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엔 이틀의 ‘빨간 날’이 있었다. 개천절인 10월3일, 한글날 대체공휴일인 10월10일. 둘 다 웹툰 연재를 잠시 쉬는 ‘휴재’는 없었다.
9년차 웹툰 작가 ㄱ씨는 2019년부터 2022년 8월까지 4년간 공휴일에 쉬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공휴일을 앞두고 원고를 며칠 더 앞당겨 제출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이 더 많았다. 웹툰 플랫폼과 에이전시(웹툰 유통업체) 직원들이 공휴일에 쉬기 때문에, 평소보다 이른 마감을 요구해서다.
카카오웹툰에 <나 혼자만 레벨업>을 연재해 140억 조회수를 올린 장성락 작가가 37살의 나이에 2022년 8월 뇌출혈로 숨지고, 바로 다음달인 9월 카카오페이지 웹툰 <록사나>의 작화 작가가 유산을 겪은 뒤에도 플랫폼 담당자로부터 휴재를 거절당해 작업을 계속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웹툰 작가들은 법적으로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웹툰 플랫폼과 에이전시로부터 사실상 노동시간 등을 통제받고 플랫폼에서 작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작가들 스스로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돌볼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웹툰을 연재하면서 ㄱ씨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5시간을 넘기기 힘들었다.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쉼없이 작업했다. 침대에 누워도 마감 압박 탓에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는 일주일에 110컷 이상을 그려야 하는 웹툰 두 편을 동시에 연재했다. 두 편을 연재한 이유는, 한 편만으로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웹툰을 완성하려면 어시스트(보조 직원)를 고용하고 배경 소재가 되는 전자파일도 사야 했다. 매달 300만원 넘게 고정비가 나갔지만, ㄱ씨가 웹툰 1화당 받은 대가는 한 편은 60만원, 다른 한 편은 40만원에 불과했다. 한 달에 각각 4화씩 꼬박 그려야 400만원을 받는다. 고정비를 빼고 나면 생활비조차 빠듯했다.
ㄱ씨는 에너지바 한두 개만 먹으며 웹툰을 그렸다. 2022년 4월엔 복통이 심해 응급실에 보름 동안 네 번이나 실려갔다. “장이 하도 안 움직이니까 멈춰버린 거예요. 결국 입원했죠. 그런데 마감해야 하니까 거기서도 태블릿을 꺼내서 일했어요.”
ㄱ씨는 건강 문제로 두 차례 휴재를 시도했다가 모두 실패한 경험이 있다. ㄱ씨가 수술받는 동안, 에이전시 담당자가 휴재용으로 비축해놓은 원고 4화분을 작가와 상의 없이 공개해버렸다. 수술이 끝난 뒤 비축 원고를 하나씩 공개하면서 쉬려던 ㄱ씨는 퇴원하자마자 바로 업무에 복귀해야 했다. 결국 연재 1년 내내 한 번도 휴재하지 못했다.
무릎을 다쳤을 때는 에이전시 담당자로부터 ‘(휴재하면) 위약금을 물어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ㄱ씨는 제대로 앉을 수도 없는 몸 상태로 2개월을 더 일했다. 에이전시는 플랫폼에 작가의 웹툰을 유통해줄 뿐만 아니라, 플랫폼을 대신해 휴재나 제작 과정 등 ‘작가 관리’ 업무를 맡는다.
ㄱ씨가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한 두 가지 이유는 생계와 계약 조건 때문이다. ㄱ씨가 연재하는 웹툰 한 화의 선수금(MG)은 60만원이다. 작품을 공개한 뒤 한 화의 수익이 60만원을 넘지 않으면, ㄱ씨에게 돌아가는 몫이 없다. ‘노동 대가’가 아니라 ‘사업 수익’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드물게 수익 60만원을 넘기더라도, 60만원을 넘긴 수익 가운데 작가 배분율(RS)은 3%에 그친다. 나머지 97%는 플랫폼과 제작사 몫이다. “제가 신인 작가라 계약 조건을 막 따질 수 없었어요. 2년이 지난 뒤에야 (배분율을) 일부 조정해줬는데 그래도 빠듯했죠.”
이뿐만 아니라, 에이전시는 계약서에 정확한 계약 종료 시점을 적지 않고 ‘원작 스토리 완결시’라고만 썼다. 질병 등 연재 과정에서 작가 권익을 보호하는 사항도 계약서에 없었다. 계약한 분량은 50컷이었지만, 에이전시 담당자는 오히려 ‘요즘 독자들에게 60컷이 인기 있다’며 계약 분량보다 10컷을 더 그려달라고 수시로 요구했다.
플랫폼의 댓글도 ㄱ씨를 이중으로 압박했다. “그림체가 조금만 망가져도 ‘이 작가 왜 쓰냐’ 이런 댓글이 바로 달렸어요. 어떤 독자는 제 SNS 계정까지 찾아와서 ‘이럴 시간에 그림에나 집중하세요’라고 악플을 달아요. 그래도 플랫폼이나 에이전시 모두 아무런 조처를 안 했어요.” 2021년부터 ㄱ씨는 악성 댓글로 인한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ㄱ씨만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웹툰 작가 710명의 하루 평균 창작 시간은 10.5시간이다. 주중 평균 창작 일수는 5.9일로, 일주일에 평균 하루꼴로 쉰다. 응답자의 62.1%가 악성 댓글을 경험했다. 절반 넘는 52.8%가 불공정 계약을 한 적이 있다.
웹툰 작가들의 과로와 부당한 계약 조건의 핵심에는 웹툰 산업 대형화가 있다. 2013년 매출 규모 1700억원이던 웹툰 산업은 현재 1조원 넘는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조사하는 ‘웹툰 산업체 실태조사’를 보면, 웹툰 작가 수도 2013년 4천여 명에서 2020년 7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에 웹툰 작품 수도 4440편에서 8154편으로 갑절 가까이 증가했다. 이에 비해 웹툰 플랫폼 수는 28개(2013년)에서 31개(2020년)로 조금 늘었다. 이용자 수가 특정 플랫폼에 편중되는 서비스 특성 탓이다. 작품을 납품하려는 작가가 납품처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플랫폼의 영향력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2013년 웹툰 플랫폼이 작가 누리집을 대신해 작품을 싣는 구실에 그쳤다면, 2022년 플랫폼은 어떤 작품을 발탁해 화면 전면에 배치하고 광고를 집중해 흥행시킬지까지 결정하는 권한이 있다. “플랫폼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작품 하나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사무국장) 셈이다.
이런 플랫폼의 영향력 확대는 두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플랫폼에 발탁되려는 작가들 사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70컷을 모두 컬러로 연재’하는 것이 업계 표준이 됐다. 풀컬러 70컷은 작가들이 일주일 꼬박 그려야 맞출 수 있는 작업량이다. 흑백이나 50~60컷을 그리는 적정 노동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동시에 작가가 노동조건을 플랫폼과 협상할 접점이 더 줄어들었다. 플랫폼은 과거 작가와 직접 계약하던 방식을 바꿔, 지금은 스튜디오(웹툰 제작사)와 에이전시(웹툰 유통사)를 통해 계약하도록 한다. “에이전시 담당자(PD) 한 명이 관리하는 작가가 적어도 30명은 돼요. 이 사람들 입장에선 한두 사람 휴재를 허용해주면 통제하기 어렵고 플랫폼 쪽 눈치도 보이니 거의 안 해주죠.” 17년차 웹툰 작가 ㄴ씨의 말이다.
특히 별점, 댓글 등 플랫폼이 제공하는 독자 반응은 작가를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공들여 그린 그림에 ‘작가가 연애를 안 해본 것 같다’ ‘그림이 단순하다’ 이런 툭툭 던지는 댓글을 아무 필터 없이 보게 된다. 심지어 이미 수십 장 작업해둔 작품인데 ‘표지가 별로’라는 댓글 몇 개 달리니 회사가 계약을 중단해버렸다.”(9년차 일러스트 작가 ㄷ씨)
자기 몸을 써서 일하며 심신이 마모되는 것은 임금노동자도 프리랜서도 똑같다. 임금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 주 52시간 근무와 주휴일 등을 보장받지만,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닌 프리랜서의 몸과 마음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웹툰 작가들은 한 화의 최대 컷수를 제한하고 정기 휴재권을 도입하는 등 건강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플랫폼에 요구한다. 플랫폼 쪽은 이런 요구가 일을 완성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지급하는 도급계약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웹툰 플랫폼과 제작사 등으로 구성된 ‘한국웹툰산업협회’의 서범강 협회장은 “작가 건강권 보장은 모두가 공감하는 과제지만 ‘작가의 휴재 요청을 플랫폼이 받아들이는 것’과 ‘일하지 않았는데도 비용을 지급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노동시간 상한선을 제한하는 것도 (정부가 아닌) 기업의 의무가 과연 맞나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작가와 플랫폼 양쪽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자, 문화체육관광부가 2022년 2월 웹툰 플랫폼과 제작사, 창작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웹툰 공정·상생협의체’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7차례 회의에도 양쪽이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웹툰노조는 창작노동자의 쉴 권리를 명문화하고 웹툰 노동의 평균노동 실태를 주기적으로 조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웹툰 및 웹콘텐츠 진흥에 관한 법’(웹툰법) 제정 등 입법 운동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10월24일 열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요구사항을 전달할 예정이다.
하신아 웹툰노조 사무국장은 “정부가 실태조사를 해 작업량과 노동시간의 관계를 평균적으로 산출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60컷으로 계약하고도 70컷, 80컷씩 그리게 하는 관행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애리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웹툰 작가 등 창작노동자들은 발주자로부터 업무 전반에 걸쳐 상당한 노동 통제를 받는데도 창작물에 대한 자유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법이 보호하는 ‘근로자’ 범주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며 “이런 창작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호할지 제도적 탐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입법조사처 ‘한덕수, 총리 직무로 탄핵하면 151명이 정족수’
음악인 2600명 “구미시장 사과하라”…이승환, 공연 요청 늘어 연장
윤석열 쪽 “엄연한 대통령인데, 밀폐 공간에서 수사 받으라니”
‘내란 비선’ 노상원 수첩에 정치인·언론인 ‘사살’ 표현 있었다
이승환 “‘정치 언행 않겠다’ 서약 거부, 구미 공연 취소 통보 진짜 이유”
노상원 수첩, 방첩사 체포명단과 겹친 ‘수거 대상’…요인 사살까지 계획
[단독] 윤석열, 3월 말 “조만간 계엄”…국방장관·국정원장·경호처장에 밝혀
홍준표, 마음은 대선 ‘콩밭’…“대구 시장 졸업 빨라질 수 있어”
이승환 구미 콘서트 취소 후폭풍…“김장호 시장은 사과하고 사퇴하라”
[속보] 헌재 “윤석열 통보서 받은 걸로 간주…27일 탄핵심판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