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섹스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옷 입고 하는 거예요? 옷 벗고 하는 거예요?” “음… 옷 입고 할 수도 있고, 옷 안 입고 할 수도 있지.” “입고는 어떻게 하는 건데요?” “안 입고 하는 거랑 똑같지.” “안 입고는 어떻게 하는 건데요?” “음… 나중에 알게 돼.”
당황 말고 질문 의도 파악부터“(질문들이) 너무 사실적이다.” 서울교육대 초등교육과 황지원(21)씨가 ‘난감한’ 질문 폭격을 맞고 숨을 토해내듯 말했다. 두루뭉술하게 답을 피하기가 무섭게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선생님, 성욕은 남자가 더 센 거 아닌가요?” “몽정을 하면 키가 안 크나요?” 예비 선생님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서렸다.
11월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사향광장에서 ‘성교육, 전체이용가’라는 제목의 성교육 페스티벌이 열렸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예비 교사인 교대생을 대상으로 벌인 행사다. 아이들의 성별 고정관념을 깨고 젠더 감수성을 길러주려고 초등 교사들이 모인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다. 2016년 경기도 고양시 초등 교사 5명이 독서모임으로 시작한 이 모임은 2017년 초등학생들의 젠더 감수성을 고민하는 ‘아웃박스’로 발전했다. 현재는 서울·경기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2030 교사’ 1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아웃박스 교사들은 3년 동안 했던 고민과 노하우를 예비 교사, 현직 교사, 성교육 강사 등과 나 눴다.
예비 교사들을 난처하게 만든 질문들은 실제 초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아이들이 물었던 내용이다. “섹스가 뭐예요?” “수업시간에 갑자기 발기하면 어떡해요?” “포경수술은 꼭 해야 하나요?” “우리도 섹스해도 돼요?” 같은. 예비 교사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학생 연기를 했던 성민주 교사가 말했다. “먼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섹스가 뭐예요’라는 질문의 의도는 굉장히 다양하다. 동생이 갖고 싶은데, 친구들이 ‘동생을 가지려면 엄마 아빠가 섹스해야 해’라고 말하니까 궁금할 수도 있고, 선생님을 놀리고 싶어서 물어볼 수도 있다. 아니면 어디서 ‘섹스’라는 말을 듣고 질문할 수도 있다.” 옆에 있던 이아무개 선생님이 덧붙인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답을 하면 장난으로 물어봤더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웃박스 교사들은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했다. 다만 자신들이 공부하고 고민한 대답을 공유했다. 예를 들어 “섹스가 뭐예요?”라는 질문엔 “‘섹스’라는 건 우리말로는 성관계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교감하는 행동”이라거나 “왜 이렇게 예민해요? 생리해요?”라는 말엔 “생리해서 예민하냐고 하는 건 상대가 느끼는 기분을 존중하지 않는 거예요. ‘예민할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구냐’라는 말이잖아요. 친구가 짜증내서 싫은 거면 ‘짜증내지 말고 천천히 말해줘’라고 말해봅시다” 하는 식이다.
‘난처한’ 질문을 받은 서울교대생 허도영(24)씨는 “학생들에게 받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니 당황스러웠다. (실제 현장에서 받는 질문들은) 공교육에서 배웠던 것과 달랐다”고 말했다. 초등교육과 금소민(21)씨도 “교대 교과 과정에 성교육 수업이 없다.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니 교대생들에게도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계와 경계 존중을 포함하는 교육서울교대에서 ‘성교육 페스티벌’이 열린 건 의미심장하다. 올해 초 서울교대에서는 재학 시절 신입 여학생들 외모를 품평하는 이른바 ‘자료집’을 공유하고, 단체대화방(단톡방)에서 여학생들을 성희롱한 사실이 공개돼 서울시교육청이 현직 교사와 임용 예정자 14명을 징계하기도 했다. 교대생들의 ‘성희롱’ 논란은 서울교대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올해만 해도 경인교대·청주교대·대구교대 등에서도 서울교대와 유사한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여영국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교대 10곳과 한국교원대 등 총 11곳의 교대에서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을 단독 과목으로 개설한 학교는 춘천교대가 유일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김수진(29) 교사가 기획의도를 전했다. “단톡방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서울교대에서 행사를 기획한 건 아니었지만, 교대생들에게 성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애초에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가 대상을 바꿨다. 교사인 우리도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이나 성교육을 받지 못했고, 생각할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웃박스가 성교육을 할 때 중점에 두는 건 ‘포괄적인 성교육’이다. 생식기 설명에 국한하지 않고, 성별에 따른 관계와 ‘경계 존중’(타인의 경계를 함부로 넘지 않는 것)까지 넓은 범위를 ‘예민하게’ 가르친다. 현장에서 본 아이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무심코 행해지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닮았다. “체육 시간에 여자애들에게 축구를 시켰더니 처음 해본 애들이 많았다. 그동안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 식으로 나눠서 했던 것이다.”(김 교사)
초등학교에서 번번이 일어나는 성희롱도 아웃박스 교사들의 고민거리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시원(25) 교사는 담임으로 있는 반 아이의 말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한 학생이 교과 선생님 사무실에 가서 ‘저 발기했는데 어떡해요?’라고 말했다. 여자 선생님을 놀리려고 한 말이었다. 새로운 단어를 알고 있다는 영웅 심리에서 아이들이 성적 농담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성적 호기심을 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성적 농담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상대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면 그것은 성희롱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여학생에게는 ‘거절’과 ‘불쾌감’을 표현하는 걸 지도한다.”
학교에서부터 불쾌하다 말하기아웃박스는 학교 현장에서의 성평등 교육에도 ‘예민’하다. 김 교사는 무의식적으로 했던 ‘성별로 한 줄 세우기’를 없앴다. 남녀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그룹을 짓고 서로를 다른 집단으로 인식하면서 고정관념이 커진다는 생각이었다. 성별 고정관념은 교사들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림장 확인을 받아오라고 할 때 ‘엄마한테 받아오라’고 한다든가, 학부모 연락처를 받을 때 ‘○○어머니’라고 저장하는 것 등이다.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성별 고정관념이었다.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해야 하나”라는 반응도 있지만 3년 동안 활동하면서 응원이 늘었다.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이 아웃박스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쪽지로 참여 의사를 밝혀오기도 한다. “차별이 있음을 인식하는 건 어려운 일지만, 이제 깨달았으니 아이들에게는 차별 경험을 덜 줘야 하지 않겠나.”
글·사진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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