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가 시행될 무렵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자료에 진성노조 대응 대책으로 대항노조 설립이 통용돼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2011년 7월 복수노조 설립 허용 이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에 ‘삼성노조’가 세워질 움직임이 포착되자 회사는 어용노조인 ‘대항노조’(현 에버랜드노동조합)를 설립했다. 회사가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에 개입하는 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2018년 검찰은 노조 와해 전략이 담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문건을 입수한 뒤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다. 그러나 삼성 임직원들은 노조 와해 계획이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만든 자료가 아니라 경총 자료를 참고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피해가려 했다.
삼성 “경총 자료 참고했을 뿐”
삼성의 주장은 사실일까? 사실이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재판 기록에는 경총이 2004년 9월15일 작성한 ‘복수노조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문건이 포함돼 있다. 표지에 ‘주요기업 임원회의’라고 적힌 이 문건을 삼성은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 문건에는 “전략적 복수노조 설립 유도” “노노 갈등과 분열 활용” “노조 간 차별적 대우” 등 부당노동행위 전략이 가득 담겨 있다. 노동자들의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삼권을 빼앗은 기업 전략의 뿌리가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사용자단체인 경총이란 게 드러난 셈이다.
문건은 ‘복수노조 설립 원인과 유형’ ‘복수노조 허용시 예상되는 법적 쟁점’ ‘복수노조 시대의 경영계 대응 전략’ 순으로 구성됐다.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개별 기업의 대응 전략’이다. 여기서 경총은 “노노(노조와 노조) 갈등은 산별노조 가입이나 강성노조 설립으로 이어질 경우 노사관계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나,<em> 온건노조 설립이나 노조 탈퇴로 이어질 경우 노조 조직력과 교섭력 저하를 초래하게 돼 사용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em>”며 “사용자로서는 직접적 개입을 통한 노노 갈등 관리보다는 온건·우호적 세력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는 간접적 관리가 더 적합하다”고 적는다. 복수노조 시행을 오히려 노조 세력을 약화할 기회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회사 쪽에 “온건노조 설립 지원”을 대응 전략 가운데 하나로 제안한다. “사용자가 기존 노조를 견제하거나 회사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제2, 제3 노조의 설립을 지원함으로써 복수노조가 설립될 수도 있다. 강성노조만 존재할 경우 온건노조 설립을 지원하거나, 생산직 노조만 존재할 경우 사무직·관리직 노조의 설립을 지원(한다.)” 이는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로 불법이다. 이를 통해 얻는 효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em>노노 분쟁과 갈등을 증폭시킴으로써 노조의 조직력·교섭력을 약화시키고, 노조의 동향을 파악해 효율적 대응 방안을 강구하며, 교섭 기간을 장기화시켜 조합원의 무관심을 야기하고, 중장기적으로 상급단체의 변경 또는 노조의 통합을 도모할 수 있다.</em>”
삼성·창조컨설팅 노조 와해 전략과 흡사
노조 설립에 개입한 이후에는 이른바 ‘강성노조’를 대놓고 차별하라는 내용도 이 문건에는 포함됐다. “노조의 성향이나 조직형태 등 사측에 우호적인 노조와 그렇지 않은 노조를 분리해 차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사측에 우호적인 노조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함.” 구체적인 차별 전략으로는 “편의제공 차별(노조 사무실·경비 원조, 각종 지원 등), 인사상 차별(배치전환·고과·승진 등), 노동조건 등 차별(연장근로시간 배정 등), 교섭 차별(교섭 시기·장소·횟수·참석자 등), 파업 대응시 차별(민형사 및 징계책임과 직장폐쇄)” 등을 제시했다. 이 밖에 “정보·고충처리 등 각종 채널 관리 과정에서 노조의 성향 등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회사 쪽에 우호적인 노조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한다”고 지침을 세우는 한편, “<em>회유·포섭을 통해 강성노조 탈퇴 및 온건노조 가입을 유도</em>”한다는 내용도 넣었다.
경총이 노골적으로 ‘노조 와해’를 언급한 대목도 눈에 띈다. “법적 분쟁 활용”이라는 항목에는 이런 언급이 나온다. “‘강한 적은 소모전이 최고’라는 말과 같이 법적 분쟁을 노무관리 방안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성향 등에 따른 ‘당근과 채찍’을 통한 차별 대응 방안을 동시에 적용해야 할 것임. <em>장기간 법적 분쟁과 부당노동행위 처벌 가능성을 감수하더라도 강성노조와 소속 조합원에 대한 암묵적 차별, 전보 발령 등을 통해 일단 강성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거나 와해시키는 방안.</em>”
이러한 경총의 전략은 복수노조 시행 뒤 이른바 ‘강성노조’로 분류되는 금속노조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이행됐다. 삼성에버랜드나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은 유성기업·발레오만도 금속노조 사업장 전반에서 이뤄진 회사 쪽의 행태와 대부분 일치한다. 회사 쪽의 노조 와해 전략에 따라 노조들은 큰 피해를 보았다. 또한 법원은 문건에 언급된 ‘차별 전략’ 대부분을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경총이 공식적으로 문건까지 만들어 회원사에 어용노조 설립과 노조 간 차별 등 부당노동행위 전략을 제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경총이 현행법을 위반하라고 독려한 사실이 확인된 이상, 정부 위원회 참여 등 법적으로 누리는 사용자단체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경총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해 판정하는 노동위원회를 비롯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최저임금위원회·고용보험위원회 등 고용노동 관련 위원회뿐만 아니라, 건강보험·국민연금공단 이사회에도 사용자단체 자격으로 활동하거나 위원을 추천하는 권한이 있다.
“작성자 누구인지 모른다”는 경총의 거짓말
경총은 ‘부당노동행위 전략을 작성한 이유’에 관한 <한겨레21>의 질의에 “작성자가 누구인지, 삼성이 어떻게 이 문건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모르쇠’로 발뺌한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21>이 경총 누리집을 뒤져보니, 해당 문건은 작성자 ‘한국경총’, 작성일 ‘2004년 9월15일’로 ‘공개자료’로 올라와 있었다. 경총이 작성·공개한 문건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함으로써, 경총의 해명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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