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카카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나라

EU·미국 플랫폼 기업 대대적으로 규제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안 폐기
“데이터센터 이중화 같은 기본 장치도 안 만드는데 자율규제에만 맡길 수 있을까”
등록 2022-10-28 17:59 수정 2022-10-29 00:23
2022년 10월16일 경기도 과천의 카카오T 주차 사전무인정산기에 시스템 장애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0월16일 경기도 과천의 카카오T 주차 사전무인정산기에 시스템 장애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0월15일 데이터센터의 배터리에서 난 불 때문에 카카오톡이 ‘5일 7시간30분’ 동안 먹통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카카오톡 가입자 4500만 명을 밑천으로 187개 계열사를 거느린 카카오의 한 해 매출은 6조원이 넘는다. 결제, 택시, 예약, 정부 민원서비스 등 국민의 일상이 멈춰섬으로써 플랫폼 세계에서 카카오의 독점적 위상이 재확인됐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사고 아흐레 뒤인 10월24일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나왔다. 그는 거듭 고개를 숙이며 재해복구 시스템 구축과 피해 보상을 약속했다. 데이터센터 이중화 등 기본적인 재해복구 시스템 구축 투자 비용을 아낀 것이 ‘먹통’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재난관리 체계에 포함’도 업계 반발

“(카카오는) 정보를 이용해 플랫폼을 형성하는, 정보가 목적인 기업이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정보 관리를 소홀히 했다.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시장에 맡기면 다 된다’면서 자율규제 기조를 바꾸지 않는다. 정말 무책임하다.” 서치원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의 말이다.

카카오는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의 독과점 규제를 받지 않는다. 매출액 기준 ‘시장점유율 50% 이상’이라야 독점 여부를 따지는데, 카카오톡은 무료 서비스라 시장점유율이 95%(2021년 카카오 사업보고서)임에도 규제받지 않는다. 법이 플랫폼 기업의 등장과 성장을 못 따라가는 셈이다. 그동안 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들이 쇼핑 등 입점업체에 가격 인하를 압박하는 등 불공정 사례가 드러났지만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던 참이었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의 혁신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규제책조차 만들지 않은 형편이다. 플랫폼 기업과의 거래 과정에서 계약서 작성, 계약 내용 변경 사전통지 의무 등을 담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정부 제정안이 윤석열 정부 들어 폐기된 것이 한 예다. 2020년 네이버·카카오 등의 데이터센터를 국가 재난관리 체계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도 업계의 반발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한 플랫폼 대기업의 임원은 “통신 3사는 다른 사업자를 배제해서 독점인지 쉽게 알 수 있지만 플랫폼 기업 쪽은 사정이 다르다. 누구든지 혁신적인 플랫폼을 만들 수 있고, 이용자는 언제든지 확 빠져나갈 수 있다. 이러한 산업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독점 규제는 너무 구시대적 발상이다”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기조가 자율규제인데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공정위가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법 제정 대신에)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행위를 막기 위해, 기업결합과 시장구획 등 관련 심사지침 개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중독·의존 유발에 규제 장치도 필요해

한국과 달리, 유럽연합과 미국 정부는 GAFA(구글·애플·페이스북(현 메타)·아마존) 같은 플랫폼 대기업의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국내외 플랫폼 기업들은 처음엔 혁신적인 서비스로 시작하지만, 빅테크(IT 대기업)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규제 사각지대에서 수많은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혁신기업들의 진입을 막았다”며 “유럽연합에 이어 미국까지 수년 전부터 빅테크에 대한 규율 방안을 깊이 있게 논의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디지털시장법(DMA), 디지털서비스법(DSA) 등을 마련해 2023년 법 발효를 앞두고 있다. 유럽 지역의 연매출 75억유로(약 10조7천억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시장법은 갑질 등으로 인한 법적 분쟁시 입증 책임이 플랫폼 기업에 있다고 규정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도 2021년 6월 하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플랫폼 기업 규제와 관련한 5개 법안을 발의했다. 플랫폼 기업의 이해충돌 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 뼈대다. 이 법이 시행되면, 아마존이 자체 제작상품을 자사 플랫폼에 판매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는 “데이터 독점은 산업과 시장 독점으로 이어진다. 큰돈이 안 들어도 데이터센터 이중화 같은 기본 장치도 안 만드는데 자율규제에만 맡길 수 있겠나. 공정위 지침만으로 제대로 된 제재가 가능하겠나. 혁신성장과 독과점 규제를 균형 있게 봐야 하는데, 정부가 혁신성장의 도그마에 빠져 두 개념을 대립적으로만 본다”고 말했다.

플랫폼 독점을 소비자의 ‘의식 독점’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10월26일 문화연대가 연 ‘플랫폼 공룡: 고쳐쓰기’ 긴급토론회에 나와 “플랫폼 대기업은 시장을 무차별적 폭식 하면서 기술을 통해 인간 의식과 일상을 파고들어 중독·의존을 유발한다. 다양한 규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광고 유형인 ‘다크패턴’ 등이 그 예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이 카카오를 ‘국가 기반 인프라’(10월17일 발언)라고 치켜세운 걸 보면 카카오를 대마불사로 보는 관점이 녹아 있는 것 같다. 그럴수록 반독점 규제 정책의 구사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무료 서비스라서 독과점 규제를 받지 않는 카카오톡은 정말 ‘공짜’ 서비스일까. 카카오의 2021년 매출액(6조1366억원) 가운데 톡비즈 등 플랫폼 관련 매출이 52.8%(3조2407억원)를 차지한다. 이용자의 검색 정보 등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맞춤형 광고’를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용자의 정당한 데이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더 엄격하게 보호하고 노동조합처럼 개개인을 대신해 플랫폼 기업과 ‘데이터 접근 권한’ 등을 협상할 수탁자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데이터 협동조합’ 등 새로운 패러다임을

오영진 테크노컬처 연구자는 “이번 사태는 단순 서비스 불량 사건이 아닌 데이터와 그 접근 권한이 한 회사의 서버에 있을 때 어떤 재난이 촉발되는지 경험한 사건”이라며 “수세적인 개인정보 보호를 넘어 소비자가 기업 이익을 견제하고 스스로 접근권한과 관리방법을 제시하는 ‘데이터 협동조합’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