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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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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참사의 진짜 배후를 벌하라

처벌마저 없다면 죽음의 행렬 막을 수 없어…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당장 어려워도 시행령이라도 손봐야
등록 2021-06-19 09:12 수정 2021-06-21 01:52
6월14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현장에서 공사 관계자가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6월14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현장에서 공사 관계자가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 일어난 건물 붕괴 사고를 보며 우리는 깨달았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건물이 불과 몇 분 만에 무너져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어떤 이는 병문안을 가다가 갑자기 건물 잔해에 눌려 숨졌고, 또 어떤 이는 아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 시장으로 가다 버스에서 압사당했다. 그들은 그저 버스를 탔을 뿐이다. 돈벌이가 생명보다 우선시되는 한국 사회에선 노동자만이 아니라 시민들도 죽는다.

비용 절감 위한 하도급과 재하도급

철거 중인 건물이 왜 갑자기 몇 분 만에 무너졌는지, 왜 인도와 도로에는 붕괴나 파편의 위험을 대비하는 장치가 없었는지, 대규모 재개발 지역임에도 왜 안전 안내조차 없었는지는 수사 결과가 나와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략 원인을 유추할 수 있다. 인도 바로 옆 건물을 철거하는 공사인데도 먼지를 막는 가림막만 하나 있었을 뿐이다. 인도와 도로의 통행자를 통제하며 위험을 알리는 이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많은 공사현장에서 그러하듯이,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건설사가 하도급을 주면서 안전관리자 등 인력이 줄고 안전조치도 부실해졌을 것이다. 공사 기간을 줄이거나 비용이 덜 드는 건물 해체 공법을 썼을 것이다. 실제 원청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건설산업기본법상 ‘공정 내 재하도급 계약’이 금지됐으나 한솔기업에 공사 전체를 도급 주었고, 한솔기업은 다시 백솔건설에 재하도급을 주었다. 원청 시공사는 안전관리를 하지 않았다. 현대산업개발은 2013년부터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 중대재해가 많은 사업장으로 공표된 회사다. 그런데 광주시 동구청은 해체 계획서를 꼼꼼히 검토하고 확인한 뒤 허가를 내줬을까.

안전한 공사를 하도록 2020년 건축물관리법이 제정, 시행됐다. 물론 완벽하지 않다. 건축물관리법의 건축물 해체 허가와 감리 대상이 5층 이상 건물에만 해당한다는 허점이 있다. 이번에 무너진 건물은 5층이다. 법에 따라 건축물을 해체하려면 시장, 도지사,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감리자를 배치해야 한다. 감리자는 작업 순서, 해체 공법 등 계획서에 맞게 공사하는지를 확인하고 현장의 화재·붕괴 방지 대책, 교통안전과 안전통로 확보, 추락·낙하 방지 대책 등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붕괴 사고에서 현재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계획서에 안전조치 내용은 비어 있을 뿐 아니라 업체는 해체계획서에 따라 철거하지 않았다. 안전검사 기준을 특정하는 안전점검표도 첨부하지 않았다. 동구청은 계획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허가해준 것이다. 게다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서 하는 철거 공사인데도 동구청은 아무런 안전조치도 하지 않았다.

최고경영자, 발주처, 공무원 처벌해야

그렇다면 발주처인 재개발조합은 안전을 위해 어떤 조처를 했는가. 발주처는 왜 산재 사고가 많이 발생한 현대산업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했을까. 혹시 비용만 줄이려는 욕심에 사고 다발 업체를 선정한 것은 아니었나. 부동산 재개발 이익에만 골몰하는 개발조합이 늘어가는 현실에서 발주처 처벌이 더 중요해지는 때다.

여러 명의 목숨을 하루아침에 앗아간 책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기에는 법·제도가 미흡하다. 2021년 초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에야 시행될 뿐 아니라, 법안도 반쪽인 채로 제정됐다. 이제라도 국회와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해, 제대로 된 시행령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먼저 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 같은 최고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법은 책임자 범위를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로 명확히 하지 않고 범위를 정하는 것을 시행령으로 하도록 미뤘다. 그 결과 중대재해 책임을 안전관리 책임자에게 떠넘길 여지가 있다.

둘째, 법 제정 때 빠진 ‘발주처 처벌’이 들어가야 한다. 철거 공사만이 아니라 건설 공사에서도 발주처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사 기간 단축을 강요하는 일이 많다. 2020년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물류센터의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는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위험한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방치했고 안전 관리·감독도 하지 않았다.

셋째, 공무원 처벌 조항이 법에 들어가야 한다. 정부는 건설 인허가만이 아니라 안전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만큼 그것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받게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불법 청탁을 받거나 관료적으로 안이한 태도를 보여 공무원이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광주시 건물 붕괴 사고 이후 부랴부랴 서울시나 부산시 등 여러 광역 지자체가 건축물 철거 공사장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에 들어갔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부동산 재개발 사업으로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는 지방정부가 늘어가는 만큼, 공무원 처벌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나아가 지방정부 정책도 재개발 이익에서 ‘재개발 과정의 안전관리’로 중심축이 전환돼야 한다.

5명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삭제해야

그 밖에도 중대재해처벌법에서 5명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나 50명 미만 사업장 2년 시행 유예(공포 뒤 3년 유예) 규정은 삭제돼야 한다.

법 개정이 당장 어렵더라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행령이라도 제대로 만들면 된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중 산재 분야는 시행령과 관련해 조금씩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시민재해 시행령은 논의조차 없다. 현행법은 ‘중대시민재해’를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로 규정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을 포함하려면, 시행령에 ‘생명·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와 같은 포괄적인 규정을 넣으면 된다. 그래야 대규모 철거지역이나 개발지역, 공단 앞을 지나다가 발생하는 참사로 피해를 입는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

또한 회사 최고경영자를 처벌하도록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구체화해야 한다.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에 단순히 보고만 하거나 형식적인 점검을 하지 않도록 정기적인 현장점검이라고 못박아두면 예방 효과도 크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처벌마저 없다면 우리는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없다. 처벌은 단지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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