.’
‘과학 및 수학 분야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어려운 지문을 제시하여 국어 독해력보다는 배경지식의 차이와 수학적 이해 능력이 문제 해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

교육부가 제시한 지문의 난이도가 ‘고등학생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데는 공감하더라도, 이런 기준으로 교과과정 ‘안’과 ‘밖’을 어떻게 구분할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수능은 4개월 남짓 남았는데 교육당국은 혼란스럽다. 대통령 말 한마디 이후 수능시험을 총괄하는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이 경질(6월16일)됐고,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가 발표됐다. 이규민 평가원장이 사임(6월19일)했다. 수능을 코앞에 둔 학생들에겐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이규민 평가원장이 사임한 것과 관련해 성기선 전 평가원장은 “원래 평가원도 감사를 받는다. 그런데 이번은 감사원 감사가 아니다. 국무총리실 감사반에서 감사가 들어온 거다. 내가 근무한 3년 반 동안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평가원장은 직원들 생각도 해야 하는데, 감사가 들어오면 심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유도 석연치 않다. 이 모든 혼란이 벌어진 건, 대통령이 킬러 문항 배제 등을 미리 지시했는데 6월 모의평가에서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6월 모의평가 결과가 나오자 학생들은 의아했다. 최고점을 받은 사람이 2022년 수능보다 4배 이상 느는 등, 비교적 ‘다소 쉬웠다’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형학원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한다고 밝히며 ‘사교육업계 카르텔’을 강조한다. 평가원 교육학자들과 사교육 업체 강사들은 당장 긴장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31일 서울 용산구 용산고에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가 열려,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 전 자습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8월31일 서울 용산구 용산고에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가 열려,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 전 자습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줄’의 중요성 보여주는 윤석열 내각 구성원

대입은 본질적으로 ‘줄 세우기’고, 사회는 대학 간판을 ‘신분화’해왔다. ‘줄’이 신분이 되는 사회에선, 대입제도가 바뀌어도 사교육비 출혈이 줄어들기 힘들다. 윤석열 정부만 해도 어떤가. 국민에게 학벌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줬다. 2022년 5월19일 <한겨레21>이 분석한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구성원(장차관급 이상 64명,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50명 등)의 출신 대학을 보면, 서울대(47%), 고려대(11%), 연세대(9%) 순으로 스카이가 70% 가까이 차지했다. 학력 서열화를 직접 보여준 정부가, 이제 고교 서열을 더 뚜렷하게 만들면서 ‘사교육을 완화’하라고 말한다. 정부의 교육개혁 지향점이 무엇인지 학부모와 학생들은 궁금하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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