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23일, 두 엄마가 각각 발달장애인 자녀의 목숨을 끊었다. 서울 성동구에선 40대 여성이 6살 아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인천 연수구에선 60대 여성이 39살 딸에게 수면제를 먹여 숨지게 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다 미수에 그쳤다. 딸은 발달장애·뇌병변 중복장애인인데 대장암까지 앓고 있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최근 2년 동안 알려진 비슷한 사례만 최소 20여 건이라고 추산했다.
반복되는 죽음은 우연일 리 없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며 5월26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이날 만난 김종옥(60)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고문은 “(숨진) 자녀들의 나이를 보고 ‘아, 딱 그때였구나’란 생각부터 했다”고 말했다.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생각하면 아이를 발달장애인으로 등록하는 게 두려운, 집 근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일조차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때가 아이가 6살이 될 무렵이라고 했다. 엄마 자신의 몸은 늙어가는데 성인이 된 아이를 사회 어디에서도 반기지 않을 때, 엄마는 죽음을 생각한다고도 했다.
두 엄마가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직접 물을 수는 없었다. 다만 그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고 싶어, 피해자들과 비슷한 또래, 비슷한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보는 엄마들을 만났다. 5월31일 오전 중증발달장애아 6살 우진(가명)이와 엄마 김은미(41·가명)씨가 유치원에 등원하는 길에, 같은 날 오후 발달장애·뇌병변 중복장애인 조은비(37)씨와 엄마 홍효송(63)씨가 장애인복지시설을 방문하는 길에 동행했다.
“기어이 우리 애를 장애인으로 만들어야겠냐. 아이 장애 등록을 하려 했더니 가족조차 이런 얘기를 했어요. (장애인 등록으로 받을) 사회적 낙인이 무서운 거잖아요”
서울 성동구 송원초등학교 인근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김은미씨는 6살 우진이를 등에 업은 채 말했다. 김씨는 가방에서 2021년 10월 받은 복지카드를 꺼내 ‘장애 정도 중증, 지적장애’라는 글귀를 보여줬다. “아이가 평범해 보이죠. 그런데 말을 붙여보면 알아요. 어눌한 발음으로 엉뚱한 얘길 하고, 한번 울면 한 시간씩 울기도 하고, 자꾸 업어달라 하고. 가만있을 땐 또 평범해 보이니 가족도 못 받아들이는 거예요.”
5월23일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6살 아이는 장애인 등록이 돼 있지 않았다.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이용해 치료만 받고 있었다. 영유아기 땐 정확한 장애 진단이 어려워 등록을 미루기도 하지만, 가족이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해 등록을 미루기도 한다. 김씨도 우진이의 장애를 알아차리고 등록하는 과정에서 가족과 갈등을 겪어 등록이 미뤄지기도 했다.
우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단 걸 알아차린 건 태어난 지 17개월 된 때였다. 하루 한 번 ‘엄마’라는 말을 할까 말까 한 우진이를 본 어린이집 원장은 “기분 나빠 말고, 병원부터 가보라”고 했다. “우리 애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받고,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된다. 가족 간 갈등은 심화되고 그럴수록 아이는 점점 더 심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발달장애아 엄마 김윤정씨가 쓴 <도훈아, 학교 가자!> 중에서) 김은미씨 가족도 꼭 그랬다. 집에선 고성이 잦아졌다.
장애 인식 개선 교육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질 공간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사회에서 부모는 사람들이 수시로 내뱉는 차별을 마주해야 했다. 김씨는 “‘애가 과잉행동 장애가 있는 거 아니에요?’ ‘병원은 다니고 있어요?’ 이런 말을 모르는 사람들한테 들었다”며 “놀이터에서 아이가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했는데 내가 못 보고 사과를 못하면 ‘맘충’(엄마와 곤충의 합성어) 취급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아이의 장애를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린이집 가는 길’이 이렇게 어려운지도 몰랐다. 김씨는 인근 어린이집 목록을 펼쳐놓고 전화를 돌렸지만 끝내 특수교사가 있는 어린이집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나마 아이를 받아준다는 민간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아이는 따돌림을 경험했다. “우진이가 같이 놀려고 하면 어떤 애가 ‘야, 쟤랑 놀지 마’ 하고 우르르 다른 애들을 데려갔어요. 우진이는 소리 지를 때도 있는데 적절한 특수교육이 없으니, 애들은 우진이를 이상하게만 생각하는 거예요. 특수교육 경험이 없는 선생님이 10명 넘는 아이를 돌보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실제 ‘장애아전문어린이집’조차 특수교사 배치 규정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 특수교사가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장애아동복지지원법상 장애아전문어린이집과 장애아통합어린이집은 장애영유아 인원의 3분의 1 이상 특수교사 및 장애영유아를 위한 보육교사를 배치하게 돼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혜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국정감사 때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장애아전문어린이집 176곳 가운데 97곳(55%)이 특수교사 배치 기준에 못 미쳤다. 장애아통합어린이집 1190곳 가운데 219곳(18%)도 기준에 미달했다.
다행히 우진이는 2021년 장애·비장애 통합형 유치원에 입학했다. 단 1명을 모집하는데 운 좋게 자리가 났다. 아이를 업고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5분 걷고, 버스를 25분 타고, 또 정류장에서 유치원까지 10분 걸어야 하지만, 그 등원길조차 감사했다. 김씨는 “특수교육 선생님은 우진이를 ‘느린 부분도 있지만 우리 반 최고의 공룡박사’라고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지금의 통합교육에 만족하는데, 다른 발달장애아들은 대부분 우리 아이가 전에 겪은 아픔을 당하고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국가가 미취학 발달장애아동에게 적절한 특수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이, 엄마들은 사설 재활치료센터에 의존하고 있다. ‘조기 치료에 따라 장애 중증도가 달라진다’는 전문가들의 말에, 엄마들은 언어·미술·음악 치료 등을 분주하게 알아본다. 우진이도 1회당 5만5천원인 언어치료 수업을 주 4회 받고 있다. 인근 사회복지관이나 장애인복지관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지만, 대기 아동이 많아 사실상 이용하기 어렵다.
김씨는 “남편 수입이 있고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로 매달 16만원을 지원받지만, 남편과 돈 때문에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치원이 끝난 뒤 우진이를 보살피려고 식당·쇼핑몰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닌 평범한 가정이지만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인천에서 숨진 발달장애 자녀의 나이는 30대였다. 장종인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의학이 발달하면서 요즘은 발달장애인도 평균수명이 60살 정도 되는데, 20살에 학교를 나오면 40년 동안 갈 곳이 없다. 복지관도 최대 이용 기간이 3년이라, 다른 지역으로 옮겨다녀야 한다. 24시간 지원 체계, 평생교육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장 사무국장에 따르면, 인천 사건의 60대 엄마는 자녀에 대해 인천시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중앙정부로부터 월 120시간(하루 4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었지만 부족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만 6~64살 중증장애인의 활동을 돕기 위해 장애인활동보조사를 일정 시간 지원해주는 서비스다. 인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중앙정부의 활동지원서비스와는 별도로 소수에게 시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 사무국장은 “활동지원서비스는 등급에 따라 최대 480시간(하루 16시간)까지 받을 수 있지만, 이건 사실상 서류에나 존재하고 대상자도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장혜영 의원(정의당)이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2019년 7월~2021년 6월 장애인활동지원 신규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년간 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로 등록된 3만1731명 가운데 최고등급인 1구간(하루 16시간 지원) 신규 수급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2구간(월 450시간)은 한 명이 선정됐다.
5월31일 서울 서초구립 한우리정보문화센터 앞에서 만난 조은비씨도 하루 8시간가량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이 있는 발달장애·뇌병변 중복장애인 조씨는 이날 수중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활동지원사, 엄마 홍효송씨와 함께 시설을 찾았다. 홍씨는 “20살이 지나면서 아이 근육이 급격하게 퇴행하는 게 느껴졌다. 나도 함께 늙어가면서 아이의 거동을 돕는 게 힘들어졌다. (아이를 돌보다보니 나는) 40대 때부터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지체장애 없이 발달장애만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같은 지원에서 더 소외된다. 장애인 활동지원 등급을 나눌 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준이, 일상생활에서 동작을 얼마큼 수행하는지 조사하는 ‘기능제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팔을 자유롭게 쓰는 발달장애인이더라도 손으로 먹거나 상을 엎거나 해서 지원이 필요한데, 등급 기준에 못 미치면 장애아동 돌봄은 오롯이 엄마 몫이 되고 만다.
“아이가 나보다 하루만 먼저 죽게 해달라”홍씨에게 활동지원서비스보다 막막한 건 자녀의 노후,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다. 홍씨는 아이가 10살이 됐을 때부터 발달장애 자녀를 둔 주변 엄마들과 아이의 노후에 대한 걱정을 나눴다. 한때 저렴한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노년이 된 아이들을 돌볼 운영인력을 두자는 구상까지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장애 양상이 크게 달라졌고 운영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음을 알았다. 부모 잃은 무연고 발달장애인이 노숙인시설에 간 이야기, 장애인보호시설로 가서 얼마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웃 아이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홍씨는 두려웠다. “젊을 땐 제발 국가에서 아이들 노년 지원책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요즘은 그런 기도 안 한다. 그냥 나보다 아이가 제발 먼저 죽게 해달라, 하루만 먼저 죽게 해달라. 이 기도만 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5월23일 세상을 떠난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사십구재가 열리는 7월10일까지 매주 화요일에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발달장애인 지원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요구에 묵묵부답인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21일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의 집무실에 걸린 발달장애인 화가의 그림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 집무실에서 멀지 않은 삼각지역에 장애인단체들이 분향소를 차려놓고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받는 사람: 대통령님♥’…성탄 카드 500장의 대반전
한덕수의 ‘민심 역행’…민주당 ‘윤석열 신속 탄핵’ 구상에 암초
‘밀실 수사는 싫고 공개변론’ 윤석열의 노림수…강제수사 시급
서태지 “탄핵, 시대유감…젊은 친구들 지지하는 이모·삼촌 돼주자”
하마터면 고문 당하는 시대로 돌아갈 뻔 [하종강 칼럼]
허락 했을까요 [그림판]
“윤석열 복귀할까 심장이 벌렁거려”…일상에 새겨진 계엄 트라우마
이재명 “지금 예수께서 오신다면 내란 맞선 우리 국민들 곁에…”
이승환·예매자 100명, 대관 취소 구미시장에 손배소 제기한다
성탄절 아침 중부내륙 영하 10도 강추위…낮부터 흐려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