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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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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애인은 왜 영국의 4분의 1도 안 될까

질환과 장애가 교차하는 만성질환 대부분 장애 인정 안 돼
의료적 기준에 따른 장애인등록제도 폐지해야
등록 2021-08-17 13:11 수정 2021-08-17 23:53
2021년 7월1일 정의당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한 간담회’. 공동취재사진

2021년 7월1일 정의당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한 간담회’. 공동취재사진

최근 이런저런 일로 영국의 장애 관련 통계 자료를 찾아보다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수치를 보게 됐다. 하나는 2020년 3월부터 7월까지 영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중 장애인이 60%를 차지한다는 내용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구금시설 수감자 중 30% 정도가 장애를 지녔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경우 2020년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중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1%였고, 구금시설 수감자 중 장애인 비율은 치료감호소까지 포함하면 약 4.6%로 확인된다. 어째서 이렇게 큰 격차가 나타나는 것일까?

고려해야 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영국과 한국의 장애출현율(전체 인구 중 장애인 비율)에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20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장애출현율은 5.4%인 반면 영국은 27.3%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24.5%로 보고된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장애출현율은 OECD 평균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일까?

가장 기초적인 답변은 영국의 장애학자 앨런 롤스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듯싶다. “장애가 무엇인지는 어떤 국가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여기는가에 달려 있다.” 장애라는 범주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는 사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며 다양한 쟁점을 내포하는 문제다. 하지만 국가행정 차원에서 보면, 장애란 일정한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적격성 기준이다. 그리고 국가가 이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장애로 인정되는 손상(심신의 특성과 질환)의 종류와 정도가 크게 달라진다.

손상보단 사회적 제약과 차별에 주목해야

2021년 4월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그리고 장애 정도 판정기준을 개정해 장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손상의 범위를 확대했다. ‘복시’는 시각장애, ‘투렛장애’ ‘강박장애’ ‘기면증’ 등은 정신장애, ‘백반증’은 안면장애,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은 지체장애로 인정받게 됐다. 일단 장애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입장을 나타내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쟁점과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 장애와 질환의 경계라는 쟁점이다. 장애학(Disability Studies)에서 장애와 질환은 서로 구분되는 범주로 이해됐다. 질환은 치료나 죽음에 의해 종료되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장애는 지속된다는 것이 기본 논거다. 그러나 질환 앞에 ‘만성’이란 단어가 붙을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만성질환은 질환과 장애가 교차하는 영역에 위치한다. 이미 현 장애인복지법상 장애 유형에서 신장장애, 심장장애, 간장애, 호흡기장애, 뇌전증장애 등은 일종의 만성질환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번 장애인 인정 대상 확대에서는 기존 15개 장애 유형을 그대로 고수하려다보니, 당사자들이 원했음에도 여러 만성질환이 광범위하게 배제되고 말았다. 대표 사례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이다. 그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차별 진정 운동을 해왔고, 외국의 경우 영국·오스트레일리아·미국·캐나다·독일·홍콩·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HIV감염을 장애로 인정한다.

둘째, 일정한 심신의 특성과 질환이 장애에 포함된다고 했을 때, 무슨 기준으로 최종 판단이 내려져야 하는가의 문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가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참여를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과 손상을 지닌 개인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야기된다”고 규정한다. 누군가가 지닌 손상 자체가 아니라, 그런 손상을 지닌 사람이 일정한 사회적 환경에서 어떤 활동의 제약과 차별을 경험하고 어떤 필요(needs)를 갖게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장애 인정 여부에서 여전히 철저하게 의료적 기준을 따르는데, 이는 매우 임의적일 뿐만 아니라 여러 모순과 문제를 발생시킨다.

백반증, 얼굴 40%와 45% 무슨 차이?

이번에 안면장애 유형에 포함된 백반증은 노출된 안면부의 ‘45% 이상’에 백반증이 있을 때 장애로 인정된다. 이런 획일적인 의료적 기준이 과연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얼굴의 40%에 백반증이 있는 사람과 45%에 백반증이 있는 사람은 과연 사회적 차별이나 필요에서 어떤 차이를 지닐까? 그리고 기면증은 “2년 이상의 지속적인 치료조건을 충족”하고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된 경우”에 한해, CRPS는 “2년 이상의 충분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위축 및 관절구축 등이 뚜렷한 경우”에만 장애로 인정된다. 그러나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일으킬 정도의 기면증이 있다고 해도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또 CRPS에서 통증이 반복적이고 심하다 해도 반드시 근위축 등 신체 변형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결국 이번 장애인 인정 대상 확대는 어떤 면에서 ‘기면’과 만성 ‘통증’이 아니라, 여기에 동반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정신질환과 신체 변형을 장애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다보니 중증의 기면증과 CRPS를 지닌 이들 대부분이 장애를 인정받을 수 없는 모순이 생겼다.

장애 유형을 단순화해야 하는 이유

결국 정부의 이번 조처에 따라 새롭게 장애인으로 등록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우리나라의 장애출현율은 유의미한 증가를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로 인정될 수 있는 개별적인 특성과 질환을 계속 추가해가는 것이 대안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장애 유형을 중범주(Middle Category) 수준에서 단순화하고, 의료적 기준에 따른 장애인등록제도 자체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 신체 장애 △내부 기관 장애 △시청각장애 △발달장애 △정신장애의 특성을 반영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서의 제약 정도, 이에 따른 지원의 필요성을 측정할 수 있는 서비스·급여 인정조사표를 주요 활동 영역별로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이 어떤 특성과 질환을 가졌든, 인정조사표에 따라 지원받는 이는 모두 장애인으로 공인하는 시스템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 장애계에서 추진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이런 새로운 장애인 인정 체계를 담고 있으며, 이것이 현실화한다면 장애등급제도를 넘어 장애인등록제도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장애학의 도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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