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광화문, 절반의 광장, 절반의 공원

전문가와 걸어본 새로 조성된 광화문광장,
서울시민에게 광화문은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등록 2022-09-29 12:42 수정 2022-09-30 01:03
새로 조성된 광화문광장 전경.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새로 조성된 광화문광장 전경.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기후위기 시대에 교통수단의 혁신은 큰 화두다. 많은 나라와 도시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를 덜 사용하고 보행과 자전거,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고 있다. 한국에도 이런 과제가 던져진 지는 오래됐지만, 이런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도시는 많지 않다.최근 교통 혁신과 관련해 서울에서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보행자 중심 공간인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이 새로 문을 연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울 서대문구가 서울에서 유일한 대중교통전용지구인 연세로에 일반 차량 통행을 다시 허용하려는 것이다.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찾아가봤다. _편집자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서울 광화문 앞이 변화한 모습. ❶1900년 전후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서울 광화문 앞이 변화한 모습. ❶1900년 전후

❷1915년

❷1915년

광화문광장이 2022년 8월6일 다시 문을 열었다. 2020년 11월 재구조화 공사에 들어간 지 1년9개월 만이다.

광화문광장은 오랫동안 말도 탈도 많았다. 오세훈 서울시장 1기 시절(2006~2011년)엔 ‘세계 최대 중앙분리대’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2011~2020년)엔 ‘서쪽 편측 광장안’을 고집해 논란을 일으켰다. 새로 만들어진 광화문광장은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풀었을까?

9월17일과 20일 두 차례 찾아가본 광화문광장은 예전과 달라진 면모를 보였다. 광화문광장의 남쪽 중심이라고 할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보면 동쪽과 서쪽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서쪽은 나무를 빽빽이 심어 광장 북쪽까지 띠숲을 이뤘고, 동쪽은 7~8차로 정도의 차도만 있다. 차도 쪽으로 가보니 예전에 중앙광장의 양쪽 끝에 있던 역사물길이 사라져 더 편안하고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❸1974년

❸1974년

❹2018년

❹2018년

녹지 넓이 3배 이상 늘어나

광화문광장은 2020년 11월 이전 광장 양쪽으로 있던 각각 5~6차로 차도 가운데 서쪽 차도를 없애고 동쪽 차도를 넓혔다. 따라서 서쪽 세종문화회관 앞쪽으로 동서 50~60m, 남북 510m 정도의 띠 모양 광장이 생겼다. 광장 넓이는 기존 1만8840㎡(5709평)의 2배를 넘는 4만300㎡(1만2212평)로 늘어났다. 서울시는 이 가운데 서쪽 절반은 사실상 공원으로 조성했다. 큰키나무 300그루 등 모두 5천 그루의 나무와 풀을 심어 녹지 넓이가 2830㎡에서 9367㎡로 3배 이상 늘어났다.

광장의 절반을 공원으로 바꾼 서울시의 정책은 성공적이었을까?

먼저 숲을 조성한 것에 시민 반응은 좋았다. 토요일인 9월17일 낮은 물론이고 9월20일 화요일 낮 1시쯤에도 많은 시민이 숲에 나와 있었다. 특히 의자나 탁자, 벤치, 계단식 돈대 등 거리 가구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광화문광장엔 고정 벤치 20개, 고정 탁자 8개, 이동 탁자 24개, 이동 의자 96개 등이 설치됐다.

한국의 도시엔 광장이나 공원 같은 공공공간도 부족하지만, 거리 가구는 거의 없다. 예를 들면 이명박 시장 시절(2002~2006년) 조성된 서울시청 광장은 넓이가 1만2천㎡(3600여 평)에 이르지만, 나무도 적고 거리 가구는 거의 없다.

강성필 서울시 광화문광장사업과장은 “기존 광화문광장에 대해 앉아서 쉴 곳이 없다, 의자나 벤치 같은 시설이 필요하다는 시민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나무를 심고 편의시설을 넣었는데, 현재도 의자나 벤치가 부족하다는 민원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선 비판적인 의견도 있다. 배정한 서울대 교수(조경학)는 “서쪽 블록과 붙여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그러나 광화문 앞을 공원처럼 만든 것은 도시적 맥락에 맞지 않는다. 앞으로 시간을 갖고 지켜보면서 광화문 앞이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❺2022년

❺2022년

광장 중심 ‘세종문화회관, 파사드’를 숲으로 가려

광장 남쪽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분수들이다. 규모가 큰 3개의 바닥분수는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과 현대해상 건물 바로 북쪽, 세종문화회관 바로 남쪽에 설치됐다. 주변 환경을 고려한다면 세종문화회관 남쪽 분수 정도만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광화문광장에 동행한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학)는 “1974년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열었을 때 터널분수를 만들었다. 거기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50년이 다 되도록 공간 감각이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름은 ‘광화문광장’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광장’이다. 세종문화회관을 중심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 광장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서쪽만 주변 지역과 붙어 있고 나머지 3면은 차도에 접해 있다. 광화문과도 차도로 단절됐으며, 머잖아 광화문 앞에는 월대 주변으로 ‘진짜’ 광화문광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이 광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파사드’(입면)다.

그런데 광장의 서쪽 절반을 숲으로 조성하면서 세종문화회관 앞이 조금 답답해졌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나무를 심지 않았다면 이 광장의 중심인 세종문화회관의 파사드가 더 당당하고 훤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의 시민 활동도 더 자유로웠을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나무를 심지 않아 햇볕이 너무 뜨거울 것 같다면 파라솔을 설치하는 게 더 어울린다.

특히 세종문화회관 본관과 별관 사이엔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 계단’에 견줄 만한 크고 멋진 계단이 있다. 공연이나 집회의 객석으로 손색이 없다. 본관 앞에도 완만한 몇 개의 계단이 있는데, 그 앞에서도 작은 공연을 할 수 있다. 9월20일 낮에도 젊은 남녀 가수가 본관 앞에서 공연 중이었고, 많은 시민이 계단에 앉거나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정부서울청사 지나면 광화문·경복궁·청와대 한눈에

세종문화회관 북쪽은 역사지구라 할 만하다. 먼저 세종로주차장 앞에 사헌부 터 유적이 공개돼 있다. 지표로부터 2.5~3m 아래에 사헌부의 문과 담장, 우물, 배수로 등 유적이 남아 있다. 지표가 조선시대보다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이곳 배수로는 남동쪽으로 휘었는데, 이것은 광화문 앞 육조거리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경복궁의 남북 축은 정남향이 아니라 남남서로 틀어져 있다. 이 방향에 따르면 육조거리 또한 남남서로 틀어져야 하는데, 육조거리는 사헌부 앞 정도까지만 남남서로 틀어져 있고, 그 남쪽으로는 남남동이나 정남향에 가깝게 꺾인다. 그래서 사헌부 앞의 배수로가 남남동으로 꺾인 것이다. 경복궁의 남북 축이 남남서로 틀어진 점은 사헌부 터 북쪽의 육조마당 잔디밭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육조마당 바로 앞의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 터’ 표지판은 광화문과 경복궁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사진 찍을 수 있는 지점이다.

2022년 9월20일 새로 조성된 광화문광장 안 작은 숲에서 시민들이 쉬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22년 9월20일 새로 조성된 광화문광장 안 작은 숲에서 시민들이 쉬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사헌부 터 북쪽부터는 진짜 광장이다. 광화문광장의 서쪽 절반은 주로 숲이고 동쪽 절반은 주로 시설물이다. 동쪽 절반엔 남쪽부터 이순신 동상, 지하 경사로, 세종 동상, 대형 화분(40개) 등이 죽 이어져 있다. 그런데 사헌부 터를 지나 정부서울청사 본관 앞에 이르면 더 이상 시설물이 없다. 육조마당 잔디밭이 있을 뿐이다. 역사물길이 있지만, 그 남쪽과 비교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선 북쪽의 광화문과 경복궁, 청와대, 백악(북악)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간과 시야가 시원하다.

현재 육조마당 북쪽 광화문 앞엔 월대 복원을 위한 발굴, 동쪽엔 의정부 터 발굴이 이뤄지고 서쪽엔 정부청사 본관이 있다. 이경훈 교수는 “광화문광장 주변은 광장을 받쳐주는 건물이 별로 없어서 파사드가 엉망이다. 광장 주변 건물들은 직접 광장과 연결돼야 하고, 1층에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시설이 있어야 하며, 너무 높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세종로주차장, 의정부 터, 미국대사관 등을 광화문광장과 잘 어울리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전 시장 각자의 광화문

20여 년 전 시민단체 문화연대는 광화문광장 주변 전체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제안했다. 주변 건물의 쓰임새에 대한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그러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오세훈 시장은 중앙형 광화문광장을 만들었고, 박원순 전 시장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추진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만드는 등 각자 광화문 앞을 써먹었을 뿐이다.

이제 광화문광장과 주변 전체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때가 아닐까.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