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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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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부자들 많으니까 사드를 성주로 밀었는기라”

추석 전후 군사물자 기습 반입에 소성리 주민들 저항… 안전과 평화 보장해달라는 외로운 외침 7년째 이어져
등록 2022-09-20 11:04 수정 2022-09-21 02:09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달마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전경. 왼쪽에 사드 포대가 보인다. 오른쪽은 골프장 시설을 개조해 만든 군사건물로 추정된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달마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전경. 왼쪽에 사드 포대가 보인다. 오른쪽은 골프장 시설을 개조해 만든 군사건물로 추정된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022년 9월8일 아침, 산골 마을 하늘 위로 군사용 헬기가 지나갔다. ‘두두두두두두두’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마을회관 옆 동네슈퍼에서 이옥남(73) 할머니가 놀란 듯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헬기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연이어 경찰버스 2대가 마을 길을 빠져나갔다. 또 다른 헬기도 상공을 가로질렀다. “헬기 나오고 깜짝 놀랐네. 버스도 짐차도…. 아, 오늘 왜 이렇게 시끄러워.” 그는 밤에도 차 소리가 들리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물자를 반입하는 군용차량이 지나가나 싶어 뛰쳐나오곤 한다. 헬기는 어느덧 까만 점으로 보일 만큼 멀어졌다.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3㎞가량 떨어진 곳에 미군이 주둔하는 사드 기지가 있다. 초록빛 산이 능선을 이뤄 마을에선 기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이 새해 소원을 빌러 간다는 달마산 꼭대기에 오르면 사드 기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80도 남짓한 각도로 세워진 사드 포대는 하늘을 향했다. 기지 한가운데 주차된 군용트럭 10여 대도 보였다. 컨테이너와 천막이 곳곳에 설치됐다.

추석 연휴가 끝난 2022년 9월14일 소성리 주민들이 “환경영향평가에 참여한 주민대표의 신원을 공개하라”며 성주군청 1층 로비에서 농성하고 있다.

추석 연휴가 끝난 2022년 9월14일 소성리 주민들이 “환경영향평가에 참여한 주민대표의 신원을 공개하라”며 성주군청 1층 로비에서 농성하고 있다.

두두두두…헬기 소음이 마을을 괴롭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5월 만난 뒤로 사드 기지 정상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사드 정상화’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사드 기지로 기지운영에 필요한 물자반입을 보장하고, 미군이 컨테이너 막사 등에서 거주하는, 임시 작전배치 상태를 벗어나는 조처를 뜻한다. 결국에는 한국군 부지인 사드 기지를 주한미군에 공여하는 절차까지도 계획 중이다. “사드 정상화는 문재인 정부 때 사드 기지 운용이 비정상이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정치적 표현이다. 윤석열 정부가 1년 이내로 환경영향평가를 끝내고 이후 송전망 공사까지 이뤄져 사드 기지에 안정적으로 전력까지 공급될 수 있다. 이 경우 장기적으로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MD) 체제에 성주 사드 기지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MD의 아시아 최전방이 되는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설명이다.

사드 정상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소성리에도 긴장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9월4일 새벽 1시30분께 불도저, 유류차, 승합차 등이 사드 기지에 들어갔다. 주민 4명이 차량 진입을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9월8일 오전 9시40분부터 1시간 동안 기자가 목격한 군용헬기만 8대였다. 물탱크를 실은 군용 급수차 2대, 덤프트럭 2대, 경찰버스 4대도 마을 길을 지나갔다. 9월14일 오전 10시30분에는 유류차 1대가 기지로 들어가며 마을 주민과 경찰의 충돌이 있었다. 이날 저녁 8시30분에도 유류 등을 실은 차량 5대가 들어가는 것을 주민들이 막았다. 밤 10시15분께 경찰은 이들을 모두 도로 밖으로 끌어냈다.

소성리 마을 길을 미군에게 내준 지 올해로 7년째다. ‘소성길’로 불리는 1차선 마을 도로는 사드 기지에 물자를 보내는 지상 통로다. 문재인 정부 때는 주 2~3회 군용차량이 지나다녔다. 이에 반대하는 소성리 할머니들은 새벽 6시마다 마을회관 앞에 모여 길을 막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6월부터 군용차량 통행 횟수는 주 5회로 늘어났다. 9월3일부터 군용차량 통행을 일주일 내내 상시로 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됐다.

9월8일 마을회관 옆에 세워진 비닐하우스에서 만난 임순분(68) 부녀회장이 기자에게 물었다. “이따가 군청으로 오실 거죠?” 이날 소성리 주민들은 성주군청 로비를 점거하고 군수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할 계획을 세워둔 터였다. 소성리에 45년째 사는 임 부녀회장은 마을에서 청년 축에 속한다. ‘NO 사드’라는 문구가 크게 적힌 분홍색 조끼를 입은 그는 악수하자마자 곧장 자리를 떴다.

사드 기지로 가는 길을 내준 소성리 마을 입구에서 ‘사드 기지 반대’ 펼침막이 걸려 있다.

사드 기지로 가는 길을 내준 소성리 마을 입구에서 ‘사드 기지 반대’ 펼침막이 걸려 있다.

작은 시골이 미사일방어 최전방 되나

이날 오전 11시30분 군청 로비에 소성리 할머니 14명이 모였다. 7년간 이들을 도운 원불교 교무, 기록활동가 등도 함께했다. 할머니들은 은박지를 깔고 앉아 3시간 동안 기다린 끝에 겨우 군수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사드 기지 관련 환경영향평가위원회에 소성리 주민이 아닌데도 주민대표를 맡은 성주군민의 신상을 공개할 것. 둘째, 마을 주민과 합의 없이 군용물자를 기습적으로 기지에 들이지 않게 성주군이 협조할 것. 셋째, 환경영향평가 항목에서 24시간 동안 전자파를 측정한 뒤 전광판에 수치를 공개할 것.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 등이 환경에 미칠 결과를 분석하는 절차다. 2017년 미군에 공여할 사드 기지 터 70만㎡를 둘로 쪼갠 뒤 1단계 공여부지를 33만㎡ 미만으로 지정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만 진행했다. 주민 의견 수렴 등의 절차는 생략됐다. 문재인 정부는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기로 했으나, 평가위원회에 참여할 주민들이 구해지지 않아 미뤄진 상태였다. 일반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만 군 장병이 사는 컨테이너 대신 제대로 된 막사를 지을 수 있다. 국방부는 9월7일 대기질, 수질, 소음·진동, 전파장해 등 11개 항목을 중점 평가하겠다고 누리집에 공개했다.

군수와의 면담 자리에서 박수규 사드철회성주대책위 대변인이 입을 열었다. “소성리보다 더 심각한 곳이 김천입니다. 2년 사이 주민 아홉 분이 암에 걸렸고 다섯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환경평가위원회가) 1년에 4번 정도 와서 불특정 지점에서 측정하는 건 군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거라 판단합니다. 상시적으로 측정이 가능해야 합니다.”

소성리 주민 아닌데 어떻게 주민대표?

그러나 소성리 주민이 아닌 성주군민이 어떻게 소성리를 대표할 수 있냐는 주민들의 항의에 군청 쪽은 ‘위원 공개는 국방부 관할’이라는 이유를 들어 명단 공개가 어렵지만 건의해보겠다고 밝혔다. “오늘 이카고 있을 날이 아니다. 장 봐야 하는데 지금 뭐 하는 일이고. 우리 밤새도록 있어야 하나.” 백광순(79) 할머니가 말했다. “아예 본때를 보여줘야 하면 추석에도 여기 있어야 해. 어짤 수가 없어. 차례상 못 차려도 조상님도 이해할 끄라. 제대로 협상을 못 이끌어내면 돗자리 사가지고 이불도 주고. 정말로요.” 임순분 부녀회장도 목소리를 높였다. 사드 기지가 들어선 인근에 조상 묘지를 둔 소성리 주민도 적잖았다.

군수와의 면담이 끝났지만 할머니들은 군수실 앞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환경영향평가위원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이 나왔다. “니들 소성리에 와봤나. 우리는 7년 꼬박 있었어.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 피눈물 나와!” 도금연(85) 할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다. “서울에 부자들 많으니까 사드를 성주로 밀었는데 우리는 성주에 촛불을 들었는데 제일 약한 고리 찾으니까 소성리라. 주민 몇 안 되고 나이 든 사람 많고 길도 다 됐겠다. 소성리 주민들이 7년 끈질기게 싸울지 몰랐겠지. 성산포대에 최적지라고 했다가 소성리에 사드 갖다놨다. 성주에 사드 들어서는 걸 반대했던 인간이 소성리에 사드 넣고 (환경영향평가) 위원으로 들어간 거예요.” 임 부녀회장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농성은 오후 6시까지 이어졌다. 농성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몇 년 전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미국이 사드를 요구하거나 북한이 미사일을 쏘거나 대통령이 국제정치적 결단을 내릴 때 주민 80여 명이 사는 산골 마을 소성리에는 주민 수의 100배가 넘는 경찰력이 투입되기도 했다. 경찰이 새벽에 마을을 급습하고 사드를 실은 미군 차량이 마을 길을 지나갔다.

2017년 4월26일 사드발사대 2기 등이 마을에 처음 배치되던 때였다. “새벽이었어. 8천 명이라고 했나. 경찰이 마을에 다 깔렸으니까. 경찰들이 골목골목마다 집집마다 다 섰어. 집에 있는 사람 나오지 못하게 했어. 경찰이 머리에는 새까만 거 쓰고 방패 빼서 몰아넣고. 차가 사드 싣고 가는 거 밤새우며 눈으로 봤지. 막을 수 있나.” 마을에 터 잡은 지 60년이 넘은 도경임(82) 할머니가 말했다.

성주군청에서 농성 중인 임순분 부녀회장, 백광순, 도경임 할머니(왼쪽부터).

성주군청에서 농성 중인 임순분 부녀회장, 백광순, 도경임 할머니(왼쪽부터).

파출소도 없던 마을에 경찰력이 가득

한때 범죄도 없고 파출소도 없어 경찰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소성리였다. 마을회관 건너편에 골프장 캐디 숙소로 쓰이던 기숙사 건물은 군인들이 머무는 장소로 쓰인 지 오래다. 경찰은 이 건물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상시 대기한다. 전경을 태우고 돌아다니는 경찰버스도 마을에 수시로 눈에 띄었다. 군용물자를 나르는 헬기와 트럭도 일상을 침범했다. “공기도 좋고 물 좋고 산 좋지 다 좋았어. 느닷없이 사드가 들어와서 이렇게 힘들어. 마음에 신경이 쓰여서 몸도 안 좋아요. 다리 떨림 증세 오고 신경을 써가지고 귀가 안 들려서 병원 가니 신경성이라 캐서. 헬기 지나가면 쳐다보고 욕 나오고 낮게 떠갈 때… 소리가 엄청 시끄럽거든. 이래저래 신경 쓰고 마음이 우울해져.” 55년을 소성리에 산 백광순(79) 할머니가 말했다.

이날 저녁, 텐트 상황실에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경찰의 급습에 대비해 모인 이들이다. 임순분 부녀회장은 사드가 마을에 들어선 2017년 4월 첫날의 기억을 꺼냈다. 그날 오후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가득했다. 마을 주민들이 절망하며 울고 있을 때 읍에서 온 이들이 아무 말 없이 마을회관을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손을 잡아주고 갔다. 무엇이라도 배워보자며 그림, 글쓰기, 노래 중 하나를 고르라고도 했다. 할머니들은 노래를 택했다. 마을회관 앞에서 집회하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소성리 주민을 버렸는데 <애국가>를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고향의 봄>을 함께 불렀어요.” 임 부녀회장이 말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그 뒤를 이어 노랫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들이 다들 울고 있어서다.

9월3일 오후, 사드 기지로 이어지는 진밭교에서 ‘사드 배치 반대를 위한 제13차 범국민 평화행동’ 집회가 열렸다. 이날 앞자리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던 할머니들은 <동지가>를 함께 불렀다. ‘살을 에는 밤/ 고통받는 밤/ 차디찬 새벽 서리 맞으며/ 우린 맞섰다….’ 할머니들이 활동가들에게 처음 배웠다는 노래다. “노랫말이 지금 우리 현실과 너무 똑같아서요. 흰 종이에다 글씨를 크게 써서 배우는데 중간에 다들 울기 시작했어요.”(임순분) 이날도 할머니들은 <동지가>를 부르며 눈물 흘렸다.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800여 명의 시민과 활동가들이 풍물, 연극, 노래까지 공연을 펼쳐 보이자 할머니들은 다시 웃음을 찾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더 부르지 못한 노래

소성리 마을 어귀에는 사드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이 걸렸다. 7년이라는 긴 투쟁의 시간이 보여주듯, 색이 바래 글씨조차 희미해진 펼침막이 종종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전국 곳곳에서 소성리를 찾은 시민들이 연대의 의미로 걸어놓은 새 펼침막이 더 많았다. ‘사드 뽑고 평화 심자! 사드 가고 평화 오라!’ ‘평화로운 소성리에 전쟁 불씨 뽑아내자!’ 선명한 잉크로 적힌 문구였다.

성주(경북)=글 이정규 기자 jk@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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