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인 2022년 2월1일 야간까지 구조대원들이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실종자를 수색하고 구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란 리본이 걸린 철망 너머로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쓴 남성의 시선이 머물렀다. 아파트 외벽 콘크리트는 누더기가 된 채 건물에 매달렸고 휜 철근은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201동. 39층 옥상부터 23층까지 건물 잔해는 얽히고설키며 내려앉았다.
2022년 1월26일 오후 아파트 붕괴 사고현장에 들러 실종자 가족을 만난 ‘광주 학동 참사’ 유가족 김아무개씨는 철망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봤어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꼭 봐야겠어서. 그런데 그 모습이 떠올라 사람이 거의 미쳐가더라고. (학동 참사보다) 여기가 더 처참할 것 같아서 마지막 모습은 안 보셨으면 하지만….”
2021년 6월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맡은 광주 학동 재개발 지역에서 불법 하도급 업체가 철거하던 건물이 도로 위 버스를 향해 무너진 참사가 일어났다. 버스 승객 9명이 숨졌고 김씨는 17살 아들을 잃었다. 7개월이 지나 현대산업개발이 짓던 아파트 외벽이 또다시 붕괴됐다.
붕괴 사고가 난 2022년 1월11일 밤 11시. 마음이 답답해 잠이 들지 못한 김씨는 처음 사고현장을 방문했다.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무너진 아파트를 지켜보며 기도했다. 아들은 어렵게 낳은 2대 독자였다. “잊어라, 산 사람은 살아야 하잖느냐. 그렇게 말해요.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내가 내 아들 기억 안 해주면 누가 하겠어요. 내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내 아들보다 고통스럽겠어요.” 김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아파트 붕괴 사고현장을 찾고 있다. 그는 “더 싸우지 않아서, 세상을 못 바꿔서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났다”는 말을 실종자 가족에게 하곤 한다.
윙윙거리는 겨울바람 소리. 김씨가 떠난 자리에 노란 리본들이 나부꼈다. 노란 리본에는 삐뚤빼뚤 글씨가 적혀 있다. ‘막둥아 뭐 하고 있냐. 가족들이 네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와라 보고 싶다. 보고 싶어 동생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한다.’ ‘저의 새해 소원은 작은아빠가 어서 빨리 가족들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외삼촌 따뜻한 밥 먹으러 가요.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주세요.’
참사는 1월11일 오후 3시46분께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진행되던 아파트 옥상 39층 바닥이 무너지며 일어났다. 노동자 6명이 실종됐다. 사고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찰은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층 아래에 설치해야 할 동바리(임시지지대)가 없었다고 밝혔다. 콘크리트 타설을 할 때 일반거푸집이 아닌 ‘역보’라는 콘크리트 벽을 세워 하중이 가중됐음이 확인됐다. 사고 당일 골조공사 하청업체가 아닌 펌프카 업체 소속 노동자 8명이 39층 바닥 콘크리트를 타설한 사실도 확인됐다. 불법하도급 여부도 조사 중이다.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겨울철 콘크리트를 굳히는 과정(양생)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도 나온다.
1월24일~2월1일 사이 엿새간 참사현장에 머물며 실종자 가족 등을 만났다. 가족들은 구조를 염원하며 사고현장을 떠나지 않은 채 설 명절을 맞았다.
사고현장 인근은 ‘재난현장 통제구역’으로 묶여 출입이 통제됐다. 잔해물이 건물에서 떨어질 듯하면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소방차와 경찰버스를 지나 통제구역을 돌아 걷다보면 여러 채의 텐트를 마주친다. 자원봉사자 텐트, 피해상인연합회 텐트, 사고수습본부 텐트를 지나면 실종자 가족의 텐트가 있다.
실종자 수색을 가로막던 타워크레인 해체 작업이 마무리되던 1월24일. 해가 지자 아파트가 무너진 곳에 조명이 떨어졌다. 가족들은 밤이 깊도록 그곳에 머물렀다. 텐트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가 현장을 오래도록 지켜보곤 했다. 몇몇 가족은 작은 목소리로 구조 방법을 궁리하는 이야기를 했다.
실종자 가족 대표를 맡은 안정호씨도 밤이 돼서야 텐트 밖으로 나왔다. 체육관을 운영하며 인테리어 사업도 함께 하는 그에겐 고객들로부터 문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도 어디 가려 했는데 다 붙들렸어요. 생업이 안 돼요. 그래도 저 돌덩이에 끼여 가족이 고통당하고 있잖아요.” 안씨의 매형이자 30년 무술 스승이 사고현장에 갇혀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사고 당일, 가족들에게 향하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보고서 그는 임시 가족대표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 뒤로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빨리 끝날 줄 알았어요….”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이 보이는 철망에 실종자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문구가 쓰인 노란 리본들이 걸려 있다.
설 연휴를 앞둔 1월24~27일 사고현장에는 정치인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24일은 여영국 정의당 대표, 25일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26일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27일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현장에 들렀다. 그 나흘 동안에도 사고현장에선 실종자 구조가 한창이었다. 실종자 6명 가운데 5명은 아직 콘크리트 안에 갇혀 있었다. 1월25일 오후 5시30분께 실종자 1명이 추가로 발견됐다. 실종자 혈흔이 있는 옷가지가 나왔지만 바로 구조할 수는 없었다. 1월14일 첫 번째 실종자 김아무개씨의 주검을 수습한 지 11일 만이었다. 이어서 1월27일 오전 11시50분께 세 번째 실종자의 위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이날 콘크리트 더미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27일 이재명 후보가 떠나간 뒤 한산해진 텐트 앞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진짜로 뭘 걱정하는지 알아요? 같이 나가야 하는데… 결국은 한 가족이 남잖아요. 제일 나중에 남을 가족들은 정말 고통이에요. 다 같이 한꺼번에 하루이틀 사이에 구조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빨리 다 같이 구조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도 위험한 상황을 아니까 속만 썩어요.” 아파트 스프링클러 설치 작업을 하던 형이 현장에 갇혀 있는 ㄴ씨의 말이었다. 텐트 건너편 주차장 펜스에는 ‘구조대원들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실종자 가족들이 쓴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설 연휴가 시작된 1월29일 토요일. 실종자 가족들은 그간 참아온 애끓는 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로 했다. 유력 정치인들이 방문할 때마다 바글거리던 인파가 사라지고, 기자들도 철수해 사고현장이 한산해진 때였다. 이날 오후 2시 실종자 가족 10여 명이 모여 텐트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가족들은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힘드시겠지만 표현을 안 해주시면 점점 잊혀요.” 안정호 실종자 가족 대표가 가족들에게 말했다.
20대 남성이 힘겹게 말을 뗐다. 그의 아버지는 스프링클러 설치 작업을 하다 사고로 매몰됐다. 아버지는 공부하느라 바빴던 대학생 아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다. “아버지한테 3월에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끝나고 여행 가자고 했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요. 같이 갔으면… 사진이 남았을 수도 있는데.” 아들을 쳐다보던 어머니가 눈물을 보였다.
딸 하나를 어렵게 낳아 키워온 50대 여성도 남편을 찾지 못하는 마음을 전했다. “딸은 아빠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딸은 아빠랑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먹겠다고 기다리고 있는데…. 사고당한 가족들 잊혀가는 거 같아서 안타깝고 너무너무 힘들어요.” 다른 30대 남성은 “아버지가 4살 난 손녀딸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말했다. “저희 딸이 아버지…가 엄청 진짜 아끼던 손녀딸이거든요. 장난감 사서 손녀 재롱 보려고, 기분 좋게 집에서 기다리고 계셨을 거예요. 즐거운 명절이잖아요.” 출장이 잦은 아버지라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각별했던 가족이었다.
이날 발견은 됐지만 구조되지 못한 실종자들의 가족도 입을 열었다. “커가며 형과 사이도 멀어지고 통화도 많이 안 해서 미안해요. 가족끼리 다 모여서 밥이라도 한 끼 먹을걸.” 나이 차이가 크게 났던 형과 소원해진 관계가 못내 아쉬웠던 동생이 울컥하며 말했다. 다른 실종자의 아내는 남편을 1월1일에 마지막으로 만났다. 마지막 통화는 1월8일이었다. “여기 피해 가족으로 있는 분들은 한푼 두푼 벌어서 하루 생활을 연명하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앞으로 조금이나 기억하는 분들이 있었으면….” 그는 말을 좀처럼 끝맺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 텐트 뒤편에는 소화제, 쌍화차, 컵라면 등이 보였다. “속이 막히니까, 밥이 안 넘어가.” 텐트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던 한 실종자 가족 ㄱ씨의 말이 떠올랐다. 2월1일 설날 아침 8시30분에도 어김없이 실종자 가족들이 하나둘 사고현장의 텐트로 나왔다. 이들은 인근 모텔에서 주로 숙식을 해결한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오전 11시20분. 광주 서구청 봉사단이 곰탕 국물과 소고기, 달걀지단이 들어간 떡국을 실종자 가족들에게 배달했다.
그날 아침 실종자 가족 ㄱ씨는 설 연휴 기간 관리자도 없이 구조작업이 진행됐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기자에게 먼저 꺼냈다. 1월29일 오후 5시께 국토안전관리원이 24층 천장 부분 균열이 위험해 보인다는 의견을 내자 당국은 구조수색 작업을 일시 중단했다. 저녁 7시가 넘어 가족에게 이 사실이 알려졌다. 가족들은 구조현장에 여러 차례 가본 터라, 정말 위험한지 눈으로 확인하겠다며 아파트 29층에 올라갔다. 그러나 구조작업이 중단됐다는 말과 달리, 철거용역 직원들이 남아 잔해를 부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마구 파내서 버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다. 관리·감독도 없이 시공하던 엉터리 작업이 구조 과정에서도 반복됐다.” 안 대표가 말했다. ㄱ씨는 “처음에는 서로 말도 잘 못 걸던 가족들이 아파트 사고현장에 같이 올라가 구조작업의 실상을 목격한 뒤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2월5일 아침 11시 현재, 실종된 노동자 6명 가운데 4명의 주검이 수습됐다. 발견된 실종자 1명에 대해서는 구조작업 중이고, 나머지 1명은 아직도 실종 상태다. 하나둘 실종자가 수습되면 가족들은 현장을 떠나간다. 그럼에도 이들은 슬픔을 함께하고 있다. 1월14일 처음으로 주검을 수습한 실종자 김아무개씨의 가족도 종종 현장에 남아 있는 다른 실종자 가족에게 연락하거나 광주를 방문한다. 남은 실종자가 구출되기를 기다리면서.
광주=글·사진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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