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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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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 극장 ‘철거’ 결론 내고 의견수렴…“밀실 결재” 폭로

2023년 60년 맞은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 둘러싼 갈등 격화
시의회 철거 예산안 통과 앞두고 공무원 내부 폭로
등록 2023-05-23 19:16 수정 2023-05-25 09:57
1983년의 강원도 원주 아카데미극장. `아카데미 친구들' 제공

1983년의 강원도 원주 아카데미극장. `아카데미 친구들' 제공

강원도 원주시가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발표한 가운데, 시에서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보존 계획을 뒤집었다는 내부고발이 나왔다. 철거 방침을 미리 정해놓은 뒤, 형식적으로 보존을 주장하는 단체를 만났다는 의혹 제기다.

<한겨레21>이 2023년 5월22일 입수한 ‘원주시청 공무원 내부고발 의견서'를 보면, 원주시청에 재직하는 ㄱ씨는 “원주시가 시민의 목소리인 시정정책토론을 반려하고 4월7일 밀실 결재를 통해 일방적으로 보존사업을 변경해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원주시 쪽은 철거 계획을 발표하기 전날인 4월10일 아카데미극장 보존과 재생을 위한 시민모임인 ‘아카데미 친구들'(아친)과 만나 대화했다고 밝혔는데, ㄱ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내부적으로 철거 계획을 정해놓고 철거 반대 시민들을 만났다는 의미가 된다.

결재 문서 공개 요구에 원주시는 “비공개 정보”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에서 유일하게 남은 단관극장이다. 1963년 개관해 2006년까지 40년 넘게 운영한 뒤 문을 닫았지만 자리를 지켜왔다. 원주시에 있던 단관극장들이 하나둘 철거되고 2015년 아카데미극장만 남게 되자 원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보존 활동에 나섰다. 이에 2021년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을 시민 소통 공간으로 꾸며 극장 구실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2년 7월 원강수 원주시장의 취임 이후 기조가 바뀌었다. 2022년 12월까지만 해도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하겠다던 원 시장은 2023년 4월11일 브리핑에서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야외공연장과 주차장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다양한 의견 수렴과 내부적인 숙의 과정을 거쳐 신중에 신중을 기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아카데미극장 철거 내용을 담은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은 5월 초 시의회를 통과했고, 예산안 처리만을 남겨두고 있다. 시의회는 25일까지 열리는 임시회에서 아카데미극장 철거 예산안을 포함한 추가경정 예산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ㄱ씨는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아카데미극장을 어떻게 (철거)하겠다는 문서를 4월7일에 작성해서 결재가 났다”며 “4월11일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미 그 브리핑 전에 결재한 문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보다 한 달 앞선 3월10일엔 ‘2023년도 균형발전 특별회계(아카데미극장) 사업변경 신청' 문서도 올라왔다고 주장했다.

ㄱ씨가 4월7일 결재됐다고 언급한 문서의 제목은 ‘아카데미극장 사업변경 추진계획'이다. 원주시는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이 된다”며 문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해당 문서의 존재가 알려지며 5월18일 열린 원주시의회 상임위에서도 문서를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졌지만, 원주시 쪽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강원도 원주시 공무원 ㄱ씨가 작성한 내부고발 의견서.

강원도 원주시 공무원 ㄱ씨가 작성한 내부고발 의견서.

극장 보존 운동을 벌이는 ‘아친' 쪽도 원주시의 철거 계획 발표 과정 전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주민 25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시에 수차례 시정정책토론을 청구했지만 주민등록번호와 본적지 주소를 보완하라는 등의 이유로 번번이 반려당했고, 철거 계획 발표 전날에도 원 시장을 만나기는 했지만 ‘형식상의 만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인근 상인 “극장 철거 약속” 증언

원 시장이 철거 계획 발표 전 인근 상인들에게 극장을 철거하겠다고 약속한 정황도 드러났다. 아카데미극장 인근 시장상인회 관계자는 5월18일 <한겨레21>과 만나 “(원강수) 시장과 공연장을 크게 만들자는 얘기를 했다”며 “장날에 사람들을 모이도록 해서 (시장을) 활성화하자는 약속을 받았다”고 말했다. 약속한 시점을 물으니 “아카데미극장 문제가 터지기 전에 철거하는 쪽으로 (약속을) 했다”며 “(철거 발표도) 그대로 돼서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의회가) 예산안 통과를 안 시키고 또 파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원주시 관계자는 원주시청 공무원의 내부고발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한겨레21>에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책토론은 하지 않았지만 (보존을 주장하는 쪽) 대표분들과 계속 의견 조율을 하고 만났다”며 “저희가 해야 할 것은 했다”고 말했다. 원 시장이 철거 계획 발표 전 상인들에게 철거를 약속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만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 시장님이 상인회분들과 만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아친’은 이날 원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주시의 대표가 시민들에게 한 공적 발언이 의심받는 상태로 철거 예산안 통과를 강행한다면 원주시 행정에 대해 시민들은 불신할 수밖에 없다”며 “철거 예산안은 다음 추경으로 미루고 극장의 보존 여부를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주=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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