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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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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만들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LG전자 자회사 등 금속노조 생기니 기업노조 등장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노조 차별·와해 수단으로 악용돼
등록 2020-08-08 13:43 수정 2020-08-08 14:30
5월27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어 ‘소수노조 교섭권 쟁취’를 주장하고 있다. 노동과세계 제공

5월27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어 ‘소수노조 교섭권 쟁취’를 주장하고 있다. 노동과세계 제공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은 LG전자 노사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삼성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와해 시도 혐의로 수사받는 중에 노조 와해 피해자인 협력업체 소속 수리기사들을 직접고용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삼성처럼 수리업무를 외주화했던 LG전자와 자회사 두 곳에 노조 5곳이 생겼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지회 3곳(LG전자지회·하이텔레서비스지회·케어솔루션지회),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산하 2곳(하이텔레서비스노조·하이엠솔루텍노조)이다. 이렇게 생긴 노조에는 공통점이 있다. ①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설립 움직임이 있은 뒤 ②같은 사업장에 한국노총 노조가 생겼고, ③한국노총 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돼 ④금속노조 산하 지회는 노조 설립 본연의 목적인 ‘단체교섭’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행 9년이 지난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미친 영향이다.

‘나쁜 모범’ 삼성 노조 와해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 직접고용 노사협상이 타결될 즈음인 2018년 11월15일, LG전자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던 수리기사들은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함께 ‘LG전자 서비스센터 노조 준비를 위한 모임’을 결성했다. 노조를 통해 직접고용을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만인 11월22일 LG전자가 수리기사 3800명을 직접고용하겠다고 발표한다. ①나흘 뒤 금속노조 LG전자서비스지회(이후 LG전자지회로 명칭 변경)가 설립됐다. 그러나 ‘원청’인 LG전자의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LG전자노조가 회사와의 직접고용 협상에 참여하면서, ②협력업체 노동자들을 LG전자노조에 가입시켰다. 직접고용 협상은 금속노조는 참여하지 못한 채 2019년 3월 타결됐다. 회사는 타결 사실을 전하면서 “LG전자가 직접고용하게 될 3900여 명 가운데 현재까지 90% 이상이 LG전자노조에 가입했다”고 전했다. 복수노조 상황에서 특정 노조의 조직률을 회사가 보도자료를 통해 알리는 일은 흔치 않다.

금속노조 LG전자지회는 2019년 12월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LG전자노조에는 서비스직에다 7천 명에 달하는 생산직 노동자까지 가입했기 때문에, 조합원 수는 LG전자지회가 LG전자노조보다 훨씬 적었다. 조합원 수를 기준으로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하고, 교섭대표노조에 협약체결권을 주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③LG전자노조가 교섭대표노조, LG전자지회가 ‘교섭참가노조’가 됐다.

그러나 ④LG전자지회는 “교섭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LG전자지회는 LG전자노조에 2020년 1월29일 단체교섭을 위한 교섭요구안을 보냈으나, LG전자노조는 자신들의 교섭요구안과 단체교섭 일정을 LG전자지회에 공개하지 않았다. 40여 일 지난 3월10일, 교섭요구안을 ‘접수’했다고 통보하고, 단체교섭을 8일 앞둔 3월16일에야 교섭안과 교섭 일정을 알렸다. 그리고 LG전자지회가 공문으로 요청하기 전까지 체결된 단체협약 원문도 받아 보지 못했다. 금속노조는 6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LG전자·LG전자노조를 상대로 공정대표의무*위반 시정신청을 냈다.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와 조합원을 차별해서는 안 되는 노조법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LG전자와 자회사의 노조 현황

LG전자와 자회사의 노조 현황


노조 설립 추진 노동자 고소·계약 해지

LG전자의 콜센터 3곳과 기업고객 대상 가전제품 유지보수를 맡는 LG전자의 자회사 하이텔레서비스(하이텔레)의 상황도 LG전자와 비슷하다. ①LG전자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소식을 전해들은 하이텔레 노동자들은 2019년 3월 금속노조를 찾아 상담했고, 지회 설립을 준비했다. 지회 설립을 위한 네이버 밴드를 만들고 사업장에서 노조 가입 유인물을 배포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②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하이텔레노조가 설립됐다(2019년 4월3일).

금속노조 하이텔레지회는 설립 초기 조합원이 228명에 달했으나 모회사 LG전자노조와 금속노련의 도움으로 하이텔레노조가 조합원 400명대로 몸집을 불렸다. 하지만 “노조 설립 초기부터 관리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을 수시로 면담하며 금속노조 가입을 문제 삼았다. 하이텔레노조는 하위 직원 고과평가권이 있는 파트장도 가입이 가능해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해 탈퇴한 경우가 숱하”(정재호 하이텔레지회 사무장)게 되면서 조합원이 70명대로 떨어졌다.

③하이텔레노조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통해 교섭대표노조가 됐고, 소수노조인 하이텔레지회는 교섭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하이텔레노조는 하이텔레지회에 교섭에 관한 의견 수렴을 충분히 하지 않고, 노조 활동을 위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시간을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6월1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공정대표의무 위반’ 판정을 받았다.

LG전자 정수기를 유지관리하는 ‘케어솔루션’ 부문과, 시스템 에어컨 등을 유지관리하는 ‘에어솔루션’ 부문이 있는 LG전자 자회사 하이엠솔루텍의 사례를 보자. 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은 회사와 업무위탁계약을 맺는 ‘특수고용노동자’다. 2019년 10월 LG전자의 정수기 곰팡이 사건 이후 과중한 업무가 부여되는 등 불만이 쏟아지면서, ①2020년 5월 금속노조에 가입해 케어솔루션지회를 설립한 뒤 6월17일 회사를 상대로 교섭요구를 했다. 하지만 지회 설립 전 노조 설립 멤버 2명을 계약해지하고 사기미수·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경찰에선 무혐의 처분)하기도 했던 회사는 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이 ‘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서울지노위는 7월2일 이들이 노조법의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라’고 판정했다. ②이날 하이엠솔루텍 소속 정규직 노동자들의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하이엠솔루텍노조가 설립됐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8월3일 중노위 재심에서도 지노위와 같은 판정이 나왔다. 바로 이날 하이엠솔루텍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하이엠솔루텍 회사 쪽은 “케어솔루션지회 매니저의 노동자 지위에 대해 아직 다툼이 있는 상황이므로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명이라도 더 조합원이 많다면

결국 케어솔루션지회의 에어솔루션 소속 정규직 조합원 수가 하이엠솔루텍노조보다 적으면 ③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김진희 케어솔루션지회장은 “같은 일을 하는 코웨이 코디(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조설립필증을 받은 것처럼 정부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인정했는데, 회사가 소송으로 시간을 끌면서 노조의 힘을 빼려고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금속노련 관계자는 “복수노조 상황에서 조직화 경쟁은 당연한 것이고, 금속노련의 핵심 사업장인 LG전자에 금속노조가 들어오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다른 금속노련 관계자는 “하이엠솔루텍노조는 금속노조 설립을 의식해 설립된 것이 아니고, 설립된 지 오랜 시간이 흘러 교섭요구를 한 것일 뿐 금속노조의 노동위 판정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LG전자와 자회사에 금속노조 지회들을 어렵게 설립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노조법의 교섭창구단일화제도 때문이다. 이 제도는 사업장에 노조가 여럿일 때 조합원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지정하고 이 노조에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한다. 통상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2년이니 교섭대표노조가 한 번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교섭대표가 아닌 소수노조는 2년 동안 교섭을 요구할 수 없다. 노조를 만드는 것은 회사와의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동조건을 향상하기 위함인데, 소수노조는 이 과정에 제대로 참여하기 어렵다.

여기에 회사가 ‘온건’하다고 평가하는 특정 노조를 지원하고 ‘강경’한 노조를 차별할 경우, 이 제도는 노조 와해 수단으로 악용된다. 2011년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와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은 유성기업 등이 비슷한 사례다. 노조 간 차별 방식은 타임오프 배분, 노조 사무실 제공부터 인사·노동조건 차별 등 다양하다. 경남 창원의 두산모트롤은 2017년 전체 기술직 노동자 243명 가운데 금속노조 조합원이 124명, 기업노조 조합원이 119명이었다. 그러나 기술직 보직자 41명 가운데 금속노조 조합원은 단 한 명도 없었고, 57명의 승급 인원 중 금속노조 조합원은 6명뿐이었다. 6월4일 창원지법은 회사의 이러한 차별이 “금속노조 조합원을 불이익 취급하려는 회사의 반조합적 의사에 기인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며 금속노조에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6월18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가 하이엠솔루텍을 상대로 단체교섭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제공

6월18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가 하이엠솔루텍을 상대로 단체교섭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제공

“노사관계를 사용자 쪽으로 기울게 해”

복수노조 상황에서 교섭권이 없어 단체행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소수노조는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위원회에 내는 공정대표의무 위반 시정이나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은 법적 강제력이 없을뿐더러 회사가 법원까지 끌고 갈 경우 해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소수노조’인 금속노조 콘티넨탈(자동차부품사)지회의 조남덕 지회장은 “우리가 교섭대표노조로 교섭하면 회사 쪽은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교섭안을 제시하고, 기업노조와는 개별교섭을 해 성과급을 얹어줬다. 그러나 법원에 소송을 내서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받는 데 5년이 걸렸다. 그사이 조합원들이 기업노조로 다 넘어갔다”고 했다.

신규 노조 설립을 어렵게 하고, 기존 노조 탄압에 사용되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손봐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속노조가 만들어진다는 얘기가 나오면 곧바로 기업노조가 생긴다. 자주적으로 노조를 만들어봐야 창구 단일화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이화운 금속노조 보쉬전장(자동차부품사)지회장) “모든 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면 회사가 굳이 어용노조를 만들 이유가 없다. 사용자는 빠지고 노조가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조합원이 어느 노조를 선택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조남덕 지회장)

“교섭창구단일화제도의 입법 목적은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교섭체계 구축’ ‘통일적인 노동조건 형성’이었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노조의 힘을 빼려는 현 상황에서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노사관계를 사용자 쪽으로 기울게 한다.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폐기하고 자율교섭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옳다. 헌법은 노동삼권을 보장하고 조합원 수에 따라 보장되는 권리의 질적인 차이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탁선호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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