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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때 다른 검찰의 중립성

검찰,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상황 ‘사전보고’ 보고규칙 개정안 반발
등록 2019-11-25 10:19 수정 2020-05-03 04:29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11월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11월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로 법무부 장관 권한대행을 맡은 김오수 차관은 지난 11월19일 국회에 출석했다가 혼쭐이 났다. 법무부가 앞서 11월8일 청와대에 보고한 업무보고 내용 때문이었다. 업무보고 때 김 차관은 검찰총장이 수사 중인 중요 사건을 단계별로 법무부 장관에게 ‘사전 보고’하도록 검찰보고사무규칙(보고규칙)을 개정하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이 방안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한다”며 김 차관을 강하게 질책했다. “법무부 장관에게 압수수색을 사전에 보고하면 청와대를 비롯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조국 전 장관 수사 때문에 사전 보고를 추진하는 게 아닌가” 등 날 선 질문들이 이어졌다. 김 차관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검찰이 법무부에 (수사 상황을) 보고하는 규정이 있다. 지금 수준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보고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손사래를 치기에 바빴다. 그는 “(법무부는) 제발 나대지 말고, 설치지 말라”는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모욕적인 질책에 “유념하겠다”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의도 의심받는 개정, 억울하다는 법무부

이 장면은 보고규칙을 둘러싼 법무부와 검찰의 여론전에서 법무부가 완패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갈등의 본질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다. 이는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에 꼭 필요한 장치다. 수사 상황을 보고받아야 지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지금처럼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할 내용을 스스로 판단해서 선별 보고하는 것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슈가 ‘조국 사태’와 맞물리면서 불순한 의도로 의심받게 됐다. 보고규칙 개정안을 작성한 곳이 법무부 내 조국 전 장관 쪽 인사들이 포진한 검찰개혁추진지원단(추진단)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추진단은 조 전 장관이 지난 9월9일 취임 직후 만든 조직이다. 법무부가 조 전 장관 수사에 대한 보복으로 보고규칙 개정을 추진한다고 의심받기에 딱 좋은 ‘그림’이다.

정치적 중립과 독립적 수사를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가 수사 상황 사전보고를 추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2017년 5월11일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기자회견에서 “민정수석은 수사 지휘를 해선 안 된다”고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이는 지휘뿐 아니라 보고도 안 받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검찰도 그해 11월 전병헌 전 정무수석 수사 때 법무부 장관에 대한 사전보고를 없앤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검찰은 보고규칙 개정을 조 전 장관 수사에 대한 보복으로 해석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 비리나 사법 농단 수사 때는 법무부가 수사 상황 보고 문제로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조 전 장관 수사 이후 이를 문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은 재임 기간에 보고규칙과 관련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조 전 장관 수사가 시작되자 그는 “검찰이 조 전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내게 사전 보고했어야 했다”며 검찰 수사에 불만을 나타냈다.

법무부는 이런 의심에 억울해한다. 검찰을 지휘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에게 주어진 ‘수사지휘권’을 내실화하는 것일 뿐 조 전 장관 수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반박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금도 법무부 장관에게 주요 수사 상황을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검찰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보고할 것과 안 할 것을 선별한다. 그러다보니 보고 누락 시비가 생기고, 법무부와 갈등으로 번진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관련 규칙을 정비하자는 게 업무보고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10월14일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검찰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10월14일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검찰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검찰청법 배치되는 보고규칙, 전두환 정권 때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 장관은 (…)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이는 법무부 장관의 부당한 수사 개입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장관이 검찰총장에게만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면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지검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사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관의 수사지휘가 부당하면 검찰총장이 거부하면 된다. 이 조항은 검찰청법이 처음 만들어진 1949년 12월부터 들어간 조항이다.

그런데 전두환 정권 때인 1982년에 이 법의 취지에 배치되는 보고규칙이 만들어졌다. “각급 검찰청의 장이 상급검찰청의 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동시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해놓았다. 이 때문에 보고규칙이 검찰청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법무부가 이번에 보고규칙을 개정하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한 것은 바로 이런 논란을 해소하려는 취지였다는 게 법무부 쪽의 설명이다.

법무부는 오히려 검찰의 반발에 ‘숨은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꼭 필요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보고규칙 개정은 앞으로 검찰과 협의해서 추진한다. 검찰의 반발이 협의 자체를 거부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의심은 참여정부 때의 경험에 근거한다. 2005년 10월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한국전쟁은 통일전쟁’이라는 취지의 글을 쓴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자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 참여정부가 사법개혁 차원에서 추진한 불구속 수사 원칙을 관철하려는 의도였다. 실제 재판에서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 가벼운 형량의 범죄였다. 그러나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사표 제출로 저항할 것을 요구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법에 보장된 정당한 권한이다. 그런데도 검찰 엘리트들은 이를 받아들이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김 총장은 취임 6개월 만에 옷을 벗었고, 강정구 교수는 불구속 기소돼 2010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이 확정됐다.

엘리트 검사들은 총장에게 사표를 요구하면서까지 정치적 독립 의지를 보여줬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검찰을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 조직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이 사례는 검찰이 주창하는 정치적 중립성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황교안, 법무장관 때 국정원·세월호 수사 개입

검찰이 보고규칙 개정에 반발하는 것도 나름 이유가 없지는 않다. ‘윤석열 검찰’은 법무부가 ‘사전 보고’를 추진하는 것은 명백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침해라고 주장한다. 기존 보고규칙에는 발생보고·수리보고·처분보고·재판결과보고 등 보고 내용을 네 가지로 규정했다. 법무부 개정안은 여기에 단계별 ‘사전보고’를 추가했다. 사전보고는 압수수색 등 수사 개시 상황을 미리 보고하는 셈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사건에서 검찰의 독립적인 수사는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윤 총장이 법무부의 청와대 보고 내용을 접한 뒤 대검 간부들에게 “검찰의 중립성 보장을 위한 검찰청법에 위배되지 않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한 배경이다.

과거 정권에서는 실세가 연루된 수사에서 검찰이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상황을 보고하면 그 내용이 수사 대상자에게 고스란히 흘러간 사례가 적잖았다. 장관이 아예 수사에 개입해 누구는 구속하지 말라는 등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윤 총장이 수사팀장을 맡았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현 자유한국당 대표)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막았고, 윤 총장은 이를 국회 국정감사 때 폭로한 바 있다. 하지만 윤 총장의 저항은 검찰 역사상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정권의 부당한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황 전 장관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에 ‘해경 간부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업과사)죄를 적용하지 말라’고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에서 여권이 참패할 것을 우려해 수사팀 구성과 수사 개시 시점을 고의로 늦췄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수사는 요원해 보였다. 윤석열 총장은 최근 특별수사단을 만들어 세월호 참사 재수사를 지시했다.

검찰, 무조건 반발 아닌 민주적 통제 동참해야

드물지만 검찰의 정치적 독립 노력이 빛을 발한 때도 있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 때는 검찰이 아예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검찰 수사가 박 전 대통령을 겨냥하자 이창재 법무부 차관(장관 권한대행)을 국회로 불러 수사 상황에 대해 질의했다. 하지만 수사 상황을 보고받지 못한 이 차관은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반복했고, 여당 의원들은 “법무부가 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닦달했다.

여당 의원들의 등쌀에 못 이긴 법무부의 한 간부가 국정 농단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수사 상황을 일부만 알려달라고 읍소한 적도 있다. 수사팀은 요지부동이었다. 수사팀은 법무부에 수사 상황을 보고 하면, 법무부가 이를 청와대에 보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칫 법무부 간부들이 수사 기밀 누설로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수사팀은 이 논리로 법무부 쪽을 설득했다. 하지만 국정 농단 수사 때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 상황이었다. 대통령이 정상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검찰이 ‘다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이 내세우는 ‘정치적 중립’의 진정성이 여전히 의심받는 상황에서, 검찰이 보고규칙 개정에 무조건 반발만 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검찰도 민주적 통제를 내실화하기 위한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 검찰의 과도한 반발은 자칫 ‘검찰에 대한 정치권력의 감시와 통제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태도로 비칠 수 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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