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노인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 기준)이 2020년 38.9%로 집계돼, 전국 가구 대상 조사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최초로 40%대 이하로 하락했다. 이는 무엇보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이다. 공적연금 지출이 높은 나라일수록 노인빈곤율이 낮다는 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로도 일관되게 증명된다.
이러한 노인빈곤 개선에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얼마큼 기여했느냐를 두고, 한국 사회에선 다소 설왕설래가 있는 것 같다.
2020년 38.9%의 노인빈곤율을 연령대에 따라 뜯어보면 만 65~74살 노인(전기 노인)은 31.4% 빈곤율을 보이는데 만 75살 이상 노인(후기 노인)은 무려 52.0%였다(표 참조). 같은 노인 안에서도 연령에 따라 빈곤율 차이가 매우 크다. 노인빈곤율은 2019년에 견줘 큰 폭으로 하락했다(전기 노인 6.8%, 후기 노인 6.5%). 이런 하락이 기초연금과 관련 있다면, 기초연금 수급자 추이와 노인빈곤율이 연동돼야 할 것이다.
먼저 기초연금 급여액을 보면, 2019년 25만원으로 전년도 21만원에 견줘 19% 올랐다. 그전에 대개 1%대로 오르던 것에 견주면 인상폭이 컸다. 2019년부터는 하위 20% 노인에게 기초연금 30만원이 지급됐다. 하지만 2019년 노인빈곤율은 41.4%로 전년(42.0%)보다 그리 내려가지 않았다. 후기 노인 빈곤율(55.6%)은 전년(55.1%)보다 오히려 올라갔다. 기초연금 수급률은 후기 노인이 76%가량으로 전기 노인(60%)보다 훨씬 높은데, 2019년 기초연금이 인상됐는데도 후기 노인 빈곤율이 오히려 더 올라간 것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2019년 기초연금 급여 25만원이 절대적으로는 여전히 낮은 금액이고, 하위 20%에만 30만원이 지급돼 노인빈곤율 하락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2020년 기초연금 급여 30만원 지급 대상이 하위 40% 노인으로 확대된 것이 2020년 노인빈곤율을 크게 떨어뜨린 주요인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이는 연금급여액 인상이 노인빈곤율 하락에 중요하게 기여함을 뜻한다.
그런데 같은 기간 국민연금의 노령연금 급여액도 이전보다 좀더 큰 폭으로 올랐다. 2019년 노령연금 평균급여액은 52만7천원으로 2018년(51만원)보다 3.4% 올라, 그 이전 인상폭(1.3~1.9%)보다 컸다. 2020년에도 전년보다 2.6% 인상됐다. 국민연금 노령연금의 경우, 전기 노인은 10년 이상 가입하고 연금을 받는 수급자가 63%이지만 후기 노인은 특례연금(최소 가입기간 10년을 채울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보험료 납부 기간 5년 이상이면 노령연금을 지급함) 수급자가 92%에 이른다. 10년 이상 가입한 수급자의 노령연금 급여가 평균 53만원가량인 반면 특례연금은 22만원에 불과하다.
2019년 기초연금 수급률이 높은 후기 노인의 빈곤율이 오히려 올라가고 수급률이 낮은 전기 노인의 빈곤율은 내려간 것은, 후기 노인은 특례연금에 주로 의존하지만 전기 노인은 국민연금 급여에 좀더 의존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국민연금 노령연금에서 10년 이상 가입한 수급자가 계속 늘어나지만 특례연금 수급자는 계속 줄어드는 데서도 드러난다.
노령연금 수급자는 2019년 403만 명으로 전년(378만 명)보다 6.7% 증가했다. 2020년에는 440만 명으로 9.2% 늘어났다. 특례연금 수급자는 줄고 있으므로, 노령연금 수급자의 증가는 전기 노인 수급자가 주도하는 셈이다.
종합하면, 노령연금으로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금액이 매우 적은 후기 노인은 기초연금이 빈곤 완화에 좀더 큰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전기 노인의 경우 기초연금보다는 노령연금이 더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향후 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인구고령화에 따라 후기 노인의 절대 규모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후기 노인 중에도 특례연금보다 급여가 많은 완전노령연금이나 조기 내지 감액 노령연금을 받는 사람이 늘어난다. 따라서 기초연금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노후보장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노인빈곤 문제와 관련해선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1988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도입을 논의할 때 당시의 노인 혹은 중고령층에게 연금을 곧바로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부과방식이 개별 가정에서 행하던 부모 부양을 집합화해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를 부양하는 공적연금 취지에 맞는다는 것을 근거로 했다. 하지만 부과방식 도입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국민연금은 적립방식으로 도입돼 완전노령연금을 받으려면 20년을 가입해야 했다. 이에 따라 당시의 노인과 중고령층은 그들의 자식 세대 혹은 후배 세대에게 국민연금을 도입하게끔 해주고, 자신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거나 소액의 특례연금만 받게 됐다.
국민연금 시행 당시 중고령층이던 사람이 노인인구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노인빈곤율은 20%를 넘어 그 뒤 빠른 속도로 올라갔는데, 국민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시행해 그때부터 연금을 지급했다면 지난 20~30년 동안 이처럼 높은 노인빈곤율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공적연금에 대해 연금기금이 있어야만 제도를 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금만능론도 자라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후소득보장은 퇴직제도로 인해 생겼는데, 퇴직제도는 고령노동자를 퇴출시켜 인건비를 줄이고 이윤을 늘리려는 기업의 요구에 따라 20세기 초 이후에 생겼다. 퇴직제도 시행으로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를 집합적으로 부양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를 국가가 조직한 것이 공적연금제도다. 퇴직제도의 이런 기원을 생각하면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능가하는 현재와 미래에 연금보험료가 어디에 더 많이 부과돼야 할지는 자명하다. 인구가 늘어나던 과거에는 노동소득에 주로 연금보험료가 부과됐다면, 인구가 정체하는 현재와 미래에는 어디에 연금보험료가 부과돼야 할지도 자명하다. 자본소득이다.
기금만능론으로 세대 갈등을 부추기기보다는 세대 간 부양이라는 공적연금의 원리에 충실한 연금개혁을 추진해 미래에도 노후 빈곤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한겨레21> 공동기획: 코끼리 옮기기, 연금개혁 : 윤석열 정부가 연금개혁을 첫 번째 개혁 과제로 꼽고 있다. 연금 연구자들과 함께, 개혁의 필요성과 논쟁점을 짚어보는 글을 5주 연속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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